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1화
팔란 제국의 황성, 황제의 어전 지하에는 비밀이되 비밀이 아닌 장소가 존재한다.
기밀로 치부되고 있되 일부러 언급을 퍼뜨려 괜한 분란을 시작부터 잠식시켜놓은 장소라는 뜻이다.
외부인에겐 알려지지 않았지만 팔란 제국의 황성 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에 올라있는 이들이라면 모두 알만한 장소.
그것이 검신의 제단이다.
제단의 용도는 간단했다.
검신의 가호가 깊게 서려진 이 장소를 이용해 팔란 제국의 안녕과 평안을 제사 지내는 장소
물론,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신검의 선택을 받는 시련의 제사나 제국의 평안을 기도하는 축복의 제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팔란 제국은 프리아 여신을 포용하지만 사실상 제국이 가장 모시는 존재는 인간이되 신으로 묘사되는 존재.
검신 하레스였다.
그러한 장소지만 지금은 심연에서 기어 나온 오버 마인드의 꿈틀거리는 촉수로 가득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나였다.
오버 마인드는 도저히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듯 보였다.
신의 입장에서 볼 때 나의 행동은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버 마인드는 타나토스의 파편일 뿐 타나토스 본인이 아니다.
그렇기에 놈의 입장에선 경악 그 자체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사적으로 놈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벗어나려 하지만.
콰지직! 쩌엉!
공간을 찢고 넘으려던 놈의 거체가 일순간 제지당했다.
“들어올 땐 마음대론데.”
나갈 땐 아니라 이 말이야.
서걱!! 서거걱!!
눈 깜짝할 새에 미리 각성하듯 준비된 초단이가 놈의 몸을 갈라버렸다.
생명력은 극도로 질긴 녀석이지만 애석하게도 이쪽은 벌써 저놈과 싸워본 경력이 존재한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금기의 힘이 내 전신에 서린다.
단순히 내 육신을 규칙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 아닌. 닿는 것을 분석하고 분해해버리는 힘으로 한차례 진화한 힘이다.
정확히는 분해에 관련해서는 심연에 특화된 힘이기도 했다.
그 어떤 존재보다 심연에 관련해서 그 효능이 특출나게 늘어났으니까.
대체 헤라클래스는 뭐 하는 작자였기에 이토록 심연에 치명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심연이 제멋대로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이곳에서 이점을 취해왔다면.
이번엔 이쪽 차례라는 뜻이리라.
[샤아아아아아아악!!]
생각지도 못한 치명성에 놈의 전신이 버둥거리며 피를 뿜는다.
놈의 촉수에 돋아난 수십 수백 개의 눈동자들이 동시에 붉어지며 터질 듯 부풀어 올랐고 이내 힘을 견디지 못해 하나씩 터져나간다.
[노…… 놈을 죽여라!]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분석하기보다 우선적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오버 마인드가 급히 소리 질렀다.
그러자 놈의 잘려진 육체 파편이 열리며 그 안에서 거대한 반인 반사의 존재가 튀어나온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창끝을 겨누었다.
“죽어라.”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검은 기류를 일으키며 덤벼드는 반인반사.
기이한 심연의 공주가 내 목젖을 노리고 청을 찔러넣었다.
세상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곧이어 심연의 공주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내 목에 그녀의 창끝이 닿기가 무섭게 심연의 힘으로 응축된 창이 마치 입자화하듯 바스러지며 분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목젖을 관통하지도 못하고 닿는 즉시 그대로 분해되어버리는 그 힘은 곧 창이 아니라 그녀의 육신도 부수려 했다.
하지만 힘을 응축시켜 만든 창과 다르게 그녀의 육신까지 단번에 분해시켜버리진 못했다.
물론,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자신의 힘이 그대로 분해 당해버린 탓에 당황한 그녀가 팔을 휘둘러 자신의 손에 붙은 금기의 힘을 털어내려 하지만 쉽게 떨쳐내 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발버둥은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냈다.
“흡?!”
버둥거리던 그녀의 고개가 곧 나를 향해 돌아온다.
이미 나는 초단이의 검신을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 뻗은 후였다.
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진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크게 뜨여졌다.
그리고.
푸욱!!!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그녀의 몸이 어깻죽지부터 왼쪽 하복부까지 비스듬히 잘려나가 버렸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그녀의 육신이 검은 안개처럼 뭉개지며 흩어진다.
“심연의 공주치고는 방어력도 약하고. 애초에 정상적인 심연의 공주가 아니라는 건 확실한데.”
순식간에 오버 마인드의 경호원격인 심연의 공주를 무력화시킨 나는 어떻게든 육신을 회복시켜보려는 오버 마인드의 거대한 눈이 있는 곳으로 파고들었다.
“너 하나 잡자고 오래오래 기다렸다.”
[심연 속에서 죽어라!!]
내가 놈의 눈동자에 치명상을 가하려는 그 순간.
녀석의 몸이 뒤틀리며 마치 거대한 입이 되듯 벌어졌다.
그리고. 눈동자를 향해 파고든 나를 눈동자 채로 집어 삼켜버렸다.
새카만 어둠이 나를 감싼다.
[그 어떤 것보다 어두운 심연이다. 심연 속에서 네놈이 할 수 있는 건 없나니.]
“진짜 식상한 패턴이네.”
이미 한번 당해본 것에 대비책도 없을까.
몽환 세계에서 그놈이 나와 데이비 왕녀를 집어삼켰던 것과 정확히 같은 패턴.
그러니, 대응도 똑같이 들어갈 수밖에.
다만 이전과 다르게 이번엔 지킬 이 없이 오로지 나 혼자라는 점이 있다.
쿠웅!!
이미 인간이 가지는 영혼의 격을 넘어 반신의 위계에 혼의 격을 가져다 맞춰놓은 나라 할 수 있다.
어지간한 심연의 힘으론 나를 잠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놈은 몰랐다.
[그그극?! 어떻게?!]
“궁금해?”
으지직!!
손을 휘저어 오감이 완전히 분리되는 공간을 분해시켜버린 나는 경악하는 놈의 눈동자에 손을 박아넣었다.
푸욱!!!
물컹한 감촉과 함께 놈의 몸 안에 손을 넣어 놈의 재생 근원이자 놈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망령을 끌어냈다.
“계속 궁금해해.”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놈의 본체이자 몸의 일부나 다름없는 망령을 잡아챈 나는 무식한 악력으로 그 기괴한 육신을 찢어버렸다.
[캬아아아아아아악!!!!]
섬뜩한 목소리와 함께 심연의 공주의 육신이 부서진다.
이전과 다르게 놈은 그녀를 부활시킬 여력도, 다른 반격을 할 여유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의 다른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어도 도망치는 것.
놈의 거대한 육신이 존재하던 바닥이 마치 검고 끈적이는 타르처럼 질척질척하게 변했다.
그리고, 놈의 육신을 빠르게 집어삼켰다.
도망치려는 것이다.
이에 내가 급히 손을 뻗었지만, 놈은 몽환 세계에서조차 보여준 적 없던 최후의 비장수단을 꺼내 들었다.
이미 완전히 넘어온 놈과.
갓 넘어온 놈의 대응 차이였다.
쩌억!!!
거대한 제단 채로 나를 씹어 삼킬 듯 검은 타르 속에서 거대한 입이 튀어나왔다.
나는 이 거대한 턱의 주인을 본 바 있었다.
헤라클래스의 클론으로 추정되던 존재가 갇혀있던 지하유적의 최하층.
심연과 이어진 통로에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던 존재.
고대룡.
다만 단순한 외형적 위압감을 내비치던 그때와 다르게 지금 나를 삼키려는 이 거대한 입은 엄연히 살아있는 용의 주둥이였다.
[일찍이 심연에 대항하였으나! 이제는 심연과 하나가 된 존재다!]
심연을 막기 위해 심연과 오래 싸우는 자는 실시간으로 심연에 잠식되어 서서히 비틀리고 부서진다.
고대룡이 어느 진영이었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이놈은 이미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마친 나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나를 따라왔던 이들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빛과 함께 워프가 발동한다.
당황한 이들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그들이 입을 열었을 땐 이미 공간 전이가 발동된 후였다.
제단에 남은 것은 오버 마인드, 그리고 오버 마인드가 소환해낸 거대한 고대룡의 턱.
마지막으로 나의 존재.
[네놈을 끌고 심연으로 가주마!!]
후우웅!! 콰직!!
내가 놈의 입안에서 탈출하기 전에 집어삼키겠다는 듯 턱이 닫혔지만 나는 놈의 입천장을 한번 후려친 뒤 그대로 박차며 공간을 확보했다.
스팡!!!
너무도 간단한 방법으로 그 공격을 회피하는 데에 성공했다.
펠리스티 공국에서 사용했던 방식.
위치전환.
미리 만들어놓은 표식에 마법을 구현해놓은 뒤 두 장소를 뒤바꾼다.
고대룡의 턱 안에 갇혀있던 나는 순식간에 빠져나왔고 나를 대신하여 부서진 바닥의 파편이 놈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쿵!!!!
덧없이 닫혀버리는 입이 곧이어 검은 타르 같은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동시에. 내가 놈에게 신경 쓰고 있는 동안 오버 마인드는 넘어오느라 열어놓은 공간을 통해 도망쳐버렸다.
검은 타르 같은 늪이 마치 증발하듯 서서히 흩어지며 사라진다.
거대한 촉수는 순식간에 증발해버렸고. 끔찍한 진액으로 가득 찼던 제단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깔끔하게 박살 난 제단만이 남았다.
압도적인 불리에서 놈은 도망친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죽어가는 심연의 공주는 서서히 괴형체로 뒤틀리고 부풀려지며 내게 말했다.
[어찌하였는지는 모르지만…… 넌 결국 오버 마인드를 놓쳤어.]
죽어가는 그녀의 목소리가 기괴하게 뒤틀린다.
[우…… 우리는 하나…… 그의 생명력이 느껴져. 넌, 절대 우리를 이기지…….]
매복까지 해놓고 적을 놓친 나를 조롱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뭘 착각하는 거야.”
내 말에 그녀의 눈이 꿈틀거렸다.
머리만 남고 나머지가 모조리 분해되어버린 그녀는 멍하니 나를 지켜보았다.
“심연과 통로를 여는 건 너희만 할 수 있지? 무슨 수를 썼는지 결국 문을 여는 건 너희뿐이다 이 말이야.”
그렇다며 내가 심연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수동적인 수비뿐.
그건 좀 억울한 일이다.
그러니.
문을 열었을 때.
반격을 가할 수밖에.
[무슨?!!]
“너무 아쉬워하지 마. 콱 뒤져서 영혼이라도 남는다면 서로 재회할 일이라도 있을까.”
빈정거리듯 말한 내가 손가락을 튕겼다. 오버 마인드의 본체를 끄집어낼 때.
나는 이미 한차례 놈의 몸 안에 무언가를 심어놓았다.
통로가 아직 완전히 닫힌 게 아니기에 내가 보내는 힘은 그 마법의 트리거로써 아직 영향력이 존재한다.
그리고.
놈이 심연으로 완전히 도망쳤을 때.
나는 아직까지 남은 심연과의 통로를 향해 손을 뻗고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맨날 와서 선물만 주지 말고, 이번엔 이쪽에서 줄 테니 받아가라고.”
환골탈태는 못 했지만.
영혼의 격이 올라가면서 오딘의 마법 하나 정도는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정작 마법을 제작한 작자는 반신의 위계에 발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흉내 내기 위해 내가 도달해야 하는 경지는 회랑의 힘을 되찾는 게 아닌. 회랑에서보다 더 높은 영혼의 경지.
조건은 충분하니 어디까지 여파가 미칠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사실 오버 마인드에게 내가 심어놓은 건 사실 극도로 잘난 마법이 아니었다.
마법은 주로 자연현상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같은 벼락이라도 마법의 벼락은 진짜 벼락에 미치지 못한다.
문제는 오딘이 진짜 자연현상을 마법으로 흉내 냈다고 하나 그것조차 너무 강하고 어려운 게 현실.
그렇다면 여기서 나는 한 번 더 다운그레이드하여 자연현상을 보고 만든 마법을 내 방식대로 새로이 재정립하여 구현하리라.
단순한 힘의 충돌.
다만, 오랜 시간 쌓이고 쌓여온 거대한 중력이 한번에 수축하여 폭발한다면.
오딘의 마법에 비하면 비루하지만 비슷한 효능의 방식의 마법을 구현하는 게 가능해진다.
사실 자폭에 가까운 마법이지만 그 마법의 핵을 물고 놈이 심연으로 도망쳐준다면 내가 써먹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기도 했다.
다량의 TNT 폭탄을 삼킨 흉포한 맹수가 인간들의 포위를 뚫고 홀로 숲속으로 숨어버린 꼴.
[아…… 안돼!!]
“늘 말하지만 된다.”
[9서클 초월계]
[오딘 표 붕괴마법]
[초신성폭발]
쿠웅!!!
차원 너머에 있기에 물리법칙이 닿지 않을 텐데.
무형의 충격파가 오버 마인드가 도망친 통로 너머에서 그대로 전해져 오는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내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지구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시기였던가.
타이밍은 좋다.
“메리 크리스마스다 이 자식들아.”
삐릭.
[칭호, 심연 테러리스트를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