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9화
189. 신의 큰 그림
프리아 여신이 나를 옥죄듯 불러들인다.
서서히 나를 끌어들이는 힘에 저항하듯 넬타리드의 권능이 내 영혼을 감싸며 보호하기 시작했다.
넬타리드는.
내게 구원을 하고자 하였던가.
이제 와서 누가 누굴 구원하겠다는 건지.
“우리 동생.”
나를 다독이며 부드럽게 웃어 보이는 그녀는 모든 걸 이해한 듯 그저 내 등을 토닥여 줄 뿐이었다.
이 꿈이 지나, 그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았다.
아주 잠깐동안.
이렇게 구원받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서 누나는 너무 기뻐.”
“나도…… 기쁘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담담한 물음에 나는 말 없이 침묵했다.
그리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이번엔 되찾았어. 전부다.”
나는 담담하게, 그리고 조용히 내가 살아온 것들을 그녀에게 말했다.
모두 말할 순 없을지라도.
그저 동생이 오랜만에 만난 사이좋은 누나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 것과 같았다.
“다행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현수야.”
그리고. 옅어지는 목소리 너머에서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넌 지금 행복하니?”
그녀의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누나는 지금 너무 행복해.”
연희 누나의 미소는 너무도 밝았다.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던 내 몸이 더더욱 옅어진다.
“우리 사랑하는 동생 현수. 멀리서도 밥 잘 챙겨 먹고.”
“그래.”
“아프지 말고…….”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
어렵사리 대답하지만, 목소리가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누나나 현아는 잘 지낼 테니까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해.”
내 뺨을 쓸어주며 결국 연희 누나는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미련이 없다 하였으나 미련으로 가득했고.]
[보고 싶지 않다고 하였으나 천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고.]
“아…… 그래. 인정합니다. 이건 좀 세네.”
[그 찰나의 만남이 구원이 되었기를.]
넬타리드가 내 호의를 사고자 많은 일을 했다만 나는 타신 이라는 이유로 불신을 깔고 갔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 일이 넬타리드의 계략 중 일부일지라도.
이번만큼은 모든 문제를 뒤로하고 그에게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빛이 나를 완전히 휘감았다.
꿈속에서 만난 연희 누나는 그렇게 내 눈앞에서 사라졌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중환자실에 누워 침묵하고 있는 너무도 보고 싶었던, 그리고 소중했던 누나의 모습이었다.
고요하게 잠든 그녀는 나와의 만남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말없이 병실을 빠져나온 나는 숨을 헐떡이며 뛰어다니던 현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봐요!!”
나를 보기가 무섭게 후다닥 뛰어온 그녀가 나를 끌어안듯 달려들었다.
후웅!!
하지만 그녀의 몸은 나를 지나칠 뿐이었다.
“넘어진다.”
이어지는 내 말에 바닥에 넘어진 그녀는 제 허리를 붙잡고 끙끙거렸다.
“어…… 어디 갔다 온 거예요!”
그녀의 외침에 내가 눈을 찌푸리자 그녀는 눈물이라도 당장 떨굴 것처럼 소리쳤다.
“없어진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내가 있든 없든 그게 문제가 되나?”
“당연히 되지!! 그렇게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내가 마음이 편할 줄 알아?”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녀였다.
“언니는…….”
“수술은 성공적이야. 다시 없을 정도로 완벽한 수술이다.”
덕분에 가호를 하나 버리긴 했지만. 넬타리드가 제공한 구원의 기회는 버리지 않았다.
결국. 나는 고집 면에서 페르세르크에게 진 꼴이다.
“할 말은 그게 다인가?”
“저기…… 당신 몸이…….”
“무리했으니 돌아갈 때가 된 거지.”
프리아 여신이 계속해서 나를 티오니스로 불러들이고 있고. 넬타리드 신이 그것을 늦춰주고 있다.
좋든 싫든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라는 건 분명했다.
그전에 현아에게 열린 귀안을 닫았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단순한 영혼의 능력으론 그녀의 귀안을 닫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넬타리드 교단에 대해 조사해보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교단은 안중에도 없는 게 현실이다.
“흠…….”
“어…… 어쨌든…… 고마워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우리 언니 지금쯤…….”
“빚 갚은 거라 생각해.”
담담하게 말한 내가 그녀에게 손을 뻗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싸늘한 공기가 나를 감싼다.
그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우우웅!!
마치 기다렸다는 듯 현아의 스마트폰이 맹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잠깐…… 전화 좀…….”
그리고는 전화를 받은 그녀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여졌다.
“뭐…… 뭐라고요?! 안돼!!”
비명을 지른 그녀가 허겁지겁 어딘가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가씨? 아가씨! 어딜 가십니까!!”
“아…… 안돼! 오빠 납골당이! 납골당이!!”
당황한 그녀는 그렇게 외치며 재빨리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내가 따라 나가기가 무섭게 어디서 꺼내왔는지 모를 차를 타더니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아가씨! 이 무슨?!”
당황한 한 박사님이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전화하기 시작했다.
“이보게 한 실장! 대체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길래 아가씨의…….”
상황이 다급해 보인 탓일까.
나는 내가 발현할 수 있는 아주 털끝 같은 영 능력을 이용해 스마트폰의 전자를 나와 연동시켰다.
[큰일 났습니다! 누군가가 아가씨께서 가시던 납골당에 테러를 저지른 모양입니다!!]
뭐?
* * *
“안돼…… 안돼!!!”
초조하게 운전하며 엄청난 속도로 도로를 내달리는 그녀는 자신이 과속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더욱 강하게 액셀을 밟았다.
평소엔 돈 아깝다며 타지도 않았을 차였지만 지금은 속도가 나와준다는 게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부우우우우우웅!!!!!
수술을 한 병원과 납골당의 거리가 상당했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저 멀리서 불길이 치솟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안돼…… 안돼…… 안돼!!!”
눈물을 흘리며 그녀가 차를 근처에 세운 뒤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안됩니다!!”
이미 소방차가 소리를 듣고 찾아왔다.
불을 진압하기 위해 나와 있던 소방관들은 갑작스레 현아가 달려들어 불타오르고 있는 납골당으로 들어가려 하자 당황하여 그녀를 막아섰다.
“안 돼요!! 보내주세요!!”
“안됩니다!! 들어가면 위험합니다!”
“안돼…… 안에 오빠가!! 오빠가 안에 있단 말이에요!!”
그녀의 처절한 외침에 소방관들이 서로 눈치를 보냈다.
“무슨 소리입니까! 안에는 아무도 없었던…… 이…… 이봐요!!”
당황한 소방관을 제치고 그녀가 뛰어들어갔다.
그녀의 눈에는 현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저 타오르고 있는 납골당 속에 있는 제 오빠의 유골함을 꺼내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안돼…… 안돼! 이번에도 이렇게 잃을 순 없어!!”
그녀의 주변으로 섬뜩한 느낌이 지나쳐 갔지만, 그녀는 전혀 그런 문제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안 돼!! 막아!!”
막무가내로 들어가려 하는 그녀를 막으려 소방관들이 뛰어들어온다.
그들이 다급히 달려오는 모습이 마치 슬로우 모션이라도 된 것처럼 느려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짧은 찰나.
그녀는 이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섬뜩한 바람이 전신을 감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타오르는 납골당 안에서 섬뜩한 무언가와 눈을 마주쳤다.
그것을 마주한 그녀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파르르 떨며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털썩…… 털썩…….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주변에 있던 소방관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범위는 곧 일대 전체에 퍼졌고. 화마로 인해 소란스럽던 납골당은 고요하게 타오르는 소리만 가득하게 변해버렸다.
“아…… 아아…….”
타오르는 환한 화염 속에서 무언가가 스르륵 걸어 나온다.
그 존재가 누구인지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소중한 친구인 한유나와 윤지아가 사라졌던 날.
자신을 마치 우연인 양 만난 듯 다가와 추파를 던지던 고성그룹의 망나니.
그는 자신이 그녀를 어떻게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아무리 회사의 일로 현아가 양보를 많이 한다 해도 그런 인물과 잘돼볼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었다.
당연히 오빠의 죽음 이후 그녀와 연희를 끔찍이 챙기던 삼촌도 절대 허락할 리 없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확실히 선을 그었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넘어와 주지 않는 현아의 행동에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대로 사라졌고.
그날 이후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 그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다.
검은 형체가 되어 나타난 그는 기괴한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서서히 다가왔고 이내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시, 시시…… 시시시…… 신현아…….]
그녀를 향해 놈이 손을 뻗는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공포에 떠는 게 전부였다는 소리였다.
귀안이 열린 뒤 자잘한 귀신같은 게 보인 적은 있다.
하지만 언니를 살린 그 저승사자들과 같이 이토록 선명한 존재는 처음이었다.
“다…… 당신이야? 당신이 여길…….”
[이걸 말하나?]
이전과는 다르게 확실한 발음이다. 마치 조롱하듯 그가 품 안에서 작은 항아리를 꺼내 보여주었다.
어찌 잊을까. 오빠의 하나뿐인 사진이 붙은 유골함이거늘.
화마에 휩싸여있었어도 사진은 아직까지 멀쩡했다.
“도…… 돌려줘요!!”
[으흐? 으흐? 으흐흐흐흐흐? 내…… 내가 왜? 내가 왜 이걸 돌려줘?]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그가 현아에게 물어왔다.
“왜냐니…… 당연히…….”
[이…… 이이…… 이건 이제 내 꺼야…… 이토록 정순하고 힘이 가득한 뼈는…… 뼈는 내 꺼야.]
마치 떼를 쓰는 아이처럼 그가 섬뜩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대단해…… 이렇게 대단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사람은 죽어서 자신이 무엇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만약에 죽고 나서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가 된다면.
그 인간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훤했다.
기괴하게 목을 꺾으며 쓰러진 그녀에게 다가온 그가 말한다.
[그렇지? 잘난 맛에 살면서 나를 거절하더니 이제는 두려워서 입도 안 떨어지나 보지?]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새카만 무언가가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섬뜩함에 몸서리가 쳐지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그에게 끌려 들어가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될 것만 같았다.
그가 인간이 아닌 망령 같은 무언가라는 건 반사적으로 알 수 있었으니까.
파앙!!!!!
그리고 그가 그녀에게 손을 뻗으려는 그 순간.
갑작스레 무언가의 힘이 그를 튕겨냈고 이내 현아의 굳은 몸을 대번에 해방시켰다.
팍!!!!
반사적으로 눈물을 훔치며 그녀가 뛰어 도망쳤다.
망령을 상대로는 경호원이 무슨 소용인가.
그저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귀안이 열려버렸으니 말이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툴툴대며 시비나 걸던 그 남자였다.
처음엔 소개팅을 나간다는 자신에게 옷은 왜 그따위냐. 오징어가 화장을 떡칠해봐야 쭈꾸미일 뿐이라며 빈정대던 사내였다.
하지만 지금 가장 보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존재는 다름 아닌 그였다.
그러면서도.
“하아…… 하아!!!”
그러면서도 그녀는 눈앞의 이 위험한 괴물과 그가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던 저승사자인 그가 얼마나 대단한진 모르겠지만 그가 평소 내뿜던 분위기와 다르게 눈앞의 악령은 너무도 위험해 보였다.
[어딜가아아아!!!]
“꺄아아아아악!!!”
갑작스레 다리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통증에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고개를 돌려 다리를 보자 검은 형체가 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는데 무슨 수를 쓴 건지 다리가 검게 변색되어있었다.
“시…… 싫어…… 싫어…….”
[이리와…… 나와 하나가 되자.]
광기 서린 목소리에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녀는 천천히 그녀의 얼굴로 다가오는 그의 손을 보며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다리에서 느껴지던 끔찍한 고통을 대비했다.
…….
하지만 어떤 통증도 그녀를 덮치진 않았다.
대신 당황한 고진석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음? 으흐흐흐 뭐야. 나타난 거야? 그래. 널 기다리고 있었어. 이 씹어먹을 천민이.]
섬뜩한 목소리에 눈을 뜬 그녀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청년을 볼 수 있었다.
수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검은 기류를 내뿜는 고진석에 비해 청년은 너무 빈약해 보였다.
‘아…… 안돼…… 그는 도망치게 해야…….’
대체 왜 그에게 이렇게까지 끌리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격심한 통증은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질기게도 살아있네. 보통 그렇게 버티는 건 안 될 텐데.
[흐…… 흐흐흐 어쩔 거지? 난 들었어. 들었다고. 넌 여기서 아무것도 못 하지? 빙의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네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지? 네 영역으로 끌고 들어갈 텐가? 미안하지만 난 그런 거로는 네놈에게 당하지 않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그 모습에 청년은 그저 침묵했다.
그리고.
망령 고진석의 섬뜩한 검은 기류가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여기서 죽어…… 내가 널 갈기갈기 찢어줄 테니까.]
“아…… 안돼…….”
다급한 현아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대로 두면 분명 그는 저 검은 기류에 휩싸이리라.
그것은 반드시 막아야…….
[어때 두렵지? 두렵지? 아무것도 못 하는 네가 한심하지? 여기서 지켜만 보라고, 저년을 먹어치운 후에 너도 먹어치울 테니.]
고진석은 생각을 바꿨는지 그를 두고 현아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이 이어지기도 전에 데이비의 손이 그를 낚아챘다.
[응? 흐흐흐흐. 뭘 해보게? 할 수나 있고? 네가 힘을 쓰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야.”
말을 끊은 데이비가 조용히 읊조린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고진석이 보여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차가운 검은 기류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지금 저년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이거냐?!]
생각지 못한 반응에 당황한 그가 소리친다.
이에 데이비가 그의 목을 틀어잡은 채 한 발 내디뎠다.
“공자 가라사대. 엿이나 먹으라신다.”
[뭐? 커억?!]
쿠웅!!!
검은 기류를 내뿜던 그의 전신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중압감이 일대를 짓누른다. 무언가가 박살 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지면이 뒤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