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9화
수해의 중심. 신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는 영역. 마족들은 이 땅을 마신의 성지라고 부를 정도로 신의 잔향이 강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느껴지는 프리아 여신의 힘은 티오니스에서 느껴보던 신성력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이질적이면서도 성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장소.
프리아 여신의 계시를 받았을 때.
륀느를 데리고 그녀가 깨어났던 장소를 탐방하기 전 보았던 장소는 분명 이곳이 분명했다.
“망할, 손바닥 위에서 끝까지 놀아나는구만.”
애초에 프리아 여신은 내가 이곳으로 오는 것까지 모두 예정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가 운명은 변치 않는다 하였나.
이쯤 되면 정말 가능한 건지 의문스러워질 정도이지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미련한 짓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은…… 오랜만이로구나…….”
마신의 성지에 들어선 페르세르크가 내 어깨에서 뛰어내려 몸을 키웠다.
그리고는 뒷짐을 지고 사뿐사뿐 걸어 나갔다.
“길 잃을라.”
“본녀도 이곳은 아는 게야.”
이 마신의 성지도 티오니스 대륙에서 통째로 뜯겨 나온 곳이니까. 위치는 달라졌을지라도 내부는 같을 수밖에 없다.
“해서? 그대는 이곳에서 뭘 하고 싶은 게야.”‘
내가 마신의 성지에 볼일이 있다는 것만 알 뿐,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아직 모르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뺨을 쓸어내리며 가볍게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널 환골탈태 시킬 거다.”
내 말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본녀를 환골탈태시킨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설마 그대."
인상을 찌푸린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대체 어쩌자고…….”
“전부 너 하나를 위해서였다.”
그녀는 단편적인 것만으로도 내가 정확히 무슨 짓을 했고, 어떤 말도 안 되는 짓을 거쳐 이곳까지 그녀를 데려왔는지 완벽하게 이해한 듯 보였다.
“미친 게야!! 아주 미쳐버린 게지!! 그래! 목숨 걸고 위계를 올리고 싶다고 뚝딱 올려지는 그런 게 종의 위계라고 느껴지는 게야?!?!”
그녀의 외침은 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한 짓은 한 종의 한계선을 부수고 넘어간 것이니까.
단순히 인간을 넘어 현재 내 기본 육신 스펙도 이전과는 압도적으로 달라진 건 분명했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해!! 그대가 잘못되면! 본녀는! 본녀는 어찌하라고!”
“할 수 있으니까 한 거다. 걱정 마. 그리고, 아이.”
내 말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가지고 싶다고 했잖아. 지금의 네 가짜 육신으론 아이를 밸 수 없지만, 환골탈태해서 자연스러운 육신으로 녹여낸다면 가능성이 있다. 일단 입고 있는 것이라도 벗어.”
내 말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아끼는 옷이잖아.”
“밖에서…… 지금 옷가지들을 벗어 던지라고?”
“버리는 것보단 낫지.”
내 말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벌어진 일 이제 와서 추궁해본들 의미 없다 여긴 듯했다.
그녀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본 뒤 자신의 드레스 후크를 잡았다.
“하나만 말해주어 데이비.”
“그래.”
“본녀가 환골탈태하는 이유는…… 정말 아이 하나뿐인 게야?”
그녀의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심연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그녀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부담을 지워주고 싶지 않았다.
* * *
나신으로 커다란 모포를 두른 채 앉아있는 그녀를 환골탈태시키는 건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환골탈태는 사실상 거의 인간의 전유물이라 할 정도로 타 종족에게는 엄격하다.
웬만해선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런 마당에 그냥 타 종족도 아니고, 만들어진 육신에 영혼이 빙의하고 있는 그녀를 환골탈태시키는 작업이다.
그것이 쉬울 리가 있나.
“저…… 데이비.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게야.”
모포를 더욱더 여미며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물어왔다.
“편히 있어. 서로 볼 거 다 본 사이에…….”
“그대는 이 바깥에서 이 꼴로 있는 본녀의 마음을 이해해줄 필요가 있는 게지!”
나는 그녀의 등 뒤에 손을 뻗어 올린 후 옅게 마나를 끌어 올려 그녀의 몸 안에 쏟아부었다.
“읏!”
빨개진 얼굴로 신음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번뇌를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마냥 욕망에 빠져들 수도 없었다.
여기서 실수하는 순간.
페르세르크는 물론, 나도 위험해질 테니 말이다.
괜히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내가 주술과 신성 마법으로 2중 3중 결계를 치고 거기에 모자라 메가로드리아와 신수들까지 호위로 내세운 게 아니었다.
“조금 아플지도 몰라.”
내 말에 그녀가 자신의 흰 손을 내려다보고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그대가 본녀를 위해 준비하였다면 본녀는 그대의 뜻에 따를 게야. 한데. 굳이 이렇게 모포 한 장만 둘러야 하는 이유가…….”
“환골탈태 도중에 노폐물이 나올 테니까. 그 외에 격통을 못 참고 이것저것 터져 나올지도 모르거든.”
내 말에 그녀의 표정에 비장함이 어린다.
“죽어도 그 꼴은 못 보는 게야.”
비장함까지 감도는 얼굴이었다.
“그럼 우선 긴장부터 풀자.”
그렇게 말한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가갔다.
“데이비.”
제법 로맨틱한 분위기가 연출되자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감는다.
평소엔 입을 맞추던 분위기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녀의 그런 망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아는 한에서 가장 안마에 손맛이 좋은 건 팔란 제국의 황녀님인데.”
“윽?!”
본능적으로 내가 하려는 걸 눈치챈 그녀가 버둥거린다. 보는 건 즐거워도 당하는 게 즐거울 순 없다.
“넌 그 일리나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걸 잊지 마.”
일리나 쪽이 반응이 찰진 덕분에 점수가 높지 손맛은 이쪽이 더 높다!!
보고 있으면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싶은 몸이라는 소리였다.
우드득!! 우득!!
“꺄아아아아악!!!”
천하의 마왕님조차도 안마의 격통을 이기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 * *
페르세르크의 환골탈태.
반신급의 위계를 이용해 규칙에 일정 간섭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건 로 아이아스가 걸어주었던 흐름 거부의 저주를 응용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물론, 그 저항은 헤라클래스의 힘을 통해 밀어내는 것도 잊을 순 없었지만 말이다.
페르세르크는 안마에 이어 환골탈태 준비작업에서 비명이란 비명은 다 지를 만큼 아파했다.
그런 주제에 이를 악물고 최대한 신음조차 내지 않으려 참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지만 그렇다고 가라로 넘길 수도 없는 만큼 최대한 빨리 준비과정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겨우 준비 과정을 끝낸 그녀가 내 품에 안긴 채 엉엉 울었다.
“데이비! 너무한 게야! 너무했다는 게야!”
아이처럼 엉엉 울며 내게 투정하는 그녀의 등을 쓸어내린 나는 조용히 그녀의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내게 불만을 토로하던 그녀가 지쳐 잠들었을 때.
나는 그녀를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은 뒤 한 발, 두 발 물러났다.
프리아 여신이 이 장소에 대한 계시를 내려보낸 건 아마 내게 인지시키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은 변하는 게 없다고 말이다.
정말로 그게 전부일까.
아직 그녀가 내게 보여주지 않은 진실이 더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초에 그게 무슨 상관인가.
지금은 지금이 중요한 것을.
나는 그녀에게서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뒤 가볍게 양 손뼉을 쳤다.
짝! 소리와 함께 청명한 충격파가 퍼져나간다.
[명한다.]
[나의 의지에 따라.]
내 입에서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내 혼의 격이 상승함에 따라 덩달아 진화했던 마나, 신성력, 사령 마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장 자신을 사용하라 부르짖는 사령 마나는 대뜸 주변을 장악하며 퍼져나갔고 마나는 새침하게 눈치를 살피는 듯하더니 천천히 움직였다.
반대로. 신성력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한껏 게으름을 피워댔다.
신성력은 늘 그렇듯 굉장히 게을러터졌다.
그 탓에 신성력을 자극해 일깨우는데 매번 고생하는 점을 생각하면 한번 날 잡아서 신성력을 일주천 시켜 드잡이질이라도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강하게 드는 게 사실이었다.
“다른 놈들 다 움직인다. 너만 또 농땡이 피우지?”
심지어 이제 어느 정도 다루는 데에 익숙해진 심연의 공주, 베르샤의 힘이나 마왕의 마기조차 움직이는데 신성력은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개도 자기 집에선 한 수 먹고 간다고 하였나.
비록 마족의 땅이지만 이곳은 프리아 여신의 힘이 깃든 장소. 신성력은 제 근본도 아닌 주제에 신의 힘에 심취해 더욱 게을러터진 듯 느릿느릿 움직였다.
이런 게을러터진 놈을 훈계하는 데엔 답이 정해져 있다.
스르르륵.
퍼져나가던 마나를 불러들인 나는 움직이지 않고 버티는 신성력에 그대로 마나를 쏟아 부어버렸다.
느릿느릿 일주천하는 신성력을 마나가 덧씌우자…….
우우우우우웅!!!!!
엄청난 공명음과 함께 극도의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쉽게 표현하자면 마나가 신성력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끌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봉변당한 입장인 신성력이 저항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휴. 힘의 본 주인이 그 모양 그 꼴이니…….”
신성력의 본래 주인.
초대 성녀 다프네를 씹어 돌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녀가 보았다면…….
[그건 네가 멍청한 거고 이 x잡xxx놈의 xx한 자식아, 어? 누나가 xxx 하게 xx해서 널 어떻게 찢어먹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그치?]
꼭지만 돌면 대사의 절반이 욕으로 변모하는 어마어마한 성질머리를 지닌 성녀지만 어째서 그녀의 힘은 이토록 느긋하고 게으른 것인지.
결과적으로 신성력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거기에 정령 마나와 도력을 이용해 주변 공간의 힘을 증폭시킨 뒤 몽환 세계의 데이비와 함께 만들었던 마법진을 구현해냈다.
그때엔 둘이었지만 이번엔 혼자서 해야 한다.
그렇기에 데이비 왕녀도 나도, 이점을 유념하고 마법진을 구상. 설계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페르세르크의 몸이 서서히 떠오른다.
검푸른 빛이 모여들며 그녀에게 스며들기 시작하자 나는 붙였던 손바닥을 서서히 떼어내며 힘을 제어했다.
쿠우웅!!!!
동시에 어마어마한 반동이 전해져온다.
영혼의 격이 인간 최상위의 격이었다면 손도 못 쓰고 그 정신 충격파에 의식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반신의 위까지 올라선 나는 정확히 그 반동을 버텨내는 것은 물론, 내게 생겨난 허락된 범위 내에서 힘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법칙에 간섭하기 시작하고, 페르세르크라는 존재의 코드를 수정한다.
자연 환골탈태가 아닌 인공적인 환골탈태다.
게다가 내 육신도 아닌 남의 육신을 개조하는 것이기에 여러 면에서 일반적인 환골탈태와 달랐다.
삐릭!!
[환골탈태 250 스택을 소모. 대상의 육체 진화를 진행.]
부지런히 모은 환골탈태 스택을 모조리 잃어버렸지만 상관없었다.
육신을 진화시키든 영혼을 진화시키든 결과적으로 스펙업은 확실하고.
나는 육체 대신 영혼 쪽을 한 번 더 강화시킬 작정이었으니 말이다.
정확히는 반신의 격에 올라서면서 생겨난 새로운 힘을 이용해 그녀의 몸에 직접적으로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육신을 더욱 단단하고 활력이 돋게 만들고 그녀의 몸 안에 있는 노폐물을 끌어낸다.
그러던 중 그녀의 바람이 떠오른 나는 장난기가 돋아 그녀의 몸에 한가지 약속을 걸었다.
“데이비 올 라운의 첫 아이를 잉태할 경우, 그 아이는 그녀의 바람에 따라…….”
콰직!!!
그때였다. 그녀의 바람대로 아이가 태어나준다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작업을 했는데.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다.
“뭐야.”
나는 의지로 새겨넣은 문구에 문제가 생겼나 싶어 이 부분 저 부분 마나의 흐름을 수정해본다.
하지만.
딱 한 부위만 말썽을 일으켰다.
첫 번째 아이…… 이것이 뜻하는 바는 간단하다.
이미 이 세상 어딘가에.
나의 첫 아이가 숨 쉬고 있다.
“…….”
표정이 절로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