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1화
휘리리릭!!! 쩌어엉!!
거대한 꼬리가 소닉붐을 일으키며 공간을 찢어발겼다.
붉은 안개가 튕겨 나가며 아무것도 없는 공허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자! 내게 저항하라! 부질없는 미물아!”
“대화 좀 하자고. 네가 헤라클래스 그 양반을 어떻게 알아.”
그는 어쩌면 헤라클래스에 대해 명확하게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이곳에서 이럴 시간이 없는 걸 알면서도 물러날 수 없었다.
“대화. 그래. 알고 싶은 것이 있더냐! 헤라클래스에 대해 궁금하더냐!! 아니면, 네 힘에 대해 궁금하더냐! 무엇이 그리 알고 싶은가!”
오만한 질문에 오만하게 답한다.
“전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놈이 거대한 포효를 흘렸다.
“그렇다면 시험에 통과하라. 나의 시험을 통과한다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
그의 거대한 존재감을 품은 외침이 쏟아진다.
고대룡들이 하나같이 괴물이라는 말은 들었다만.
눈앞의 이 아비트라는 놈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초단아.”
내 말에 초단이의 검신이 부드럽게 손에 쥐어진다.
뭐가 되었건 개념이 존재한다면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초단이의 검이 놈에게 닫기 직전 검이 허공에서 멈춘다.
아니.
정확히는 내 팔과 초단이만 멈춘 느낌이었다.
[도구의 힘을 빌릴 순 없을 것이다!]
“까다로운 새끼…….”
무슨 방법을 썼건 초단이가 먹히지 않는다.
그가 말한 도구의 힘을 빌릴 수 없을 것이라던 조건이 들어맞은 탓이리라.
결과적으로 이 어마어마한 힘을 품은 고대룡은 자신의 시험에 나를 초대했고 시험에 응하게 했다.
헤라클래스는 둘째 치고 어쩌면 그라면 이 힘을 더 확실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래의 고대룡 아비트는 내가 틈을 보이기가 무섭게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쿠웅!!
하늘에서 방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모래가루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배경이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리고.
쿠웅!!!
찰나의 순간 주변을 황혼이 지는 사막으로 바꾼 아비트의 포효와 함께 거대한 모래가 일어나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나를 향해 파도치기 시작했다.
“…….”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비틀거린 내가 손가락을 튕겼다.
새파란 마나의 창이 그의 날개를 향해 날아든다.
쿵!! 쿵쿵!!
거대한 폭음과 함께 아비트의 몸에 큰 충격이 가해지지만, 놈은 그 거대한 육신을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끄떡없는 건지.
아니면.
파앙!!
[8서클 화염계]
[프로메테우스]
푸른 화염이 날아든다. 또 한차례 놈의 전신을 후려치지만 역시나 효과는 미미했다.
“마법이 먹히지 않는다라.”
아니 정확히는 초단이로 베었을 때와 흡사했다.
공격이 먹히기는 하되. 어느 정도 거리까지 접근했을 때.
그것이 멈춘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말이다.
“시간은 많지 않다. 하찮은 자여.”
그렇게 말한 그가 날개를 한 차례 펄럭이기가 무섭게 나와 그의 사이에 거대한 모래시계가 낙하했다.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모래에 불안함이 든다.
“이 시간이 다 되기 전에 내게 상처를 입혀라.”
그의 시험은 간단했다.
어디 덤벼서 상처라도 입혀봐라.
실제로 8서클 마법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는 걸 보면 그 이상의 마법이 필요하긴 했다.
“…….”
물론, 맛보기에서 절망할 이유는 없었다.
다양한 방식 중 하나만 먹혀도 이쪽의 승기가 확실해진다.
[8위계 성마법]
[대 성화포]
투쾅!! 쩌엉…….
마치 내 주변을 유영하듯 모여든 신성력이 새하얀 빛의 구체가 되어 이내 거대한 섬광을 만들어낸다.
수차례 날아드는 신성 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낸 아비트가 날개를 한차례 펄럭이자 어마어마한 광풍과 함께 모래의 줄기들이 날아들어 칼날처럼 내게 쏟아져 내렸다.
쿵!!! 쿵!!
겉보기엔 작은 모래 덩어리인데 충돌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세상을 부수고 있었다.
가차 없는 그 공격을 피해내며 가까스로 틈을 만들어낸 나는 곧바로 놈의 머리 위까지 날아올랐다.
동시에 그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마기 개방.”
언령이 내 입을 통해 흘러나오며 주변이 검게 물든다.
[9서클 흑마법]
[갈망하는 자의 구혼]
끄으으으으으으으!!
새까만 빛이 마치 거대한 손이 된 것처럼 그의 얼굴을 향해 쏟아졌다.
신성 마법 성화포는 단순화력도 굉장한 신성 공격계 마법이지만 신성력을 제외한 다른 모든 속성의 저항력을 깎는 효과도 존재한다.
고로, 성화포로 깎인 저항력에 흑마법을 섞는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쿠웅!!!
검은 폭발과 함께 그 여파에 튕겨 나온 내가 바닥을 미끄러지듯 그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후두둑 소리와 함께 침묵하는 그를 보며 내가 다음 마법을 펼치려던 그 순간.
스스스스스슥…….
천천히 흔들리던 놈의 거대한 꼬리가 내 전신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에 내가 피하려던 그 순간.
“어?”
쩌어엉!!!
어떻게 된 것인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꼬리에 맞아 허공을 나르고 있었다.
츠츠츠츳…….
동시에 놈의 거대한 입이 벌어지며 모래가 모여들었고, 이내 고열로 녹아내려 유리처럼 변한 거대한 액체 브레스가 내게 쏟아졌다.
방금. 놈에게 퍼부은 공격은 무언가에 막혔다.
그리고, 그의 공격이 내게 닿을 때. 이질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허공을 나르는 내 시선이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던 모래시계로 향한다.
“아…….”
그제야 왜 공격이 먹히지 않는지를 눈치챈 내가 눈을 감았다.
그렇다고 놈의 장단에 맞춰주는 건 좋지 않은데.
선택에 여지가 존재하는가.
당연히.
없다.
콰아앙!!!
* * *
거대한 브레스에 맞고 흔적도 없어져 버린 그를 보며 아비트가 다시 몸을 웅크렸다.
모래 먼지가 사라지고 난 후에 나타난 데이비라는 인간은 여기저기 잔상처가 가득한 채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거기까지.
힘을 가지고 있던 건 놀랍지만 역시 그에 비하면 너무 미약한 그릇이다.
“나를 구원해준다 하였지요.”
츠츠츠츳…….
이윽고 끝을 내기 위해 그가 브레스를 모은다.
유일한 신의 죄를 지닌 흔적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그가 사라졌다면. 더 이상 저 힘은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된다.
그렇게 여겼던 찰나.
미동도 하지 않던 데이비가 움직였다.
쩌억!!
동시에.
그의 날갯죽지에 커다란 상처가 났다.
“읏?!”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청적색의 검을 쥔 데이비가 서서히 고개를 든다.
그의 표정엔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무아지경에 빠진듯한 무의식.
동시에.
본능적으로 무언가 위기감을 느낀 아비트가 날개를 펄럭여 거대한 모래 폭풍을 만들어냈다.
파악!!!!
하지만. 곧 그가 만들어낸 모래폭풍이 막대한 힘에 의해 그대로 파훼 되어버린다.
“크흠!!”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낀 아비트가 급히 브레스를 쏘아 보내려 했지만 그보다 데이비가 빨랐다.
“무슨 속도가?!”
언제 여기까지 다가왔는지 모를 어마어마한 속도.
어떤 방법을 통해서? 아니, 이건 단순히 도저히 인간이 지닐 수 없는 육체능력만을 이용한 힘이다.
제아무리 단련한 인간이라도 이런 수준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할 텐데.
쩌엉!!!
반응하기도 전에 날아든 그의 주먹이 아비트의 머리에 꽂혔다.
상상하지 못할 충격파에 그의 거대한 형체가 휘청거렸다.
“커헉?!”
쿠우웅!!!
거대한 머리를 그대로 떨어뜨리며 비틀거린 아비트의 눈에 혼란이 서렸다.
대체 무엇인가.
속도가 빠른 것도 이해했지만. 직접 맞아본 그의 일격은 너무 무거웠다.
이 정도의 힘을 마구잡이로 발휘하는 괴물은 아비트의 기억에는 하나뿐이었다.
“인간이…… 안타레스 급의 힘을 지닌 것인가.”
경악스러운 상황. 그럼에도 아비트는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거대한 피어를 터뜨렸다.
“감히!! 편법으로 시험을 통과하려 드는가!! 하찮다!”
그의 격한 포효가 데이비의 형체를 잠시 움츠러들게 했지만 아주 잠깐뿐이었다.
쩌엉!! 쩡!!
계속되는 공격에 아비트의 형체가 점차 크게 휘청거렸다.
본체의 크기에 비하면 극도로 미약한 크기이지만 그가 품은 힘은 그 작은 크기에 어울리지 않았다.
‘공격이…… 방어를 하기 전에 뚫고 들어온다!’
그렇다면.
후웅!!!
복잡한 생각을 하던 와중 그는 마치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높게 점프해 낙하하는 데이비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방어하기엔 늦었다.
그렇다면 남은 수단은 하나.
그의 본질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시간이 내 발 아래 있노라.]
쩌억!!
그 말과 함께.
허공에서 추락하던 데이비가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 아비트를 제외한 세상 모든 것이 여기서 멈춰버렸다.
“크헉…… 컥…… 큭…… 끔찍할 정도의 힘이군.”
이쯤 되면 확실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봐도 눈앞의 이 인간은 흉신 안타레스.
고대시대에 젊은 고대룡을 둘이나 때려죽인 그 괴물 황소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안타레스는 그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받고 홀로 나선 고대룡의 수장 중 하나인 이클립스에게 곧바로 격추당했지만.
흉신 즉 상위 아틀란티스는 엄연히 고대룡에게 맞설 수 있는 소수의 종족이었다.
분명 그들은 프리아 여신이 강림하고 모조리 봉인되었을 텐데?
잃어버린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동안 바깥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숨을 헐떡이며 거대한 몸체를 움직인 그가 천천히 데이비를 향해 다가간다.
“뭐가 되었건 이런 식이라면 이야기가 복잡해지겠구나…… 그의 힘을 흡수하고 직접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아니. 아직 안 끝났다.”
그때였다.
방금 전까지 완전히 굳어있던 세계에서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웅!!
그리고. 그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가만히 있던 데이비가 정확히 그를 향해 낙하했다.
“안타레스를 쳐죽일 때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고생할뻔했어.”
그 말과 함께.
아비트의 전신을 짓누르는 막대한 금기의 힘, 즉 신의 죄가 퍼져나가며 그를 압박했다.
좀 전까지 그가 품고 있던 신의 죄와는 완전히 다른 지독하게 무거운 힘이었다.
마치 그동안 억누르던 것을 고스란히 퍼뜨린 것처럼.
그가 간섭하는, 그가 지배하는 시간을 모조리 거부하고 데이비가 움직였다.
쩌어어엉!!!
모래시계가 박살 나며 거대한 아비트의 형체가 크게 휘청거리고 쓰러졌다.
서서히 쓰러지는 초거대 드래곤의 눈에 데이비가 담긴다.
그가 가진 금기의 업. 즉 신의 죄는 헤라클래스와 그 분위기가 달랐다.
오히려. 현재 아비트가 가장 갈망하는 성질을 품고 있었다.
“아…… 아아…… 그렇군.”
그제야 이해한 듯 그가 편안한 목소리를 냈다.
“당신은…… 약속을 어긴 게 아니었군요. 헤라클래스. 당신과의 약속은 그를 기다리기 위함이었습니까.”
그렇게 말한 아비트의 거체가 서서히 일어난다.
“모래와 시간을 중재하는 자 고대룡 아비트, 지금부터 2대 맹주인 당신께 충성을 맹세하오니. 합리적인 명령을…….”
의아한 표정을 짓는 데이비를 향해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됐고. 여긴 어디야.”
그 물음에 아비트가 조용히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우선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제가 태어난 고룡의 둥지에서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을…….”
“그만.”
짧은 침묵이 오갔다.
싸늘하다. 가슴속에 어마어마한 수다의 낌새가 느껴졌다.
“길게 말고, 짧게.”
“아아…… 어찌 그런 가혹한.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이 늙은 용의 이야기도 듣지 못하시나이까.”
“지금 여기서 밖에 튀어나간 뭐가 있거든? 그거 위험한 거 아니야?”
내 말에 그 거대한 용, 아비트의 표정이 굳었다.
“그렇군요. 제 통제를 벗어난 변이체가 나가면 큰일 날 텐데.”
“위험한 건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가 거대한 앞발을 가볍게 내리쳤다.
쿵!!!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붉은 안개의 공간이 일그러진다.
“맹주께서 죽이시면 됩니다.”
“거 더럽게 간단하네.”
“다만 그전에.”
짧게 침묵한 그가 자신의 몸 바로 앞에 빛을 모았다.
“맹주의 육신은 혼과 괴리가 존재하는군요. 약조대로 제 마지막 혼을 불태워 당신의 육신을 강화시켜드리겠습니다.”
이클립스를 상대할 수 있는 키워드가 빠르게 모여들고 있다.
마치 누군가가 짜놓은 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