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7화
티오니스와 다르게 이곳 지구에 일루미나티가 나타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애초에 지구에 떠돌던 일루미나티 설은 단순 미스터리일 뿐 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평범한 상가건물이지만 지하는 넓게 펼쳐져 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시선과 오한에 몸을 파르르 떨면서도 그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본래 이 비밀조직의 근본은 한 곳에 모이는 것이 아닌 세상에 퍼져 활동하는 분할조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런 조직의 특성이 있어도 사령탑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비록 조직의 본부라고 해봐야 페스리사 대륙에서 넘어온 자들 중 수뇌부가 모인 곳이 전부지만 말이다.
중국 상해.
사내, 박수현이 일루미나티에 가담한 이후 그의 능력을 높게 산 일루미나티 수뇌부원들은 그를 특수임무, 혹은 지부 호위에 주로 써먹었다.
지금 같은 경우는 특수임무로써, 그 내용은 간단했다.
수뇌에서 지정한 한 인물을 데려올 것.
임무 자체는 실패였다.
당연했다. 방해꾼이 나타난 것도 의외였지만 그 방해꾼의 행동이 너무 예상범위를 넘어서 버렸기 때문이었다.
“돌아오셨군요. 임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치파오를 입은 무표정한 얼굴의 소녀가 물어오자 수현은 인상을 찡그린 채 그녀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x년아 네가 보기에 어떻게 되었을 거 같냐.”
“실패하셨군요.”
위협을 해도, 표정이 변치 않는다. 이 역겨울 정도로 무표정한 소녀의 작태에 짜증이나 한때 그녀를 잡아놓고 허벅지를 칼로 쿡쿡 찔러 겁을 주려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녀는 표정을 바꾸지 못했다.
농약 같은 년.
속으로 그렇게 읊조리며 그가 거칠게 소녀를 내팽개쳤다.
“티오니스 그 미친놈이 왔다. 분명히 오지 못하게 흔적을 지웠을 텐데?”
“그렇군요…… 그가 방해를 했다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상 관계였을 텐데요. 그 경우를 계산한…….”
콰앙!!
“그 빌어먹을 잘나신 노친네들의 장난감이 놈에게 먹히지 않았다고.”
그 말에 소녀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눈이 살짝 커진 듯 보였다.
그동안 어떤 수로도 표정을 바꾼 적이 없는데.
“그럴 리가요…… 마신의 아티펙트가 먹히지 않는다니.”
“흥. 결과적으로 임무는 실패다. 빨리 그 빌어먹을 놈들에게 안내나 해.”
“알겠습니다. 추적은 없겠죠?”
“당연한 걸 묻나.”
중국어 대신 한국어를 유창하게 내뱉으며 수현을 지하 깊숙한 곳으로 안내하자 그곳에는 카드를 펼치고 포커를 치고 있는 몇몇 남녀가 보였다.
이 와중에 또 저 x랄들이군.
수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팔자 좋군. 늙은이들.”
“왔는가.”
“임무는 실패했습니다. 장로님들.”
소녀의 보고에 젊은 남녀들이 침음성을 삼켰다.
“실패했다라…… 어째서지?”
“어째서긴 빌어먹을 그 티오니스 성자가 나타나서 그렇지.”
그 말에도 그들의 태도는 태연자약했다.
“이전에도 흉신의 소환문제를 한국 쪽에서 데려온 녀석에게 맡겼지요.”
“또 실패로군. 티오니스 성자가 예상외이긴 하지만 이렇게 실패만 하면 이쪽에서 체면이 살지 않는데.”
그 말에 수현이 짜증스레 뭐라 말하려 했다.
“자네도 앉겠는가.”
커다란 테이블의 자리 하나를 가리키며 청년이 말하자 수현이 인상을 찡그리며 가운뎃손가락을 쳐올렸다.
“엿이나 먹으시지 영감.”
“흥, 예의 없는 놈이로고.”
그렇게 말하며 저들끼리 카드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처음 듣는 언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마신의 아티펙트가 작동하지 않을 것일까요.]
[애초에 실패작이었으니까. 마신의 힘의 일부만 가져올 뿐 사실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총수뿐이었네.]
[흠…… 총수도 당한 시점에서 이제 어찌 해야 할지.]
[너무 피해가 큽니다. 차라리 흉신 쪽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그들은 괴물을 불러낼 준비를 하고 있기에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더군. 더구나 이미 티오니스 성자에게 너무 많이 당하지 않았나.]
[흐음. 괴물? 누굴 말하는 겁니까?]
[그야 당연히 이클립스라던 그 무시무시한 꼬맹……,]
말을 하던 모두가 굳는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흑발에 붉은 눈을 가진 청년이 카드를 들고 웃고 있었다.
“너…… 너 페스리사 대륙어를 할 줄 아니?”
경악한 한 여성이 어눌한 한국어를 내뱉었다.
“니들이 모시는 마신이 내 스승님이야.”
“아아…….”
잠시간에 침묵이 다시 일었다.
그리고.
몇 초 정도가 지속되었을까.
이상함을 눈치챈 이들이 눈을 부릅뜨며 벌떡 일어난다.
그들은 각기 저마다 사령 마나를 끌어 올리며 소리쳤다.
"무…… 무슨?! 티오니스 성자가 왜 여기에!“
경악한 청년과 여성의 외침에 카드를 쥐고 있던 청년, 데이비가 카드 패를 개봉했다.
2 하트, 3 클로버. 7 타이어 j 하트.
한 장 한 장 펼치는 걸 보면 개패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곧 그는 능숙한 손길로 카드를 회수하고 다시 접더니 일제히 펼쳤다.
스페이드 10 j Q K A.
“어때. 손장난 끝내주지?”
빙그레 웃으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개패를 받았는데, 결과는 잭팟이네…….”
“제압해!!”
당황한 그들이 일제히, 놀라울 정도로 손발이 맞게 사령 마나를 끌어 올렸다.
쩌엉!!!!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사령 마나들이 일제히 바스러지듯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공포에 질린 듯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검은 안개와 같은 사신이 그들의 목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 아이아스의 마법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야, 흉내 낸다고 번데기 주름을 따라갈까.]
그렇게 웃으며 데이비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분명 지구의 인간이 모두 죽지 않으면 이클립스가 이곳에 현신하지 못할 텐데.”
“너…… 너너…….”
말을 잇지 못하는지 근육질의 청년이 파르르 떨었다.
“뭐, 내가 모르는 꼼수를 준비했나 보다? 물론 그쪽도 넬타리드의 일면이 붙어있으니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만.”
데이비가 신의 기적을 빌려오듯, 반대로 그들 또한 그들의 뒤를 봐주는 신의 일면이 존재한다.
“어떻게 사령 마나가…….”
“사령 마나는 위계서열이 확실하다 보니까.”
저주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들은 데스 로드의 힘을 흉내 냈다.
총수와 다르게 상당히 겉핥기식으로, 그렇기에 약점이 뭔지도 모르고, 알아도 그걸 어떻게 해볼 능력도 없다.
그러니…….
이렇게 순식간에 무력화 당할 수밖에.
“크윽…… 크으으으으!!”
그런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는지 자신의 힘을 모조리 제압당한 청년 하나가 괴성을 내지르며 억지로 힘을 방출했다.
그리고.
데이비에게 덤벼들려던 그 순간.
그의 사령 마나가 그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로 아이아스의 마법은 대개 평화를 상징하고 만들어졌다.”
[네놈…… 네놈이 뭘 안다고!!]
격하게 소리치던 그가 우뚝 굳으며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뭘 알기는, 적어도 니들보단 이 마법에 대해 잘 알지.”
고작 흔적만 가지고 재현한 놈들이 원조를 무슨 수로 파악하겠는가.
상위 사령 마나가 하위 사령 마나를 제압하고 짓누르는 방식.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모두를 제압하여 조용하게 만드는 데엔 이것만 한 것이 없으리라.
허공에 들어 올려진 그를 향해 다가간 데이비가 그의 심장에 손을 올렸다.
“자. 말해봐. 그 빌어먹을 고대룡 이클립스를 무슨 수로 데려오려는 건지.”
“크윽…… 말할 수 없…… 끄아아아아아아악!!!!”
처참한 비명이 난무한다.
“참고로 지원을 기다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방송으로 말한 적 있지?”
분신이라는 주술에 대해서. 힘이 일정 빠져나가긴 하지만.
양학할 때엔 이것만큼 좋은 주술도 없는 법.
공자 가라사대.
다굴에 장사 없다 하였나.
그것이 바로 이것이다.
힘을 분산시켜 머릿수를 늘림으로써 두 개의 팔이 네 개 여덟 개, 열여섯 개가 되는 법이다.
콰앙!! 쾅!!
이미 시작했는지 사방에서 굉음이 울려 퍼진다.
“네놈에게 해줄 말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 고문하는 수밖에.”
걱정 마. 자백받는 데엔 도가 텄으니.
빙그레 웃으며 그가 천천히 청년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손에 검은 화염을 피워올렸다.
“심문의 불이라는 건데. 좀 뜨거울 거야.”
“뭐…… 뭐?!”
화르르륵!!
“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한 명이 무너져내린다. 몸은 멀쩡하나 정신이 불타는 것이다.
그를 뒤로한 채 데이비는 남은 이들을 스윽 훑었다.
“다음은?”
“대…… 대체 여긴 어떻게 알고…….”
“어떻게 오긴. 네비 따라왔지 이 새끼들아.”
그렇게 말하며 데이비는 슬금슬금 도망치던 수현에게 마나 휩을 던져 묶어 당겼다.
그리고는 거칠게 그를 지면에 처박아버렸다.
“커헉!!”
“내가 바로 옆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 말에 수현은 그가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를 눈치챈 듯 보였다.
그가 시선을 느낀 건 잘못된 게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전이 마법진을 탈 때도. 이곳으로 들어올 때도. 무표정의 소녀를 괴롭힐 때도.
계속해서 바로 옆에 있었다.
다만 인지를 못했을 뿐.
“이…… 인비저빌리티 마법으론 그렇게 숨을 수 없었을 텐데…….”
“그것까지 말해주면 남는 게 어딨나.”
화르르륵!!
“끄아아아악!!!! 으악!으아악! 으아아아아!!”
처절함 비며 온몸을 버둥거리는 두 번째 청년을 무시한 채 이번엔 여성에게 다가간다.
“흐…… 흥! 야…… 야만적이네! 고문을 위해 사람을 불태우다니!”
“생사람 잡아서 약통에 처넣고 절여버리는 니들이 할 말은 아니지 안 그래?”
“그러지 말고 우리와 손을 잡자. 우리의 대의를 알게 되면 너도…….”
“대의?”
“그래! 우린 총수와 달라! 우린 우리만의 목적이…….”
“말해봐.”
“손을 잡는다면 말해주지.”
“순순히 말해도 유혈사태가 벌어질까 말까인데. 말은 안 한다라…….”
그렇게 말하며 데이비가 아공간에 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괴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아직 생명력이 남았는지 꿈틀거리는 살점 덩어리였다.
다만. 살점 덩어리는 촉수로 가득했다.
질병의 흉신 오르가.
그의 육편이었다.
“때로는 고통보다 혐오가 더 무서울 때가 있는 법이야.”
“뭐…… 뭐 하는?! 꺄아아아아악!!”
촉수 살점 덩어리를 그녀에게 끼얹어버린 데이비는 마지막 남은 청년에게 다가갔다.
“당신도 마찬가진가?”
“으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이들을 가리키며 웃어 보인 데이비가 미소를 일순간 지웠다.
“게임을 시작하지.”
이클립스의 소환이 관련되었다면 이놈들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철저하게 쥐어짜서 진실을 끌어내는 수밖에.
그리고. 이번 기회에 일루미나티의 근본을 한번 알아내 봐야겠다 싶었다.
가장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지닌 사내가 데이비를 본다.
“후회할 것이다.”
“그러시던가.”
그렇게 말하며 메가트론의 부착품인 마나 전기톱을 꺼내 양손에 든 데이비가 시동을 건다.
키잉!! 키이이이이잉!!!
“다들 그럴싸한 자존심은 가지고 있더라.”
근데, 고문이라는 건 그리 버티고 싶다고 버텨지는 게 아니다.
“처맞기 전까지는.”
“마법진!! 마법진!! 살아남은 서열 9위 흉신이 대규모 소환식을 진행하고 있다! 우린 그동안 각지 전역을 습격해 네놈의 시선을 끄는 것이다!”
의외로 그는 입이 참 가볍고 겁이 많은 자였다.
“게임은 네가 이겼다. 목숨이 칩이라면 합당하겠네.”
푸슉!!
동시에 철검들이 이기어검의 묘리로 떠올라 비명을 지르던 장로 셋을 대번에 죽여버렸다.
“그래? 그 위치가 어딘데?”
데이비의 물음에 그가 입을 꾹 다물었다.
“말 안 해?”
키이이이이잉!!!
그에게 마나 전기톱을 들이밀자 그가 비명을 내질렀다.
“위…… 위치를 아는 건 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