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2화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방송을 꺼버리기가 무섭게 나는 인상을 대뜸 찌푸렸다.
뭐? 데이비 올 라운 왕자의 흑역사?
이딴 물건이 실존할 리가 있나.
애초에 사진에 찍힌 모습도 아주 잠깐이었다.
그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인 적도 없고.
말없이 내 흑역사가 담긴 사진을 보던 나는 화염을 피워올려 그것을 불태워버린 뒤 걸음을 옮겼다.
[계약자.]
“성질 죽이느라 고생했다. 메가로드리아. 이제 마음대로 날아다녀. 몬스터가 보이면 닥치는 대로 쳐 죽여버려.”
[흥!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셈이다.]
나름대로 힘 조절을 시킨 보람이 있었다.
방송을 통해 이미 내 이미지를 충분히 퍼뜨리는 데엔 성공했다.
앞으로 내가 활동하는 데에 있어서 많은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사람들은 악명이 자자한 존재가 소문과는 다르게 소탈한 모습. 그리고 의외의 모습을 보인다면 여론이 좋은 쪽으로 흐르는 것도 한순간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 사람 심리라는 건…….
“의외로 얄팍하니까.”
“자. 그럼. 방송도 꺼버렸으니 이제 우리 일을 해보자고.”
표정을 바꾸며 나는 폐허가 된 도시 내부로 들어갔다.
케임브리지.
아마 대학도시라고 한 것 같은데.
겉보기엔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을지도 모른다.
넓은 들판 하며 예쁜 건물들.
티오니스의 삶을 기준으로 둔다면 그리 신비할 것도 없는 건축양식이지만 여기선 지금까지 지구에서 느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 진원지는 정확히 대학 내부로 추정되는 한 연구 건물.
-크르라라라라라라!!!!
끔찍한 형태의 괴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마치 내가 점점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 놈들 봐라? 내가 들어가지 말았으면 하나?”
신창 롱기누스의 언월도 형태를 손에 쥔 채 나를 향해 다가오는 가지각색의 몬스터들을 무참히 베어냈다.
점점 난이도의 상승 수준이 높아진다.
처음엔 그저 이 땅의 각성자들도 처리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어느 정도 진입하고 나서는 현재의 각성자는커녕 알프 온라인 당시의 유저들 본래 스펙으로도 정신 차리면 훅 갈 정도로 위험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놈들은 처음과 다르게 마치 광기에 휩쓸린 것처럼 나를 향해 미친 듯이 덤벼들었다.
절대 진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돌진도 돌진이지만 마치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자폭이라도 하겠다는 듯 육탄돌격을 해왔다.
물론. 놈들이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냄새가 점점 심해지는데. 몬스터 저항은 더 거세지고.”
단순한 잭팟이 아니라는 건 분명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너 같은 놈까지 동원하는 게 쉽진 않을 테니까.”
이윽고 나는 건물을 맨손으로 잡아 부수며 비집고 나타난 거대한 외눈박이 괴물을 향해 스산하게 웃어 보였다.
기가스.
거대한 이족보행형의 육체에 비늘로 뒤덮인 괴물로, 외눈박이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 크기는 무려 최소 20미터에서 크게는 30미터까지 커지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것은 물론 끔찍할 정도로 강한 힘과 맷집으로 유명한 괴물이다.
이 괴물이 서식하는 위치는 내가 아는 한에서 단 한 곳밖에 없었다.
“내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지?”
빙그레 웃으며 나는 외눈을 껌뻑거리는 기가스를 향해 한발 두발 가볍게 내디뎠다.
콰아앙!!!
그리고.
놈이 내게 무언가 행동을 가하기도 전에 파고들었다.
보통 같으면 깜짝 놀라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놀랍게도 놈은 내 돌진에 자신의 맷집을 믿는지 그대로 반격을 가해왔다.
순식간에 거대한 손이 나를 향해 파고든다.
나를 잡아 그대로 쥐어 터뜨리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한 그 두터운 순을 본 나는 망설임 없이 롱기누스의 창 끝을 가볍게 진동시키며 비틀었다.
[팔라디아식 행성분열창]
[지각변동]
콰직…… 콰드드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까지 날아든 내가 놈을 지나쳐 그 등 뒤로 미끄러지듯 착륙했다.
기가스의 맷집은 소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로도 잘 잘리지 않는다.
기가스는 애초에 티오니스 대륙에서도 보기 힘든 심판급 몬스터라 기록에 남겨져 있다.
애초에 이 몬스터가 활동하던 시기는 라스트위스프 창시 시기.
즉 검신 하레스 때부터 다프네 시절 정도였다.
그렇게 희귀한 몬스터가 여기 죽치고 있는 것이다.
푸쉭!!!!
물론. 그래 봐야 놈들이 쓰고 버리는 패에 불과한 몬스터일 뿐이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굳어있는 놈의 몸을 보면 방금 전 내 공격이 큰 효과를 보지 못했을 것 같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거 둔해 빠져가지고.”
놈의 목 부분엔 이미 붉은 실선이 돋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머리로 인해 곧바로 튕겨 나가지 않았을 뿐, 놈의 머리통은 대번에 잘려나간 꼴이었다.
이윽고 서서히 놈의 거구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롱기누스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어낸 뒤 아공간에 수납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몬스터의 저항은 말그대로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의 진입을 막지 못했고.
이내 나는 거대한 대학 연구동 건물 내에서 느껴지는 냄새의 근원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
내 눈에 보인 것은 거대한 펜트리.
거대한 나무에 매달린 수백 수천의 인간이었고.
그들의 몸은 놀랍게도 몬스터로 변모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몬스터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다수의 몬스터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더 짜증스러운 점은 바로 이 끔찍한 몬스터 부화장에서 느껴지는 힘이 바로 데스 로드의 아티펙트에서 본 것과 동일하다는 점이었다.
“일루미나티, 너희가 하고 싶은 게 대체 뭐냐.”
그렇게 말한 내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곳에는 느긋한 미소를 짓고 있는 광기 어린 표정의 한 과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단하지 않나?”
그의 첫 마디는 바로 그것이었다.
“…….”
일루미나티가 이곳에 있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티오니스 대륙에 왔었던 총수 놈은 죽었고. 일루미나티의 세력 대부분이 괴멸되어 사라졌다.
“워워 기세 치우라고. 난 난폭한 걸 싫어하니까.”
양손을 들어 나를 제지하려는 듯 그가 이죽거렸다.
이에 나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기세를 서서히 거둬들이며 물었다.
“인간을 몬스터로 만들어서 니들이 얻는 게 뭔데.”
“흐음…… 유인원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인간과는 전문적인 견해를 나눌 생각이 없는데.”
그 말에 나는 침착하게 그와 거리를 유지하고 고개를 돌렸다.
“인간의 인격을 말살하고 영혼만 끌어내 그것을 몬스터와 융합시킨다. 어디서 몬스터가 그렇게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나 했더니 생산 공작이 따로 있었구만.”
“뭐. 네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야. 비록 실험에 실패한 것들이긴 하지만 제법 튼실한 전력을 되어주었거든.”
인간이 몬스터화한 것이라면. 이곳에 오는 길에 죽인 거대 몬스터 기가스는.
그 기가스는 대체 몇 명의 인간을 희생시켜 만든 것일까.
듣기로는 70억이 넘던 지구의 인구는 현재 20억 이상이 죽는 끔찍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20억.
그리 많은 수가 아닌 것 같지만 단순히 말해서 한국의 총인구가 고작 5천만 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양이 죽었다는 뜻과 일치한다.
자그마치 한국 같은 국가가 20개 이상 증발해버렸다는 뜻과 같으니까.
“대답을 해줄 생각도 없는 놈이 겁도 없이 여기에 나타난 건가?”
“흠흠, 너라는 인간에 대해선 나도 본 바가 있단 말이야, 사실 흥미가 좀 일었거든. 아, 내 이름은 타륭이지. 넌? 데이비 올 라운이지?”
자신을 타륭이라 소개한 이 광기 서린 과학자는 자신의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 지 계속해서 여유를 부렸다.
“인간의 혼과 몬스터의 혼, 그리고 육신의 상관관계 이건 내 일생일대의 연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결론만 말해. 너희 일루미나티는 대체 타 차원까지 넘어와서 뭘 하고 싶은 거야.”
“흐음. 궁금하다면 말 못 해줄 것도 없지. 나는 인류의 진화에 대해 연구하는 연구자란 말이지. 그리고 이곳에 있는 신의 유물은 그 과정을 완벽하게 만들어줄 최고의 소재일 테고.”
특이한 말투를 쓰며 그가 히죽거렸다.
그렇게 말한 그는 곧이어 손에서 단말기 같은 특이한 장비를 꺼내더니 무언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뜨며 즐거워했다.
“오오…… 아주 훌륭한 데이터야. 이 정도면 전체적인 작업에 큰 도움이 되겠어.”
그리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지금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거 너무 혼자만 즐거워 하는 거 아닌가?”
“음? 아직 있었나?”
느긋한 표정으로 묻는 그 행동에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를 향해 한 발 내디뎠다.
“음?”
콰지지직!!!!
그리고,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에게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언월도의 창날은 백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그에게 닿지 않고 허공에서 멈춰버렸다.
“이런. 그렇게 야만적으로 놀면 쓰나.”
낄낄거리며 그가 자신의 손목을 보여주었다.
“이게 보이냔 말이지. 이게 바로 기술의 집약체. 내 연구의 산물이네.”
“…….”
“운이 좋아 힘을 얻은 너 같은 애송이와 다르…….”
뭐? 운이 좋아?
콰지지지직!!
쩍!!
순간적으로 롱기누스의 몸체에 어마어마한 저항이 생겨났지만. 롱기누스는 다른 재질도 아닌 신의 금속으로 만든 무기라 할 수 있다.
단순한 내구성은 신검 그 이상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형태를 파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평을 지닌 것이 바로 롱기누스였다.
즉. 무리해서 공격하기엔 이놈만 한 게 없다는 소리였다.
자신의 팔이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는지 멍하니 나를 보던 그가 픽 웃었다.
“워워. 진정하라구. 네가 날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세상엔 어쩔 수 없…… 어?”
“거 말 빠른 건 좋은데 자기 상황은 좀 인지하는 게 좋지 않겠나?”
그제야 자신의 팔이 허전하며 알싸한 고통이 스멀스멀 몰려온다는 것을 깨달은 그였다.
물론 알싸한 고통은 곧 극심한 격통으로 바뀌었지만.
“카아아아아악!! 내…… 내 팔이?!”
바닥에 쓰러져 기괴한 소리를 내며 몸을 버둥거리는 그의 행동을 보며 나는 몬스터화 되고 있는 인간의 육신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살아있다.
하지만.
“되돌리긴 늦었네……”.
기적류를 사용한다면 아마 이 인간은 통째로 구워질 게 틀림없었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곧이어 바닥에 쓰러진 과학자 타륭의 몸을 짓밟고 물었다.
“이봐. 우리 게임을 하나 해볼까?”
“끄으…… 끄으으으! 어…… 어떻게?! 척력은 분명…….”
“게임이나 영화에서 보면 꼭 그런 거 하나 믿고 겁도 없이 나대는 과학자들이 있지?”
내 물음에 그가 굳은 듯 나를 바라본다.
“현실과 가상은 다르다 라는 말을 왜 모르나.”
“으히히히힉! 카악!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어떻게…… 어떻게…….”
물론 결과적으로 그가 무엇을 하려 했건 직접 들어봐야 큰 의미는 없었다.
말하기 싫다면 직접 들어보면 되는 일이니까.
“자, 네 선택은 딱 한 가지뿐이야.”
담담하게 말한 내가 그의 육신을 짓밟았다.
순간적으로 무형의 저항감이 있었지만 한번 부서져 내린 탓인지 이번엔 큰 저항 없이 그의 몸에 닿을 수 있었다.
“노…… 놀랍구만! 끄윽…… 키아아아악!”
“별거 없어. 너 같은 놈이 그런 장막 하나 믿고 까부는 거 같으니 그냥 과부하 시킨 것뿐이니까.”
그를 짓밟은 채 내가 천천히 물었다.
“다시 묻지. 너희 일루미나티가 대체 여기서 하려는 짓이 뭐지?”
“크흐…… 크흐흐…….”
광기까지 서린 그 웃음소리에서 나는 기묘한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연구, 오로지 연구뿐이지. 내가 이곳에 몸담은 이유 또한 제한 없는 연구가 목적이었으니까.”
피를 울컥울컥 토하며 그가 광기 어린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궁금한가? 그럼 탐구해보란 말이야. 우리 조직에 대해서.”
그 말과 함께 타륭의 육신이 부풀어 오른다.
광기에 미친놈은 자신의 몸에도 미친 짓을 한 모양이었다.
“오…… 오오오오!! 성공이구나! 성공이야! 이 밀도!! 이 구조!!! 드디어 우리의 연구가 성공한 것이다! 이로써 인류는 더더욱 높은 위치로…….”
기괴한 목소리를 내며 서서히 부풀기 시작하는 그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뱀파이어 페이스라는 놈이 있었는데 말이다.”
“음?”
어마어마한 근육질의 이족보행형 괴물이 되어가는 그를 향해 내가 말했다.
“내가 너희 변신시간을 왜 기다려줘?”
서걱.
그리고. 아직 단단해지지 못한 피부가 그대로 잘려나가며 그의 육신이 무너져 내렸다.
경악한 듯 무너지는 그를 심드렁하게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기세를 끌어올린다.
“아…… 안돼…… 안돼!! 그걸 부수면!!”
“여기 인간들에겐 미안하지만 고통받을 바에 깔끔하게 보내주는 게 더 나을 거다.”
“안돼!!! 그걸 부수면 안 된단 말이다!!”
죽어가는 타륭의 외침을 무시한 채 나는 양손에 마법을 끌어모았다.
신력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반신에 이른 영혼의 격이 힘을 발휘하면서 진화한 금기의 힘이 스멀스멀 파고들어 신물로 추측되는 거대한 나무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인류의 숙원? 진화의 열쇠? 웃기지 마라.”
나는 그딴거 모르니까.
다만 다른 점을 생각해보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도 있었다.
인간을 보기만 해도 잡아먹고 죽이는 몬스터는 지금껏 거의 누군가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인간은 몬스터로 변화하거나 몬스터를 산란하는 부화 숙주가 되어있다.
그 말인 즉.
인류 내에. 흉신과 심연에 가담한 배신자가 있다.
그것도 사람 다수 사라지게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아주 높은 위치에.
* * *
데이비가 영국에서 타륭과 만나던 시각.
한국에서는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이 여가를 보내고 있는 놀이공원.
그곳에 검은 복장을 한 인물 십여 명이 소리 없이 스르륵 하고 침투했다.
그리고는 익숙한 듯 무기를 쥐고 조용히 말했다.
“브라보 팀. 작전을 시작한다.”
치익.
[송골매준비 완료.]
“잊지 마라. 빠르고 신속하게 대상을 탈취하여 이곳을 벗어나라. 티오니스 성자가 없는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그들은 티오니스 성자만이 실질적인 위협이라 생각하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