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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87화 (686/1,559)

제 687화

청명하고 깔끔한 방울소리였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등골에 싸르르 올라오는 소름은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라 외치는 기분이었다.

이에 차원열쇠를 꺼내려던 찰나.

나는 너무도 청아하지만 그만큼 섬뜩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가는 거야?”

너무도 자연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언제 다가왔는지 내 바로 앞에 서 있는 작은 소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소녀는 한 손에는 제 눈동자 색과 같은 보랏빛 양산을.

나머지 한 손으로는 내 바지춤을 붙잡고 올려다보고 있었다.

서양식 고딕 풍의 검은 드레스를 입은 소녀는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이질적이었다.

마치 차분하고 예쁜 부잣집 꼬마 아가씩 같은 인형처럼.

종아리까지 오는 머리카락은 정성스럽게 땋아져 있었다.

평생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아왔을 것처럼 피부는 희고 고왔으며 똘망똘망하면서도 차분한 보랏빛 눈동자엔 오롯이 나를 담고 있었다.

스산할 정도로 기품 있는 모습이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차원열쇠를 꺼내들었다.

“오빠?”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의 행동에 나는 망설임 없이 움직여 그녀의 손을 떨쳐 냈고 거침없이 차원열쇠를 허공에 박아 넣는다.

치지직!!!!

그야말로 일순간 마법진의 영향을 받고 있는 윈리를 시작으로 수소와 페르세르크의 몸이 빛으로 화하기 시작했다.

“가는 거야?”

콰직!!!

하지만.

윈리와 수소가 빛이 되어 차원열쇠가 만든 문 너머로 사라졌을 때 생긴 변화는 페르세르크와 나를 이곳에 묶어 버렸다.

“조졌네.”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눈앞의 소녀에 대해 다른 이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했지만.

그녀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힘은 상상을 아득히 넘어가는 수준.

즉.

나의 마나가 방대해 보통 존재들이 그 마나를 못 느끼듯,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녀가 위험하다는 것을 전혀 못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오빠, 어디서 많이 맡아본 냄새가 나.”

이윽고 소녀는 내게 다가와 킁킁 하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의아한 듯 몇몇 이들이 바라본다.

“미친, X라 귀엽네. 데려가서 키우고 싶다.”

그렇게 말한 한 명이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

콰작!!!

그리고.

그는 누가 반응하기도 전에 섬뜩한 피를 뿌리며 머리통이 터져 버렸다.

소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른 청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으…… 으아아아악!?!?”

“이게 뭐야!!”

비명을 내지르며 주저앉아 버리는 천랑 길드의 인간들이었다.

“우욱…….”

몇몇은 그 끔직한 몰골을 견디지 못한 듯 그 자리에서 속에 든 것을 게워내려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기본적으로 알프 온라인 유저들은 일정 이상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모조리 검열당한 채로 보게 된다.

하지만 저들의 반응은 마치…….

그런 검열을 모조리 무시하고 현실을 직시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 이이, X발! 저거! 저년이구나!”

그때 한 명이 대놓고 그녀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왜 그런 판단이 내려졌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소리쳤다.

퍼엉!!!

그리고.

그녀에게 적의를 보낸 대가는 참혹했다.

“끄륵…… 끅…….”

적대감 어린 외침을 내뱉기가 무섭게 또 한명의 청년이 파편이 되어 흩어져 버린 것이다.

단순한 게임인데.

어차피 여기서 죽어본들. 나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별문제가 없을 텐데.

이 기시감과 섬뜩함은 무엇인가.

나는 그녀를 향해 인상을 찌푸린 페르세르크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말하지 마!!”

내 외침에 그녀가 눈을 크게 뜬다.

“네가 한 짓이구나.”

내 말에 소녀는 고개를 다시 한 번 갸웃거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오빠, 왜 익숙한 냄새가 나?”

“질문을 받았으면 다시 묻는 게 아니고 대답부터 하는 거다.”

“으응…… 이클립스는 그런 거 몰라…….”

관심 없다는 듯 말한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오빠, 그리고 언니, 이클립스랑 같이 가. 이클립스랑 같이 놀아줘.”

너무도 태연하게 말하는 그 모습에 나는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럴까?”

“응!”

환하게 웃으며 그녀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곁에 있는 천랑 길드원을 보며 말했다.

“오빠들도 같이 놀아.”

천진난만한 미소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방금 벌어진 이 끔찍한 버그 같은 사태를 누가 일으켰는지.

본능이 비명을 지르며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도…… 도망…… 도망가!!”

결국 그 압박감을 참지 못한 몇몇은 그대로 등을 보이며 도망쳐 버렸고.

몇몇은 그 자리에서 로그아웃을 하려는지 급히 허공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모두를 멈추게 만들었다.

휘이이잉!!

소녀가 들고 있던 보랏빛 양산이 힘없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양산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주변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도망치는 오빠는 싫어. 이클립스랑 놀아 주는 오빠는 좋아.”

꺄르륵 웃는 얼굴이 단순히 천진난만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였다.

“기가 막히네…….”

유일하게 멀쩡했던 것은 페르세르크와 나의 존재뿐.

이곳에 내게 잡혀 모여 있던 천랑 길드원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사방에 보이는 것은 좀 전과 같은 열기가 가득한 숲이 아니었다.

끔찍할 정도로 넓은.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사막.

위치가 바뀐 게 아니었다.

일대 숲이 모조리 사막화해 버린 것이었다.

땅도, 나무도, 공기도, 모조리 죽음을 맞이하여 싸그리 황폐화되고 풍화되어 버렸다.

상식적으로도 경악할 수준의 가공할 힘이었다.

“일대 전부를 일순간에 사막으로 바꿨구나.”

천진난만한 얼굴로 모래를 사박사박 걷다가 흥미가 생겼는지 쪼그려 앉아 모래로 장난을 치는 소녀를 보며, 나는 페르세르크의 팔을 천천히 잡아당겼다.

저건 애초에 그냥 귀여운 아이가 아니었다.

게임 속의 단순한 요소도 아니었다.

내 직감이 맞다면.

방금 그녀에게 살해당한 천랑의 길드원들은 어쩌면…….

그때였다.

“응? 자기소개? 으응…… 알았어어…….”

모래를 가지고 장난을 치던 그녀가 천천히 일어나 손을 탁탁 털어내며 손뼉을 짝짝하고 쳤다.

그리고는 어디서 배운 게 있다는 듯 어색하지만 우아하게 제 치맛자락을 잡아 살짝 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이클립스는 착하니까 말을 들을 거예요.”

“…….”

“안녕하세요! 고대룡 이클립스라고 해요. 으음…… 심연의 공주라고 하면 알거래요, 오빠를 만나러 왔어요.”

“나를 만나러 왔다고?”

그녀의 말에 나는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치 그녀와 직시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본심을 꺼내게 만드는 무형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고대룡. 왜 모를까.

넬타리드의 전력이나 다름없다던 흉신과 싸운 고대의 존재.

프리아의 권속으로 알고 있으나 내가 보고 현존하는 고대룡은 단 하나뿐이었다.

심연을 먹어치우다가 끝내 자신이 잠식되어 버린 거대한 드래곤.

그 드래곤의 이름은 이클립스.

뜻은, 월식과 일식…….

그녀가 보랏빛 눈동자에 나를 머금으며 헤실거렸다.

“오빠랑 놀고 싶어요.”

그그극!!!! 카아아앙!!!

더 말해 무엇 할까.

나는 곧바로 수소에게 맡겼다가 회수한 흉신의 소재로 만든 무기.

거대한 오함마인 코로나 디스트로이어를 들고 그대로 휘둘렀다.

어지간한 존재는 반응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

한 방 한 방에 굉장한 힘을 담은 거대한 오함마, 코로나 디스트로이어의 일격이었지만 그녀는 한 손으로 그것을 가볍게 막아 버렸다.

너무 태연한 모습에 오히려 허탈해질 정도의 방어 능력이었다.

카가가가각!!! 터엉!!!

힘겨루기를 하듯 코로나 디스트로이어를 찍어 누르던 나는 그것을 빗겨 치며 그녀의 옆구리를 강하게 강타했다.

그녀의 몸은 그 자리에서 튕겨 나가더니, 수십 미터를 더 튕겨 나갔다.

아니, 정확히는 수십 미터밖에 밀려나지 않았다.

“히잉…… 옷이 더러워졌어…….”

아무렇지도 않게 폴짝 일어난 그녀가 검보랏빛의 드레스를 툭툭 털어내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무언가 깨달은 듯 천진난만하게 손뼉을 쳤다.

“오빠! 이클립스랑 술래잡기해요! 술래는 이클립스가 할게요!”

그녀의 눈에 순간적으로 이채가 서렸다.

이에 반사적으로 나는 다시 한 번 강제로 차원열쇠를 발동시켰고.

당황한 페르세르크를 그 틈사이로 밀어 넣었다.

투쾅!!!!

그리고.

일순간 의식이 끊어지는 듯한 어마어마한 충격이 내 전신을 휘감았다.

지금껏 만나본 그 어떤 심연의 공주와도 달랐다.

심연의 공주가 아닌 주제에 심연의 공주가 된 존재인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정신을 못 차리고 수차례 모래를 파고 구른 나는, 금이 가버린 뼈의 격통을 무시한 채 바닥을 강제로 짚어 그 힘을 제지하고 버텼다.

“쿨럭…….”

내장이 뒤틀리는 통증이 밀려왔다.

그러면서도 나는 곧바로 반격을 준비했다.

사뿐사뿐 걸어 다가오는 그녀는 정말로 놀고 싶다는 모양새였지만, 나는 숨을 거칠게 내뱉고는 홍단이와 청단이를 융합시켜 그대로 초단이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는 그녀를 정확히 직시하며 닥치는 대로 힘을 끌어냈다.

힘을 아끼는 것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지.

[마령검 80초검]

[필사즉생 생즉필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쩌적!!

압도적인 밀도를 지닌 청적색의 검기가 하늘과 지면을 가른다.

일순간에 그녀의 전신을 양단할 듯 날아든 검기는 지금껏 어떤 존재도 버티지 못했다.

실제로 이 한 방에 담긴 힘은 지금 내가 낼 수 있는 힘, 그 이상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챙그랑!!!

마치 유리창이 깨지듯 초단이의 검기는 이클립스의 손짓에 부서져 버렸다.

사기적인 힘.

이건 단순히 힘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특수한 힘이 그 여파이리라.

나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짧게 중얼거렸다.

“와…… 이건 진짜 죽겠다.”

거짓 없는 감상이었다.

“으응? 시간이 없어? 왜에? 이클립스는 더 놀고 싶은데에…… 히잉 알았어, 오빠!! 이클립스가 쫓아갈게요!”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소리.

그녀의 역량은 내가 아는 슬리지아 그 이상이었고.

가히 재앙, 혹은 종말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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