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5화
서호진은 구속되었다.
죄명은 간단했다. 살인 미수죄.
그것도 한둘이 아니고 수많은 희생을 치를 뻔했으니 제대로 먹히기만 하면 그는 끝장이라 봐도 무방했다.
물론, 목숨을 붙이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드니 사고를 쳐줬으면 싶은 마음이지만 말이다.
그는 그래도 제법 영리한 사내였다.
괜히 난동을 부려 일을 불리하게 돌리기보다 자신의 세력과 힘을 믿고 한발 물러나는 선택을 내린 것이다.
그는 현재 이 나라에서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하며 알게 모르게 과거의 군사정권시절을 재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 탓에 아직 이 나라엔 대통령보다 그를 따르는 무리가 제법 많았고 이 상황에 와서도 연신 그의 구속은 잘못되었다며 연일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물론 그와 관계없이 나는 느긋하게 한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 인간이 다시 날뛰어주었으면 싶거든.”
내 말에 륀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문, 데이비 님. 륀느가 그를 제압했을 경우 그를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게 만들 수 있었다고 판단.”
“그렇지.”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표해.”
“그건 말이야.”
이 나라가 왕정이 아닌 민주주의, 그리고, 인터넷이 발달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내 설명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었다.
“간단한 이치야. 그를 죽이지 않고 자비를 베풀었잖아.”
내 미소에 륀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 님의 성정, 륀느의 빅데이터에 의하면 이 경우 데이비 님은 높은 확률로 대상의 모근을 소멸시키거나 죽이는 쪽을 택한다고 판단.”
“그래? 내가 그냥 살려놨을 거 같아?”
내 물음에 녀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륀느의 감지에는 그에게서 어떤 변화도 감지할 수 없었다 판단. 윤태강과 같은 경우와는 명백히 다르다고 분석해.”
“여론몰이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 그놈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면 그때…….”
죽이면 돼.
내 미소에 륀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된다.
* * *
“그 잠깐 사이에 참 많은 사고를 치셨네요.”
나를 향해 힘없이 중얼거리는 현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메세스의 공략 이후 놈이 떨어뜨린 물건을 가지고 돌아온 나는 다시금 현아와 접촉하여 그녀가 사는 곳에 잠시 머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는 현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티오니스에서 일루미나티를 통해 구해냈던 두 남매.
산소와 수소.
그리고 내가 노예계약을 체결한 마가와 포도맛캣타워까지.
그들은 나를 보며 많은 혼란을 느낀 듯 보였다.
물론 산소와 수소 남매는 이미 수차례 나의 기행을 봐온 바 있기에 이번 사태보다는 내가 생각보다 현아와 가깝다는 사실에 놀란 듯 보였지만 말이다.
대통령의 경우 나를 국빈의 위치에 놓고 정치적으로 좀더 이점을 취하고 싶어 했지만, 과욕은 화를 부른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어떤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니. 서호진이 구속된 지금 그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테니 말이다.
그녀는 서호진의 압박으로 그룹이 감사를 받은 탓에 상당히 스트레스가 심했던 모양이었다.
“잠을 못 잤나? 피부가 푸석푸석하다.”
“누구 때문인데요.”
“영양상태도 엉망이네.”
그렇게 말한 나는 그녀에게 아공간에서 꺼낸 작은 병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뭔…… 윽! 이거 무슨 냄새에요?”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퀴퀴한 냄새가 섞인 희고 끈적이는 액체를 보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이거 막 그, 정…….”
딱!!
물론, 더 이상 말하기 전에 내 딱밤이 그녀를 제지했지만 말이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예전에 들린 곳에서 특이하게 생긴 나방의 머리통을 따고 체액을 뽑아 채취해놓은 거다. 내 쪽에 괴식 전문가가 있어서 그걸 이용해서 재미난 걸 만들었더라고.”
유리아 헬리샤나는 괴식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그런 그녀가 환장하는 것은 맛이 좋은 것. 그리고, 몸에 좋은 것이다.
이번 것의 경우는 명백히 후자에 가까웠다.
애초에 맛이라곤 쥐뿔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전에서 파는 피로 해소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마셔 효과는 좋아.”
“윽…… 이거 마시기 싫은데요…… 대체 뭐로 만든 거예요?”
“그거, 이만한 나방의 머리통을 뽑아서 추출한 체액을 정제…….”
“꺅!! 안 먹어!!”
비명을 지르며 포션 병을 던져버리는 그녀 때문에 내가 염동력을 사용해 포션 병이 벽에 처박히기 전 잡아냈다.
“이 귀한걸 깨 먹으려 드네. 미쳤냐?”
“대체 그걸 어떻게 먹으라는 거에요!?”
“요즘 오징어는 입맛도 가리나?”
“뭐…… 뭐 오징어?! 세발낙지같이 생긴 게 말본새 좀 봐?!”
왁왁 대드는 그 모습에 한참 동안 멍하니 있던 마가, 한유나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저기 죄송한데요.”
가만히 있던 그녀는 복잡한 얼굴로 물었다.
“인터넷에 떠돌던 말…… 전부 사실이에요?”
그녀가 묻는 것은 나의 존재였다.
“티오니스가 실존하는 세상이었고…… 당신은 실존하는 사람이라고.”
“그래. 너희가 알프 온라인을 통해 차원을 넘어 티오니스로 온 거다.”
“그럼…….”
그제야 이해가 된 듯 포도맛캣타워와 한유나가 침묵했다.
상위 NPC답지 않은 말투나 행동거지. 가치관.
그리고 지금 사태를 종합하면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세상에…….”
“그럼요…… 알프 온라인을 파괴한 건…….”
“그건 내가 아냐.”
“네?”
내 말에 한유나와 포도맛캣타워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분명 영상에선…….”
“다시 생각해봐.”
그렇게 말하며 나는 그들에게 감도는 기류를 신력으로 걷어내 버렸다.
지구의 인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알프 온라인의 파괴자라고 받아들인 이유.
영상에서 보면 나와 이클립스가 충돌하면서 알프 온라인이 아작난건 사실이다.
하지만 영상 어디에서도 내가 직접 알프 온라인을 부순 장면은 없었다.
그 말인 즉. 단편적인 것으로 사실처럼 믿게 만드는 암시가 가해졌다는 소리였다.
“너희. 그 정보를 인터넷에서 들었다고 했나?”
“형의 입에서 그 말을 들으니 좀 괴리감이 들긴 하지만 맞아요.”
“은인께서 알프 온라인을 박살 냈다고요. 지환이와 저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암시야. 디지털 매체를 통한 암시.”
그 근본에는 아마 나를 몰아넣으려는 흉신이든 심연의 계략이 있을 것이다.
놈들도 바보가 아닌 만큼 나와 싸워서 이기려면 그만큼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런 꼼수를 부리는 것일 테고.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 느끼네요.”
“암시를 풀었거든. 그보다 포도야.”
“아…… 여기선 김석현이에요.”
“그래 포도야.”
내 미소에 녀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기왕이면 상큼한 청포도로 부탁드립니다.”
“그 조동아리는 좀 닥쳐라 포도야.”
손으로 부리 모양을 만들어 쩝쩝하는 시늉을 보여준다.
“와…… 저 형 성격은 그대로네…….”
“아. 은인. 저도 조금 주실 수 있나요?”
그때 내가 들고 있던 포션 병을 보던 산소가 배시시 웃으며 말하자 나는 망설임 없이 건네주었다.
“양이야 많으니까.”
“고마워요.”
옅게 웃으며 산소가 조심스레 병마개를 열었다.
“지…… 지아야! 그거 정말…… 마시려고?”
“은인이 만든 물건은 믿을 수 있거든. 그리고 얼마 전부터 불면증이 좀 있어서…….”
“마셔! 불면증이라니 어서 마셔!”
대뜸 재촉하는 한유나의 행동에 산소와 포도맛캣타워 김석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윽고 조심스레 코를 쥐고 약을 한 모금 마신 그녀가 꿀꺽 삼킨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이 한껏 편해지기 시작했다.
“하아…… 역시 대단해.”
놀랍다는 표정으로 병을 돌려주는 그녀의 모습에 내가 물었다.
“효과는?”
“엄청나네요. 피로가 싹 사라졌어요.”
그 말에 한유나와 현아도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마.”
“형.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실건데요? 여기서 계속 머무르실 거에요?”
“티오니스 입장에서도 이곳은 중요하니까. 당분간 이 땅에 자리를 좀 잡아둘 거다.”
“계속 여기 체류하실 거면…… 제 집에서 지내도 될…….”
“아니, 티오니스에서 가져올 것도 있고. 전초기지로 활용하려면 물자도 챙겨와야 하거든.”
그렇게 말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징어 꼴을 보아하니 잘 있는 것 같아 다행이네.”
“또 오징어!!”
“잠시 티오니스로 돌아가야겠다.”
“아. 저희도 갈 수 있나요?”
“굳이 와야 하나?”
“거기 물건을 좀 가져올 수 있나 해서요.”
알프 온라인은 사라져 산수와 수소의 아바타는 본인에게 적용되었지만 아이템 같은 것은 가져오지 못했다.
하지만 하인스 영지에 녀석들이 두고 온 아이템이 남아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넘어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가능성 있는데?
나는 흥미가 생겨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나는 케인을 따로 호출했고 곧바로 현아가 살고 있는 집의 마당에 케인을 불렀다.
그러자 케인뿐만 아니라 새하얀 빛에 하늘거리는 의상을 입은 발키리아가 또 한 명 나타났다.
“다녀왔습니다. 제가 말했던 발키리아 동족입니다.”
케인의 소개에 고개를 돌려보자 뚱한 표정의 소녀가 나를 올려다본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그녀에 대해선 크게 관심이 없는 입장이기에 케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쟤 표정이 원래 저러냐?”
“다 들립니다.”
냉담한 어조로 말한다.
애초에 들리라고 목소리도 줄이지 않고 귓속말을 했으니까.
들릴 수밖에.
“데이비 올 라운이다. 그쪽은?”
“신의 종자로서 신을 모시는 발키리아일 뿐 이름은 없습니다.”
“식별 개체 이름은 프레이아라고 합니다. 사실 동족이 생각보다 많이 당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지구에서 암약하고 있었습니다만…… 흉신, 그리고 일루미나티와의 싸움에서 많이 희생되었더군요.”
“케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앞으로 한배를 타고 가야 할 중요한 조력자에게 굳이 그런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나요?”
“신의 전령이자 전사인 우리가 고작 인간의 손을 빌려야 한다는 게 웃길 뿐이야.”
프레이아의 냉담한 발언에 나는 개 무시로 일관했다.
“성깔하고는.”
“다 들립니다.”
혼잣말은 별개다.
“티오니스로 갈 거야. 여기에 천막 깔고 살순 없으니까 장기간 체류하며 지낼 수 있는 배가 필요해.”
배경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어딘가로 갈 때마다 비행기를 탈순 없으니 적어도 그에 준하는 것을 가져올 필요가 있었다.
“흐음…… 저 혼자로썬 힘들겠지만, 프레이아는 차원이동에 관해선 상당한 지식과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아마 당신이 가진 열쇠에 서린 넬타리드 님의 권능을 잘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말에 프레이아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네.”
“거 마음에 안 드는 닭 날개가 자꾸 조잘거리는데 차원 이동하는데 혓바닥은 필요 없지 않나?”
내 빈정거림에 그녀의 눈이 꿈틀거렸다.
“인간. 죽고 싶습니까?”
“발키리아, 뒤지고 싶습니까?
한마디를 안 지고 서로를 바라본다.
“역시 마음에 안 듭니다.”
“네가 능력만 없었다면 벌써 혓바닥을 뽑던지 머리에 태양을 심어줬을 거다.
내 주특기인 모근 삭제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
나와 프레이아의 싸움을 멍하니 지켜보던 이들은 곧이어 내가 손짓하자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마법진 위로 올라온 것은 나와 륀느, 케인, 프레이아. 그리고 현아를 제외한 지구의 멤버들이었다.
“며칠 정도 자리를 비울 거야. 그동안 문제가 생기면 이걸 사용해.”
나는 아공간에서 꺼낸 문양이 그려진 인챈트 스크롤을 건넸다.
“부적이에요?”
“널 헤치는 놈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마법 스크롤.”
“쓸 일이 없길 바라야겠네요.”
그렇게 말하는 이를 뒤로한 채 내가 프레이아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뭐해 닭둘기. 빨리 문 열어.”
“빌어먹을 인간!”
나를 향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친 프레이아가 긴 금발을 쓸어넘겼다.
그리고는 마음에 안 드는 기분을 억누르며 손에 쥐고 있던 날개가 장식된 지팡이를 지면에 두드렸다.
우웅!!!
프레이아의 힘이 발현되기 시작하자 나는 그 힘을 증폭시키기 위해 차원 열쇠를 사용했다.
차원 열쇠도 여럿을 옮길 순 있지만, 광범위 이동에는 발키리아의 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츠츠츳…….
이윽고 백색의 빛이 마법진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던 포도와 마가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리고. 그들은 순식간에 주변의 광경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좌표는 하인스 영지의 외곽.
사람이 살지 않는 빈 땅으로 현재 내가 연구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지였다.
순식간에 차원이 넘어갔다.
지구의 차원의 벽은 매우 두꺼웠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굉장히 얇아진 것 같은 모양새였다.
이윽고 빛이 사라지며 모두가 눈을 떴다.
그리고. 그들이 이 티오니스 땅에 넘어와 가장 먼저 본 것은…….
“세상에…… 저게 뭐야?”
“저…… 저런 게 이곳에 있었나?”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무언가였다.
오랫동안 내가 준비해온 그것.
에디손 기술고문과 대륙 6대 미녀 중 하나이며 에오니샤와 함께 천재적인 기술재능을 지닌 티아라를 갈아 넣어 만든 그것이 드디어 완성된 듯 보였다.
저걸 만들기 위해 유르기안 대륙에서 소재를 긁어오고 마계로 향해 권능까지 탈환해오지 않았던가.
취미생활의 정점.
성공한 매니아의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