제 658화
전생의 나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고. 나를 죽이려 했던 병은 사실 신의 히포크리아조차 수년을 연구한 끝에야 이 병을 수술하는 데에 성공했다.
단순한 병을 기준으로 이 정도로 오래 걸린 경우는 사실상 그리 많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내가 알고 있는 병을 그대로 구현해낸 탓에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영웅의 회랑은 어떤 것이든 기억에 존재하면 거의 완벽에 가깝게 구현해내는 게 가능한 특수한 장소인 만큼 신뢰도는 제법 높다.
물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고 어떻게 그들이 구현할 힘을 계속해서 끌어내는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세상엔 많은 병이 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죽는다.
전생의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병은 단순히 인간의 힘으로 치료하기엔 너무도 난도가 높고 그 위험부담이 극도로 높았기에 치료보다는 중화시키는 쪽으로 치료를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중화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지금 내 수술실력이라면 목숨줄을 20년 정도는 더 붙일 수 있는 정도.
하지만 완치는 불가능하다.
치료가 불가능한 병인데
나는 어째서 현아에게 빙의하여 수술을 진행하고 있는가.
그건 나로서도 알 수 없었다.
연희 누나의 몸에 나와 같은 병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세상이 무너질 듯 오열하는 소중한 동생의 눈물을 봤을 때.
나는 복잡하게 재고할 것 없이 손부터 움직였던 것 같았다.
하지만 불가능해도 해야만 했다.
손끝이 떨려온다.
온몸이 칼로 난자당하는 것 같은 싸늘함이 서렸다.
현아의 불안함이 내 영혼을 타고 그대로 전해져 오지만 이를 악물었다.
[칭호. 의술에 접근하는 자를 장착.]
내게는 스승인 신의 히포크리아가 가지지 못한 특성들이 존재한다.
내 실력이 그녀에게 미치지 못한다면 나는 다른 것들을 이용해서라도 가까운 결과에 도달하리라.
이 병은 전염성이 없다.
그렇기에 내 병을 연희 누나가 옮았다가 이제 와서 얻었다고 할 순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병을 얻은 것일까.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후우…….”
“아가씨…… 벌써 수술을 장시간 지속했습니다. 이 이상 수술을 진행하는 건…….”
한 박사님의 말에도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마지막 한 부위를 찾아야 하는데.
극도로 예리해진 손끝의 감각으로도 이물질을 찾아낼 수가 없다.
“이 이상하면 바이탈 사인이 극도로 불안정해집니다!”
한 박사님의 외침에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언제부터 안된다고 절망했는가.
나는 데이비 올 라운이다.
영웅의 회랑에서 영웅들의 이름을 대도 될 정도로 갖은 고생을 거쳐 완성되어 나온 존재.
내게 실패 따윈 없다.
팅!!!
나는 거칠게 메스를 집어 던져버리고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다시 멈췄다.
여기서 마나를 사용하면…… 현아는? 연희 누나는 어떻게 되는가.
내가 여기서 넬타리드의 힘으로 허락받은 범위는 영령으로서 존재하는 것. 간단한 영 능력 이외에. 빙의가 전부.
마나를 발현하는 그 순간 선을 넘게 된다.
“아가씨?”
내가 멈칫하고 있자 한 박사님의 걱정스런 부름이 들려왔다.
여기서 내가 실패하면.
누나는 죽는다.
두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릴 때부터 갖은 고생을 해온 누나가.
이제 행복해야 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떠나는 것이다.
“아가씨…… 안될 거 같습니다. 이제라도 포기를…….”
“…….”
“아가씨?”
연희 누나의 위장 부분에 다시 변색되기 시작하는 살점을 보며 내가 이를 까득 소리 나게 깨물었다.
그리고 파르르 떨리는 속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엿이나…… 먹으라지."
서늘한 목소리가 나를 대신하여 현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동시에 한 박사님이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본다.
사람 우습게 보지 마라.
나를 죽였으면 됐지 이번엔 누구 목숨을 노리는 거냐.
공자 가라사대.
안 되면 되게 하여라.
나는 메스가 아닌 맨손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나머지 한 손에 침을 핑그르르 돌리듯 쥐었고.
내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침을 찔러넣었다.
수술 중에 침을 사용하는 이 기괴한 현상에 어지간한 의학도들이 보면 대번에 화를 낼 상황이었지만 내 움직임에 망설임은 없었다.
“무슨?!”
장기에 직접적으로 침을 찔러넣는 내 행동에 한 박사님이 놀란 듯 소리쳤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찔러넣은 침 끝의 튕기듯 진동을 만들어냈다.
웅…… 웅…….
침이 혈을 자극하면서 육체의 활동량을 극도로 증가시킨다.
그리고.
칼 같은 빈도로 맞추어진 파장이 윙윙 울리기 시작한다.
그런 변화에 기겁하며 나를 말리던 한 박사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히포크리아식 장침술.]
[파사법.]
그녀가 만들어낸 침술이며 직접 몸 안에 자극을 가하여 수술하는 절기나 다름없다.
조금만 실수해도 그대로 환자를 죽일 만큼 위험한 행동이지만.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파장과 위치만 맞춰낸다면.
반드시 해결이 가능하리라.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수술이 재개된다.
그리고.
하나둘 뽑아내기 시작한 침 중 검게 변색된 마지막 장침이 내 손에 끌려 빠져나오자 오랜 시간 숨을 참은 것처럼 현아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후의 일은 어렵지 않았다.
빠르게 연희 누나의 몸에 생긴 병의 근원지로 추정되는 부분을 봉합하면 되는 일이었다.
“세상에…… 말도 안 돼…… 이런 수술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마지막 봉합을 끝내기가 무섭게 과도한 심력을 사용한 탓인지 현아의 육신이 나를 튕겨낸다.
챙그랑!!!!!
동시에 현아의 몸이 그대로 무너져내렸고 깜짝 놀란 한 박사님은 그녀에게 다가가 외쳤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아…… 아아…… 하…… 한 박사님?”
“아가씨!”
“수…… 수술은…….”
멍한 눈으로 중얼거리는 그녀의 물음에 한 박사는 침을 튀길 듯 흥분하며 소리쳤다.
“대성공입니다!! 그 티끌만 한 종양들을 모두 제거했어요!!”
그는 환희에 몸을 떨며 소리쳤다.
“제가 수십 년 의사 인생을 살아왔습니다만 이토록 완벽하고 경악스러운 수술은 처음입니다!”
그렇게 외친 한 박사는 벌떡 일어나 연희의 바이탈 사인을 나타내는 모니터를 가져와 들이밀었다.
“보십시오!! 이토록 안정적인 바이탈 사인을 말입니다!”
“하…… 하아…….”
숨을 크게 들이쉰 그녀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고요히 잠들어있는 제 언니의 얼굴을 보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언니…… 언니…… 이제 괜찮은 거야? 그렇지? 괜찮은 거지?”
당연히 마취로 인해 잠들어있는 그녀가 답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현아의 얼굴에는 기쁨과 슬픔이 가득 서려 있었다.
“일단 환자를 안정시켜야 합니다! 큰 아가씨를 옮기는 건 제가 할 테니 조금 쉬고 계십시오!”
“하…… 하지만 한 박사님도…….”
“아가씨가 해내신 겁니다!! 아가씨가 전 세계 내로라하는 의사 나부랭이들도 절대 못 한다며 혀를 내두르던 수술을 성공시킨 거란 말입니다!”
그렇게 외치며 그는 곧바로 수술실 바로 옆에 준비된 개인 중환자실로 연희의 수술 침대를 옮겼다.
수술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현아는 숨이 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살아남았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와야 하는데 눈물조차 긴장한 탓에 나오지 않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속이 쓰리고 숨이 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남자와 조금만 더 일찍 만났다면.
몇 년만 더 일찍 귀안이 열려서 이 남자를 만났다면…….
그녀의 인생에 가장 쓰디쓴 기억을 지워낼 수 있지 않았을까.
“기뻐야 하는데…….”
작게 중얼거린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구역질이 났는지 그대로 입을 틀어막고 수술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언니를 구한 건 너무 기쁜데.
같은 병으로 오빠가 죽었었다는 사실은 그녀를 미치도록 슬프게 만들었다.
조금만 시간이 있었다면 어쩌면 오빠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가 직접 수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더 귀안이 빨리 열렸다면.
그녀가 나이가 조금만 더 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린, 임종조차 보지 못한 오빠의 목숨도…….
그렇게 생각하던 그녀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이번 수술의 가장 큰 공헌을 한 존재.
그가 없었다면 절대 할 수 없었을 시도였다.
그는 그녀의 몸에 빙의해 놀라운 의술실력을 보여주었고.
경악스러운 결과를 남긴 채 사라졌다.
그는……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당황한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지만.
데이비는 보이지 않았다.
* * *
환한 병실.
“큰 아가씨.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눈을 감은 채 누워있는 신연희의 손을 꼭 잡으며 한 박사가 눈물을 떨구었다.
“아가씨께서 제게 해주신 은혜를 갚지 못해 그토록 죄스러웠는데…… 이렇게라도 아가씨께 도움이 될 수 있어 이 늙은이는 너무도 행복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연희는 눈을 뜨지 않았다.
“어서 눈을 뜨셔야지요. 아픈 거 훌훌 털어내고 젊은 시절을 즐기셔야지요. 이제 고생도 그만두시고…… 회장님께서도 정말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도련님이 똑같은 병으로 떠나시고 회장님께서 꽤 많이 슬퍼하셨으니까요.”
말없이 한 박사의 중얼거림을 듣고 있던 나는 조용히 다가갔다.
눈을 감고 있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말 없이 그녀의 손에 흐릿해진 손을 얹었다.
비록 오로지 내 몸 안에서의 변화만 일으켰지만, 이곳에서 너무 많은 간섭을 일으켰다.
그녀의 운명을 바꾼 것이니 말이다.
서서히 흩어지는 것으로 보아 지구에 다시 올 수 있을지는 사실 의문이었다.
넬타리드가 어째서 내게 이런 것들을 겪게 만든 것일까.
전생의 삶. 병실에서 죽어가던 나의 손을 꼭 잡으며 엉엉 울며 미안하다고 말하던 누나는 많이 수척해 보였다.
“누나…… 오랜만이야.”
담담하게 중얼거린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고 발음도 어눌해진 기분이었다.
“누나. 우리 누나…… 너무 고생만 한 우리 누나.”
파르르 떨리며 내 손등에 무언가 툭툭 떨어져 내렸다.
“너무 보고 싶었다. 현아도, 누나도. 둘 다 너무 보고 싶었어. 삼촌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병실 밖에서 누나에게 말하고 싶었다.”
담담하게 말한 나는 조용히 그녀의 팔에 고개를 묻었다.
대가는 치러져야 한다.
선택을 강요하던 신의 계시. 그건 그녀를 살리기 위해 내가 힘을 사용했을 때.
내가 무엇을 내놓을 수 있는가였다.
신의 계시는 내게 거래를 제시해왔다.
살리고 싶나? 그럼 네가 가진 것을 하나 포기해라.
나는 그 거래에 응했고, 칭호를 발현하는 대가로 회랑에서 영웅들이 걸어준 가호 중 하나를 비활성화시켰다.
프리아 여신이 나를 신부로서 데려가지 못하게 막아주던 가호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바꿀 수 없는 미래였고, 되돌아가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내릴지도 몰랐다.
그리고. 지금 프리아 여신의 힘이 나를 다시 티오니스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당장 신부가 될 일은 없겠지만. 그녀가 내게 직접적으로 간섭할 영향력이 늘었다는 점으로 봐도 무방했다.
넬타리드는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짓을 꾸민 것일까.
어떤 면에서도 넬타리드 신이 이득을 볼 것이 없는데 말이다.
그런 내 고민에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은 말 대신 대답을 보여주었다.
넬타리드의 힘이 느껴지며 나는 어느덧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는 기분이 들었다.
[들리는가.]
[나의 말이 들리는가.]
[복수의 신부여. 나의 말이 들리는가.]
정보에 따르면 미치광이 신 넬타리드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너무도 어린아이와 같은 목소리였다.
[나의 땅에서 태어난 영혼이여. 나의 말이 들리는가.]
그 목소리는 너무 따스하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 쌓여온 아픔을 이곳에서 풀 수 있게 자비를 허락하노라.]
[프리아의 권속일지라도. 나를 믿어라. 나를 믿는다면 너에게 아주 잠깐의 구원을 허락할지니.]
당신이 어째서.
당신이 왜.
그런 생각이 들기도 번 나는 포근한 누군가의 품 안에서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신의 일면, 신의 계시.
그딴 건 지금 아무래도 좋았다.
꿈이라도 좋았다.
“현수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
모습도, 목소리도, 완전히 바뀌었음에도 꿈속에서의 그녀는 나를 알아보았다.
아마 꿈에서 깨면 그녀는 나를 기억 못 하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누나…….”
“우리 귀여운 동생.”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쓸어내려 주는 그 목소리는 자신이 죽어가던 입장이었음에도 동생을 생각하는 누나의 사랑이 담겨있었다.
“보고 싶었어. 현수야.”
“그래…… 나도 보고 싶었어.”
결국,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미련이 없는 게 아니었다.
꾹꾹 눌러 담아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일 뿐.
결국.
나는 현아와 연희 누나에게 어떤 미련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