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98화 (697/1,559)

제 698화

197. 메세스의 그림자

“흐아아암…….

졸린 눈으로 몬스터들의 시체를 들어 지면에 파묻어 버린 나는 선혈이 낭자한 이곳을 미련 없이 벗어났다.

이곳에서 몬스터의 밥이 되었던 희생자 넷의 유해는 모두 적당히 유품만 회수하여 돌아선 뒤였다.

딱히 그렇게 할 이유야 없었지만 누군 해 주고 누군 해 주지 않는 건 생각보다 불공평할 테니까.

내가 이곳에 왔을 때 몬스터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를 공격해 왔다.

그 종류는 고블린부터 트롤, 오우거 사이클롭스까지.

본래의 각성자 기준이라면 대번에 죽었을 정도.

흉신도 잡은 유저들이 왜 그 정도에 죽냐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그 의문은 이번에 만난 각성자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알프 온라인을 즐기던 당시의 레벨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수준을 보면 오크 정도까지는 문제없이 사냥할 수 있을 정도.

그 위의 몬스터를 상대하기엔 아직 버거웠다.

저들의 한계?

아니, 내 시선에 보인 그들의 육신은 나와 상황이 비슷했다.

혼과 육신이 동기화하지 못한다.

그들의 경우, 아직 현재의 몸이 게임 속 스펙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여러모로 인간에게는 지금이 가장 어려운 보릿고개라는 뜻이리라.

결과적으로 나를 노린 이 몬스터 유인 함정은 제법 치밀했다.

이곳에 온 게 각성자가 아니라서 문제일 뿐.

일단 무엇이 되었건 윤태강은 생존자의 탈을 쓰고 흉신을 불러내려 하는 인물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 입막음으로 두 명이 몬스터가 아닌 인간에게 희생될 정도로.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인간의 존속을 위해선 흉신의 소환을 막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인간을 조금만 희생시키면…….

“흉신을 끌어내 조져버릴 수 있는 기회란 거지.”

그게 몇 위권이건 소환 시간을 이쪽에서 정할 수 있다면.

이클립스 정도가 아닌 이상, 제대로 한 방 먹일 가능성도 존재했다.

인간의 삶과 죽음 사이엔 선택이 있다고 하였나.

메가로드리아는 도시에 남은 몬스터들을 초토화 시키고 있으니. 남은 건 현아와 륀느를 불닭이에게 태워 이동시키는 것.

거리가 제법 멀다.

지금처럼 고속도로가 아작난 상황이면 차량으로 이동 시, 6시간은 우습게 잡아먹을 거리였지만, 불닭이의 속도는 그런 차량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벌써 근방까지 도달했으리라.

인간을 지키느냐. 아니면, 조금 희생시키고 흉신을 끝장내느냐.

그것이 고민이라니 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 사람이 더 중요하지.”

굳이 죄 없는 인간을 희생시키지 않아도 어차피 내가 이길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괜한 희생을 치르고 후에 후회할 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 중요 물건을 개방하기 전에 막고.

물건을 내가 회수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으니 망설일 건 없었다.

* * *

현재 대구는 낙동강 방어선을 기준으로 몬스터들의 진입을 막고 있다.

과거 6.25 전쟁과 같이 초토화되어 버린 서울을 버리고 부산으로 천도한 이 상황에서 사실상 대구와 전라남도 지역은 남아 있는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었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각성자들이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군인들과 협력하여 몬스터들을 막아 낸다.

하지만 추가적인 유입이 없는 만큼, 함부로 그들을 소모시키는 건 멍청이나 할 짓이었다.

그런 주제에 8명이나 되는 인원들을 보낸 점이 퍽 우스운 상황이지만 말이다.

후웅!!!

대구 지역까지 도달한 나는 진을 치듯 자리한 채 접근을 막고 있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정지, 정지!! 움직이면 쏜다!!”

긴장한 듯 총을 들어 올리고 소리치는 그 모습에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몰래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굳이 내가 이들에게 모습을 보인 것은 괜한 문제를 일으킬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일차적인 목표는 지구의 인간이 멸종하지 않게 지키는 것이지 그들과 반목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접근하지 마라!”

일단 적이건 아군이건 확실히 판단이 서기 전까진 접근하지 말라는 게 그들의 태도였다.

“한 발자국만 더 들어서면 쏘겠다!! 신분을 보증할 만한 것을 제공하라!”

다이아몬드 세 개가 박힌 모자를 쓴 대위가 나를 향해 소리를 쳤고, 나는 품 안에서 미스릴로 된 라운 왕국의 왕족패를 흔들어 보였다.

“이거뿐인데. 어떻게 안 되나?”

“…….”

더욱 긴장감이 격화되기 시작했다.

“이미 이곳으로 온 이들이 있을 텐데? 따로 이야기를 들은 게 없나?”

“뭐라?”

“각성자 박두식, 이지민, 윤태강, 허진우. 생존자 넷과 신성 그룹에서 보급을 위해 너희들이 파견했던 신현아에게서 들은 게 있을 텐데?”

내 말에 대위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어디론가 급히 무전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무언가 대답을 들은 듯 총을 겨눈 채 말했다.

“이곳에서 기다려라.”

“그러던가.”

애초에 방어선 위쪽은 현재 정상적인 도시가 없다.

그러니까 한국의 경우, 국토의 절반을 현재 몬스터에게 빼앗긴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방어선 위쪽에서 생존자들이 내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상처하나 없는 붉은 눈동자의 남성이 홀로 다가오니 겁을 먹을 수밖에.

다행히 멍청이만 있는 건 아닌지 곧이어 무전을 받은 대위가 몇몇 병사에게 상황을 인계한 뒤 권총을 들고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실례 많았습니다. 검문소를 담당하고 있는 현장 지휘관 이상한 대위라고 합니다. 무전을 통해 당신이 생존자들을 구해 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확실해지기 전까지 구속을 해야 한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지요.”

그의 말에 나는 양손을 대뜸 내밀었다.

“와. 나 이거 진짜 해 보고 싶었는데.”

구속당해 보기.

내 표정에 이상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위는 곧바로 내 손에 특이한 금속 수갑을 철컥, 하고 채웠다.

단순한 수갑과는 다르게 무슨 거대 괴물을 구속하는 수갑 같은 것을 이중으로 채운 그는 곧 병사 두어 명을 대동한 채 나를 도시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군용 레토나를 타고 빠르게 이동한 끝에 무장한 군인들이 다수 포진한 경찰서의 유치장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데이비 님.”

그곳엔 이미 륀느가 양손을 묶인 채 발을 통통 튕기며 장난치듯 기다리고 있었다.

괜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판단한 것일까.

날개와 머리 위의 원반을 빛 반사를 이용해 숨기고 있는 꼴이 퍽 우스웠다.

“넌 왜 여기 있냐.”

“륀느, 구속당해 감옥에 갇히는 소설 같은 비현실적 요소를 경험하고 싶었다고 보고.”

“거 누가 소유주인지 참…….”

“데이비 님의 경우는 어떤 경우인지 륀느가 의문을 표시.”

“사람이 살다 보면 겪어 볼 일 없는 일도 겪어 보고 싶지 않겠냐.”

내 말에 륀느가 자박자박 다가오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무표정한 얼굴에 게슴츠레 뜬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매우 비효율적인 취미 생활. 륀느가 그것을 낮게 평가.”

“사돈 남 말 하시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와 륀느는 수갑이 채워진 손을 들어 서로 손을 부딪쳤다.

* * *

당연한 일이지만 나와 륀느의 유치장 경험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의 신원을 보증해 준 현아가 힘을 썼는지 금방 빼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있었다.

분명 유령의 말대로라면 지구의 인간들은 티오니스 성자.

즉 나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나를 못 알아볼 일도 없을 텐데 생각보다 조용한 느낌이었다.

덜컥.

“들어가시지요.”

검은 슈트를 입은 이들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몇몇 남성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게.”

나를 보자마자 굳은 얼굴로 응대한 중년 사내가 조용히 나와 륀느를 직시했다.

“우선 고맙다고 해야겠군. 자네들 덕분에 신성 그룹 쪽에도 체면을 세울 수 있었고 중요한 임무도 완수했으니.”

“그럼 이거라도 풀어 주시지요.”

내가 손에 채워진 구속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별로 의미도 없는데.”

“그럴 순 없네. 자네의 안전성이 확실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속을 함부로 풀 수 없음을 이해해 주게.”

“그 수갑은 특수한 힘을 쓰는 몬스터나 각성자들의 힘을 제약하는 힘을 지니고 있네. 괜한 소란은 피해 주었으면 하는군.”

“그렇게 적대적으로 나오면 서로 좋을 게 없을 텐데.”

내 중얼거림에 중년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자네가 도와준 것에 대해선 감사하고 있네. 하지만, 자네는 자네가 한 일이 있지 않나.”

그의 말뜻은 간단했다.

“그렇지 않나? 티오니스 성자. 인류를 위험에 빠뜨린 장본인.”

그의 말에 나는 심드렁하게 받아쳤다.

“무슨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알프 온라인을 박살낸 것 때문에 뭐라고 하고 싶은 거라면 번지수 잘못 짚으셨습니다들.”

“무슨…….”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을 텐데? 생존자들을 먼저 보낸 이후 그들이 가져온…….”

일단은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다.

못난 놈 더러운 놈은 따로 조져 버리면 되지 그들 때문에 죄 없는 인간이 희생될 이유는 없다.

그게 상식이니까.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될 생명을 죽이는 건 오만일 뿐이다.

하지만.

[계약자. 대량의 간식이다! 간식이 온다!]

셰인 스크리프트의 유전자를 받아들여 환수 소환사로서 메가로드리아와 계약하고 있는 내 머릿속으로 메가로드리아의 의지가 전해져 왔다.

‘간식?’

[방사능의 냄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군! 게다…….]

그의 의념이 끊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사능이 떨어져? 그게 가능한 건 단 하나뿐인데.

핵미사일.

“…….”

“왜 그러나?”

“좀 뒤져 버리라지.”

본래는 이들에게 오해를 풀어 주고 이들의 협력을 통해 윤태강이 반입한 그 흉신 소환 제물을 틀어막아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었다.

사람의 목숨? 중요하지.

그런데.

내가 보듬고 있는 존재를 공격한 순간부터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협상은 없다.

“당신들,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내 물음에 갑자기 그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아니. 됐다. 안 봐도 뻔하지. 협상은 끝이다.”

콰직!!

나는 손에 채워진 수갑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숴 버렸다.

힘을 구속한다.

그래. 그건 좋은데.

정작 어느 정도 힘을 지닌 존재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할 거다.

운이 좋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될 것이다.

내가 직접 쳐 죽여 버리지 않는 것을.

저들은, 유일한 희망의 끈을 방금 놓친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