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9화
205. 공간 속에서의 부름
후두두둑…….
수차례 폭음으로 인해 지반이 무너져 내린다.
일루미나티의 장로.
사실 장로라는 것은 호칭일 뿐 딱히 중요인물 같지는 않았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어버린 그의 표정엔 당혹스러움과 억울함이 서려 있었다.
본인의 죽음은 그렇게 억울해하면서 다른 이들은 다른 줄 아는 인간.
혀를 차며 내부로 들어가자 지독한 약품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세크리파이스라……”
짧게 중얼거린 나는 내부에 존재하는 거대한 의식을 보며 적게 중얼거렸다.
흑마법 중에서도 꺼려지고 있는 소환식과 흡사하다.
사령 마나를 기반으로 하는 흑마법과 사령 마법은 각각 인간의 혼과 육신의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마법이다.
그중에서도 흑마법은 인간의 영혼을 연구하는 마법 학문으로 인간의 영혼은 물론 모든 생명의 영혼엔 그에 따른 힘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 학파가 존재한다.
허공에 쇠줄에 꿰인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수많은 남녀들을 보며 나는 혀를 찼다.
“머릿수가 많으니 이런 짓을 저질러도 모르는구만.”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곳은 일루미나티의 본거지이지만 이곳만 본거지라 할 순 없을 테니까.
의식장은 괴기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의식장 전체엔 붉은빛으로 만들어진 마법진이 쉴 새 없이 공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마법진을 구동하는 원료로써…… 인간의 영혼이 사용되고 있었다.
수많은 인간을 납치해 이곳에 데려온 뒤 약에 절이고 쇠꼬챙이에 꿰여 특수한 배열대로 매달아 놓았다.
피가 한 방울 떨어질 때마다 그것이 마법진의 가동에 거대한 에너지 매개체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곳의 환경에 있었다.
티오니스나 페스리사 대륙이나 결국 마나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지구는 인간이 마나를 받아들인 지 오래되지 않은 세상이기도 했다.
애초에 지구의 인간은 마나와 상성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건 어지간해선 아는 사실이었다.
즉, 아무리 영혼에 힘이 있다 할지라도 흑마법을 기반으로 한 마법을 발현시키기엔 영혼의 힘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의식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의식은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유 자체는 간단했다. 사람 수를 늘린다.
10명이면 되는 의식을 50명이 넘게 투입하는 게 이 무식한 의식의 방법이었다.
쿵!!!!
이윽고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핏빛 안개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기척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이클립스의 소환진은 아니었다.
그녀가 풍기던 힘은 섬뜩할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던 검은 힘이었다.
반대로 이 마법진의 경우…….
무언가와 이미 연결되어있었다.
쿵!!
천장에서 떨어진 파편을 슬쩍 피해낸 나는 의식에 사용된 인간들을 모두 꼬챙이에서 해방시킨 뒤 내가 베어버린 장로의 육신에 손을 뻗었다.
[흑마법]
[영혼의 부름]
으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육신이 뒤틀리고 그 속에서 검푸른 빚덩어리가 끌려 나오기 시작했다.
“말해봐. 여기서 니들이 하고 있던 게 뭐야.”
내 물음에 푸른 빚덩어리가 스산하게 떨렸다.
[크흐…… 크흐흐흐…… 소용없다. 여기에 네놈이 찾는 건 그 어디에도 없으니.]
“그래서? 이건 뭐 하는 건데.”
쿵!!! 쾅!!!
한차례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파편을 베어버리자 마치 두부를 썰어낸 것처럼 파편이 반으로 갈라져 내 옆으로 떨어졌다.
[흐흐, 우리도 모른다.]
“뭐? 이게 미쳤나. 이게 뭔 개소리야.”
[다만, 저것은 우리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은 균열이다.]
그의 말에 내가 침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진이 완전히 꺼지며 주변을 보호하던 힘까지 사라지자 지반이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천장이 완전히 뚫려 하늘에서 헬기 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그 힘의 근원은 알 수 없다. 우린 그것을 타락, 나락이라고 부른다. 균열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있으면 존재가 부서져 내리지.]
“흠…….”
[세상을 파멸시킬 힘이지. 한번 열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증식하여 끝끝내 세상을 모조리 침식시키고 부순다. 저 힘에 노출된 인간은 오래가지 않아 존재를 부정당하고 서서히 사라진다.]
기괴한 힘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증상이 조금 내 것과 비슷한데.
“그래서. 너희만 당할 수 없으니 이걸 여기에도 풀었다?”
그는 영체가 되었다. 영체는 상위 사령 술사의 명령을 거부하기 힘들다.
내 물음에 그가 침묵했다. 답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물론, 이쪽도 방법은 존재한다.
비록 완전한 데스 로드는 이 세상에 역사를 통틀어 단 한 명이지만 불완전한 데스 로드는 충분히 이뤄낼 수 있다.
“망자는 로드의 부름에 답하라.”
[큭?!]
“임퍼펙션 데스 로드의 이름으로 말한다. 망자는 네 군주의 부름에 답하라.”
그들이 데스 로드의 힘을 연구하고 몸에 심은 자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었다.
[끄으으으으윽.]
서서히 사령 마나가 그의 혼을 쥐어짜기 시작하자 빛덩어리가 맹렬하게 흔들린다.
[무서운 공간이다! 하지만 그만큼 막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지!]
그의 외침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막대한 에너지?”
[그렇다. 마나도, 그 외의 힘도 아닌 근본적으로 다른 힘이다. 여기서 나온 힘의 가치를 깨달은 우리들은 그 힘을 정제하여 마법에 병행하여 사용하였다. 그 결과가 페스리사의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았을 땐 너무 늦은 후였지만.]
그 말에 나는 눈을 감았다.
가만 페스리사 대륙에서 절대보옥이 있었던가?
“괜히 안 엮여서 다행이네.”
이클립스가 챙겨온 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나라도 저 공간 너머에 들어가는 건 그리 내키진 않으니까.
“그래서? 니들이 저걸로 하던 게 뭔데.”
[지구는 마나가 희박하다. 그렇기에 의식을 진행하기엔 우리들의 힘으론 부족했다.]
“그게 이클립스를 소환하는 소환진이고?”
[아니.]
의외의 답변에 나는 의문이 생겼다.
이클립스를 부르는 게 아니라고?
[우리가 하고자 한 것은 이 안에 숨어있는 거대한 힘의 연구였다.]
“일루미나티의 목적은 세상에 숨어들어서 세상을 움직이는 큰손이 되려고 한 게 아닌가?”
[조직 내에 파벌은 무수히 많았다. 살아남은 건 총수의 파벌과 우리의 파벌이 전부.]
“너희 목적은 다르다 이건가?”
[세상을 파멸시킬 유혹을 지닌 힘. 하지만 우리는 보았다. 그 안에서 숨 쉬고 있는 압도적으로 거대한 힘의 근본을.]
거대한 힘?
[그…… 그그극…… 진리…… 진리의 탐구…… 인간의 진화…… 그것은 멸망을 피할 지름길이니…….]
영혼의 색이 탁해진다.
이 이상 그를 붙잡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윤회의 고리에 강제로 올라가는 것이다.
물론.
이딴 짓을 저질러놓고 편히 죽게 둘 생각은 없었다.
“정보는 정보고 값은 치르고 가셔야지.”
쩌적!! 쩍!!
고통스러운 듯 반짝거리는 영혼을 손으로 잡아 찢어버리자 영혼이 파스스 흩어졌다.
[아버지! 나가셔야 해요!]
“그래. 그전에 이 꺼림칙한 건 어떻게 닫아보자.”
심연과 흉신의 힘과는 다른.
일루미나티를 근본적으로 두렵게 만든 것.
페스리사 대륙을 멸절시켜버린 바이러스와 같은 이 힘.
사실 조금 뜬금없는 출현이었지만, 당장 문제가 되지 않으니 신들 사이에서도 언급이 되지 않는 것이리라.
나는 힘을 파괴할 수단으로 초단이를 택했다.
“할 수 있지?”
[네! 맡겨주세요!]
내 품에 안겨 오듯 스며들어 흩어지는 초단이가 베기의 권능을 만들어낸다.
닿는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베어버리는 초단이의 권능은 청단이와 홍단이의 권능을 극한으로 활성화 한 수준의 힘을 지니고 있다.
사실 수르트가 만들고자 한 검은 두 자루의 쌍둥이가 아니라 한 자루의 초단이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구구구구구구구!!!
이윽고 원료를 잃은 마법진이 폭주하기 시작하자 대규모 지진을 유발하기 시작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거대한 균열을 소환한 마법진을 절반으로 가르듯 초단이를 휘둘렀다.
쩌엉!!!!
하지만.
모종의 힘이 초단이를 튕겨냈다.
“실화냐?”
[꺅!!]
초단이의 비명과 함께 검이 튕겨 나온다.
그냥 마법진이라면 그대로 베어버렸을 텐데.
방금 전 순간적으로 균열 속에서 나온 힘이 초단이의 힘을 잠식하고 그녀의 권능을 약하게 만들었다.
“…….”
[아…… 아버지! 할 수 있어요! 다시 한번!]
초단이의 고집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베어버리지 못한 것이 상당히 자존심 상했는지 형체를 만들어낸 그녀가 입을 삐쭉인다.
“아니. 아무래도 힘의 근본부터가 다른 모양이다.”
초단이도 완벽한 것은 아니니까.
힘의 방식은 침입 후 잠식 강제제어.
신의 권능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런 것이라면 이쪽도 해결책은 존재한다.
“오냐 어디 한번 해보자.”
동시에 혼이 반신의 계에 올라서며 강화된 금기의 힘이 전신에 서린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초단이의 검신에 스며들며 검은 검기를 만들어냈다.
[으으…… 느낌이 좋진 않아요.]
“조금만 참아줘.”
[네.]
금기의 힘이 완전히 활성화되고 나는 마법진을 향해 한 발 내디뎠다.
그리고.
[초중검]
[태산 쪼개기]
방대한 중량을 담아 일검을 내리그었다.
쩌억!!!
당연히 초단이를 잠식하여 제어하려는 듯 붉은 기류가 뻗어져 나왔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모조리 독립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대상을 역으로 잠식해버리는 금기의 힘이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콰직!!
붉은 기류가 맹렬하게 요동친다.
쩌억!!
그리고, 초단이를 막지 못한 균열은 곧 문제없이 반으로 갈라져 부서지기 시작했다.
정체 모를 방대한 힘을 내뿜으며 비명을 지르듯 부서져 나가는 균열이 서서히 작아진다.
이제는 태가 있는 곳까지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한 지하 시설 위로 다수의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괜히 모습을 보였다간 서로 좋을 게 없다.
그런 만큼 조용히 빠져나가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쿵!!!
섬뜩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균열 속에서 순간적으로 빠져나갔다.
“뭐야.”
너무도 빠른 속도라 놀란 내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뚫려버린 청장 밖으로 튀어나간 붉은 무언가.
뭔진 몰라도 페스리사 대륙을 붕괴로 몰아넣은 균열이라면 저거 그냥 방치해서 좋아질 게 없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제거를 해야 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나는 온몸에 돋는 소름에 흠칫하며 한발 물러났다.
[아아…… 이 기척…… 이 기운. 오셨군요…… 드디어…… 헤라클래스.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너무 오래도록 기다렸습니다.]
노쇠한 노인의 안도한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붉은 빛이 내 발을 휘감더니 그대로 나를 잡아당긴다.
나를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붉은 균열이.
떨쳐내라 하면 어려울 건 없었다.
더구나 지금 밖으로 튀어나간 붉은 기운을 생각하면 이런 초대는 거절하는 게 옳으리라.
하지만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부른 대상. 헤라클래스.
마치 그를 알고 있다는 듯한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