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1화
“우우웁!! 웁웁!!!”
입이 틀어 묶인 채 한 사내가 발버둥을 쳤다.
사내의 몸은 기괴할 정도로 이상한 점이 존재했다.
사람인지 유인원인지 모를 정도로 전신에 털이 수북했기 때문이었다.
적당한 털은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말해도 지금 그의 몸에 난 털은 도저히 그를 인간으로 보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우우우우웁!! 우웁!!”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괜히 오버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가 있는 위치를 보면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우우우우우…….
“우우웁!! 우우우웁!!”
다리를 버둥거리며 어떻게든 제 다리를 붙잡아 끌어내리려는 손들을 벗어나려 애쓰는 그였다.
고위 저주계통의 사령 마법.
구울의 의식.
사령 마법이 비록 인체의 연구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만들어진 마법이라지만 공격성이 다분한 마법엔 상당히 끔찍한 형태를 지닌 것도 존재했다.
인간을 구울로 만드는 마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늪에서 튀어나온 검은 손은 그저 이미지적인 현상에 불과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그의 다리는 이미 망자화. 즉 썩어들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나의 물음에 윤태강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나를 향해 뭐라 소리를 질러 댔다.
이에 가볍게 손뼉을 치자 그의 입에 붙은 테이프가 빛과 함께 흩어졌다.
“사…… 살려줘! 살려줘 제발!!”
“네가 한 짓으로 몇 명이 죽을뻔했는지 안 보여?”
나는 이곳으로 오기 전 구해둔 디스플레이 장치를 켜며 그에게 보여주었다.
[빌어먹을 다 끝났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핵미사일은 또 뭐고!]
아우성치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흉신의 토벌 사건에서 티오니스 성자가 내뱉은 발언으로 인해 시민들이 많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각성자 시민연합에선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정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또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에 대한 해명을 해줄 것을…….]
화면 속엔 내가 묶어버린 흉신, 메세스가 보였다.
상위서열도 아니지만, 메세스는 엄연히 그림자를 먹으면서 계속해서 강해지는 괴물이다.
그런 괴물이 저렇게 무력하게 묶여있는 건 퍽 우스운 일이지만.
[현재 국민들의 목숨을 붙잡고 있는 흉신 메세스의 경우 티오니스 성자에 의해 공격을 할 수도, 받지도 않는 소강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이에 현재 유상현 공대장은 어렵게 생긴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며…….]
“재밌지 않나?”
윤태강을 향해 내가 물었다.
“괴물 같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지 그가 중얼거렸다.
확실히 흉신이 나로 인해 그 이름이 퇴색되었을 뿐 현재 지구에서 날뛰는 괴물 중 최상위 존재가 흉신이었다.
흉신이 누구이던가.
[한편 외신에선 이번에 나타난 티오니스 성자에 대한 정보를 공개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알프 온라인에 존재하는 수많은 적들 중 가장 단연 최상의 괴물이며, 12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사실상 최종보스나 다름없다.
메세스의 서열이 높은 편은 아니라지만 굼다조차 제치지 못한 유저들에게 메세스는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이 아니었다.
“넌 여기서 지켜나 보라고, 너희들이 무슨 계략을 짰건.”
니들이 저지른 짓으로 인해 내가 이곳에 파고들기 더 쉬워졌으니까.
“살려…… 살려주세요…….”
윤태강은 계속해서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의 다리는 이미 무릎까지 구울화가 진행되어 피부가 썩어가고 있었다.
고통이 없다곤 하나 자신의 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꼴을 보고 맨정신을 유지하기가 쉬울 리 없다.
그런 그를 구해주러 올 인간은 단 하나도 없다.
있을 리가 있나. 이곳은 애초에 인간의 영역이 닿지 않는 곳인데.
물론, 지구의 기술력이 많이 퇴화했다곤 하지만 아직 우주엔 많은 인공위성이 떠 있을 것이다.
그 눈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살려…….”
“살려주잖아. 넌 지금 죽으면 안 되지. 너희 일루미나티는 조직을 위해 뭐든지 하는 놈들이잖아. 안 그래?”
윤태강은 정확히 일루미나티의 소속이지만. 조금 달랐다.
목숨을 거리낌 없이 버리던 그 자살 테러범들과 다르게 그는 제 목숨을 구걸하며 살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당연히 조직에 비해서 상당히 기형적인 정신을 가진 녀석을 그냥 둘리가 있나.
나는 망자화 하기 전에 이미 일루미나티에 대한 정보를 다수 뜯어냈다.
다만 금제 수준이 아니라 아예 기억을 소거시켜버리기라도 했는지 그의 기억은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고, 거기서 거르고 걸러 얻어낸 정보는 사실 너무 극단적으로 부족했다.
윤태강은 말단까진 아니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뱉어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여기서 뭘 하시려는 겁니까?”
윤태강을 보며 느긋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고만 있자 케인이 답답하다는 듯 제 의지를 비쳐왔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흉신이 전부 나타나지 않았어도 놈들은 차원의 틈 곳곳에서 당신을 주시하려 들 겁니다. 기회가 있을 때 놈들의 전력을 조금이라도 소모해야…….”
“누가 안 잡는데?”
내 물음에 그가 눈을 끔뻑거렸다.
“네?”
“잡을 거야. 다만 지금은 아니지.”
“대체 뭘 하시려고.”
“넌 지구에 대해 잘 알지 않나?”
인간이라는 게 대중매체를 통해 서로 연결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잘 보고나 있…… 빌어먹을 신호를 하이잭 하다 보니 굉장히 불안정하네.”
나는 잘 나오던 디스플레이가 갑자기 꺼져버리자 나는 망설임 없이 그걸 쾅쾅 후려쳤다.
그러자 다시금 화면이 켜지기 시작했다.
“역시 구타는 만국 공통의 수리기술이지.”
할아버지식 78.23도 타격수리법.
나는 느긋하게 상황을 관전했다.
실시간으로 현 상황이 계속해서 올라간다.
그림자를 빼앗긴 수많은 한국 국민들은 현재 목숨이 저당 잡혀있다. 그 끝은 메세스가 죽지 않는 한 반드시 죽음으로 이어지리라.
그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갖은 수를 썼다.
[핵미사일 뭔데. 우리나라 핵보유국 아니잖아. 빨리 해명해라.]
[대체 뭔 짓을 했길래 저럼.]
[근데 티오니스 성자는 알프 온라인 박살 낸 장본인 아니었나?]
[그게 무슨 상관임 저 괴물 안 죽이면 우리가 다 죽게 생겼는데. 메세스 한방에 공대 탱커들 갈려 나간 거 못 봄? 이대로 절대 못 이김]
[맞음 탱커진이 특수기까지 못 버티고 평타 한방에 녹았으면 이건 그냥 상대가 안 되는 몹인 거.]
[살려주세요. 제발. 티오니스 성자건 누구건 좋으니까 제발 우리 목숨 좀 살려주세요. 죽고 싶지 않아요.]
너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저당 잡혔다.
그 탓에 현재 한국은 아주 재미난 상황을 겪게 되어버렸다.
길거리엔 당장 정부 인사에게 해명하라는 시위가 연일 일어났다.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진실로 인해 피해를 본다.
그것이 가장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한둘도 아니고 거리를 가득 메울 정도의 시민들이 항의한다.
각성자의 경우 조금 몸을 사리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지도 않았기에 이대로 개죽음당할 수 없다며 어떻게든 시위에 참가해 사태의 해명을 요구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정부 측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현재 계엄령 상태의 입장을 공고히 알렸고 그럼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을 중화시키기 위해 대변인을 내세웠다.
4성 장군.
사령관 서호진.
군복에 수많은 훈장을 달고 나타난 그는 기자회견장에 올라서서 그렇게 외쳤다.
[속으시면 안 됩니다. 단연코 핵미사일에 관한 건은 근거 없는 루머일 뿐입니다! 여러분,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답이 보일 겁니다.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이 괴악한 티오니스의 인간은 현재 국민 여러분의 목숨을 가지고 저희와 인질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서호진이라.
분명 대통령을 압박하던 그 군인이었을 것이다.
핵미사일을 쐈던 장본인.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희는 오랜 시간 단결해왔습니다. 과거에서부터 무수히 이어져 온 외세의 침입 속에서 저희들은 힘을 합쳤고, 그때마다 적들을 몰아내고 이겨내 왔습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입니다. 저희가 단결해야 하는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티오니스에서 온 데이비라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는 입에 발린 말을 계속해서 기자회견에서 늘어놓았다.
[그자는 알프 온라인을 무너뜨린 범인입니다! 그뿐입니까! 그는 미개한 과거의 산물인 절대 왕정체제의 왕족입니다! 서민들의 존재를 그저 개돼지로만 보는! 언제 죽여도 상관없는 장난감이며 자신들의 배를 채워줄 도구 정도로만 여기는 선민주의 사상에 찌들어있는 자!! 그게 바로 그들입니다! 미개한 외계문명에 놀아나시면 안 됩니다.]
“이용할 건 다 이용한다는 거지.”
절대왕정 국가의 선민사상. 확실히 2 왕자 칼루스도 그러했었지만.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반대로. 국가가 자신의 국가이며, 곧 자신의 국가이기에 더욱 열심히 해온 국왕들이 존재했다.
지구에 있는 이 한국의 과거 국가들의 행적만 봐도 그렇지 않았던가.
메뚜기떼로 인해 흉년이 들었다고 메뚜기를 잡아다가 삼켜버린 조선의 국왕도 존재했으니.
기자회견을 보며 나는 키득거렸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는 케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괜찮은 겁니까? 보아하니 언론 통제도 다 했고 계엄령이라 죽자고 뻐팅기면 결국 바뀌는 건 없을 텐데요.
“그렇겠지. 저기에 선동되는 인간도 제법 있거든.”
[국민 여러분 저희는 민주국가입니다. 국민이 주인이며, 모두가 개개인의 가치를 보장받는 그런 국가입니다! 저희는 노예가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외세에 의해 저희가 놀아날…….]
계속해서 떠드는 서호진의 열변을 무시한 채 채널을 돌린다.
다른 곳에서는 여론이 나를 향한 질타를 하는 것들이 나오고 있었다.
[아아……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때는요. 이건 흔히 인터넷에서 떠도는 관심병과 흡사한 형태입니다.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있다고 떠벌리며 대중의 관심을 요구하고 환호를 요구하지요. 다른 말로는…….]
[생각보다 양심이 없는 인사였네요. 한둘도 아닌 수많은 인간의 목숨을 잡고 인질 전을 벌이는 건 테러리스트나 다름 없…….]
“여론이 좋진 않네요.”
케인의 말에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렇지. 힘은 군권이 쥐고 있거든.”
사실 지금의 한국은 민주국가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계엄령이 터지면서 거의 군사정권 수준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증거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통령이 나타난 적이 없다.
사람들은 대통령에게 담화를 요구하지만, 그는 묵묵부답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무능한 대통령이니 뭐니 욕을 받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현 대통령은 자신의 목숨도,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 것도 잘 조율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이면…….”
“현아에게 조금 부탁해놓은 게 있거든. 조만간 시원시원하게 터질 거야.”
그때까지 며칠 정도는, 아니 하루 정도는 더 기다려주지.
메세스 봉인해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나는 느긋한 표정을 지은 채 눈앞에서 케인이 그려주는 마법진을 활성화시키기 시작했다.
* * *
서호진의 입장에선 절대 물러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선 나름대로 이곳을 지키는 최선을 다한 것일 테니까.
그 결과가 잘못되어 자신이 이토록 몰렸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의 기준에서 잘못된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재수가 없었다고 여길 뿐.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참 얄궂기 그지없다.
자신이 잘했건 잘못했건. 공인이라는 위치에 있으면 한때 내린 선택이 어떤 의도를 가졌건 극악무도한 죄인이 되는 것도 한순간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서호진이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었다.
청탁 뇌물을 통해 있는 집 자제인 각성자와 없는 집 자제인 각성자를 알게 모르게 차별하거나 비리를 저질로 대량의 돈을 국외 자본으로 빼돌리고 있다던가.
여러 문제가 많았다.
확실히 한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웃긴 점은 이런 상황에도 아시아권 국가들은 서로 물고 뜯으며 니가 죽니 내가 죽니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말로 위험한 재앙을 못 봐서 정신을 못 차린 건지 모를 일이다.
서호진은 그럴듯한 대사를 가져다 붙이는 것으로 계속해서 국민들을 선동하려 했고, 현재 여당, 즉 권력을 잡고 있는 측을 옹호하는 시민 세력은 그것에 발맞추어 반대 측 사람들과 충돌했다.
저들 목숨이 며칠 남지 않은 건 알고 있는 것일까.
이런 식이면 계속된 탁상공론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당연히 이는 나도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기에.
나는 한가지 꼼수를 부렸다.
각성자들을 회복시켜주었다는 사실과.
[오늘 오전 4시경. 신성 그룹에서 전해온 청문회의 현장 녹화본입니다.]
[거기 몇이나 있었지? 당신들이 사람 새끼인가?]
[당신들은 살인자야!! 알아?!]
증거 영상이라는 건 퍽 재밌기 그지없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 군권과 권력을 장악한 서호진에게 소리치는 모습.
대통령이나 대통령으로서의 힘이 없는 이 기괴한 상황이 담긴 하나의 영상이 신성 그룹을 통해 세상에 퍼져나갔다.
당연히 이런 짓을 하면 국가 전복 모략 죄로 대번에 잡혀가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시민들의 분노가 더욱 빨랐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시한 시민들은 더 이상의 전후 관계는 관심 없다는 듯 몽둥이를 들고 거리로 나왔고 곧바로 임시 정부를 향해 맹진하며 과격시위를 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 선두에선, 공격대장으로서 신임을 쌓아가던 메세스 공략대의 대장도 있었다.
그리고.
처음은 아니지만, 정부의 무리수가 터지고 말았다.
총격 사상자가 다수 발생해버린 것이다.
국가 전복을 노린 간첩으로 판단.
사살조치.
말은 그럴듯할 뿐. 이것은 화약고에 불을 던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나설 거 없다니까? 지들끼리 알아서 다 정리해준다고.”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내가 중얼거렸다.
과연 이게 옳은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등을 떠밀렸다곤 해도. 이들은 스스로 스스로의 주권을 찾는 중일 테니까.
스스로 일어나고 힘쓸 줄 아는 이를 돕는 게 이쪽에서도 좋을 따름이다.
물론, 저들은 끝까지 알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윽고 나는 아공간에서 꺼낸 코로나 디스트로이어의 잔해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 망치를 들었다.
“자. 그럼, 귀찮은 정치문제는 다 알아서 할 테니, 어디 그림자 사냥준비나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