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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68화 (667/1,559)

제 668화

커다란 테이블.

맞은 편에 앉은 데이비 왕녀와 나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그쪽이 데이비 올 라운이다?”

“그래.”

“하…… 이건 또 뭔 웃긴 상황이야.”

너무 익숙한 태도를 보이며 황당해하는 데이비 왕녀와 다르게 나는 담담하게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의 무력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거짓이었다.

프리아 여신이 전지전능한 건 사실이나 나와 같은 경지의 피조물을 마냥 창조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가능했다면 그녀가 나라는 존재를 대상으로 거래를 요청할 이유가 없으니까.

단순히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내 앞의 존재를 만들어내면 그만 아닌가.

즉.

눈앞의 그녀는 실존하되 실존하지 않는 허상의 존재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가설이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평행선이 절대 아니다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같은 존재가 둘이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리가 있나.

“그래서? 넌 어디서 왔길래. 남의 집에서 행패인데?”

그녀가 심드렁하게 다리를 꼬고 앉으며 물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사람이 나름대로 계획 짜서 움직이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 집에 다른 년이 들어차 있다고 하면 어지간히도 좋아하겠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내 집에서 살다가 별 듣도 보도 못한 놈이 튀어나와서 자기 집이라고 우기면 내가 뭘 어떻게 반응해줄까.”

물론,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 입장에선 그녀가 불청객이나 다름없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내 자리를 차지한 것도 모자라 세상의 인식까지 바꾼 침략자.

하지만 그녀도 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내 눈엔 넌 가짜야.”

“얼씨구? 이쪽이 보기엔 네가 가짠데?”

“개소리는 나가서 해줄래? 주변 사람 다 붙잡고 물어봐. 데이비 올 라운이 언제부터 그렇게 곱상하게 생긴 남자가 된 건지.”

“내 인생에 데이비 올 라운이 다리 떼고 여자가 됐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

프리아 여신의 힘으로 내 육신이 한차례 변화를 겪던 당시.

육신의 외형이 중성스럽게 변한적은 있지만 맹세컨대 성별이 바뀐 바는 없었다.

“하…… 이거 웃기는 상황이네.”

“협조라도 하지그래?”

“내가 뭐 얻을 게 있다고?”

그녀의 심드렁한 태도에 내가 피식 웃어 보였다.

명백히 비웃음이 서린 표정이었다.

“가짜라서 이런 것도 해결 못 하나?”

내 미소에 그녀는 환하게 웃음 지어 보였다.

“혼자서 해결할 줄도 모르는 가짜가 하는 말이라 안 들리나 봐.”

그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리고.

내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

콰앙!!!!!

동시에 그녀와 내가 충돌하듯 부딪힌다.

테이블이 박살 나고 달려든 그녀와 나는 지근 거리까지 달라붙은 채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 머리를 들이박았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이마를 처박은 채 서로를 노려보는 그녀가 말한다.

“네가 데이비 올 라운이고, 지금 엿 같은 우리 노처녀가 내려주신 히스테리 때문에 여기 왔다고 생각하면 되나?”

“내가 넘어온 건지, 네가 생겨난 건지는 모르겠다만.”

“말은 똑바로 해야지. 우리가 넘어온 게 아니라. 네가 생겨난 거 아닌가?”

“뭐?”

“왜 넌 네 멋대로 네가 실제일 거라고 생각하지?”

“불만이면 한판 붙어보던가.”

“여자라도 때리시게?”

“언제부터 성별 따져서 칼 휘둘렀나?”

서로 쏘아붙이기를 잠시.

데이비 왕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휘저었다.

“에이미.”

“예! 왕녀저하!”

동시에 도도도! 하는 소리와 함께 몇몇 수인 시녀들과 함께 나타난 에이미가 그녀에게 고개를 숙인다.

오로지 내게만 충성을 다하던 에이미가 남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라니.

눈앞의 여자가 데이비 올 라운이라 할지라도. 지금 이 세상이 가짜인 몽환 세계라 할지라도 썩 달갑진 않다.

“손님 맞을 준비해.”

그렇게 말한 그녀가 벌떡 일어나며 아름답고 심플한 드레스를 털어냈다.

“몇 개 좀 알아봐야겠으니. 너도 쓸데없이 나돌아다니지 말고 잠시 기다리지그래?”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데이비 님.”

“응?”

“데이비 님의 다른 성별은 매우 바스트가 거대하다고 판단해.”

“우리 어머니 유전자가 좀 좋긴 하지.”

조용히 대답하며 나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곳에서 바뀐 게 오로지 데이비 올 라운의 성별뿐일까.

아니면, 다른 것도 다를까. 신이 내린 시련이라면 단순히 여길 문제는 아니었다.

* * *

데이비 올 라운 왕녀.

성자가 아닌 성녀이며, 왕자가 아닌 왕녀인 존재.

미묘하게 다른 점은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나와 비슷하다 못해 똑같았다.

제 멋대로인 성격부터. 취미생활에 환장하는 성질머리까지.

그 탓일까.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직접 대면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질문.”

묵묵히 식사하던 도중 포크로 고기를 쿡! 찍어 오물거리던 륀느가 질문을 던졌다.

“데이비 님 두 명 모두 동일 인물. 유전자적으로 일부가 다르나 그 외에는 같다고 판단.”

“내가 아는 륀느와는 조금 말투나 표정이 다르네.”

이곳에도 륀느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 왜 그녀는 륀느를 보고 처음 보는 인물인양 군 것일까.

복잡한 생각을 하기도 전에 륀느의 입에서 폭탄이 터졌다.

“두 데이비 님 중 누가 더 잘났는지에 대한 의문을 륀느가 높게 평가해.”

그 말에 나와 데이비 왕녀 모두 포크 질을 멈춘다.

시작은 그녀였다.

“당연한 걸 묻네? 메가트론만 봐도 뻔한 거 아니야? 저 녀석이 만든 메가트론은 관절 부분이 엉망이라고.”

손사래를 치며 비웃음을 던지는 그 모습에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기본적인 구동 에너지를 고려할 때 관절 부분을 일부러 부드럽게 만들어서 부담을 줄이는데 그것도 모르나? 아. 하긴 구닥다리 메가트론은 출력이 딸려서 그런 것도 안되나 보지 뭐.”

내 빈정거림에 그녀가 멈칫했다.

나 또한 멈칫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침묵이 있은 후. 그녀와 내가 동시에 벌떡 일어나더니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덤벼들었다.

콰앙!!!!

묵직한 충격파와 함께 충돌한 나와 그녀는 서로 힘겨루기를 하듯 서로의 팔과 손목을 붙잡고 으르렁거렸다.

“저거너트의 미니건 방식도 구시대의 발상을 그대로 인용했던데.”

“일부러 옛것이 더 좋다는 말은 못 들어봤나? 그러는 네가 만든 스나이퍼는 광탄 화력이 내 스나이퍼의 70퍼센트 밖에 안되더만.”

서로의 기술력을 까내리며 화사하게 웃는데 살기가 더욱 짙어진다.

그녀의 살기와 내 살기가 충돌하며 주변을 짓누르자 륀느가 재밌다는 듯 입을 오물거리며 중얼거렸다.

“데이비 님의 새로운 면모. 빅데이터에 추가. 이것을 륀느가 높게 평가.”

낭랑한 표정으로 이 사태를 일으킨 륀느만이 평화롭게 식사를 할 뿐이다.

쾅!!

이윽고 데이비 왕녀가 내 발을 강하게 짓밟으며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상남자라면 근육도 붙고 그래야지. 비실비실하게 생겨서 어디 가서 맞고 다니는 건 아닌지 몰라?”

“비리비리하게 생긴 세발낙지가 말은 잘하네. 그런 상판대기 달고 다니면 내가 다 쪽팔려서 죽겠다.”

그 말과 동시에 그녀와 나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서로를 노려보며 말했다.

“뒤지는 수가 있어.”

“쫄리면 뒈지시던가.”

“너 같은 놈이 좋다고 달라붙는 여자가 생에 존재하겠냐?”

그녀의 빈정거림에 내가 물었다.

“네 그 우악스런 성격이 좋다고 달라붙는 남자는 더 없을 거다.”

그녀는 여성인 만큼 나와 완전히 같이 생각할 순 없다.

“흥. 아직 창창한 나이거든?”

“아직, 혼담 한번 못 주고받은 노처녀가 어디서 히스테리 질이야.”

“그러는 넌 뭐라도 했나 보지?”

“네 눈깔은 고블린 x알로 바꿨냐? 내 손에 반지 안 보여?”

내 말에 그녀가 움찔한다.

“너…… 너 설마…….”

“몇 년만 지나면 노처녀가 되는 너와 다르게 난 이미 혼례도 올린 몸이다.”

“나도 썸 정도는 타고 있거든?”

그녀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다른 점 또 하나 발견한 셈이다.

그녀를 밀어낸 내가 손을 툭툭 털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녀의 표정이 더욱 찌푸려졌다.

“연무장으로 따라 나와 개자식아!”

뭔가 억하심정이 터진 듯 그녀가 나를 두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륀느를 직시하자 그녀가 내게 무표정한 얼굴로 따봉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데이비 님이 더욱 우세하다 판단.”

“그렇지?”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몇 차례 끄덕였다.

이후 데이비 왕녀의 성질머리에 따라 연무장으로 나가자 그녀는 가볍게 손뼉을 몇 번 치더니 초고위 배리어 마법을 펼쳤다.

“단판이야 이 x새야. 내가 오늘 너만큼은 반드시 피떡으로 만들어버릴 테니까.”

“연애 한 번 못 한 노처녀 히스테리가 여기까지 밀려오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페르세르크와 혼인하기까지 얼마나 갖은 고생을 했는지를.

이런 마당에 남성도 아니고 여성이라면.

이 세상의 남녀 성별이 데이비라는 인물을 제외하고 모두 같다면.

아마 그녀는 결혼할 상대를 전혀 찾지 못했으리라.

결혼을 하기 전엔 연애도 해본 적이 없을 테니…….

서로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경지를 잘 알기 때문일까.

그녀는 순식간에 칼디라스를 뽑아 들었고 나는 홍단이를 꺼내든 채 그녀에게 맞섰다.

“특이한 칼이네.”

“넌 이게 없었나?”

“어디서 만든 건데.”

“수르트 그 영감의 역작.”

“몰라.”

완전히 같지는 않다 이거지.

담담하게 말한 뒤 그녀와 살살 간을 보던 내가 한 발 내디뎠다.

콰아아아앙!!!!

동시에 어마어마한 폭음이 울려 퍼지며 그녀와 내 검이 충돌했고. 그 여파는 날카로운 칼날 비가 되어 사방 연무장을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다.

“일리나는 어디 있나.”

“본국에 있겠지. 새끼야.”

“하인스 영지에서 보호하는 게 아니고?”

“살리반 왕자가 자꾸 구혼해대는 바람에 팔란 제국은 얼씬도 안 하고 있거든.”

그녀의 말에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의 몸에 손과 발을 뻗었다.

그녀의 발은 내 고환을 걷어차려 했고.

나는 정확히 그녀의 앞섬으로 손을 뻗었다.

카아아앙!!!

물론……

그 진흙탕 같은 싸움은 서로가 위협을 느끼고 물러나면서 무산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나는 적어도 성희롱을 하는 쓰레기는 아닌데.”

“멀쩡한 남의 고간을 걷어차려 한 게 말은 잘하네.”

“…….”

말을 하던 그녀가 말없이 나를 노려보았다.

작정하고 싸우면 일대 영역이 모조리 날아가는 걸 아는 이상 실상 싸움은 여기서 끝이었다.

“집어치우자. 유치하게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그렇게 말한 그녀는 칼디라스를 회수한 뒤 검집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며칠 정도 숙소에 머물러. 돌려보내든 제거해버리든 방법을 찾아줄 테니.”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시간이 한창 흘렀다.

그동안 나는 이 세상에 다른 점을 몇 가지 눈치챌 수 있었다.

이곳에서 륀느는 존재하나 륀느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외에 일리나 황녀가 지금의 나처럼 나와 오래 엮인 사이는 아니며, 팔란 제국과 하인스 영지는 필요한 만큼의 사업파트너로만 존재한다.

칼디라스의 경우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그녀가 보관 중이며, 홍단이와 청단이도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조금 다른 세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게 단순 시작이며, 지금 있는 괴리감이라는 것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완전해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는 것을 볼지라도. 너는 그들과 같은 선택을 내릴 것이냐.]

내가 이 정체불명의 몽환 세계로 추정되는 하인스 영지에서 지낸 지 일주일이 지났을까.

개인적으로 주변 조사를 하던 나는 어느 날 팔란 제국에 문제가 생겼다며 떠난 데이비 왕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그녀에게서 이상한 기류를 느낄 수 있었다.

어디서 많이 울고 온 것인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던 그녀는 마치 홀린 것처럼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또 이틀 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하인스 영지로 다시 돌아온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봐.”

그녀가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 있나?”

“넌…… 페르세르크를 지키기 위해서 세상을 걸 수 있어?”

그녀의 질문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그게 질문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씁쓸하게 웃어 보인 그녀가 내게서 등을 돌렸다.

조사해보겠다던 건 어찌 되었는지 묻고 싶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너무 무거워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하인스 영지를 떠난 지 몇 시간 후.

[대륙의 수호자이자 대륙의 성녀. 데이비 올 라운 왕녀. 전사.]

충격적인 소식과 함께.

세계가 되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내가 본 것은 청단이와 홍단이를 손에 쥐고 있는 데이비 올 라운 왕녀였다.

“넌 뭔데 남의 집에 와서 행패냐?”

그녀는 마치 나를 처음 본다는 듯 말했다.

뭔가 바뀌었다.

칼디라스가 아닌 홍단이 청단이를 쥐고 있는 그녀만 보아도 말이다.

[운명은 변치 않을지니. 나의 신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강림을 행하라.]

프리아 여신의 목소리였다.

미래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그것을 보여줄 테니…….

포기하고 자신에게 맡기라고 말하고 있는 프리아 여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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