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7화
케인이 데려온 동족 발키리아인 프레이아는 놀라울 정도로 차원 이동에 탁월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무리하면 가능하다며 수백 미터에 달하는 비공정 전체를 옮겨버리는 기염을 토해냈으니 말이다.
차원의 틈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다른 차원과 다름없이 옮겨진다는 사실에 놀랄 것도 없었다.
에이리아와 페르세르크를 데리고 다시금 지구로 넘어온다.
당연히 이 거대한 비공정을 전체적으로 조율하고 가동할 인원은 필요했다.
그 인원을 골렘으로 대처할 수는 없는 노릇.
그 결과 비공정에는 현재 에디손 기술고문과 얼떨결에 이 비공정의 함장이 되어버린 티아라가 승선했고 그 외에 그들을 따라 작업하던 황색바위 부족 드워프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 수는 다잡아야 10명 남짓이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한 숫자였다.
페르세르크와 에이리아를 데리고 이곳으로 넘어온 직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창공 까마득히 높은 공간에 모습을 드러낸 비공정은 분명히 현아의 주택 상공이었다.
다만 그 높이가 너무 높다 보니 자연스레 아래로 보이는 풍경이 넓어지고 탐지범위도 넓어진다.
이곳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비공정의 첫 시범운행을 위해 탐지 마법 아티펙트 장치를 가동하기가 무섭게 보이는 것은…….
대규모 마나의 파장.
그 파장이 출력되는 것을 지켜본 나는 이것이 메세스의 출현 때와 비슷한 양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티아라, 저거 좀 확대해볼래?”
내 말에 티아라는 자랑스레 가슴을 펴며 파장을 마치 3D 프린터처럼 출력해 보여주는 장비를 가동시킨다.
그러자 산 모양의 문양이 빠르게 나타나더니 그곳에 바글거리는 무언가가 빠르게 이동하는 게 보였다.
“몬스터네.”
“몬스터…….”
내 중얼거림에 곁에서 상황을 보던 페르세르크가 쓴 표정을 지었다.
“평화롭던 이곳에 어찌 마물이 나타난 겐지.”
“평화는 얼어 죽을. 여긴 인간이 몬스터야.”
티오니스도 별반 다를 바 없긴 하지만. 지구라고 깨끗하진 않다.
뭐 어찌 되었건.
“심각한 문제 아닌가요? 분명 이쪽으로 오는 거 같은데. 여기 지금 도시 상공이잖아요!”
다급한 산소의 외침에 나는 티아라를 바라보았다.
“내가 전에 시험했던 그거. 아직 있어?”
“보강해서 장비해뒀어요. 시험테스트 해보실래요?”
티아라가 붉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해보자. 고도 낮춰.”
그 말에 티아라가 빙그레 웃으며 곁에 있던 레버를 당겼다.
순간,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극도의 즐거움이었다.
“좀 흔들려요!”
쿠구구구구구궁!!!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대한 비공정이 거칠게 선회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도는 그리 빠른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하늘을 나는 비공정인 만큼 빠를 수밖에 없다.
순식간에 선회하여 뱃머리를 돌리고 지상으로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자 에이리아가 겁을 먹은 듯 반사적으로 내 팔의 옷깃을 꼭 잡았다.
파르르 떨리는 귀가 귀여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보고는 안도한 듯 미소지었다.
“자 그럼…….”
이윽고 몬스터가 시야로도 보일 위치까지 비공정의 고도를 낮춘 티아라는 저 멀리 몬스터가 몰려오는 것을 보며 조작 버튼을 눌렀다.
철컹!!
동시에 무언가 큰 소리가 나며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뒤섞인 광선이 그들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인간에겐 갑작스런 정체 모를 비공정이.
몬스터에겐 재앙이 시작되었다.
* * *
국내에선 난리가 났다.
또 한차례 거대한 충격.
갑자기 나타난 출신 불명의 거대한 비공정.
도저히 현대의 디자인과는 맞지 않는 조금 더 파고들면 차라리 영화나 소설에서나 볼법한 비공정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갑자기.
이런 것과 비슷한 경험은 몬스터의 출현으로 알고 있는 대통령은 혹여 이 비공정이 적대 세력의 공습 수단이 아닌가 생각했다.
몬스터는 몰라도 그들을 지휘하는 흉신은 엄연히 지능이 있는 개체.
즉. 인간은 전쟁을 하는 것이지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긴장했는데.
갑자기 비공정이 몬스터를 향해 광선을 때려 박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현대화기에 내성을 지닌 몬스터들은 겁도 없이 돌진해오다 그 광선에 노출되었고.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어떻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공대 출신인 대통령은 알고 있었다.
광선이라는 것이 고열의 에너지를 조사하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질량과 충격을 만들어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해낸 것이다.
그 정체 모를 비공정이.
아예 지형 채로 잿더미를 만들어버린 비공정이 혹여나 이쪽을 공격할까 노심초사하며 공군의 출격을 명한 그는 제발 교전이 없기를 바라며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두 번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의 생각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고.
곧 비공정은 공격 따윈 관심 없다는 듯 전투기 조종사들을 유유히 따돌리며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자리를 잡은 곳은 데이비 올 라운, 즉 티오니스 성자가 흑룡을 놔둔 속초시였다.
그제야 그 비공정이 어디서 온 건지 알게 된 대통령이었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그쯤 되니 생각이 미칠 수밖에 없다. 저 기술력.
너무 탐난다. 그 기술을 얻을 수 있다면…… 아니 조금만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게 될 것이고. 빼앗긴 영토도 다시 회복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대체 어떻게?
“날 잡아서 고급술을 대접하고 국가 간의 교류로써 무역이라도 제안해야 하나?”
이쪽은 이쪽의 뛰어난 전자제품 기술을, 그리고 저쪽은 저 어마어마한 비공정의 기술을.
데이비는 애초에 이것을 병기로 상정하고 만든 게 아니었지만, 대통령에게 있어서 이것은 티오니스의 최고 기술력이라고 생각했다.
김칫국 들이마시는 건 한순간이었다.
* * *
아스가르드의 시범운행은 완벽하게 성공으로 자리매김했다.
단 한방에 박살이 나버렸던 에너지 원자 과부하 장치는 나의 정보 주입 덕에 문제를 보완하여 안전하게 마나 광선을 속사하게 만들었다.
이런 물건, 어디 가서 못 구할 거다.
그야말로 현재 기술력을 아득히 넘은 기술의 집약체라는 소리였다.
애초에 이 비공정, 아스가르드는 내 시선에선 극도로 비효율적이다.
연금술사 스승이었던 이바가 존재했던 유르기안 대륙의 기술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면 이보다 더한 괴물을 만들어내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렇게 해서는 내 취미생활의 요지에 어긋난다.
난 병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뿐이니 말이다.
삽시간에 몬스터들을 소탕해버린 나는 뒤늦게 떠오르는 전투기들을 무시한 채 선체를 돌릴 것을 명했다.
애초에 이 비공정을 가지고 도시로 밀고 들어가는 짓을 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자리를 잡는 곳은 현재 몬스터에게 점령당했었으나 이제는 메가로드리아의 한 끼 식사가 되어 안전해진 도시. 속초시였다.
당연히 전자통신 장비가 아닌 대부분 마법으로 가동되는 만큼 저들의 교신시도는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즉, 전투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나는 비공정의 세 번째 기능을 시도했다.
이만큼 거대한 비공정이 은폐기능이 없으면 곤란하니까.
용도 자체는 간단했다.
하루 동안 충전하는 식으로 배터리를 만든 다음 에너지를 막대하게 사용하여 비공정 전체에 거대한 빛 반사 장막을 전개하는 것뿐이었다.
열 감지 같은 것에는 금방 걸릴 테지만.
정말로 위험하다면 비공정이 아니라 내 힘을 쓰면 되는 문제.
조금 흐물거리긴 해도 제대로 찾아내기란 쉽지 않으리라.
[계약자. 그 깡통은 뭐냐.]
정확히는 금속과 나무가 적절하게 뒤섞인 비공정이다.
“매번 널 타고 이동하니 미안해서. 새로운 걸 좀 만들어봤다.”
[흥! 멋대로 하라지!]
왜 화를 내는 건지.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속초시를 장악하고 당당하게 잠을 청하고 있는 저 뻔뻔한 흑룡을 지나쳐 이 비공정을 착륙시킬 장소를 찾았다.
그런 내 의도를 눈치챈 것일까.
가만히 있던 메가로드리아가 몸을 일으키더니 숨을 크게 들이켰다.
콰아아앙!!!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론가 브레스를 쏘아 날렸고.
“저 무식한 새끼…….”
도시의 일부를 먼지도 남기지 않고 날려버렸다.
[흥 저기 내려앉든지 마음대로 해라!]
삐진 게 분명한데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물론 메가로드리아의 브레스 덕분에 비공정이 착륙할 평지를 확보하는 데엔 성공한 티아라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비공정을 착륙시켰다.
“그나저나…… 여긴 참 난장판이네요. 세상에 이런 곳에 사람이 살 수가 있나요?”
“몬스터 습격으로 이 꼴이 난 거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역시 다른 세상 문물인가 봐요. 신기하네요.”
그 눈에 서린 열망을 본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참고는 해도 배우려 들지 마.”
각 세계는 엄연히 발전 레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지구는 과학이. 티오니스는 마법이.
그 발전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티오니스는 몇천 년이 지나도 화약 무기가 거의 나오지 않았고, 지구는 마법의 존재를 그저 공상으로 치부했다.
얼마든지 파고들 수 있는데 본능적으로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가요.”
아쉬워하는 티아라를 두고 비공정의 갑판으로 올라간 나는 곧장 메가로드리아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계약자.]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을 보고 나는 산소와 수소, 그리고 포도와 마가 등을 가리켰다.
“갑시다. 택시기사 양반.”
비공정이 있어도 이놈은 언제고 탈것이다.
* * *
지구의 각국은 이번에 한국에서 있었던 일에 시선을 모았다.
갑자기 나타난 티오니스 성자.
그리고 그가 하기 시작한 놀라운 일들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게임 내에서의 능력을 모두 끌어다 쓰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단신으로 미군단을 몇 개나 박살 내버린 상위 괴물을 아무 피해 없이 제압한 그의 존재는 사실 위험한 인물이라 판단이 되어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와 협약할 수만 있다면
차후 국제 정세에서 압도적인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그 말인 즉.
그와 가깝게 지내야 한다는 소리였다.
미 국방부에서는 절대 안 된다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일부에서는 이야기가 다르게 나왔다.
사람을 보내 그와 접촉을 해보자고 말이다.
그건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등. 수많은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동시에. 또 다른 곳에서도 그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곳에 자리를 튼 흉신의 존재.
아직 상위 흉신들은 모두 현신하지 못했지만, 하위 흉신들 중 이곳에 먼저 온 이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 위해 소환 공격을 감행했던 메세스가 손도 쓰지 못하고 소멸해버렸으니 말이다.
그들은 데이비라는 인간의 위험성에 대해 극도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더욱더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면.
같은 시각 데이비는 메세스에게서 뜯어낸 넝마를 포도와 마가에게 던져주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흉신의 소재다. 너희도 각성자지? 제작능력 각성자들은 그 능력의 대부분을 가져왔다던데, 그럼 만들어.”
“어떻게요?”
“그건 지금부터 너희들이 생각해야겠지?”
또다시 기술자들을 갈아 넣기 시작했다.
물론 이번엔 그리 쉽게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현재 데이비의 관심은 국제 시선이나 한국의 대통령과의 약속 같은 건 안중에도 있지 않았다.
몬스터를 잡아 족침으로써 10번 개봉할 수 있게 된 물음표 박스와. 메세스의 소재인 넝마 조각.
그리고 붉은 구슬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