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9화
신력의 상징. 거대한 빛의 섬광이 쏟아지자 놈의 거체가 검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강대한 빛이지만 놀랍게도 그 강렬한 빛을 보는 이들은 눈의 격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눈부시지 않으면서 포근함을 전해주는 빛.
하지만 포근한 느낌과는 별개로 그 빛이 서린 힘은 어마어마했다.
주변을 뒤흔드는 거대한 빛의 세례가 지진을 일으키다 서서히 사그라진다.
질병의 흉신 오르가의 녹빛 피부는 새카맣게 타버렸고, 멀쩡한 부분이 남지 않았다.
-그…… 그으으으…….
고통을 이기지 못한 놈의 격통을 보며 나는 느긋하게 녀석을 짓밟았다.
하지만 놈은 죽지 않았다.
-이런 것으로 나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놈이 나를 향해 이죽거렸다.
전신이 검게 타올랐으면서도 여유를 부리는 놈은 확실히 이상했다.
실제로 나를 제외한 이들은 방금의 신의 섬광을 맞고도 여유를 부리는 흉신 오르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코오나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일본 각성자 연합 총괄팀장인 무라타의 경우 그녀가 흉신에게 잡아 먹혀버렸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한 듯 보였지만 말이다.
-나는 죽지 않는다.
확실히 그렇게 보일 수밖에. 땅속에서 튀어나온 놈의 본체 대부분을 태워버렸는데도 이렇게 움직이는 걸 보면 답이 보이지 않는가.
보통 존재라면 그의 불사에 가까운 생명력에 학을 떼고 경악할지 모른다.
실제로 그렇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놈의 비틀려버린 주둥이를 잡아 틀었다.
“거 됐고. 인명 구조 좀 하게 입 좀 벌려봐.”
그렇게 말하며 놈의 주둥이를 강제로 잡아 벌리자 주변에서 경악한 외침이 들려온다.
“그게 무슨!?”
“지금 살아있는 괴물의 입속으로 들어가겠단 말입니까?!”
“어차피 다 죽은 놈인데, 문제라도 있습니까?”
내 말에 안절부절못하던 알하자드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어렵사리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그…… 그렇군요. 확실히 조금 전의 한방으로 놈은 치명상을 입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놈의 발언은…….”
“괜찮아요.”
놈의 입을 강제로 잡아 벌리자 검은 심연 같은 어둠이 나를 반겼다.
좀 전 놈은 이 주둥이를 통해 코오나를 잡아먹어 버렸다.
코오나라는 소녀가 딱히 내게 이렇다 할 중요한 인물이라는 건 아니었다.
사실 그녀가 선녀이건 선녀가 아니건 그건 관심 없는 부분이다.
환자라면 살리겠지만 제 역량 파악 못 하고 적에게 덤벼들다 죽는 멍청이라면 굳이 살려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티오니스라면 몰라도, 여긴 내 세상이 아니니까.
그런데도 나는 돌입했다.
결과적으로 과정에 차이는 없으니 말이다.
“자. 그럼 어디 열심히 소화시켜봐.”
-끄르르륵…… 후회…… 후회할 것이다. 네놈의 육신은 나의 소화액에 녹아내릴 것이고, 네놈의 힘은 모두 삼켜 나의 힘이 될 것이다.
아직도 적의를 지우지 않고 나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 녀석이지만 그런 녀석의 말 따위 애초에 귓가에 닿지도 않았다.
후웅!!
이윽고 녀석의 입안으로 뛰어들자 그 안에서 나를 포박하듯 수많은 촉수 다발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대량의 마나를 순환시켜 한 손에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화기의 마나가 모여들며 손끝에 검은 불길이 일렁인다.
“뜨거운 거 먹을 땐.”
쉬리리리릭!!! 퍼어엉!!!
“후후 불어먹어라.”
-끼이이이이이익!!!
헬파이어에 적중당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일그러지는 촉수들을 보며 나는 문득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굴에 드러난 내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페르세르크가 내 뺨을 꼬집어 당겼다.
“꿈도 꾸지 마.”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말하는 걸 보니 정말로 무서운 모양이었다.
* * *
질병의 흉신 오르가.
땅속에서 지하자원을 먹어치우며 움직이는 거대한 식물.
식물이면 식물답게 광합성이나 할 것이지 가뜩이나 귀한 것들 다 먹어치우고 다니긴.
놈의 육신 내부는 거대한 공간으로 이어져 있었다.
흉신 오르가.
정확히 내가 태운 것은 놈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렇기에 녀석은 불사인양 내게 자랑스레 떠들어댈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케인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파악할 수 있는 이놈의 크기는 못 해도 수십 킬로미터 단위.
애초에 몸속 내부만 해도 이렇게 거대한 동굴이 존재하는 것부터 녀석은 이미 이 나라의 땅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참 생명의 뱃속치곤 넓은 게로고.”
“사람이 살면서 무언가에게 잡아먹히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해보겠냐.”
“보통은 한 번도 없지. 먹혔다는 말은 죽었다는 뜻일 테니.”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경험 횟수만 수백 번에 이르는 것일까…….
“데이비?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별거 아니야. 위가 좀 쓰려서.”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내부에는 다수의 생명반응이 있었다.
애초에 질병의 흉신 오르가의 내부엔 누군가가 살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넓으니 말이다.
쿵!!!!
그때였다.
저 멀리서 무언가 큰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내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코오나가 날뛰고 있는 것이리라.
물론, 느껴지는 마나의 파장이 극도로 불안정한 걸 보니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데이비. 이 벽 너머야. 공포심이 느껴지고 있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인간의 본능을 자극한 것이다.
“음. 걸어가면 한참을 돌아가겠네. 뭔 놈의 몸체가 베헤모스 급 사이즈인지.”
세 마리의 환수 왕 중 가장 머리가 나쁘며 가장 몸집이 큰 베헤모스.
오르가의 육신은 그 정도의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길이 막혔으면 만들어야지.”
페르세르크의 말에 나는 벽면에 손을 가져다 대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8서클]
[프로메테우스]
새파란 고온의 화염이 내 손을 타고 일렁거린다.
일순간에 벽면을 불태우다 못해 녹여버리기 시작하는 화염을 보며 나는 천천히 내부로 들어갔다.
촤르르르륵!!!
동시에 벽면 너머에서 수백 가닥의 촉수가 나와 페르세르크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촉수 더미들은 내게 닿기도 전에 내공으로 압축시켜놓은 호신장막에 튕겨 나갔다.
그 와중에 촉수 가닥 하나가 페르세르크에게 날아간다.
“꺄악!! 오지마!!”
파랗게 질린 얼굴로 학을 떼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장난스레 촉수 더미 하나를 잡아 찢어버린 후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오…… 오지 말아!!”
본체와의 연결이 끊어졌음에도 꿈틀거리는 촉수에게서 물러나며 그녀가 나를 두려운 듯 바라보았다.
그때 촉수 가닥 하나가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대로 바짝 얼어붙었다.
“데…… 데이비…… 이…… 이것들 좀…….”
꿈틀거리는 촉수 더미들이 그녀를 구속하고 점차 당기기 시작한다.
소화의 과정이 아마 저것일 터.
보는 재미는 충분하지만 장난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니기에 나는 윈드 커터를 3차원으로 구현해 촉수들을 모조리 잘라내 버렸다.
그리고 파르르 떠는 페르세르크를 잡아 주머니에 고이 넣었다.
“가자.”
“다시는 그러지 말아…… 그 감촉이 너무 끔찍해…….”
유별나게 촉수 같은 꾸무럭거리는 물체에게 많이 약한 그녀였다.
아마 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혐오감에 의한 두려움일 것이다.
사람이 바퀴벌레를 보면 기겁하듯이.
아, 특히 날개를 펼친 바퀴벌레는…….
좋은 재료지.
촉수 다발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호시탐탐 나를 노려오지만 마치 겁을 먹은 것처럼 처음처럼 들이대진 못했다.
“이…… 이거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비명을 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그곳에는 수십 가닥의 촉수에 붙잡힘 채 발버둥을 치고 있는 소녀가 보였다.
그녀의 발밑에는 끈적끈적해 보이는 새하얀 액체가 고여있었다.
소화액이리라.
그녀를 구속한 촉수 다발이 이윽고 그녀의 몸을 휘감는다.
동시에.
“으읏…….”
그녀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오며 새하얀 무언가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잡식성 끝내주네.”
그녀가 가진 선녀의 힘. 즉 해태의 힘을 먹어치우는 것이다.
그 힘은 사실 생각 이상으로 방대하다. 무림에서 만났던 선계. 그곳의 선녀들과 이름은 같지만, 그 힘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저대로 두면 해태의 힘을 모조리 빼앗길 것이라는 생각이 든 나는 망설임 없이 바람의 칼날을 만들어냈다.
“주…… 죽고 싶지 않아…… 죽기 싫어!”
눈물을 흘리며 발버둥 치는 그녀는 이제 절망감이 전의를 앞선 듯 보였다.
두려움에 가득 차 엉엉 우는 모습을 즐기듯 촉수 더미가 서서히 그녀를 잡아 새하얗고 걸쭉한 소화액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주…… 죽고 싶지 않아!! 언니! 언니 살려줘요! 언니!”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짖으며 절규하는 그녀가 엉엉 울었다.
이윽고 그녀의 다리가 빠지려던 찰나.
내 손을 떠난 윈드 커터가 정확히 촉수 다발을 잘라낸다.
허공에서 그녀를 지탱해주던 촉수들이 잘려나가 버리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 짧은 시간. 무슨 복잡한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근처에 늘어진 촉수를 마치 타잔 마냥 잡고 늘어져 들어가며 그녀를 낚아채고 다시금 튀어 올랐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구해준 나의 존재에 놀랐는지 그녀가 토끼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았다.
“다…… 당신은…….”
“…….”
내가 입을 뻐끔거리자 그녀가 놀란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무거워. 내려와.”
“꺅!”
쿵!!
그녀를 안고 있던 팔을 풀어버린 내가 몸을 돌리자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추락하고는 앓는 소리를 냈다.
질병의 흉신 오르가는 질병균이 섞인 연기를 내뿜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내가 초점을 맞춘 건 그런 흔해빠진 능력이 아니었다.
녀석은 지하자원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녀석이 먹어치우는 것들 중엔 광물도 다수 존재.
무슨 말이냐면…….
이놈의 뱃속을 싹 털어가면 어마어마한 양의 귀금속이나 좋은 물건을 얻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오리하르콘도 좋고, 아다만티움도 좋고.”
다 좋다.
그런데.
방해꾼이 있다.
“거 밑에서 그렇게 나 여기 있수 하면 안 찾아갈 수야 있나.”
나는 이놈이 왜 이렇게까지 석유에 미친 듯이 매달려서 힘을 모았는지를 잘 몰랐는데.
아무래도 이 안에 있는 또 다른 흉신 하나가 그 원흉이었던 모양이었다.
흉신이 있는 공간에서 넘어올 수 있는 건 하위 흉신.
다만 지금 이놈의 몸 안쪽. 깊은 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놈은…….
엄연히 이런 흉신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그래 이쯤 되면 튀어나와 줘야지.”
상위 서열의 존재.
서걱!!
망설임 없이 바닥을 잘라내 버린 나는 놈의 몸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존재감을 흩뿌리는 거대한 균열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소환되진 않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건 확실히 지금까지 만난 흉신과는 다르다.
고대에 흉신은 고대룡과 싸울 정도로 강한 존재라고 했던가.
이클립스가 논외의 존재라곤 하지만 고대룡은 일반적으로 희귀종인 드래곤과 그 격차부터가 다르다.
-크흐흐흐…… 기어이 이곳까지 왔는가.
그때 내게 흉신 오르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영한다. 이곳은 나의 군주의 옥좌일지니. 군주께서 소환되는 그 날. 이 땅에서 인간은 모두…….
말을 하던 오르가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네…… 네놈?! 뭐 하는 거냐!!”
녀석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환 중인 거대한 균열 곁에 내가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뭐하긴. 준비하잖아.”
자고로, 공격하기 가장 좋은 적은 변신 중인 적과. 소환 중인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