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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76화 (675/1,559)

제 676화

그때였다.

이오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나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불청객을 발견한 나와 페르세르크가 서로 말할 것도 없이 움직였다.

페르세르크가 손을 들어 홍단이의 눈을 가렸고.

나는 청단이의 눈을 가렸다.

“우웅? 뭐야 뭐야아?”

“앞이 안보여어어…….”

버둥거리며 작디작은 손가락으로 내 손가락을 벌리려 드는 청단이었지만 나는 요지부동으로 버텼다.

눈앞에 나타난 건 마족이었다.

이곳에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았던 마족.

문제는 그냥 마족이 아니라 마족 중에서도 정기를 먹고 사는 마족인 서큐버스라는 점이 문제였다.

“이오. 저거 로브 덮어씌워.”

내 말에 이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시죠?”

“애들 앞에서 저게 무슨 노출이야. 넌 저걸 보고 아무 생각도 안 들어?”

“흐음…… 전 뼈도 드러내고 다녔을걸요? 그리고 몽마는 당연히…….”

뼈랑 같냐, 이 돌대가리야.

그래. 네가 정상이 아닌 건 알고 있다.

대체 어쩌다 저런 녀석이 성녀가 된 건지 의문스러울 지경이다.

나는 앉은 자세 그대로 근처의 탁자를 걷어찼고 그 충격에 떠오른 테이블보를 마법으로 낚아챘다.

그리고는 불청객을 향해 날려 보냈다.

펄럭!!!

마치 몸을 감싸듯 테이블보가 그녀의 몸을 감싼다.

새하얀 피부로 눈을 둘 곳 없을 만큼 야시시하던 복장이 대번에 가려지자 나는 그제야 청단이의 눈을 가리던 손을 풀어주었다.

“우웅…… 예쁜 언니다!”

“아냐! 엄마가 더 예뻐!”

홍단이와 청단이가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마당에 나는 눈앞에 나타난 몽마 여성을 직시했다.

과거 몽마 여제를 처단할 때 보았던 몽마였다.

대부분의 몽마들이 반투명한 면사로 얼굴을 가리던 점을 생각하면 사실 얼굴을 보고 구분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몽마 여제보다 실상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그녀는 내가 의심하고 있는 마족 중 하나였으니까.

의심의 사유?

다름 아닌 그녀가 아이나가 찾는 그 인간이 아닐까 하고.

마스터 급 이상의 힘을 지닌 몽마 유시르.

그녀가 현재 내 앞에 나타나 있었다.

고혹적인 외모에 아름다움을 품고 있지만 나는 심드렁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마계가 지금 개판 오 분 전이다?”

“당신 때문이잖아요. 당신이 마왕의 위계를 차지하면서.”

“말은 똑바로 해야지. 너희가 마계를 떠나 티오니스를 침범하지만 않았어도 별문제는 없었어.”

내 말에 몽마 유시르의 무표정이 꿈틀거렸다.

“맞아요. 애초에 당신 탓을 하는 것도 웃긴 일이죠.”

그녀가 한숨을 내쉰 뒤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이오가 제안한 의자에 앉으며 내게 말했다.

“중립파 마족을 대신하여 마계와 인계의 경계인 이 지하산맥까지 제가 찾아온 겁니다. 마신님의 성지에 볼일이 있으;시다고 하셨나요?”

“마왕은 출입 권한이 있는 거로 아는데.”

“당신은 완전한 마왕이 아니죠.”

그녀의 말에 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공허 에너지를 제외하고 마왕의 권능은 현재 마계 곳곳에 뿌려져 있다.

애초에 전부 회수할 생각도 없었던 만큼 그냥 방치하고 있었는데. 이딴 말 같지도 않은 것으로 시비를 거시겠다?

그렇다면 내가 할 말은 뻔하다.

“빙빙 돌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당신이 전 마왕님의 힘을 강탈하신 뒤로 마계에 권능이 흩뿌려진 건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그녀가 뭔가 답답한지 뒤척거렸다.

“저…… 이 테이블보…… 벗으면 안 되나요? 좀 갑갑해서…….”

“보통 몽마들은 피부가 드러나지 않으면 갑갑해 하는 경향이 있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어림도 없다.”

내 말에 그녀가 대뜸 고개를 돌린다.

“흙 찾지 마라.”

내 말에 그녀는 몸을 이리저리 베베 꼬는 듯하더니 짧게 심호흡을 했다.

“지금 마신의 성지는 들어갈 수 없어요. 마왕을 모시던 가문인 아스타로트 가문이 열쇠를 지닌 건 맞지만 성지로 향하는 길목을 과격파 마족들이 모조리 장악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성지로 가고 싶으면 마족들을 뚫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말 한마디면 비킬 텐데.”

“아니야 데이비.”

마왕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렇기에 마족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마왕을 거스르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안 되고 있었다.

“그대가 흩뿌려놓은 권능을 얻은 마족들이 다수 이끌고 있기 때문에 마왕의 명령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아. 애초에 마족들에게 있어서 권능을 지닌 그들도 마왕일 테니까.

즉.

내게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는 그놈들을 싸그리 정리해야 한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니까 요지가 뭐야. 아스타로트와 손잡고 성지까지의 길을 뚫어달라?”

“당신이 흩뿌려놓은 권능을 회수해준다며 더 바랄 것도 없죠.”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답했다.

“필요한 권능이 아니면 회수하지 않아.”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어째서죠? 당신은 마왕이 되기 위해 전 마왕님의 힘을 빼앗은 게 아니었나요?”

“너희는 힘이 뭉쳐지면 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놈들이니까.”

차라리 너희끼리 힘을 나누어서 서로 견제하는 게 더욱 평화적일 것이다.

“그보다. 몽마 여제의 곁에 붙어있던 주제에 이번엔 아스타로트에게 붙었나?”

“…….”

내 말에 그녀가 침묵했다.

“찾아야 하는 이가 있어요. 티오니스 대륙에. 몽마 여제는 제게 티오니스를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제공하기로 했죠. 이제는 불가능해졌지만.”

마스터 급 몽마, 유시르의 대답에 나는 조용히 침묵했다.

“그런 것 치고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거 같은데.”

“당신은 나를 데리고 티오니스로 갈 수 있나요?”

“몽마를 티오니스에 풀어놓으라고? 누구 기 빨려 죽는 꼴 보려고.”

“한 명만 찾으면 돌아갈 거에요.”

“그래 그건 알아서 하고. 결국, 길을 틀어막고 있는 놈들이 있어서 못 간다 이거잖아.”

“…….”

“거 흩어진 자칭 마왕들 싸그리 긁어모아 봐.”

물론, 마계의 조율을 위해선 힘을 회수하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안전하게 페르세르크를 환골탈태시키기 위해선.

지금의 나는 다른 희생도 감수할 생각이었다.

* * *

페르세르크의 영혼은 심연에 근본을 두지만 사실 그녀의 육신은 마족이었다.

두 가지가 섞여 현재 그녀의 영혼은 마족과 심연의 혼혈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런 그녀를 환골탈태시키기 위해선?

인간에 불과한 육신은 그저 껍데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상은 그녀의 영혼으로 한정된다.

문제는 아직 환골탈태할 능력이 되지 않는 그녀를 강제로 환골탈태시키려면 막대한 힘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영혼의 격을 끌어올렸던 바가 있다.

그리고, 높은 확률은 아니지만, 한차례 성공하기도 했다. 다만 실패확률이 존재하는 건 용납이 안 되는 사실이었다.

쾅!!!

“대체 뭔데 네년이 우리를 오라 마라 하는 거냐!!”

본래 마왕의 권능은 이름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권능들이 하나둘 변형되었고 어떤 권능은 두 가지로 나누어져 흩어지기도 했다.

파괴의 권능을 지닌 거대한 미노타우로스. [흑우]가 회의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는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자칭 마왕들을 둘러본다.

“저기 저 가짜 마왕 놈들이 모여있는 것도 불쾌하기 짝이 없군.”

권능에 욕심이 생긴 이들은 다들 그러했다. 자신이 마왕이 되고 싶어 했고. 단순히 인간인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인물을 떠나 마왕의 권능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적개심을 내비쳤다.

“그 짧은 시간도 할애하지 못할 정도는 아닐 텐데. 뭐, 우둔한 머리로 그런 계산이 되진 않겠지.”

고작해야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창백한 인상의 소녀가 제 손톱을 손질하며 중얼거렸다.

“뭐라고 지껄였나 이년! 땅속에 처박혀 살던 망령 년이 겁을 상실하지 않고서야!”

“불만이면 한판 붙어.”

소녀가 네일 손질 도구를 집어 던지며 벌떡 일어나 흑우를 노려보았다.

그 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이 회의장엔 10명이 넘는 마왕들이 모여있었다.

각기 분해되거나 합성된 권능을 지닌 이들로 공통점은 하나같이 자신이 정통성 있는 마왕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유시르의 존재로 인해 함부로 싸움을 벌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스타로트 그놈이 우리를 모아놓고 협상이라도 하겠다고 그러는 건가?”

“권능도 없는 집정관이 무슨 자격으로!”

“아스타로트는 늙어빠진 호랑이일 뿐이다. 유시르. 내게 와라. 나라면 네 능력에 맞게 더욱 높은 직위와 대우를…….”

서로 견제하고 으르렁대면서도 마계의 강자인 몽마 유시르를 섭외하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그들이었다.

인간도 저들끼리 반목하고 싸우는데 마족이라고 다를까.

마족도 하나의 생명이고 종족일 뿐인데 말이다.

실상 인간과 마족은 사용하는 힘이 다를 뿐 제법 닮은 구석이 많다.

“조용!!!”

그때였다.

다른 이들 사이에서 조용히 침묵하던 어린 소년이 격한 노호성을 터뜨렸다.

금발을 가진 소년은 잘 쳐줘도 십 대 초반 정도의 외모.

하지만 저 외모가 그대로 믿을 만한 외모가 아니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발록의 왕. 투신 [사우른]

소년의 존재감에 좌중이 침묵했다.

“이곳은 역대 마왕께서 사용하시던 신성한 마궁이다. 오합지졸마냥 소란을 피워댈 거면 내가 네놈들의 뇌수를 뽑아주지.”

“뭐라고?!”

쾅!!

과거라면 압도적으로 사우른의 위세가 강했을 테지만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마왕이라 자칭하는 자들로 가득하다.

그 탓에 서로 간의 자존심 싸움이 상상 이상으로 짙었다.

“그래서. 유시르, 아스타로트는 언제 나타나는 거지? 네년이 아스타로트에게 복종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도 차기 마왕이 될 수 있는 마신의 성지에 들어가기 위해서일 뿐이라는 걸 잊지 마라.”

서늘한 소년의 목소리에 유시르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마신의 성지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지닌 유일한 존재가 바로 아스타로트이니 참는 것이라는 걸 명심해.”

눈이 세로로 찢어지며 소년 발록의 왕 사우른이 서늘한 살기를 내뿜었다.

그럼에도 유시르는 조용히 침묵했다.

대신 천천히 몸을 돌려 회의장 문을 바라보았다.

끼이이익…….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모여든 참에 회의실 문이 열리며 한 인영이 걸어들어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모두의 눈에 경악과 분노, 당혹스러움과 증오가 묻어난다.

“인간?”

“설마…….”

“마왕…….”

하나둘 중얼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검은 피부를 지닌 미노타우로스 흑우가 벌떡 일어나더니 제 머리보다 거대한 해머를 들고 순식간에 쇄도했다.

인간을 향해 파고드는 파괴 권능을 지닌 자칭 마왕인 흑우의 쇄도에 다른 마왕 후보들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시선을 피하는 이는 없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왔느냐!! 오냐 잘됐구나! 네놈을 죽이고 마왕의 위계를 내가 받아가겠다!! 죽어라. 인간!!”

힘 면에선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해도 최상위에 위치하는 흑우였다.

그가 휘두른 거대하고 무거운 해머는 순식간에 머리통을 으깰 것처럼 날아들었다.

하지만.

콰직!!!

흑우의 손은 어느새 멈춰버리고 말았다.

우드득…….

그리고.

어디서 들려왔는지 모를 뼈 울림소리와 함께 흑우의 머리통이 돌아가 버렸다.

대번에 죽어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자칭 마왕이라 불리는 존재 한 명을 지워버린 인간을 보며 마족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질렸다.

“인간이라니!!”

“인간이 어찌 여기 있단 말인가!”

“유…… 유시르…… 설마 종족을 배신한 거였나?”

“아스타로트 이 변절자가!!”

저들은 아스타로트와 유시르나 마족을 배신한 줄 아는 모양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내 어깨에 앉은 페르세르크가 거만하게 그들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들어간 나는 자리에 느긋하게 앉으며 말을 이었다.

“다들 모여줬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는 너희들의 권력 싸움, 전통적인 서열 싸움. 세력 싸움.”

천천히 걸어 들어가 그들을 지나치고 왕좌 쪽으로 향하는 내 말에 좌중이 침묵한다.

그리고.

침묵 끝에 왕좌에 앉아 자리를 꼬고 느긋한 미소를 지어 보인 내가 스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딴 건 일체 관심 없다.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죽고 싶으면 죽는 건 네놈들 자유이니 막지 않으마. 하지만 마신의 성지에서 병사들을 전부 물려라. 기간은 사흘 줄 테니.”

“뭐라?!!”

“마왕으로서 마족 전체에게 내리는 두 번째 명령이다. 듣기 싫은 놈은 지금 당장 반기를 들어.”

반기를 드는 건 허락해주마.

대신. 책임은 스스로 지는 거다.

왕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은 채 권태롭게 그들을 바라보던 나의 존재를 그들은 지적하지 못했다.

압도적인 마기가 쏟아져 나오며 그들을 짓누르듯 내가 위압감을 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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