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3화
푸른빛의 나비가 흩어지듯 사라진다.
흉신이 사라진 직후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내 팔을 붙잡았다.
“…….”
따뜻한 밤하늘의 날씨를 올려다본다.
티오니스와는 다르게 이곳의 하늘은 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물론 공해의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별의 유무였다.
티오니스 대륙은 은하수와 별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달 또한 붉은 달과 푸른 달로 사이러스, 크리아스 두 개의 달이 존재한다.
조수간만의 차도, 하늘의 기온도, 별의 분포도.
지구와 티오니스는 너무 많은 것이 달랐다.
“괜찮으세요?”
그때 나는 조용히 다가오는 청아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말없이 내게 다가온 그녀는 내 시선을 슬쩍 피하며 물었다.
“표정이 어두워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침묵했다.
굳이 드러낼 순 없었다.
조금 전 만난 소년. 흉신 서열 1위로 추정되는 그 존재는 겉보기엔 부드러워 보였지만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건 단순한 무력문제가 아니었다.
단순히 위험성으로 치면 이클립스가 그보다 상위에 위치할 수도 있으니까.
“술…….”
그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독주였다.
“독주가 필요해.”
“네?”
“한잔할래?”
내 말에 그녀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 * *
에이리아의 주량은 놀라울 정도로 낮았다.
내가 주로 마시는 드워프들도 대번에 뻗게 만드는 우화등선주가 아닌 일반 술임에도 불구하고 몇 잔에 고롱고롱하더니 내 품에 안겨 그대로 잠들어버린 그녀였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이런 행보는 사실상 제법 피곤한 행렬이리라.
그녀에겐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부담을 주지 않은 채 그저 내가 조금이라도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고마웠다.
말없이 잠든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랜덤 박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손을 뻗었다.
몬스터의 처리.
메가로드리아가 석유매장지 일대를 돌면서 한바탕 몬스터가 밀집된 지역을 한바탕 쓸어 담아버린 탓에 두어 번 정도 뽑을 여건이 된 것이다.
“영원한 고통이로구만.”
삼 세트 중 한 부위가 안 뜬다.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 뽑기 시작한 랜덤 박스였다만. 정작 한 부위가 나오지 않아 골머리를 싸매고 있던 참이었다.
“거 더 좋은 것도 안 주면서 생색내기는.”
아무 생각 없이 상자를 개봉한다.
치잉!! 차앙!!!
그리고.
의도하지 않게 찬란한 무지갯빛이 나를 반겼다.
“허…….”
개인방송을 통해서 수많은 인간들을 모아서 품질을 상승시키고 수차례 도전을 해도 안 뜨던 마지막 부위.
잃어버린 자의 반지가 나타난 것이다.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던 나는 아공간에 보관해둔 팔찌와 목걸이 반지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후. 모든 확률은 50퍼센트라더니.”
되던지, 안되던지.
될 때는 무슨 짓을 해도 되고 안될 땐 무슨 짓을 해도 안 된다.
멍하니 그것을 보던 나는 세 가지의 장신구를 조용히 한자리에 모았다.
그러자 세 개의 장신구가 빛을 발하며 모이기 시작한다.
직감이란 무섭다.
지금 이것을 그녀에게 주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것 같은 느낌.
괜한 느낌이 들었을 때 괜찮겠지라고 하는 순간 훅 가는 것이다.
빛으로 완전히 감싸인 세 개의 장신구는 곧이어 작은 반지 하나로 합쳐졌다.
“독특하기 짝이 없네.”
말없이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잠든 에이리아의 약지에 그것을 끼워주었다.
“당분간은 안심할 수 있겠다.”
옅은 빛을 뿜으며 완전히 고요해진 반지를 바라보던 나는 심드렁하게 랜덤 박스의 남은 양을 모두 개봉했다.
어차피 필요한 건 얻었으니 더 이상 이 물건에 미련은 없었다.
차앙!!!
그리고 당연히도 육포가 나왔다.
육포를 보고 기겁하면서도 손을 뻗어 철근마냥 씹어먹고는 다시 상자를 열었다.
이번엔 물통이라도 나올까.
치잉!! 차앙!!!
물론. 필요 없을 때 나오는 게 보통 랜덤 박스의 묘미가 아니던가.
“이건 뭔…….”
손에 쥐어진 병은 작은 병이다.
하지만 익숙한 물건이기도 했다.
신의 눈물 방울.
다른 말로 엘릭서라고 하던가.
나도 희석시킨 물건 하나뿐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굉장한 물건이다.
말없이 엘릭서를 바라보던 나는 문득 이놈을 쓸 방법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우우웅!!!
동생 신현아에게서 받았던 스마트폰에 전화가 왔다는 알림이 퍼졌다.
[흑…… 흐흑…….]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들려온 건 울음소리였다.
어찌할 바를 몰라 엉엉 울고 있는.
내 전생의 동생. 현아의 목소리였다.
표정에서 여유롭던 미소가 사라졌다.
“어…… 어떻게 해요? 어떠…… 어떻게…… 흐흑…… 흑!”
어찌할 줄을 몰라 눈물밖에 흘리지 못하는 그녀의 행동에 나는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어디야.”
“흑…… 흐흑.”
어딘지 말을 못 하고 있는 그녀의 상태는 척 봐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로?
내 심경의 변화를 눈치챈 것일까.
거대한 전함 아스가르드의 거대갑판 너머로 그보다는 작은 흑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약자.]
“최대한 빠르게 돌아가.”
지킬 것이 많다는 것은…… 반대로 약점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메가로드리아에게 올라타려던 그 순간이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언제 온 것일까.
무덤덤한 표정의 작은 소녀가 나를 올려다본다.
“적당히 나대.”
“제 도움이 필요할 거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1초의 시간도 부족하다 깨닫고는 마나의 채찍을 만들어 그녀를 휘감아 당겼다.
파앙!!!
팽팽하게 당겨진 채찍이 그녀를 던져버리듯 내 앞으로 데려왔고 나는 그녀를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출발해.”
* * *
메가로드리아를 타고 곧바로 한국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가고는 있지만, 현아의 위치를 제대로 특정하긴 힘들었다.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라고 해봐야 그녀의 몸에 보호마법을 몇 개 걸어준 적이 있는데 그 흔적을 따라 추적하는 게 전부.
아무리 추적실력이 좋아도 이 수많은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그녀를 찾는 건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후웅!!!
“꺄악!!”
“괴…… 괴물이다!!”
순식간에 시내 한복판에 도착한 메가로드리아가 날개를 천천히 펄럭거리며 하강한다.
사람들은 도망칠 생각도 못 한 채 멍하니 메가로드리아의 출현을 지켜보았다.
“어? 저 드래곤…….”
“티오니스 성자다!”
“저 옆에 저 소녀는?”
“처음 보는데?”
코오나의 존재는 일본에서도 어느 정도 극비로 알려져 있었으니 모를 만도 하지.
그리고, 그 혼란이 불러온 공포는 오래가지 않아 금방 놀라움으로 변질된다.
딱히 포효를 흘리지 않았음에도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내뿜는 놈의 등 뒤에서 가볍게 내려선 나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이들을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다.
후웅!!!!
동시에 메가로드리아가 말없이 날개를 펄럭이며 다시금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향한 곳은 시내 한복판 현아의 흔적이 끊어진 곳은 이곳이었다.
아니 완전히 끊어지진 않았다.
미묘하게 그녀를 추적할 수는 있었으니 말이다.
마치 모세의 기적마냥 비키는 이들을 뚫고 나는 현아의 흔적을 쫓아 빠르게 걸음을 내디뎠다.
[계약자. 표정 풀어라.]
그때. 메가로드리아의 의념이 들려왔지만.
나는 녀석의 말을 듣지 않았다.
* * *
현아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그녀의 흔적이 어느 순간 갑자기 끊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말없이 스마트폰을 들어 그녀에게 통화를 걸어보지만, 통화는 묵묵부답.
뭔가 상황이 심상찮다는 것을 깨달은 내가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이쪽이에요.”
말없이 지변에 손을 대고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뭐냐.”
“정령의 기억이 읽히지 않으시는 거잖아요? 일루미나티. 그들이 나선 거예요.”
정령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흑마법을 사용한 자들.
흉신은 오히려 정직할정도로 힘에 치중됬지만 일루미나티는 엄연히 계략을 쓰는 단체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알아요. 선녀 직업을 각성한 이후로 드문드문 예지를 하니까.”
그녀의 말에 나는 침묵했다. 진위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서둘러야 해요. 잘못하면 당신이 찾는 사람이 위험에 빠질지도 몰라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나를 안내한 곳은…….
다름 아닌 서울의 도심지에서 조금 벗어난 작은 산이었다.
대체 그녀가 왜 이런 곳에 있는가.
나는 말 없이 나를 안내하는 그녀를 따라 빠르게 산을 올랐고.
멀지 않은 곳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엉엉 울고 있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그우우…… 우우우우…….
형체가 불분명한. 기본적으로 몬스터라 구분하기도 힘든 무언가가 거체를 움직이며 그녀를 몰아넣고 있었다.
스릉…….
곧바로 검을 빼들고 괴형체의 괴물을 베어버리려던 그 순간이었다.
“아…… 안돼요!!!”
엉엉 울고 있던 현아가 나를 발견하고 급히 소리쳤다.
“사…… 삼촌!! 삼촌이란 말이에요!!”
그녀의 말에 내 발걸음이 멈춘 것도 한순간이었다.
쿠웅!!!
그리고, 그런 틈을 타고 내게 덤벼든 거대 괴물이 나를 후려치려던 찰나. 코오나가 검을 빼 들고 괴물의 공격을 빗겨내며 이를 악물었다.
“삼…… 촌?”
고작 전생의 삶이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이 태어나도 그들은 내 소중한 가족이었고, 그건 변치 않을 것이라고.
애초에 가족애라는 것은 육체적인 것보다 마음에 있다고 여기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현아도, 연희 누나도 바리스나 윈리처럼 너무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말이다.
눈앞의 이 존재도 다르지 않았다.
처음엔, 얼굴도 그 존재도 몰랐었다. 생면부지 남과 다를 바 하나 없던 인물이 바로 삼촌이라는 소리였다.
그 삼촌은 해외 타지에 살아가면서도 고향에 남은 유일한 가족의 소식을 듣고 자신의 돈을 부쳐 우리를 키운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신성 그룹이라는 거대한 그룹의 회장이지만 이전엔 달랐다.
-그우우우우우…….
인간의 형체를 완전히 잃어버린 괴물이 밤하늘 아래에서 나를 향해 구슬프게 울부짖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던 손에 서서히 실핏줄이 돋을 정도로 강한 힘이 서리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우우우웅!!!
눈치 없이 진동이 울린다.
내가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스마트폰 중 하나인 이 나라 대통령과의 직통으로 이어진 전화였다.
어지간히 급한 일 아니면 이쪽으론 연락하지 않을 텐데. 물론 지금에 와서 전화를 받을 정도로 내가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언젠가 만나야지 하면서도 사실 계속해서 기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가 고작 이것이다.
나는 전화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괴물이 되어 달빛을 역으로 받고 서 있는 거대한 괴물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형태지만 원리는 확실히 보였다.
예상이 맞다면 이 변이는 엄연히 유전자와 흑마법을 통한 육체 변이마법으로 시전 직후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완전히 변화한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삼촌은 자신의 몸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아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대체 왜…… 그런 겁니까.”
왜 처음 보는 조카와의 만남이 이렇게 된 겁니까.
고마웠다고 한마디도 아직 하지 못했는데.
삼촌…….
내가 괴물을 향해 멍하니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