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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94화 (693/1,559)

제 694화

196. 뒤틀린 시공

알프 온라인을 유지하고 있는 현재 넬타리드의 일면, 평온의 힘의 근원은 지구의 인간들이다.

그렇기에 넬타리드의 또 다른 일면인 파괴가 평온의 힘의 근원인 지구의 인간과 문명을 말살하면 남는 것은 이클립스의 해방.

충격과.

공포.

그리고 깽판이 시작된다.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이클립스가 심연의 끝에서 기어 나온 게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케인의 말대로 그때 울드 대신 이클립스가 나타났다면.

차원의 틈에 처박아 죽어가게 내버려 둔 울드를 슬리지아가 아니라 이클립스가 구했다면.

지금 내가 여기 존재할 수는 있을까.

사람이란 운의 요소가 불확정성으로 적용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미래가 바뀌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벌어지지 않은 일로 안도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브리핑이나 해.”

“우선 이걸 봐주십시오.”

케인은 자신이 그려낸 종이를 내게 내밀었다.

“우선적으로 지구에서 활동을 시작한 흉신에 대한 내용입니다. 당신이 죽인 흉신은 총 셋이죠. 굼다, 레오라 그리고 고진석을 망령으로 만들고 당신의 유골을 훔쳐 고대의 파괴를 깨워낸 고르덱.”

그 외에. 유저에게 사망한 최약체 12 서열의 흉신 폭염의 갈그락스.

“갈그락스는 아시죠? 얼마 전에 이클립스와 마주쳤던 그 후끈거리던 숲. 넷 중 셋은 모두 당신의 손에 소멸했습니다. 하지만 흉신의 총수는 12명.”

아직 8명이 남아있다.

거참, 많이도 남았네 라는 생각부터 든다.

“수준은?”

“당신이 만난 흉신들은 죄다 하위의 흉신들입니다. 진짜 위험한 건 서열 1위에서 5위 수준까지겠네요.”

“지구에 있는 건?”

“놈들은 하수인과 권속을 이용할 뿐 직접적으로 나서진 않는 것 같다고 동족들에게서 전해 들었습니다.”

“동족?”

“예, 평온 님의 힘 덕분에 저희 종족의 극히 일부가 다시금 눈을 뜨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금 수는 많아야 수십 정도지만…… 적어도 당신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라 자부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일단 지구에 가게 되면 그들과 먼저 접선을 할 겁니다.”

케인의 모습을 본다.

푸른 머리칼에 파란 날개를 가진 소년의 모습을 한 천사 같은 모습이다.

“지구에서 현재 발견된 흉신은 메세스라는 녀석입니다. 빛에 약한 망령 같은 녀석이지만 그림자에선 한없이 강해지죠. 영혼을 먹어 자신의 로브 안에 가두는 것으로 점차 강해지는 녀석입니다. 아, 무력 자체는 걱정 마세요. 그래 봐야 문제가 되는 놈은 아니니.”

“그건 다행이네.”

“혹시라도 말씀드리지만, 흉신은 파괴 아니. 넬타리드 님의 힘이라 불리는 존재입니다. 이클립스 수준은 아니라도 고대룡과 싸워 이긴 전적도 있는 아틀란티스 종족이죠. 준비가 미흡한 충돌은 위험하다고 판단됩니다.”

그의 의견에는 동의하는 바였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혼과 육신의 동기화는 회랑에서의 수준보다 더 강해지는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되었지만, 육신의 힘은 아직 예전 그대로였다.

그나마 억지로 포괄적인 무력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금기의 힘이 더 강해진 것과 영혼의 격이 올랐기 때문에 가능한 수준이지 결국 나는 그때 이후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꼴이다.

위험하면 주신이 보옥을 내려주겠지.

숨겨둔 한 수를 꺼내면 되겠지.

안일했다.

“우선 사전조사부터 해보자. 이미 지구에 알만한 인간은 내 얼굴을 알 수 있으니까.”

“겁을 먹으신 겁니까?”

“아니.”

짧게 일축한 내가 녀석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는 휙 밀어버렸다.

“초심을 좀 찾아야겠다 싶더라.”

압도적으로 강해서 도저히 따라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회랑의 영웅들이다.

툭하면 괴롭히는 그들에게서 도망치고, 그들에게 역으로 골탕 먹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땐 없던 지식까지 끌어다 사용한 주제에.

목숨줄 되찾고 본래 자리로 돌아오니 고작 1년 만에 이만큼 퇴화해버렸다.

“지금 지구는 어떤 상황인지 모릅니다. 어쩌면 흉신과 다르게 당신은 아직도 힘을 발현하지 못하게 막혀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가실 겁니까?”

“페르세르크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

오버 마인드는 하이퍼노바와 함께 뒈져 나자빠졌다지만, 그놈이 깨어나면서 페르세르크의 힘에 영향을 준 건 변치 않는다.

절대 변치 않는 진실.

페르세르크의 영혼은 타나토스를 강림하게 만드는 데에 가장 중요하며, 가장 완벽한 혼이라는 점이다.

“그럼 일단. 연락책과 잠시 연결을 해보죠. 지구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는 직접 봐야 알 테니.”

그렇게 말한 케인은 준비한 대로 조심스레 공간을 열었다.

“가시…… 나요?”

그때였다.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손에 작은 바구니를 쥐고 있는 에이리아와 청단이 홍단이 륀느가 보였다.

“데이비 님. 륀느의 전투능력, 및 탐색, 정보 수집능력을 높이 살 것을 요구해.”

“에이리아.”

재빨리 달려와 내 품에 안기는 두 아이를 안아 들며 에이리아를 부르자 그녀가 귀를 추욱 늘어뜨리며 물었다.

“그곳은…… 위험한가요?”

“아니.”

담담하게 말하자 그녀는 눈치를 살피듯 주변을 요리조리 살폈다.

그리고는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몸조심하세요. 이건…… 페르세르크 언니와 함께 만든 거예요.”

에이리아가 청록빛의 귀를 쫑긋거리며 조심스레 웃어 보였다.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는가 보네.”

“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이미 결정 난 것 후회는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는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부끄러워 도저히 못할 것 같은 모습.

그녀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손을 뻗어 그녀의 작은 몸을 당기자 에이리아는 반사적으로 기다렸다는 듯 품에 안기려다 멈칫했다.

“아…… 아아! 죄송해요!!”

그리곤 자신이 과하게 오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깜짝 놀라 물러나려 했다.

정식은 아니라지만 약혼 관계일 텐데. 고작 몸을 끌어안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는 것인 놀라운 수준이다.

이토록 내게 무언가 애정을 품고 있으면서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애초에 그녀의 성격상 굉장히 소극적인 면이 없잖아 있으니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이런 경우. 페르세르크는 그렇게 말했다.

[데이비, 직접 용기를 내게 해. 스스로가 계속해서 꽁꽁 싸매게 하지 말고.]

“…….”

내 말에 놀란 듯 그녀의 고개가 휙 들려졌다.

크게 뜬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던 그녀가 짧게 고민한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그럼…….”

뭘 부탁하고 싶은 것일까.

우물쭈물하며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조심스레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뻐끔거렸다.

얼마나 부끄럽고 조심스러웠는지 눈물까지 고여있었다.

“그…… 그럼…… 소…….”

“소?”

“손잡아 주세요!”

결국, 용기를 낸 그녀가 소리쳤다.

다만 그 요구 사항이 너무도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손 잡아달라고?”

“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파렴치…….”

“거 손잡는 게 문제라도 되나.”

그렇게 말한 나는 그녀의 손을 그대로 잡았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는 그녀였지만. 여기서 놀라면 안 되는데.

제대로 용기를 내주었으니 이쪽에서도 대응을 해주어야지.

이미 그녀는 내 사람이 되었고. 좋든 싫든 페르세르크와 함께 내 부인이 될 이였다.

이제부터는 내가 지켜야 하고, 내가 사랑해줄 한 여인으로서.

긴장감으로 굳어버린 그녀를 잡아당긴 나는 이전에도 그러했듯 그녀의 입술에 내 입을 맞춰주었다.

“읍?!”

전과 다르게 확실히 사태를 인지하고 경악하는 그녀지만 나는 거칠게 입을 맞춘 뒤 천천히 떨어지며 말했다.

“만족해?”

내 물음에 그녀는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떨구고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 이러면…….”

울상이 된 그녀가 웅얼거린다.

“호…… 혼인 전에 이러면 아…… 안되는 데에…….”

이미 몇 차례고 퍽 웃긴 일이 있었는데.

나인테일의 특성상 그들은 꼬리를 사랑하는 이에게만 보여주곤 하는 문화가 있다.

그런 것들을 기억하는지는 몰라도 그런 것 하나하나 짚어내면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터져버릴 것 같아 그만 놀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검으로 변환하며 내 손에 쥐어진 홍단이와 청단이를 허리에 채운 뒤 고개를 돌리자 한편에서 말없이 키득거리고 있는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범인 저기 있었구나.

지구는 적진인 만큼 웬만해선 누군가를 데려가는 짓을 할 수 없었다.

“준비됐습니다. 륀느 양은 데리고 가는 걸 추천합니다. 그녀의 힘은 분석과 구현이지요. 아마 지구의 정보를 분석하고 해킹할 때 제법 도움이 될 겁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륀느는 자신이 자신 있다며 빈약하기 그지없는 새하얀 팔을 들어 근육을 자랑하려 들지만…….

사실 그녀에게 근육이라곤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아직 출발하지 않았구나.”

그때였다.

의도하지 않은 인물이 내게 합류했다.

* * *

폐허가 된 도시.

새하얀 갑주 같은 피부를 지닌 기괴한 이형의 존재가 천천히 도심을 활보했다.

본래대로라면 대로에 차가 한창 가득할 시간이지만 애석하게도 속초시는 현재 갑작스레 출현한 괴물로 인해 난장판이 된 장소였다.

화기에 대한 내성.

그들을 직접적으로 퇴치하기 위해선 화기가 아닌 냉병기가 필요했다.

물론, 인간의 육체능력으로 이 거대하고 날렵하며, 강인한 괴물들을 처리하는 건 어렵다.

결국, 효과적으로 괴물을 처리할 수 있는 건 엄연히 각성자라는 특수한 존재들로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알프 온라인 유저 중 일부.

어떠한 조건을 완수해내 힘을 얻어 현실에서도 게임 아바타가 쓰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존재.

그들의 육신은 일반적인 인간과 같지만, 그들이 힘을 발현할 땐 마치 무언가가 링크된 것처럼 변한다.

같은 주먹질이라도 그들이 의지를 가지거나 자체적인 방어를 할 때 육신에 마치 껍질이 씌워지듯 강해진다는 소리였다.

“하아…… 하아…… 하아!!”

타다다다다닥!!

거대한 괴물들의 배회 속에서 누군가가 급히 길가를 달렸다.

찰칵!

먼지가 묻었지만 깔끔한 복장이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여기저기 상처로 인해 붉은 피가 가득했다.

“하아…… 하아…….”

여성. 신현아는 귀안의 소유자였다.

-키이이이이이익!!

-끽끽!!

작디작은 고블린과 흡사하지만, 피부색이 백색인 괴물들이 일순간에 그녀를 쫓아오자 그녀는 반사적으로 손에 쥔 물건을 강하게 휘둘렀다.

각성자들이 사용하는 무기로 이곳에 파견되었다가 희생된 각성자에게서 주운 물건이었다.

현아는 공포에 질린 얼굴을 했다.

이번 대 재앙 이후로 그녀와 그녀의 소속인 기업은 자금을 막대하게 풀어 재난에 당한 사람들을 돕는 데에 손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일도 그러했다.

그녀는 직접 삼촌을 설득해 속초에 남겨진 피해자들의 피난을 돕기 위해 물자를 옮기고 있었다.

그룹의 이미지를 시기한 누군가가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기 전까지.

그녀를 도와주던 사설 경호원들 다수는 괴물에게서 그녀를 지키려다 사망했고 그녀도 이곳을 급히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몸을 숨기고 도시를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게임을 한 적이 없기에 특별한 능력이라곤 할 것도 없는 현아였다. 당연히 그녀의 상황은 절망적인 상황.

조금만 다리가 꼬여도 저 괴물들에게 붙잡히는 건 한순간이리라.

-키에엑!!!!

그때, 어두운 골목길 안에서 백색의 고블린 몇 마리가 마치 포탄처럼 날아들어 그녀에게 육탄 돌격을 가했다.

“꺄아아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을 뒹굴며 벽에 처박힌 그녀는 뼈가 부러진 듯 아려오는 다리에 이를 악물었다.

이깟 상처.

어떻게든 견뎌내야 한다.

반드시 살아나가 이번 사태의 원흉을 세상에 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이번 사태를 적극 이용해 세계의 패권을 쥐려는 정신머리를 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방해되는 현아의 그룹을 흔들기 위해 갖은 수작질을 부렸다.

-키키키키키킥!

-끼이이이이……

쓰러져 몸을 천천히 기어가는 그녀에게 다가온 고블린들이 스산한 웃음을 짓는다.

본래의 녹색이 아닌 새하얀 피부에 갑각을 지닌 고블린들은 섬뜩한 눈동자를 번뜩이며 그녀에게 다가와 날카로운 무기로 그녀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시…… 싫어…….”

-키키키키킥! 캬캬캬캬캬캭!

-끼아아아아악!! 끼리리리리릭!

기괴한 소리를 내며 덩실덩실 춤을 추던 고블린 한 마리가 급기야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그리고는 그녀를 잡아당기기 시작하자 현아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버둥거렸다.

“꺄악!! 아…… 아파!! 아파!!”

온몸을 버둥거리던 그녀의 행동 덕분일까.

그녀를 끌고 가려던 고블린이 그녀의 손에 맞아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키야아아아아악!!

분노한 고블린이 그녀에게 올라타 마구잡이로 뺨을 때리며 화풀이를 시작한 것이다.

겁에 질린 채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폭행을 당해야만 했던 그녀는 급기야 고블린들이 그녀의 옷을 잡아 찢을 듯 당기는 모습에 눈을 부릅떴다.

그녀도 이미 재앙이 터진 곳에서 본 바 있었다.

이 작디작은 고블린들이 게임에서 알려진 정보와 다르게 어떤 습성을 지니고 있는지.

“아…… 아아?!”

경악한 그녀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키히히히히.

섬뜩한 고블린이 그녀와 눈을 마주하자 온몸이 굳는 듯한 공포가 찾아왔다.

찌직…… 찌지직!!

털 스웨터의 일부가 날카로운 무기에 찔려 찢겨나가고 피가 옅게 튀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그들에게 욕보여질 것이라는 공포.

복잡한 공포와 생각이 그녀를 패닉으로 몰아넣는다.

그때였다.

그녀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던 고블린들이 갑자기 굳어버린 것이다.

-키익?

“니들은 내가 볼 때마다 그런짓을 하고 있더라.”

담담한 목소리였다.

이에 현아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일대에 있던 다수의 고블린들이 몸을 벌벌 떨며 굳어있고, 그런 그들을 향해 한 청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말이다.

마치 형상화된 것처럼 검은 기세가 피워 올려지는 느낌이었다.

“그치 개자식들아? 손 떼.”

싸늘하게 일갈한 청년이 한발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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