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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83화 (682/1,559)

제 683화

넬타리드와의 조우.

나는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존재를 직시했다.

“왜 내가 프리아입니까. 성자 앞에서 여신 모독하다가 큰일 치릅니다.”

내 말에 그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부드럽게 손을 휘저었다.

“시간이 흐르고, 육신이 바뀐들, 내가 어찌 너를 잊을까.”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양손으로 내 뺨을 잡았다.

동시에 내 육신의 제어가 완전히 박탈당했다.

위계를 반신으로 끌어올리면 뭐하나. 이렇게 쪽도 못 쓰고 털리는 마당에.

나를 제압한 그녀는 곧바로 내게 다가왔고, 내가 금기의 업을 발현함과 동시에 망설임 없이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동시에 황금빛 사슬들이 그녀와 나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서서히 거리를 확장시킨다.

“프리아 여신이 눈치챘구나.”

애초에 프리아 여신의 영역인 만큼 너무 당연한 결과였다.

눈을 감았음에도 나를 직시하는 느낌이 든다.

그녀는 한참 동안 말이 없는 듯하더니 천천히 시간을 다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달의 포효가 7번이 왔을 때. 프리아 여신의 차원 장막이 완전히 걷힐지니.”

눈을 감은 채 그녀가 조용히 내 뺨을 쓸어내렸다.

“숨겨져 있던 절대보옥의 잔재가 완전히 드러남이라.”

달의 포효가 7번.

즉 저 뜻은 간단했다. 7달을 의미한다는 소리였다.

“그 힘을 갈망하여 그 빛에 매료된 자. 모두가 모여들지어다.”

그렇게 말한 그녀의 육신은 다시 불타오르듯 형체가 빛으로 완전히 변해버렸다.

목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거 대화하기 힘들게 뭐 하는…….”

그런 넬타리드 신의 태도에 짜증스레 말하던 내가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작스레 사방에서 기괴한 밤하늘 색으로 이루어진 손 같은 것들이 뻗어져 나오며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섬뜩함보다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손은 겉보기엔 손일지 모르나 닿으면 안 되는 그 무언가라는 확신이 섰다.

한두 개도 아닌 수백 수천의 손이 서서히 다가오자 넬타리드는 기다렸다는 듯 광채를 강하게 빛내며 권능을 발산했고. 그 여파 덕분에 나를 장악하던 손들이 어느 정도 거리에서 모조리 멈춰서는 기적을 선보였다.

[…….]

“아, 그냥 그렇게 반짝거려도 될듯합니다. 어이구 어두웠는데 반짝반짝해서 좋네요.”

순식간에 태세를 바꾼다.

내가 허허로이 웃어 보이자 넬타리드가 손을 뻗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내 육신이 마치 증발하는 것처럼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프리아. 나의 반쪽을 약속한 이여.]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더욱더 미형으로 변한다.

[나의 불찰로 인해 피조물이 창조주를 배신하고 깨워선 안 될 파괴를 깨우고 말았다.]

“그 문어 다리.”

[이미 깨어난 파괴는 점차 나와 동화될 것이고, 그렇게 될수록 나는 온전히 너를 도울 수 없게 된다.]

“…….”

[짐을 지워 미안하다. 프리아.]

“그러니까 한 번만 더 프리아라고 부르면 그 자리에서 손절합니다.”

[데이비. 절대보옥을 찾아…… 타나토스와 네 고향을 이어버리는 틈을 막고 그를 다시 잠재워다오.]

“그 문어 다리가 생겨나면 문제가 됩니까?”

[지구의 모든 것이 바뀔 터.]

어쩌면 찬란한 문명을 가지고 있는 현재의 지구가 마치 세기말처럼 변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 자기 힘 간수는 잘했어야지.”

빈정거리듯 말하지만 이번 일은 흉신이 문제였지 누굴 탓할 순 없었다.

[미약하나…… 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넬타리드의 말과 함께. 나는 그곳에서 추방되듯 그대로 완전히 흩어져버렸다.

* * *

가끔 꿈이라는 요란스럽게 꾸게 된다.

“후…….”

몸을 벌떡 일으킨 나는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스산한 감각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한이 절로 느껴지는 기괴한 꿈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괴한 꿈 대부분은…….

“개꿈이지……”

신과 영접하는 꿈을 개꿈 취급해버린 내 말을 케인이 들었다면 피눈물을 쏟았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곁에 있는 건 나의 반쪽이자 영원을 약속한 페르세르크가 전부였다.

페르세르크는 성공리에 환골탈태를 마쳤다.

그녀의 옥신은 겉보기엔 차이가 없다.

하지만 9서클에 달하는 힘이 봉인되듯 스며들어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손을 꼭 잡자 그녀의 맥박을 타고 심장의 고동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느낌을 받았다.

인공적인 육체가 아닌, 내가 기본적으로 구성해둔 그녀의 육신을 그녀의 영혼이 받아들이고 새로운 육신으로 재구성하여 하나의 완전한 생명체로 탈바꿈한다.

“…….”

몸을 일으킨 나는 나를 간호하다 잠든 것으로 추정되는 페르세르크를 안아 들었고 조심스레 참대 위에 눕혔다.

대체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멍하니 있다가 날짜를 확인해본 나는 기절한 후부터 벌써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리하게 탈진한 뒤로 사흘, 그 거대한 공간에서 느낀 체감 시간은 고작 몇 분 정도였는데.

이곳에선 사흘이 흘러버린 꼴이다.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그곳에서 얻은 수확은 프리아 여신이 각 차원 사이에 막아놓은 틈이 완전히 붕괴하는 시간이 7달 후라는 점이었다.

넬타리드는 그때를 노려 절대보옥을 찾아내라 말했지만…….

그때 가면 늦지.

내 판단은 그랬다. 차원 이동에 제약이 대부분 사라지게 되면 그때부턴 티오니스를 비우는 것조차 쉽지 않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와인잔에 포도주를 따라 휙휙 흔든 내가 창문을 열려던 그 순간이었다.

“아이, 참…… 왜 이리 급해요.”

뭔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익숙한 목소리에 내가 멈칫했다.

표정이 굳는다.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잠이 확 깬 것 같은 섬뜩한 느낌에 고개를 든 나는 손에 쥔 와인을 망설임 없이 풀숲에 뿌려 치워버린 뒤 와인잔을 박력 있게 테라스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생에 가장 비장한 각오를 다진 것처럼 스르르 흩어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윈리였다.

윈리.

윈리 올 라운.

아직 내게는 너무도 어리며 귀엽기 그지없는 여동생이다.

그런 윈리가 저런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았는가.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목소리의 진원지로 향했다.

그리고 목소리의 근원지에 도달했을 때.

나는 볼 수 있었다.

윈리의 허리를 감듯 낚아채고 나머지 손으로 그녀의 팔을 잡은 채.

그녀의 입에 입술을 맞추고 있는 한 남성을 말이다.

“…….”

잠시간의 침묵 끝에 나는 계산을 완벽하게 끝마쳤다.

현재 윈리의 나이 열다섯.

아직 성년으로 부르기엔…….

한 살이 부족하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눈앞의 사내는 몇 살이지?

내가 알기로 처음 그를 봤을 때가 이십 대 후반이었는데.

율리스의 나이 스물아홉.

그리고.

윈리의 나이 열다섯.

“야…….”

내 부름에 두 사람이 흠칫하며 고개를 돌린다.

“데이비가 미사일 드롭킥을 높게 평가한다 이 인간아!!”

투쾅!!!

맹렬하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나는 그대로 몸을 튕겼고, 당황한 듯 눈을 부릅뜬 사내, 율리스를 향해 미사일 드롭킥을 꽂아 넣어버렸다.

“끄억?!”

격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튕겨 나가고 윈리가 경악한 듯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를 걷어차 날려버린 나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가속 마법을 이용해 그를 저 멀리 정원의 호수까지 처박아버렸다.

“꺄악!!! 율리스 님!”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내 소리 없는 절규가 울려 퍼진다.

그런 나를 위로하듯 작은 손이 내 뺨을 톡톡 두드렸다.

“전에도 말했지만, 윈리는 그대의 딸자식이 아니야.”

얘는 언제 또 깨어나서 여기까지 온 거야.

평소라면 그녀에게 무언가 말했을 테지만 나는 지금 이성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연못에서 허우적거리다 겨우 빠져나온 그가 쿨럭쿨럭 기침을 내뱉는 그 순간 나는 그의 멱살을 잡으며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봐요 율리스 님.”

“허억!? 데…… 데이비 님.”

“우리 오랜만에 봐서 참 할 말이 많다. 그렇지요?”

내 환한 미소에 그는 낭패를 보았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멍하니 나와 페르세르크. 그리고 윈리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그대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며 소리쳤다.

“윈리를 제게 주십시오!”

그의 박력 넘치는 외침에 나는 물론 그곳에 있던 모두가 침묵했다.

* * *

애초에 윈리와 율리스 사이에서 미묘한 공기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말입니다. 아직 성년도 안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동생이 지금 나이 차이 열셋이 넘는 인간과 이 야밤에 입을 맞추고 있어요.”

“…….”

“오라비 입장에서 복장이 터집니까 안 터집니까.”

“그것은…….”

“아 뭐 그래. 내가 간섭할 문제는 아닌데.”

담담하게 말을 끊은 나는 율리스를 보며 물었다.

“너무 이른 거 아닙니까?”

“하하…….”

어색하게 웃어 보인 그가 뺨을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배 속에 아이가 생겨버리는 바람에.”

“륀느!!”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창문이 벌컥 열리며 륀느가 튀어 들어온다.

“륀느, 완벽한 착지를 높게 평가!”

“빠루 가져와.”

스산한 내 입에서 서리가 흘러나올 정도로 냉기가 풍기기 시작한다.

그제야 자신이 무언가 말을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율리스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고개를 갸웃거린 륀느는 곧이어 륀느와 율리스를 빠르게 스캔하는지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륀느의 시선이 윈리의 배로 향했을 때.

륀느는 말없이 인류의 구원자라는 별명을 지닌 륀느의 주무기. 빠루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율리스 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나만 찢겠습니다.”

맞아요. 남자의 상징은 부서지는 게 아니라.

찢어지는 겁니다.

“헉?! 자…… 잠시만요! 데이비 왕자님!”

격하게 당황하며 한 손으로 제 고간을 가리고 극존칭을 가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스산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애초에 당신이 처음부터 윈리에게 마음이 있는 건 알았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아직 성년식도 치르지 않은 아이와 동침을 하고 임신을 시켜?!

이 소문이 퍼져나가면 윈리의 혼삿길이 다 틀어막히는 건 기본이오. 그 외 각종의 불편한 사실이 전해진다.

“자. 원 없이 뿌렸으니. 원 없이 가셔도 되겠지요.”

어떻게든 도망치려는 율리스를 정확히 마법으로 모조리 묶어버린 내가 스산하게 웃어 보였다.

“오…… 오라버니! 그만해주세요!”

딸자식 키워봐야 아무런 소용없다더니!!

속에서 피눈물이 터져 나오는 기분이다.

언젠가 내 손을 떠나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거라곤 생각하지만. 적어도 그런 짓을 하려면 성년이 된 후에나 해야지.

그러한 상황에 아직 성년이 되기까지 몇 달 더 남은 윈리가 벌써 남자와 연애를 하고.

거기에 모자라서 속도위반을 했다?

“오라버니! 제발요! 그 사람 살려주세요!”

윈리의 간곡한 부탁에 나는 빠루를 빙글빙글 돌렷다.

“윈리야. 미안하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

내 미소에 율리스의 표정이 핼쑥해진다. 내가 진짜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에 내가 하하하 웃자 율리스도 덩달아 어색하게 웃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미묘한 대치가 잠시 이뤄졌을까.

“데이비. 그거 아는 게야?”

페르세르크가 내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얼마 전에 바리스가 펠리스티 공녀에게 아주 쪽 빨렸는지 피골이 앙상한 몰골로 국무회의에 참석했다더군.”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리스도 미성년자다.”

그 말에 페르세르크가 키득거렸다.

“그럼 다음 타겟은?

“펠리스티 공녀.”

안 그래도 처음 봤을 때부터 바리스를 향하던 시선이 심상찮고 대놓고 추파를 던지더라니.

그새를 못 참고 임팔라를 노리는 표범마냥 덤벼들었던가.

율리스에게 흉악한 시선을 번뜩인 내가 손가락을 세 개 들었다.

“율리스 님. 나는 책임을 안 지는 놈을 매우 싫어합니다. 선택하시죠.”

“무…… 무엇을 말입니까.”

“목숨을 담보로 한 약혼을 하시는 게 첫 번째.”

내 말에 율리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다 거절하고 죽는 게 두 번째.”

“그냥 죽고 적탑까지 싸그리 무너지는 게 세 번째.”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당신에게 선택권은 없다.

동생을 다른 남자에게 보내야 하는 팔불출 오라비의 분노가 어떤지 여실히 보여주리라.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가 말한 그 논리 때문에. 내가 발목이 잡히게 될 줄은…….

“암, 그래. 일을 쳤으면 책임을 져야지.”

페르세르크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 키득거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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