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4화
금지 주술이 금지 주술이라 불리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그게 외형적이던 그 내용물이던.
지금 사용한 주술 멸의 경우가 그러했다.
대상의 영혼까지 비틀어 분해한다.
조화를 기준으로 잡는 주술에 있어서 이 같은 주술은 그야말로 사도 그 자체!
하지만 나는 사용했다.
‘역시, 지구에서는 주술이 가장 효율이 좋네. 이 정도면 부담 없이 큰 힘을 끌어다 쓸 수 있겠어.’
세상마다 사용하는 힘에 효율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지구에는 마나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원래는 마나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흉신이 나타나고, 알프 온라인의 유저들이 각성하면서 마나가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차원의 틈 사이로 차원 균열 속에 존재하는 막대한 마나가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방금 전 누군가가 내게 쏜 탄환의 소리는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관심을 모조리 독차지하듯 나는 더욱더 힘을 가해 메세스를 분해시켜버렸다.
전신이 분해되면서도 놈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내 그림자를 먹어치우려는 행동이었다.
이에 나는 그에게 가까이 간 뒤 그대로 그의 몸을 걷어차 쓰러뜨리고 짓밟은 뒤 올라탔다.
놈의 몸에 그림자가 닿으면 빼앗긴다.
그림자는 즉 힘의 원천.
놈은 그림자를 통해 대상의 힘이나 존재를 흡수하는 흉신이었다.
당연히 이 사실을 설정으로라도 알고 있는 각성자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의 눈에 나는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 말이다.
힘의 격차를 알고 있어도 불안함은 쉬이 가지 않는 것이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 돌발행동에 가장 기뻐한 것은 흉신, 메세스였다.
[크륵…… 큭…… 네놈은 실수한 것이다. 네놈의 그림자가 내게 닿았…… 아…… 아니?!]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지 녀석의 안광이 거칠게 흔들렸다.
“넌 그림자를 통해 힘을 빼앗아 간다고 했지? 그럼 내가 주는 이걸 가져가 봐라.”
나는 녀석이 내 몸에 간섭하는 부분에 내 몸에 담아둔 한가지 힘을 보냈다.
심연의 공주.
베르샤의 힘.
압도적인 저주를 담은 힘이지만 동시에 본인에게도 어마어마한 저주를 거는 힘의 코어였다.
유일하게 내가 심연의 공주들에게서 빼앗을 수 있었던 힘이며. 지금도 흐름 거부의 저주가 없으면 내 육신이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힘이기도 했다.
이쯤 되면…….
베르샤의 저주. 생각보다 굉장히 위험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큭?! 자…… 잠깐!? 이게 무슨! 크아아아아아!!!]
효과는 바로 드러났다.
닥치는 대로 힘을 흡수하고 강해지는 건 좋은데. 독이 서린 힘까지 받아들여 중화할 정도로 뛰어난 개체는 아닐 테니까.
애초에 그게 가능했다면.
메세스의 서열이 고작 하위서열에 머물러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녀석의 힘은 언 듯 보면 뛰어나 보이지만 반푼이라는 소리였다.
이윽고 녀석의 육신이 모조리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녀석이 사라진 자리에서…….
“세상에, 드랍 아이템이 떨어졌어!”
몬스터가 죽으면서 떨어뜨리는 드랍 아이템이 현실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기본적으로 몬스터가 죽으면 그 시체를 가공하는 일은 있어도 저렇게 보상이다라는 식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내 손에 죽은 메세스는 아이템을 떨어뜨렸다.
붉은 구슬 하나와 시커먼 넝마 조각, 그리고 물음표가 새겨진 상자였다.
그게 내가 죽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흉신의 특수한 조건 때문인지.
그딴 건 상관없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붉은 빛을 지닌 구슬을 손에 쥐었다.
삐릭!
[메세스의 코어를 흡수하시겠습니까.]
[넬타리드의 가호가 적용되어 흉신 메세스의 그림자 포식이 프리아의 미친개 데이비 올 라운에게 양도됩니다.]
“…….”
그림자 포식?
메세스의 힘이다. 이거잖아.
동시에 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새로운 힘은 언제나 환영이야.
물론 지금 흡수하진 않을 테지만.
이후 나는 넝마 조각에도 손을 올려다보았다.
삐릭!
[그림자 포식자의 육신을 구성하던 망토, 스산한 기분이 감돈다. 본래 무언가를 덮는 용도로 사용했었으나 이제는 일부만이 남았다.]
메세스가 덮어쓰고 있던 넝마 조각은 아마 흉신 굼다의 소재나 레오라의 소재처럼 여러 가지 물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흉신의 소재는 현재 내가 가공하기보단 나와 계약을 맺은 노예들을 부릴 필요가 있었다.
포도맛캣타워와 마가 한유나 두 사람 말이다.
이후 마지막으로 남은 것.
물음표가 그려진 상자를 집어본다.
삐릭!
[메세스가 떨어뜨린 정체불명의 상자. 상자에서 느껴지는 힘은 고작 하위 흉신이 감당할 수준의 힘이 아니다.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나 조건만 갖춰진다면 계속해서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 듯 보인다.]
티끌만큼 남은 페르세르크의 심연의 권능으로 볼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물론 본래대로라면 이렇게 보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두 신이 현재 물심양면으로 내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티끌만큼 남아 남의 속내도 읽지 못하는 내가 이렇게 물건의 용도를 알아내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누군가는 탐욕을, 누군가는 궁금증을, 누군가는 전율을.
침묵한 채 내가 메세스를 압살해버리는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은 내가 그것들을 모조리 챙기고 나서야 반응했다.
“그림자가…… 그림자가 돌아왔어!! 이…… 이겼다…… 이겼다!!!!”
각성자 중 일부는 이미 놈에게 존재의 그림자를 빼앗겼었던 모양이었다.
메세스는 힘과 존재를 빼앗는다. 그런데 힘이 아닌 존재만 빼앗았다는 건, 윤태강이 불러들인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안일한 새끼들.
그때였다.
쉬이이잉!! 쿵!!
하늘 저편에서 누군가가 빠르게 날아오더니 내 앞에 멋들어지게 내려선다.
제 몸보다 큰 체격의 사내를 한 손에 들고는 당당하게 멋을 부리는 륀느였다.
“륀느. 수소에게 배운 슈퍼 히어로 랜딩을 높게 평가!”
수소? 남매 중 동생이었던 수소감귤맛스타?
어디서 또 이상한 거 주워들은 건지.
나는 륀느의 손에 뒷덜미를 잡힌 채 기절한 사내를 보고 눈을 감았다.
육군 사령관 서호진.
바로 그였다.
“저 사람은?!”
의문을 표하는 그를 보며 나는 가볍게 워터볼 마법을 사용한 뒤 그에게 부어버렸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사방에서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조용히 침묵한 채 그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쓰읍…… 쿨럭! 쿨럭쿨럭!”
그제야 내가 부어버린 물을 마시고 기침을 토해낸 그가 일어났고 곧이어 륀느를 보고 귀신을 본 양 기겁했다.
“흐아악!!”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 물음에 그녀가 당당하게 빈약한 가슴을 폈다.
그리고는 무표정이지만 자신감이 가득 찬 기색을 내비치더니 눈동자에 이채를 띠었다.
동시에 그녀의 눈에서 빛이 쏟아져 나와 빔프로젝터마냥 영상을 투과했다.
영상은 길지 않았다.
차를 타고 도주하는 서호진과.
그런 그의 앞에 맨몸으로 나타나 맨손으로 차량의 보닛을 내리찍어 차량을 반파시켜버린 륀느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륀느, 새로운 촬영 기술을 진화. 이것을 손해 보지 않는 장사라 명시.”
그녀의 코어 심장인 기계장치의 신(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한번 진화할 때마다 텀이 있다.
그런데 이 멍청한 녀석이 그 소중한 진화를 고작 촬영기법 진화에 사용했다는 것인가.
애초에 눈으로 빔프로젝터를 쏴 재끼는 것도 쓸데없는 낭비였다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후우…… 그래 나중에 보자.”
“데이비 님. 륀느의 공로를 높게 평가해?”
“낮게 평가.”
내 말에 륀느의 몸이 쩍 하고 굳어버렸다.
물론 녀석과 장난치는 건 잠깐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륀느의 생각지도 못한 엉뚱함에 피식 웃어버린 사람도 있고 륀느의 귀여운 모습에 푹 빠진 사람도 있었다.
“우와앙! 이거 홍다니! 홍다니가 가질래!”
그때 내 허리춤에 메어져 있던 홍단이가 빛을 내뿜으며 현신화 하더니 메세스가 떨어뜨렸던 넝마를 냉큼 주워 덮어 써버렸다.
조각만 남았지만, 녀석의 크기가 워낙에 컸던 탓에 홍단이의 몸을 모두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우웅…… 아…… 아무것도 안 보여!”
넝마를 뒤집어쓰고 비틀거리는 그 모습에 몇몇 여성 각성자들이 얼굴을 붉혔다.
“꺅! 귀여워!”
버둥거리던 녀석이 곧이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다리에 포옥 안기며 칭얼거렸다.
“우웅…… 아빠아…… 홍다니 아무것도 안 보여!”
“하하하하!”
아이의 애교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 나는 넝마를 걷어 들인 뒤 홍단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빠가 좀 바빠서 그러니까 잠시 륀느와 놀고 있을래?”
“네에.”
고개를 주억거린 녀석이 륀느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그러자 륀느가 파랗게 질린 듯 물러났다.
“뤼…… 륀느 현재 체력이 매우 저조! 놀아주기엔 만전의 준비를…….”
“링느!”
그대로 륀느에게 안겨들 듯 양손을 뻗어 보인 홍단이의 모습에 륀느가 움찔거렸다.
륀느가 선 듯 녀석을 안아주지 않자 홍단이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에 눈물기가 어렸다.
“흑…… 흐흑…… 흑…….”
급기야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홍단이로 인해 주변의 시선이 몰리자 륀느가 당황한 듯 주춤거렸다.
“호…… 홍단이 륀느가 놀아줄 것을 약속! 이것을 높게 평가!”
어쩔 줄 몰라 홍단이를 안아 들고 둥기둥기 하는 모습에 사람들의 표정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조막만 한 작고 귀여운 소녀와 그런 소녀를 안고 어르고 달래는 륀느의 모습에 훈훈함을 느낀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를 악물고 나를 바라보는 서호진을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네놈…… 네놈 짓이었구나. 드디어 더러운 본색을 드러냈어.”
“어허, 쓸데없는 여론몰이 하지 말고, 우리 깔끔하게 끝내야지, 안 그래?”
한번은 실수로 용납할 수 있다.
메가로드리아의 모습을 보고 겁을 먹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릴 수도 있다.
이해해주마.
하지만.
이번엔 선을 좀 세게 넘었다.
“당신이 내가 데려온 환수에게 공격을 퍼부은 건 백번 양보해 넘어가 줄 수 있어. 그래. 국민을 위해서 그랬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지.”
“…….”
“물론, 당신 입장에선 국민이 아니라 본인의 권력이 유지되는 이 나라를 유지하고 싶은 거겠지만.”
“무슨 헛소리를…….”
“그런데 이번엔 좀 도가 지나쳤지? 만약, 거기서 당신이 쏜 총알에 내게 문제가 생겼다면.”
그렇게 말한 내가 물었다.
“만에 하나라도 내가 잘못되었을 때 생길 피해를 당신은 생각이나 했나?”
내 물음에 사람들은 그제야 모든 것을 이해한 듯 보였다.
갑작스런 총소리.
그게 누가 쏜 것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인제 와서야 생각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뭐야. 뭔데. x발 우리 지금 다 뒤지라고 그딴 짓을 한 거야?”
“그래놓고 속으면 안 돼? 저 개자식을 그냥!!”
달려들려는 사내를 여기저기서 제지한다.
그제야 서호진은 이 사태가 더 이상 밀려날 곳도 없이 밀려났다는 걸 깨닫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이 우둔한 새끼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이 나라가 왜 오래전 해외 세력에 식민지배를 당했는지 잊었나!! 이딴 위기를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침묵이 감돈다.
“저자가 당신들을 도우니까 별문제가 없어 보이나?! 당장 틈만 보이면 이 나라에 파고 들어와 이 나라를 멋대로 쥐고 흔들 것이다! 그렇게 되고 나면 남은 건 노예 같은 생활뿐이겠지!”
그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틀렸소.”
그때 내 뒤에서 한 남성이 걸어 나왔다.
“무슨?!”
“이 나라가 식민지배 당했던 이유는 외세의 침략도 있지만. 그때까지도 정신 못 차리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며 권력 싸움, 비리를 저지르던 당신 같은 인간 때문이겠지.”
그렇게 말한 대통령이 고개를 돌렸다.
“대…… 대통령!!”
“다 끝났습니다. 당신의 군사집권은 끝이고 나는 더 이상 이 나라가 과거의 빛을 잃고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던 군사정권 시절로 돌아가는 꼴을 절대 지켜보지 않을 겁니다.”
똑똑한 양반이다.
저기서 저렇게 한마디 한 것으로 사람들의 여론을 모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이윽고 몇몇 인물이 다가와 서호진을 잡아 수갑을 채우고 연행했다.
“국민 여러분. 다 끝났습니다. 비록 이번 사태가 불미스럽게 벌어졌다곤 하지만 반드시 약속드리겠습니다. 제가 비록 못난 대통령이라도…… 당신들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저는 이 나라에 뿌리내려버린 잘못된 상황을 반드시 바로잡고 국민 여러분의 자유를 다시금 보장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한마디가 가져온 여파는 제법 거대했다.
그런 그의 정치성 섞인 행보를 막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건드리지 않았다.
어차피 이 나라는 내 나라가 아니니까.
그뿐이었다.
오히려 내 관심을 독차지하는 건 정치문제가 아니라 메세스가 떨어뜨린 상자였다.
그런데 이거…….
보면 볼수록…… 랜덤 상자 같단 말이지?
그…… 과금해서 고급아이템을 뽑아내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