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8화
자신을 죽이면 절대 위치를 알 수 없다던 그 말.
그의 의도는 뻔했다. 열쇠는 자신이 쥐고 있으니 더 이상의 위해를 가하지 말라.
그는 그렇게 소리 질렀다.
“어지간한 방법으론 절대 찾을 수 없다! 들어가는 방법 또한 나만 알고 있다! 나를 헤친다면 절대 네놈은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내가 말없이 그를 직시하자 그는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내게서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래?”
“그렇다!”
숨겨놓을 수는 있겠지. 다만 너무 갑작스러운 기습이라 시간이 필요한 것일 테고.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네놈이 목적을 완수하고 싶다면 함부로 나를…….”
“말하지 마.”
“뭐?”
“말 안 해도 돼.”
직접 뽑아낼 테니.
그에게 다가간다.
“이…… 이이!!”
사령 마나가 봉인 당한 그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다만. 이곳은 내 영역이 아닌 그들의 영역.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인간이 바로 그들이었다.
“노…… 놈을 막아라!!”
그의 외침과 동시에 섬뜩한 살기를 품은 무언가가 정확히 내 급소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어긋남도 없는 그 공격에 내가 몸을 슬쩍 빼듯 피해내자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정확히 발이 날아들었다.
“호오.”
내 앞을 막아선 것은 치파오를 입은 어린 소녀였다.
다만 소녀는 륀느처럼 표정이 없었다.
“신기한 게 있네.”
내 중얼거림에 그녀는 내게서 한 발, 두 발 거리를 벌리더니 이내 몸을 살짝 숙였다.
그리고.
내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빠르게 파고들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급소를 노리는 공격이었다.
쉬리리릭!!
마치 뱀이 몸을 휘감듯 그녀의 새하얀 다리가 내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맹공이 계속된다.
무력화된 장로와 다르게 그녀는 오로지 육체능력만으로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 반면.
나를 이곳까지 안내한 원흉. 박수현의 경우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그놈을 막아라!”
격하게 소리치며 몸을 돌려 도망치는 그였다.
헐레벌떡 달려 사라지는 그를 쫓아가려 하자 치파오를 입은 소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미끄러지듯 내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옆이 쫙 트인 치마를 걷어 다리에 걸어둔 밴드를 풀었다.
“스트립쇼는 관심 없는데.”
“…….”
대답 없이 밴드에서 무언가를 꺼낸 그녀가 그것을 손에 채웠다.
작고 가느다란 너클이였다.
“이 이상은 갈 수 없습니다.”
기계 같은 어조로 중얼거린 그녀가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는 좀 전과 같이 내게 덤벼들었다.
그녀의 주먹은 정직하게 날아들었다.
적당히 빗겨내고 기절시키든지 하는 게 가장 좋으리라.
그렇게 손을 뻗는 그 순간이었다.
휘릭…….
그녀의 몸에 닿은 내 손이.
갑작스레 튕겨 나갔다.
“어?”
파앙!!!
그리고, 그녀의 주먹이 정확히 내 복부에 꽂혔고, 곧바로 다음 공격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급소에 급소를 노리는 공격들이 쉬지 않고 쏟아진다.
내가 반격하듯 팔을 뻗지만, 그녀는 마치 무술의 전문가, 혹은 무술 그 자체라고 자신을 소개하듯 계속해서 내 공격을 빗겨내거나 상쇄시키고 카운터를 먹였다.
그야말로 힘만 센 아이와 기술이 완벽한 전문가의 싸움을 보는 듯한 광경이 펼쳐진다.
계속해서 내가 당하고만 있자 그녀는 공격에 속도를 더욱 끌어올렸고, 끝내 내가 휘청거리듯 한발 물러나기가 무섭게 몸을 띄워 새하얀 다리로 내 목을 휘감고 그대로 목마를 타듯 올라탔다.
치잉!!
그리고 그렇게 내 뒷목을 끌어안듯 올라탄 그녀가 마지막 공격을 가하려던 찰나.
굳은 듯 가만히 있던 내가 팔을 들어 그녀의 팔꿈치를 막아냈다.
그리고는 실시간으로 내 목을 조르고 있는 그녀의 다리에 한 손을 올린 뒤 짧게 혀를 찼다.
“벌써부터 발랑 까져서 말이야.”
콰앙!!!
내 시야에 곧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그녀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는 게 보였다.
“깜짝 놀랐네.”
짧게 혀를 찬 내가 일어나려는 그녀의 팔을 아무렇지도 않게 쳐냈다.
칼같이 내 공격을 흘려내고 상쇄시키던 것과 다르게.
이번엔 그녀의 공격이 내게 완전히 상쇄된다.
“이 정도로 완성도 좋은 호문클루스(인공생명체)는 잘 없는데, 안 봐도 알 거 같네.”
인간 같지만, 그녀는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었고.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도 신의 허락 아래에서 가능한 자아 생성엔 한계가 존재한다.
그녀의 경우 감정이 결핍되긴 했지만, 엄연히 자아가 존재하는 인물.
신의 분노도 받지 않으면서 자아가 확고한 존재?
데우스 엑스마키나도 아닌 일반 호문클루스가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가능하다면…….
기본 베이스가 인간인 호문클루스, 혹은 사이보그 정도일 터.
물론, 이런 건 다 상관없었다.
“쿨럭!!”
내가 그녀의 왼쪽 어깨를 강하게 찌르고 연달아 공격을 가하려 하자 그녀가 몸을 튕겨 내게 반격을 가하고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는 다시 신중하게 나를 공격한다.
또다시 내 공격을 흘려내거나 상쇄시키고 반격을 가할 생각이리라.
하지만.
파악!
“읏?”
그녀의 공격은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이번엔 내 공격을 상쇄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파고든 내 손은 그녀의 육신을 부숴버리기보다는 검지 끝으로 그녀의 몸을 빠르게 점혈했다.
몸의 움직임을 빼앗긴 그녀가 한쪽 무릎에 힘이 풀렸는지 비틀거리며 무너진다.
멍하니 나를 보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며 나는 조용히 말했다.
“속옷은 입고 다녀라.”
파앙!!
마지막 점혈이 그녀의 의식을 어둠 저편으로 내동댕이쳐버렸다.
* * *
바닥에 쓰러진 소녀는 잘 쳐 줘봐야 10대 중반 정도.
사실 성장이 빠른 티오니스와 다르게 굉장히 어린 편이었다.
호문클루스치고는 자아가 강한 그녀는 아무리 봐도 인간을 베이스로 개조화된 것 같았다.
일단 금기이면서 금기는 아닌, 미묘하게 어긋난 존재.
당장 그녀의 목을 쳐내는 것도 방법이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몸에 손을 뻗어 무언가를 심어 넣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애초에 목적은 그녀가 아니었으니까.
주변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소란을 틈타 내게 잡혀있던 이곳의 인물들이 죄다 도망쳐버린 것이다.
물론, 그 또한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더 생각할 것도 없었으니까.
지하 아래층에서 계속해서 올라오는 진동은 이 지하공간이 단순히 몇 층 단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스릉…… 서걱!!
홍단이를 뽑아 망설임 없이 바닥을 갈라버린 나는 홍단이의 검 끝을 바닥에 꽂아 거꾸로 세운 채로 그대로 추락하듯 내려갔다.
쿠웅!!!
“놈을 막아라!!”
그때였다.
내가 내려오기가 무섭게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온다.
쿠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육신 전체를 짓누르는 방대한 중력 마법이 일대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중력이 바뀐다는 말은 생명체에게 굉장히 가혹한 환경이 된다는 것과 일치한다.
나는 전신을 짓누르는 중력장 속에서 아래쪽의 깊이를 가늠했다.
“놈을 죽이지 못해도 상관없다!! 시간이 될 때까지 반드시 시간을 벌 것!!”
그의 외침에 중력장이 더욱 거대해진다.
분신을 통해 토벌한 적들은 아무래도 일부였던 모양이었다.
처음 내가 장로들과 마주친 지하와는 그 수준부터 다른 깊이의 지하 공간엔 수십 수백 명에 달하는 이들이 일제히 중력 마법진을 전개하고 있었다.
“요격부대!! 마법 장전!!”
치이이이잉!!!
사방에서 광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장로라는 그 작자는 자신이 도망칠 길을 얻기 위해. 혹은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겹겹이 나를 방해할 수단을 준비해놓은 듯 보였다.
“흥! 이곳에선 오로지 중력장만 발현된다! 마법을 모조리 거부하는 특수 금속을 이용해 결계를 쳐두었다! 네놈이 잘났어도 이 진을 뚫고 넘어가진 못할 것이다!!”
나를 도발하는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그그극!!!
그리고, 내가 선 장소 자체가 함정이라 말하듯 양측 벽이 서서히 압축되듯 밀려오기 시작했다.
방대한 중력장과 마나 순환 방해. 그리고 물리적인 압착.
보통 인간이라면 기겁할만한 연계의 함정이다.
굳이 나도 이런 장소에서 무리하게 마법을 써서 반동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힘으로 부수는 수밖에.”
단순한 근력으로 해결이 안 되면 그 이상으로 가는 수밖에.
칭호, 파괴자를 장착한다.
파괴자 칭호는 장착 시 계속해서 육체능력이 상승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내 의지가 곧 적용되듯 육신에 활력이 돋기 시작했다.
서열 5위의 흉신 황소 안타레스의 권능이 내 손에 감돌기 시작하며 내 손에 머금어졌다.
육신의 외견에는 변화가 없으나. 그 내면은 다르다.
나를 장악하던 중력장이 마치 장난감처럼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중력장 하나에 무력화 될 정도는 아니라지만 새로운 힘은 써먹을 수 있을 때 써먹어 봐야 하는 법이렷다.
“자. 엘리베이터 내려갑니다.”
말아쥔 주먹을 바닥을 향하게 하고 당겨 올린다.
내 행동에 이상함을 눈치챈 이들이 급히 나를 향해 요격 마법을 준비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히 나를 향해 마법들이 날아들었다.
사령 마나라면 위계서열을 정리해서 짓눌러버릴 수 있겠지만 마나는 조금 달랐다.
이윽고 내가 바닥을 내리치듯 주먹을 내뻗었다.
쩌엉!!!
묵직한 충격파가 울려 퍼졌다. 무형의 파장이 원 형태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대 영역 전체를 어마어마한 힘으로 뒤흔들기 시작했다.
버프 마법 없이 단순히 칭호효과만 발생시킨 것으로, 황소 안타레스의 힘을 잠시나마 얻어 부릴 수 있는 것이다.
단 한방에 지면이 갈라진다.
“마…… 말도 안 돼!! 무슨 힘이?!”
무너지는 바닥 아래로 중력에 순응하듯 내가 아래로 빠르게 향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하 깊은 곳에서 섬뜩한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좋지 않다. 시간을 끄는 건 더 이상 미련한 짓이 틀림 없었다.
나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추락하는 지면을 걷어차듯 퉁겨져 올랐다.
그리고는 청단이와 홍단이를 이기어검술로 띄워 두 검을 각성시킨다.
청적색의 긴 검신이 존재하는 한 자루의 검이 손으로 빨려 들어온다.
“초단아. 시간 없다. 한꺼번에 베자.”
추락하는 내 말에 초단이가 공조하듯 파르르 울린다.
[중검]
[태산 쪼개기]
쩌억!!
닥치는 대로 베어버리는 초단이의 검격이 정확히 지면을 갈랐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준비되고 있던 마법들이 초단이의 힘에 의해 분해되어 바스러졌다.
물론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떨어지는 와중에도 나를 방해하는 이들을 향해 내가 손을 튕겼다.
그러자 검은 화염이 손끝에 모여든다.
“가기 전에 선물이다.”
나는 지하로 향할 테지만. 너희는 귀찮게 따라오지들 말라고.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나를 짓누르던 인간들이 있던 층이 완전히 괴멸된다.
다굴 앞에 장사 없다 하였나.
그 말은 진리나 다름없다.
다만.
양민학살은 이야기가 다를 수밖에.
최하층으로 추정되는 지하에 도착한 나는 이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묘한 냉기. 싸늘한 적막감까지.
내게서 도망친 일루미나티의 장로는 분명 이곳에 있었다.
“저긴가?”
지하의 끝에는 커다란 문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서 섬뜩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거 소환하지 말라니까.”
어차피 도망쳐도 이런 곳밖에 없는 주제에.
그렇게 말하며 나는 초단이를 빗겨내듯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단단하게 닫힌 거대한 금속 문을 향해 왼발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정확히 거대 금속 문을 갈라버리며 그 안에 있던 장로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내가 여기 들어오게 만든 순간부터 너흰 끝난 거야.”
스산하게 웃어 보이며 내가 바닥에 쓰러진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도 무언가 거대한 힘의 유동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