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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93화 (692/1,559)

제 693화

휘이이이이잉!!!!

강렬한 모래바람이 분다.

무너져 버린 세상의 한 가운데에서 고딕풍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보랏빛 눈을 반짝였다.

“심심해.”

그녀의 말에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이곳에 남은 건 오로지 폐허뿐이었고. 세상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심연의 공주가 한 세계의 생명을 종말시킬 힘을 지닌 존재들이라면.

그녀의 힘은 가히 세계 자체를 부숴버릴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늘을 부서지고, 대지는 뒤틀린다.

도저히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이 끔찍한 상황 속에서 이클립스는 무료한 듯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재미없어. 이클립스 장난감 찾으러 갈래.”

이미 완전히 박살 나버린 세상.

알프 온라인의 필드, 던전, 마을까지.

이미 게임으로 알려져 있던 또 하나의 공간은 단 한 명의 조그마한 꼬마 소녀에 의해 그 근본부터 부서져 내렸다.

[보옥을 빼앗겼다.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분노가 서린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답하라 잠식된 고대룡이여. 네년의 행동에 어떤 이유가 존재해야 할 것이다.]

또 한 번 말이 들려왔지만, 이클립스는 이번에도 침묵했다.

그저 양산을 든 채 성큼성큼 어디론가 걸어갈 뿐이었다.

[말하…….]

“우응…… 시끄러어…….”

투정 부리는 것 같지만 굉장히 싸늘한 느낌이었다.

“이클립스는 지금 기분이 엄청 나빠.”

투정을 부리듯 중얼거린 그녀의 눈동자가 세로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한 번만 더 이클립스를 화나게 하면 때지 할 거야.”

단순한 투정이 아닌 명백한 경고였다.

[…… 프리아를 끝장내는 방법은 쉽지 않다. 이미 태초와 비교하면 위계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으나 그러기에 더욱 간섭할 수 있게 되었다.]

“이클립스는 그런 거 몰라…….”

칭얼거리며 그녀가 발끝으로 모랫바닥을 툭툭 걷어찼다.

그때 그녀의 발치에 무언가가 걸려 나왔다.

거대한 형체를 지닌 도마뱀의 꼬리였다.

“와아! 이클립스! 새 친구를 찾았어!”

신이 난 그녀가 방방 뛰며 작고 흰 손을 모래 속에 쑤욱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용을 쓰더니 그대로 팔을 빼냈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모래 속에 묻혀있던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갑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지룡은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인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면에 추욱 늘어졌다.

“이클립스랑 놀아! 신나게 놀아! 술래잡기해!”

그렇게 외치며 당장이라도 이 괴물이 움직여주길 바라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별개로 지룡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했을까.

[이미 꺼져가는 생명이다.]

“우웅…….”

거친 목소리에 이어 지룡의 목숨이 다했는지 숨을 쉬지 않게 되자 그녀의 얼굴이 울상으로 찌푸려졌다.

그러더니 이내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에 분노가 어린다.

“이클립스랑 놀기 싫어서 자는 거야!!”

퍼어엉!!!!

어마어마한 크기의 괴물의 육신이 일순간에 터져나간다.

단단한 비늘은 물론, 모든 것을 부술 것처럼 단단해 보이던 발톱도 남기지 않았다.

완전히 피 분수가 되어 퍼져나가지만, 이클립스는 양산을 펼쳐 그것을 막아내 버렸다.

“재미없어…… 오빠를 찾으러 갈래.”

조용히 중얼거린 그녀가 손을 허공에 뻗는다.

[포기해라. 잠식된 고대룡이여. 네년의 힘이 강하다 한들. 절대보옥이 없다면 네년이 사용할 수 있는 힘엔 한계가 존재…….]

거친 목소리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무식하게 힘으로 모든 것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세상의 균형이 그녀의 과도한 힘을 이기지 못하고 찢겨져 나간다.

세상의 근간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 법칙이라곤 하지만 이곳은 일반적인 세상과 달랐다.

신이 만들어낸 감옥.

흉신을 가둬둔 차원 사이의 임의의 공간.

그렇기에 이곳의 법칙은 다른 세상과 달랐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기준에서였다.

본래 이 세상의 목적은 특수한 존재를 제외한 모든 존재가 나갈 수 없는 감옥이다.

당연히 슬리지아의 차원을 다루는 힘도, 사해문서의 힘도, 없는 그녀가, 절대보옥도 없이 힘을 방출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의 고집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그녀는 공간을 후려쳐 공간 자체를 일그러뜨리고 균열을 일으키려 했다.

“으아아앙!! 놀 거야! 이클립스 놀 거야!!!”

투정을 부리며 엉엉 우는 그녀의 행동에 세상은 더욱 빠르게 부서져 나간다.

[이곳에서 기다려라. 이곳의 근원이 되는 지구가 완전히 무너지면 너도 나갈 수 있을 거다. 나의 피조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니. 제아무리 나의 일면이 준비해온 것들이 있다 하여도 결과는 변치 않는다.]

그녀를 다독이듯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흐느끼던 이클립스가 울음을 그치며 물었다.

“정말?”

[그렇다.]

“정말 정말? 이클립스 조금만 기다리면 오빠 볼 수 있어?”

[그렇다. 그러니 지금의 넌 힘을 모아두어라. 증오스러운 나의 반쪽과 태초의 의지인 주제에 복수의 이름을 떠안은 프리아를 지워버릴 때까지.]

그 말에 이클립스는 조용히 침묵했다.

그리고는 눈물을 슥슥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를 툭툭 털어냈다.

“이클립스…… 기다릴래.”

동시에 그녀의 주변으로 검은 기류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부서지지 않고 남은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 검은 기류들은 지면에 완전히 스며들었고 이내 새카만 비늘을 지닌 용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클립스, 친구 만들 거야. 친구 많이 만들 거야.”

그녀의 천진난만한 목소리와 다르게 그녀의 힘에서 태어난 검은 용은 그리 가벼운 존재가 아니었다.

모습을 드러낸 검은 용들은 강력한 존재감을 뿜으면서도 저보다 훨씬 작은 이클립스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어머니시여…….

한두 마리가 아닌 수십 마리라 일제히 고개를 숙이는 상황.

피곤한 표정으로 서 있는 이클립스를 향해 고대룡들이 일제히 모여들어 복종을 표한다.

고대룡이라고 해서 이런 게 가능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능했다.

“이클립스랑 술래잡기해! 술래잡기!”

고대룡의 로드. 용의 알을 낳는 자.

그것이 바로 이클립스의 본질이었다.

* * *

홍단이 청단이의 도시락을 까먹어버린 륀느에게 응징을 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얼마 전까지 엄청난 사건이 연달아 터진 것관 비교할 수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애매한 소식. 어느 것부터 들으시겠습니까?”

커다란 날개를 빠르게 숨기며 다가온 케인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제발 그 세 소식이 연결된 빌어먹을 상황은 아니길 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그렇게 말한 녀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좋은 소식부터 전해드리지요. 넬타리드 님께서 고대룡이자 심연의 공주, 이클립스를 알프 온라인 공간 안에 완전히 가두셨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절대보옥을 탈취해주신 덕분입니다.”

정말 좋은 소식이 아닌가.

말도 안 되게 강하던 그녀를 가두긴 했다만 임시방편 정도라 생각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효과가 좋았던 모양이었다.

“그건 정말 다행이네. 애매한 소식은? 부탁이니까 이것과 연관이 없길 빌지.”

“절대보옥의 힘이 생각보다 약해져 있습니다. 아마도, 넬타리드 님의 이면, 파괴의 일면이 무슨 수작을 부린 듯싶습니다.”

“x병.”

이건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애매한 소식이라니.

“좋지 않은 소식 아닌가?”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절대보옥은 신의 근간과 관련된 신물입니다. 그러니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힘을 회복시킬 겁니다.”

절대보옥은 지금의 상황을 호전시킬 순 있지만 사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동전의 양면은 서로 뒤집히며 주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프리아 여신이 타나토스를 찢어버리고 심연을 봉인시킴으로써 본래 심연이 동전의 앞면이 되어야 할 상황을 막아버렸다.

흐르지 못하고 고인 물은 썩기 마련.

당연한 결과이지만 이걸 그대로 흘러가게 둘 수 없었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니 말이다.

다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당장은 존재하지 않기에.

그렇기에 나는 임시방편으로라도 심연과의 모든 통로를 완전히 차단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연도 굳이 앞면으로 올 것 없이 거기서 잘 먹고 잘 살면 서로 좋을 텐데.”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린 나는 케인이 꺼내든 절대보옥을 바라보았다.

밝은 벽옥색의 빛을 내뿜는 절대보옥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너무 쳐다보시면 안 됩니다.”

그때 녀석이 칠흑색의 부드러운 실크로 보옥을 감싸버렸다.

“절대보옥은 강대한 힘만큼이나 탐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의 표정엔 씁쓸함이 어려있었다.

“뭔가 짚이는 게 있나 보지?”

“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일입니다.”

말끝을 흐린 그는 절대보옥을 목갑에 담아 내게 내밀었다.

“그럼 나쁜 소식은?”

그리고 그가 내민 목갑을 받아 아공간에 밀어 넣으면서 내가 묻자 그가 표정을 굳혔다.

“넬타리드 님의 이면, 파괴의 일면께서 흉신을 모조리 지구로 불러들이셨습니다. 흉신들은 자신들의 권속을 만들어 지구를 공격하기 시작했고요. 화기에 관한 내성의 권능을 가졌기에 알프 온라인 유저들의 힘을 각성시켜 막고는 있습니다만…… 솔직히 낙관적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 말에 내 움직임이 멎었다.

“지구의 인간들이 모두 말살당하면 이클립스의 봉인도 끝, 이게 나쁜 소식입니다.”

이클립스의 봉인이 풀리면?

그때부턴 충격과 공포, 그리고 깽판만이 남는 길이 될 것이다.

“나쁜 소식이라…… 마냥 좋은 소식은 아니네.”

담담하게 말한 나는 그를 지나쳤다.

그리고는 수정구를 통해 어디론가 연락을 날리기 시작했다.

“접니다. 어디까지 됐습니까? 예, 그만 갈아 넣으시라구요? 에이 인력 보충도 충분히 해드렸잖습니까. 제가 가면 완성된다구요? 아이고, 악마라니요. 하하하하. 사흘 드리겠습니다. 에디손 님, 에이 왜 이러실까. 에오니샤까지 지원해드렸잖아요.”

하하 웃어 보인 내가 고개를 돌렸다.

“요지는 지구에서 날뛰는 흉신 놈들만 싸그리 잡아 족치면 이클립스가 튀어나올 일은 없다는 거잖아.”

결과적으로 심연의 최종병기가 갇혀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야 있나.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하면 이클립스와 큰 충돌 없이 손쉽게 심연을 싸그리 배제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건은 절대보옥이 힘을 찾는 그 짧은 틈까지 시간을 버는 것.

그 과정에서 현아와 연희 누나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

“잠시만요! 일단 흉신은 고대룡과 싸우던 존재입니다! 서열 1위는 솔직히 당신의 힘으로도 버겁지 않을…… 잠깐만요, 손에 그거 뭡니까?”

“이클립스가 사기인 거지 고대룡이 사기는 아니지.”

내가 손끝에 새하얀 기류를 장난치듯 가지고 놀았다.

프리아 여신에게서 빼앗은 신력.

죽은 이도 살리게 만드는 기적의 원류.

물론, 내가 그런 기적을 발현할 순 없지만. 이 신력이 존재하는 것으로 내 힘이 증폭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클립스 그 괴물 같은 꼬마만 아니면 된다.

“정보나 수집해서 정리해놔, 그놈들 머리에 태양 심어주게.”

내 말에 케인이 침묵했다.

그리고는 한참 뒤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죄송합니다만 데이비 님.”

“음?”

“그놈들은 거진 모발이 없습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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