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4화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대머리의 여성형 흉신이 흠칫하며 내게서 물러났다.
촤르르르륵!!!
하지만 사방에서 떠오른 카드들이 일순간 사슬들을 쏘아 보내 그녀를 제압했다.
“이깟 거!”
당황한 낌새를 숨기지 못한 채 그녀가 힘을 방출하기 시작하자 허공에서 수십 개의 눈동자가 눈을 뜨며 주변을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무형의 물리력.
다른 말로 염동력이라고 하였나.
이렇게 순수한 염동력은 마법 중에서도 극소수로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내가 만들어낸 사슬들을 강제로 끊어내려는 듯 힘을 방출하자 곧이어 사슬들이 파르르 떨리며 하나둘 끊어지기 시작했다.
“잠식되기도 했고, 계약자도 없다곤 하지만 환수왕도 쉽게 못 끊는 사슬인데.”
“흥! 들은 것 치고는 제법인데? 노는 재미가 있겠어.”
콰창!!
이윽고 사슬들을 다 끊어내 버린 그녀가 스산하게 웃어 보였다.
동시에 무형의 힘이 내 전신을 감싼다.
마치 바이스로 몸을 잡은 것처럼 단단하게 유지하는 그 모습에 그녀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때? 움직이기 쉽지 않지?”
그녀는 일대 영역을 완전히 장악한 듯 보였다.
푸른 빛의 테두리가 둘린 물건들이 그녀의 주변을 마치 유영하듯 떠오른다.
“염동력이라는 건 정신력의 일종이거든. 나는 우리 종족 중에서도 염동력을 가장 잘 다룰 수 있으니까.”
“그래서?”
“널 어떻게 해줄까? 카트시 님은 네게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 했지만…… 난 네게 흥미가 있거든.”
그녀가 스멀스멀 다가온다.
“그 전에…….”
그때 그녀의 신경을 거스르는 무언가가 있었는지 그녀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방해꾼은 좀 사라져 줘야지?”
콰앙!!!
동시에 사방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허공에 떠 있던 빛을 반사하며 투명하게 숨어있던 헬기들이 대거 폭발해나갔다.
“자! 방해꾼은 없어졌네? 자기, 다시 보니까 내 취향이다.”
스멀스멀 다가와 그녀가 입을 살짝 벌리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길이의 혀가 스멀스멀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내 뺨을 핥을 것처럼 다가왔다.
“저항하지 마. 어차피 못 움직이니까…… 키키키킥.”
스산하게 웃어 보인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오트가르스라고 해. 당신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지 뭐야.”
자신을 소개하며 다가온 그녀의 모습에 나는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음?”
이에 그녀가 멍하니 고개를 들었고.
이내 하늘에 떠 있는 백색의 구체 몇 개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게 뭔…… 흡?!”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깨달은 듯했다.
그녀의 염동력 속에서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이이이!”
그제야 자신이 속았고, 하늘에 유영하는 저 빛덩어리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그녀가 내게서 다시 거리를 벌리려던 찰나였다.
“염동력이 참 좋긴 하지.”
지이잉!
“근데 굳이 염동력이 아니라도 비슷하겐 할 수 있거든.”
동시에 그녀를 중심으로 사방에 수십 수백 장의 빛으로 이루어진 카드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뇌광을 머금은 부적들이 날아든다.
[1급 대 주술]
[천벌]
콰지직!!
-캬아아아악!!
끔찍한 비명 속에 그녀가 몸을 버둥거렸다. 아주 잠깐 번뜩인 스파크만으로 피부가 검게 타버린 그녀가 비틀거렸다.
“운 좋은 줄 알아. 보통 머리카락은 단백질인 경우가 많거든. 보통 같으면 방금 벼락 한 번에 머리가 폭탄이 되었거나 싸그리 불타버렸을 거다.”
물론, 어차피 대머리라 의미 없지만.
“이…… 이익!!”
내 반격에 그녀가 격분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르르르르륵!!
기다렸다는 듯 빛으로 된 카드 속에서 처음 그녀를 구속했던 사슬들이 날아들어 그녀의 머리, 팔, 몸, 촉수 하나 할 것 없이 모조리 휘감아 구속해버렸다.
“크윽?!”
처음보다 그 수가 훨씬 늘어나자 그녀가 실핏줄이 돋을 정도로 용을 쓰며 벗어나려 애쓴다.
하지만.
그녀는 이 사슬의 구조를 몰랐다.
그리고.
그 구조를 모르는 약점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옭아맸다.
상대의 힘을 빨아들이고 더 강하게 포박하니까.
그녀는 본인도 모르게 자신의 힘을 빼앗겼고 서서히 옭아매져 갔다.
“저 위에 저게 뭔지 모르지?”
“너어!!”
“모르면 맞아야죠.”
[9서클 무 속성계]
[질량 가속]
혼과 육신의 괴리가 사라진다는 말은 단순히 마나 양이 늘어난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얻은 깨달음을 구현할 수 있는 육신이 준비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으드득!!
세 개의 광원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가속하며 그녀를 휘감았다.
그리고,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대규모 질량에 간섭해 영역 내의 모든 질량을 강제 가속시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 더 간다.”
그 말과 함께 내 전신으로 삼차원식 마법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내 손을 따라 움직이는 마법진들은 서로 겹치거나 어긋나며 또 하나의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자연재해 시리즈]
[날벼락 부르기]
전엔 한 번에 정신줄 놓고 기절할 정도였지만. 이제는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 마법.
하늘에서 보랏빛 벼락들이 한자리에 뭉쳐 그대로 그녀를 향해 추락했다.
안타레스보다 조금 상위 서열이라 해도 케인의 말대로라면 상위서열끼리는 큰 전력 차이가 없다 하였나.
죽일 수는 없을지 몰라도 치명상은 분명하리라.
어쩌면 안타레스보다 방어력이 떨어져 죽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콰지지지지직!!!
캄캄하던 밤하늘을 한순간 환하게 비출 정도의 거대한 뇌광의 줄기가 그녀를 향해 정확히 내리꽂혔다.
* * *
정확히 말하자면 오트가르스는 도망쳤다.
튀는 실력 하나는 잽싸다고 말하고 싶지만, 정확히는 내가 놓아준 꼴이었다.
오트가르스 자체는 모르겠지만.
이전에 만났던 흉신 서열 1위로 추정되던 소년은 달랐다.
아직 지구에 제대로 현신하지 못했을 거라던 내 생각과 달리 그는 이미 지구에 자신의 본체를 현신했고, 내가 오트가르스를 지져 죽여버리기 직전 난입해 그녀를 데리고 도망쳤다.
물론 그냥 보내준 건 아니었다.
애초에 놈이 사라진 방식은 내가 가진 방법으론 추적이 힘들었으니까.
신력이라도 심어두는 방법이 있겠지만 역으로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기에 이런 위험한 방법을 채택할 순 없었다.
쿠웅!!!
게다가 이 용의주도한 놈은 도망치면서 그냥 도망친 것도 아니었다.
모종의 힘을 이용해 이대 영역을 모조리 비틀어 터뜨리는 힘을 남겨놓았고 결국 신력을 사용해 그것을 비틀어 튕겨내는 게 전부였다.
[아아…… 카트시라니…… 프리아 님 맙소사…… 저 괴물이 살아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나이다.]
그때 내 귓가에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트시?”
‘[그렇습니다. 맹주. 아틀란티스의 왕. 흉신의 서열 1위라 불리던 존재이며, 겉 외향과 다르게 단신으로 고대룡 장로 여덟 분을 영면에 들게 한 자입니다. 아직 휴면상태인지 제대로 힘을 발현하진 못한 듯하지만…… 적어도 이클립스 님께 유일하게 저항하던 흉신입니다.]
노인, 아비트의 목소리에 나는 언제 왔는지 어깨에 앉아있는 작은 노인의 형상을 바라보았다.
“붉은 공허라고 했나? 거기서 나올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주 잠시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길진 않지만 제가 그 변이체를 찾는 데 도움을 드리지요. 한데 카트시라니…….]
“일단 놈은 됐어. 그 도망친 놈부터 쫓지.”
[이곳에서 서쪽입니다. 다만 오트가르스가 큰 사고를 치고 갔군요.]
그 말에 내가 지면을 내려다보았다.
쿠구구구구구궁!!!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지면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오트가르스의 주특기입니다. 지반의 축을 뒤틀어 대지진을 만들어내지요. 그녀의 힘이 사라져도 어마어마한 대지진이 일어날 겁니다.]
지면에?
나는 노아스에게 의념을 보냈다.
‘처리 가능해?’
[남은 힘이 방해하고 있다. 힘이 더 필요하다 계약자.]
부수는 건 쉽지만 진정시키는 건 쉽지 않다.
정령왕만으론 힘들다 이거지.
그렇다면 땅의 힘을 다루는 놈을 지원해주리라.
나는 신마의 카드첩에 봉인되어있던 놈을 그대로 풀어놓았다.
쿠웅!!!
동시에 거대한 빛과 함께 거체의 존재를 구현화 시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검은 비늘을 가진 지룡이 빌딩을 부술 듯 포효를 하기 시작했다.
폭주한 것처럼 막무가내로 날뛰는 존재.
지폭룡 샨드라미네아였다.
놈은 대지의 속성을 강대하게 품고 있다.
아직 울드의 잠식에서 해방되진 못했지만, 노아스의 배터리 용도로는 충분하리라.
천천히 놈을 향해 손을 뻗어 올린 내가 손가락을 튕겼다.
“10코스트 마법이다. 이 말이야.”
[9서클 흑마법]
[정신지배]
정밀한 명령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당장 배터리 용도의 힘은 확실히 드러내라.
샨드라미네아와 눈을 마주치기가 무섭게 내 몸에서 빠져나간 검은 사령 마나가 샨드라미네아의 몸속에 스며들었다.
정신지배의 경우 지능이 나쁠수록 더욱 큰 효과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나를 보기가 무섭게 날뛰려던 샨드라미네아는 곧 그 멍청한 지능 탓인지 제어가 되기 시작했고 이내 땅의 힘을 끌어내 사방에 방출하기 시작했다.
[터무니없는 힘이군. 이 정도면 충분하다 계약자.]
“절대 부수지 마. 희생자는 이 정도면 충분해.”
내 말에 노아스의 힘이 발현되며 뒤틀리고 부서지던 지면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다 된 것입니까 맹주.]
“그래. 이제 그놈을 찾자고.”
콰앙!!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 날아오른 내가 아비트의 안내를 받아 놈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중간에 방해꾼이 끼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말이야. 아비트.”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말씀하십시오. 맹주.]
“헤라클래스. 그 인간은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내 물음에 그가 조용히 침묵했다.
[저로선 맹주의 질문 의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그 양반 뭐하던 인간이었냐고.”
내 물음에 그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요…… 제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인간의 황자였습니다. 고리타분하지만 연금술에 극도의 조예를 보였던 홀른(인간) 족의 황자.]
“그 양반이?”
매번 상의 탈의하고 다니는 그 노출광 변태가?
의뭉스레 그를 보자 그가 쓸쓸하게 웃어 보였다.
[뭐. 1대 맹주이자 제 대부인 헤라클래스…… 그도 처음엔 그렇지 않았지요. 현왕의 재목이라 불리던 인물이었습니다. 누이였던 프리아 신녀가 죽게 된 원인인 대 종족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허허, 그러고 보니 그가 전쟁이 벌어지기 전 저희 종족과 교류를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저희도 인간족과 적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프리아…… 신녀…….”
[참. 맹주께서 싸운 이클립스 님의 부군이 바로 그입니다.]
뭐?
나는 순간적으로 거구의 헤라클래스와 나보다 훨씬 작은 소녀인 이클립스를 떠올렸다.
뿌득.
“이 개 같은 인간,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창을 꽂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