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6화
206. 환각 속의 내비게이터
아비트의 존재는 나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듯 보였다.
“데이비 님?”
“륀느, 이 영감이 안 보여?”
“륀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보고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
“네가 안 보이는 건가?”
[저는 정신체일 뿐입니다. 륀느 님이라도 저를 볼 순 없겠지요. 한데 어째서 륀느 님이…….]
“지하유적에서 깨웠어.”
[그럴 리가요. 프리아 여신을 강림시킨 대가로 륀느 님은 영혼이 사라졌을 텐데…… 크흠! 맹주. 그보다 이렇게 시간을 끌면 변이체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찾을 건데?”
애초에 놈은 극상성인 내가 놈을 찾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디코이를 이용해 요란스럽게 도망쳐버린 것이고.
그렇다면 어지간한 방법으론 찾을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을 염두에 두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것은…… 죄송합니다. 맹주. 제가 좀 더 잘 보필했더라면…….]
“아니, 그보다 놈의 특성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봐.”
내 물음에 륀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데이비 님?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는 버릇은 광인처럼 보인다고 분석해.”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상황은 어때?”
“륀느의 고도 감지능력을 높게 평가. 대상이 안정되었다고 보고.”
변이체가 되었다가 본래대로 되돌아온 삼촌.
본래 한번 변이하면 돌아올 수 없지만 나는 그를 살리기 위해 고이 간직해두었던 엘릭서를 사용했다.
랜덤 박스가 효과가 있다면, 언젠가 다시 얻을 테니까.
나의 귀환을 알리겠다는 듯 륀느가 쪼르르 날아 저택 안으로 들어간다.
[역시 륀느 님과 흡사하군요. 표정이 조금 굳은 게 다르지만…… 분위기는 역시 륀느 님이 맞습니다.]
“네가 아는 그 륀느는 죽었어. 지금 륀느는 다른 존재고.”
본판이었던 세피로스가 어떠했건 지금은 생체 골렘이자 연금술의 정수가 섞인 골렘이다.
그 사실은 변치 않으리라.
“그보다 그 변이체에 대해 좀 말해보라고.”
[맹주의 말대로 맹주께서 자신을 쫓는 걸 알았으니 아마 필사적으로 도망칠 테죠. 함정을 치지 않고서야 일반적인 방법으론 놈을 잡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것만이라면야.
[그 외에 유념할 점이라면 먹어치운 자의 힘을 사용한다는 점일까요.]
“그래.”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모두가 잠든 저택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스르륵……
그리고는 엘릭서를 먹고 본래대로 되돌아온 삼촌이 누운 침대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맹주, 지배자로서 항상 평정을 유지하셔야 합니다.]
“닥쳐, 아비트.”
아비트의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잠든 삼촌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세월의 피로가 스며든 얼굴이지만 고통은 보이지 않았다.
편안하게 잠들어있지만 의사로서의 소견으로 꼽자면 그의 인격이 멀쩡할 확률은 사실상 희박했다.
“으으…… 삼촌…….”
잠든 채 웅얼거리는 건 현아였다.
그녀는 삼촌의 침대에 엎드린 채 잠들어있었다.
“오징어가 차가운 바다생물이라고 자기도 추위에 면역인 줄 아나.”
짧게 중얼거리며 그녀를 안아 든 나는 말 없이 그녀를 그녀의 침실에 데려다 놓았다.
큰일을 겪은 탓인지 그녀는 내가 그녀를 안아 들어도 전혀 깨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시금 삼촌이 있는 방으로 와 그를 말 없이 바라보았다.
“사람이 좀 쉬어가면서 살 줄 알아야지.”
지친 얼굴에 거친 수염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속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꼴이 퍽 우습습니다…….”
내 중얼거림에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는 게 맞으리라. 나는 현아가 앉아 잠들어있던 의자에 앉아 그를 말 없이 바라보았다.
너무도 오래된 기억 속에서 삼촌이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였다.
부모님보다 더 부모님 같던 사람.
친부모님의 사랑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지만, 얼굴도 제대로 모르던 조카들을 위해 외국에서 고생하며 돈을 보내주던 사람의 가족애가 적을 리 없다.
반대로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너무도 부족했다.
특수한 병이라는 특성 때문에 병원의 지원을 받고 자료를 제공해준 것도 사실이지만 주기적으로 치료비를 붙여주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삼촌이.
“눈 좀 떠봐요.”
이토록 초라한 몰골로 내 눈앞에 누워있다.
“현아는 정말 잘 컸더라고요. 그 왈가닥 세발낙지 같은 게 의사가 될 거라고 교육받고 있는걸 보니 기분이 묘하네요.”
대답은 없었다.
“또 연희 누나도 봤습니다. 누나는 참…… 예전부터 예뻤죠. 마음씨도…….”
비록 전생의 가족이라 해도 내 기억이 존재하는 한 그 연이 끊어지는 건 아니다.
나는 말 없이 삼촌의 손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내가 여길 지켜줄게요…….”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직…… 삼촌만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 둘이나 있잖아요, 안 그래요?”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린 나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통 소설 같은 데에선 여기서 손가락 하나 까딱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스개 소리하듯 말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푹 쉬어요.”
그리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연희 누나도, 현아도, 그리고, 고맙단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했던 삼촌도 보았다.
케인의 입장에선 심연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절대보옥의 활성화에 쓰일 엘릭서를 써버렸으니 입맛이 쓸 것이다.
그의 입장에선 의미 없는 인간 한 명의 치료행위보다 세계 전체의 조율이 더 효과적일 테니까.
하지만 그걸 정하는 것도, 그걸 판단하는 것도 그의 몫이 아닌, 나의 몫인 만큼 불만을 표할 순 없으리라.
지금에 이르러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이미 답은 내려져 있다.
[맹주.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놈을 잡지 못하면…….]
“아비트. 반대로 놈을 내 제어에 놓을 순 없나?”
놈은 특정 주파수를 찾아 이동을 감지하고 도망친다.
만약 이놈이 나에 한정하여 도망치는 게 아니라 인지한 존재의 위치나 이동을 파악할 수 있다면?
놈을 제어하에 놓게 된다면 내가 찾기 힘든 흉신의 소재를 계속해서 찾아낼 수 있다.
즉.
변이체를 통해 시간을 끄는 개수작을 부리는 놈들의 계략을 단번에 부숴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제어에 놓을 수만 있다면. 완벽한 탐지기가 될 수는 있겠지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문제는 놈을 잡아 제어하에 놓는 방법인데.
[무슨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하시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놈을 잡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그렇게 위험한 존재를 제어하에 놓는다는 것은…….]
“해결법이 있어.”
놈이 무슨 수를 써서 도망치건. 그건 내 편에 서 있는 둘의 힘을 이용하면 충분하니까.
나는 어지간해선 사용하지 않을 통신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지구로 올 때 따라온 한 인물과 직통으로 이어지는 수정구였다.
“나다. 바쁜 건 알겠는데. 일 좀 하자.”
* * *
일본 혼슈 지방.
오사카 지역에서 한 청년이 휘적휘적 걸어 어디론가 향한다.
그는 인적이 드문 폐건물 지역으로 조용히 향했고 한 손에 든 무언가를 마구잡이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바로 붉은 공허에서 빠져나온 변이체였다.
변이체는 계속해서 세상에 퍼져나가는 한 존재의 힘을 파악하고 도망치고 있었다.
잡히면 죽는다. 살아남기 위해선 도망쳐야 한다는 간단한 본능이 그를 계속해서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쪽 세상엔 그가 판단하기 어려운 힘을 지닌 존재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짜드득…… 짜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살점을 뜯어먹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피가 잔뜩 묻은 입가를 스윽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쪼…… 쫓아오지 않는가.”
어눌한 발음으로 중얼거린 변이체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놈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붉은 공허의 지배자가 처음엔 쫓아오더니 이제는 쫓아오지 않고 있다.
그 말인 즉 당분간은 안전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뜨득…… 뜨드드득…….
추욱 늘어진 인간의 살점을 마구잡이로 뜯어먹는다.
계속해서 성장하는 그는 이곳까지 오며 닥치는 대로 인간을 먹어치우되 절대 눈에 띄는 짓을 하지 않았다.
지배자가 그를 찾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
“흡?!”
그때였다.
식사에 열중하던 놈의 눈이 부릅 뜨여지더니 그대로 폐건물의 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가 무언가를 느낀 듯 도망치려 할 때.
거대한 굉음과 함께 수십 발의 섬광이 그의 주변에 내리꽂혔다.
쩌어엉!!! 쩡!!
엄청난 폭음.
진동.
갑작스런 습격에 놀란 붉은 변이체는 나름대로 지능을 굴려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부서진 천장의 위로 보인 하늘엔 거대한 힘을 응축하고 있는 배가 보였다.
배…….
그래 인간의 지능 속에 있던 배가 분명 맞다.
거기다 그의 온 신경을 날카롭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곁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지배자가 어떻게 여기에?!
지배자가 내뿜던 파장은 분명 이곳과 한참 멀었다. 그가 마음먹고 쫓아와도 도망칠 수 있을 정도의 거리.
그렇기에 따로 디코이도 만들지 않고 본체로 움직였건만.
어떻게.
“도망 잘 치더라? 네 능력 참 탐이나.”
“칵!!”
괴로운 듯 붉은 변이체가 버둥거렸다.
섬광처럼 다가온 붉은 눈동자의 청년이 그의 목을 틀어잡은 채 빙그레 웃어 보였다.
피가 묻은 것을 제외하면 둘 다 똑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 힘부터가 달랐다.
“거 내 모습으로 변한 건 조금 건방지네.”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투기에 변이체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그에게서 벗어나 도망치려 했다.
차르르르르릉!! 콰앙 쾅!!
하지만.
허공에서 튀어나온 검은 사슬들이 그의 몸을 관통하여 바닥에 꿰어버렸다.
“어…… 어째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기괴하게 꺾으며 변이체가 중얼거렸다.
“어째서 여기 있냐고? 너 속은 거야 멍청아.”
그의 파장은 세계 반대편에서도 그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파장의 경로에 누군가가 간섭한다면?
마술, 즉 현실을 왜곡하는 심연의 공주. 베르단데.
그녀의 힘과.
미약하지만 예지를 이뤄내는 존재. 각성자 코오나의 힘이 뒤섞이면 놈을 찾는 건 어려울 것도 없었다.
결국, 놈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파생되는 지배자의 파장만 보고 착각한 채 도망치지 않고 있다가 그대로 잡혀버린 것이다.
“사…… 살려…… 주…… 죽기 싫…….”
어눌한 발음으로 그가 필사적으로 생존을 부르짖었다.
이에 데이비가 빙그레 웃으며 그를 놓았다.
“걱정 마. 넌 소중한 내비게이션이야.”
전쟁의 판도를 뒤엎을.
이윽고 데이비의 눈이 붉게 번뜩였다.
그리고. 데이비의 곁에 있던 아비트가 미약한 간섭력을 발휘해 그에게 스며들었고.
이내 그가 그대로 털썩 쓰러졌다.
“이거면 됐나?”
의식을 잃고 쓰러진 변이체를 보며 데이비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이제 흉신의 파장만 암시해두면, 놈은 흉신들을 찾아 이동할 겁니다.]
“그래? 그럼 이건 됐고, 쓸데없이 뭔가를 잡아먹는 포식은 못 하게 막아두자고.”
특수파장을 찾아 반대로 도망친다.
거기에 암시와 세뇌를 가해 반대로 흉신의 파장을 찾아 쫓도록 만든다.
본인은 내 파장을 찾아 도망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흉신의 파장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꼴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윽고 데이비는 놈을 죽이지 않고 미련 없이 벗어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암시가 걸려버린 놈은 천천히 일어나 흉신의 파장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후각이 뛰어난 개에게 냄새를 인식시켜준 것과 같은 꼴이었다.
“도…… 도망…… 도망쳐야 해…….”
이윽고 붉은 공허의 지배자에 대한 공포가 떠오른 붉은 변이체는 형체까지 일그러뜨리며 빠르게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그 꼴을 보고 있는 이도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