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2화
203. 그곳에서 본 것
[안타레스 처치 완료. 보상을 산정 중.]
[오르가 처치 완료. 보상 산정 중.]
이곳에서 두 명의 흉신을 처리한 결과가 드러난다.
메세스는 죽어 세 가지 아이템을 떨어뜨렸다.
녀석의 그림자 포식은 아직 사용하지 않았지만 랜덤 박스는 아주 알맞게 사용하지 않았던가.
[질병의 흉신 오르가의 사망으로 인해 파괴의 권능이 약화됩니다. 그에 따른 보상을 산출.]
쿵!!
그 말과 함께 내 앞에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뭐야. 이거, 장난해?”
땅에 떨어진 것은 무엇인지 모를 씨앗이었다.
당장 써먹으려야 써먹을 곳도 없는 그런 씨앗.
다만, 내가 아는 어떤 씨앗과도 그 형태나 품고 있는 느낌이 달랐다.
단순 씨앗이 특유의 힘을 품고 있다면 단순한 씨앗은 아니리라.
정성스레 포장한 후 아공간에 보관한다.
[데이비. 아다만티움은 극소수이지만 오리하르콘은 제법 건졌어. 그 외엔 자잘한 보석들이로고.]
“수고했어. 곧바로 거기서 나와.”
페르세르크에게서 연락이 닿았다.
어차피 오르가의 보상은 페르세르크가 모두 챙겼다.
조금 아쉽긴 해도 마냥 손해는 아니라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다음은 안타레스의 차례. 놈의 육신이 모조리 증발한 건 사실이지만 보상과는 별개일 테니 뭐라도 나올…….
[안타레스의 근원. 극한의 힘을 흡수.]
그 말과 함께.
내 전신에 특유의 힘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엄연히 프리아 여신이 아닌 넬타리드 신의 신성력이었다.
애초에 흉신은 넬타리드가 만들어낸 피조물. 그들의 힘의 근원은 즉 신의 힘에 직결된다.
순식간에 내 몸 안에 스며드는 힘이 이내 완전히 사라진다.
[칭호, 파괴자를 습득.]
반사적으로 상태 창을 활성화해 칭호란을 열었다.
-파괴자
파괴의 힘을 지닌 신에게 저항하는 아틀란티스, 황소 안타레스를 처치하고 얻은 힘.
칭호 착용 시. 지속적으로 육체능력이 상승. 상승치의 최대는 최상위 상태의 흉신 안타레스의 힘에 준한다.
지속시간은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
2차 해금이 불가능한 칭호.
“나쁘지 않네.”
나는 망설임 없이 별부수미 칭호에서 파괴자 칭호로 갈아 치웠다.
메세스의 그림자 포식의 힘에 비하면 상당히 범용성이 떨어지는 칭호식 힘이지만 당장 주기적으로 사용하는 강화 칭호가 없는 상황에선 최선의 칭호이기도 했다.
걸리는 점이라면 즉발 효과가 아닌 장착 후 서서히 적용되는 형식이라고 할까.
나와 싸운 안타레스는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기에 제대로 된 힘조차 끌어내지 못했지만, 제대로 된 상태였다면 지금의 내가 육체능력만으로 놈을 이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칭호를 장착하기가 무섭게 육신에 활력이 돋기 시작한다.
단순히 근력의 상승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능력이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쯤 되니 응용법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있는가.
“도박할 때 몸에 오는 반동을 버틸 육체로는 제격이네.”
뭐가 되었건 나쁘지 않은 변화라는 건 확실했다.
두 흉신의 사체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나는 멍하니 전장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찌잉!!!
갑작스레 전신을 강타하는 끔찍한 통증과 어지럼증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흉신에게서 흡수한 힘이 무제였을까.
무리하게 받아들인 두 신의 힘이 문제였을까.
아니.
이건, 금기의 업이 가져다준 고통이었다.
이제 와서?
반신으로의 각성 이후 사용하는 데에 상당히 버겁던 금기의 힘이 내게 맞게 어느 정도 진화를 거쳤다.
이제 와서 이렇게 폭주를 할 이유는 없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만, 금기의 힘이 가져다주는 통증은 정식을 놓고 까무러칠 만큼 끔찍했다.
“끄윽…….”
끝까지 쓰러지지 않은 채 무릎을 꿇고 손톱이 부서질 듯 힘을 주던 내 육신에 붉은 균열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육체의 제어권을 잃어버리고 무너지자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급히 뛰어오는 페르세르크가 보였다.
“x병…….”
지독한 두통으로 인해 의식이 날아가는 건 한순간이었다.
* * *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게 되면 사람이 잠을 자도 깊게 잘 수 없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지기 때문.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로해질 수 있지만 애초에 인간을 어느 정도 초월하는 경우 그 피로감을 쉽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에 상황을 호전시킬 수가 있다.
단점이라면.
꿈을 꾸는 빈도가 극도로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꿈이란 뇌의 휴식시간이다.
사람의 중추인 뇌가 완전히 잠들지 않은 적당한 순간.
인간의 뇌는 생각을 정리하듯 평소의 욕망. 갈망 같은 것을 본래의 모습, 혹은 반대의 모습으로 보여주곤 한다.
나의 경우 꿈을 꾸는 빈도는 극도로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자각몽이라니. 아주 미쳤네.”
나는 멍하니 한 손을 들어 나머지 손으로 손가락을 꺾어 보였다.
고통 따위 느껴질 리 없었다.
지금 이곳은 마치 내가 영혼이 된 것처럼 부유하고 있을 뿐이다.
자각몽.
스스로 깨어있으면서 꾸는 꿈.
그것이 바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이었다.
대체 왜? 분명히…….
“가만…… 내가 왜 자각몽을 꾸고 있지?”
뭐 때문에 내가 잠에 빠져들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멍하니 주변을 바라보다 넓은 들판을 날아 나아갔다.
그렇게 정처 없이 한참을 날았을 때.
나는 작은 신전을 볼 수 있었다.
“결과가 같을지라도 나는 당신과 방식이 다릅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천 수만 번을 도전할 겁니다. 당신이 낳은 과오로 인해 생겨난 이 힘으로 이 거지 같은 굴레를 끊어낼 수 있다면 계속해서 도전할 겁니다.”
담담하게 말한 사내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무언가 말하는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예리한 내 청각으로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마치 애초에 목소리를 듣는 것을 거부당한 것처럼 말이다.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가까이 가려던 찰나.
내 발걸음을 멈추는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륀느는 당신을 담고 사멸했고, 누님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합니다. 이클립스는 그놈들을 억누르기 위해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대체…… 대체 언제까지…….”
쩌어어엉!!!
더 이상의 듣기평가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마냥 내 영혼이 튕겨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저항 없이 튕겨 나간 나는 멍하니 평원에 드러누워 버렸고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때 나는 내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는 푸른 눈동자의 맹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데이비 님. 생체 신호가 정상적으로 돌아왔음을 판단. 륀느가 데이비 님의 회복을 높게 평가.”
그렇게 말한 륀느가 날아올랐다.
어두운 방 안의 모습이 보였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시선을 돌려보자 청록빛 머리칼을 늘어뜨린 에이리아가 내 손을 꼭 잡은 채 잠들어있었다.
수인족은 청각에 예민할 텐데.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여긴 어디야.”
내 물음에 륀느가 허공에 뜬 채 나를 바라보았다.
“데이비 님의 갑작스런 혼절 이후 나흘의 시간이 96시간 경과. 이곳의 위치는 아스가르드의 선실.”
륀느의 말에 나는 곤히 잠든 에이리아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신은 너무도 쾌적한 느낌이었다.
이전보다 더 성장해버린 느낌이라고 할까.
최근 육체가 혼과 동기화하는 속도가 극도로 느려져 있었는데 무슨 이유 인지 상당량이 동기화되어있었다.
말없이 에이리아를 안아 들고 조심스레 침대에 뉜 나는 침실의 바깥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폐허가 된 땅이 저 아래로 보이고 있었다.
“아랍 상공이었나?”
“데이비 님의 혼절 이후. 아스가르드를 이곳으로 이동. 데이비 님을 이송. 륀느가 빠른 행동력을 자신만만하게 보고.”
“그래. 고맙다. 페르세르크는?”
“데이비 님이 구한 지구인의 상태를 점검 중.”
“굳이 볼 게 있나?”
“륀느로썬 의미불명이라 보고해.”
대체 무슨 이유로 갑자기 쓰러져 버린 것일까.
뭔가 떠오를 것도 같은데.
나는 멍하니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들을 되짚었다.
흐릿하지만 꿈속에서 본 몇 마디가 기억이 나는 것 같았다.
“바람 좀 쐬고 올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사내가 한 마지막 말이었다.
이클립스.
잊을 수가 있나.
나는 말 없이 아스가르드의 갑판에 올라선 채 고개를 돌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찾아왔겠지.”
내 물음에 뒤편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하늘하늘한 날갯짓을 팔락이며 날아온 나비는 곧이어 내 주변을 배회하더니 이내 파창! 소리를 내며 조각으로 분해되었다.
빛으로 된 나비가 부서졌음에도 밤하늘과 어울려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라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찰나.
나는 그 안에서 꽤 독특한 복장의 작은 소년을 볼 수 있었다.
짧은 머리에 우수에 젖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년은 나를 보며 물었다.
“당신은 왜 우리와 적대하지?”
“자기소개부터 해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나이로 치면 그쪽이 더 어린데.”
소년의 미소에 나는 짧게 혀를 찼다.
“자기 목숨 지키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호오…….”
“여기 나타났다는 건 이제 끝장 좀 내보자고 찾아온 건지. 아니면 내가 쓰러졌다고 기회라 여겨서 찾아온 건지.”
“결과야 어찌 되었건 우린 신의 의지에 따를 뿐이다.”
소년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케인의 말대로라면 아틀란티스, 즉 흉신 놈들은 대부분이 대머리라 했는데. 소년은 엄연히 머리카락이 존재한다.
“단순히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이제는 돌이킬 수 없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얼른 해. 어차피 서로 평행선이라 대화가 통할 리는 없겠다만.”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네.”
“요즘 흉신 서열 1위는 혓바닥이 그렇게 긴가?”
“어떻게 알았지?”
“감이다 꼬맹아.”
내 말에 소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당신은 생각해본 적 없나? 심연과 우리 흉신이 세상의 창조주인 프리아 여신에게 반기를 들어야 하는 이유.”
소년의 말에 내가 침묵했다.
그러자 그가 조용히 말했다.
“나와 손을 잡자 데이비 올 라운. 성흔을 제거하고 신께 저항해라. 그리하면 모두가 다른 미래를 열 수 있다.”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침묵했다.
안 그래도 꿈자리 때문에 뒤숭숭한데 뭐라고?
몇 번을 반복해도 변하지 않는다.
그 말 때문에 괜히 짜증이 나 있는 이 상황에 한다는 소리가 고작 저딴 소리다.
“꺼져. 니들이 이제 몰릴 대로 몰린 걸 알겠다만 나는 내 방식대로 너희들을 모조리 처단하고 내 삶을 지킬 거다.”
“그게 대의를 무시할지라도?”
“대의고 나발이고 내 인생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해. 니들이 내 삶을 파괴한다면 나는 너희를 죽일 수밖에.”
협상의 여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
잠시간 침묵하던 소년은 곧이어 빛으로 화하더니 나비가 되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날아오르며 말했다.
“우리는 준비가 끝났어. 네가 우리와 끝까지 적대하겠다면.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고.”
파스스스…….
그 말과 함께 사라져버린 소년을 보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준비가 끝났다라.
그 소년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그 후에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