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8화
극심한 부상을 입은 흉신 오트가르스는 몸의 떨림을 주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일방적인 폭거.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었다.
비록 많은 시간을 봉인 당해 잠들어있었다지만 오트가르스는 한때 공포의 상징으로 불려왔던 존재였다.
그녀의 염동력을 막을만한 존재는 사실상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인간은 달랐다.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인간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그녀는 고대룡 대전 이후로 느껴 본 적 없던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저 내가 아직 소환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이야.”
멍청한 근육 뇌 안타레스도 그렇게 당하지 않았던가.
그가 소환 직후라 약했던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 인간에게 당할 리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전력에 대해선 이미 수차례 본 바 있기에 그녀가 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절대.
그 짧은 시간 안에 그가 갑자기 그렇게 강해지는 건 불가능하다 여기는 그녀였다.
“오트가르스.”
그때 멀리서 나타난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고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부른 존재를 확인했다.
“카…… 카트시 님!”
“몸은 괜찮습니까?”
오트가르스는 흉포하게 흐느적거리던 촉수를 가지런히 정리한 채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 그렇습니다! 이제 만반의 준비를 갖췄습니다. 다시는 그 인간에게 당할 리 없을 겁니다.”
“아니요. 당신은 아직 위험합니다. 잊지 마세요. 그 홀른은 지금껏 저희가 상대해온 어떤 홀른보다 강합니다.”
“그래 봐야 홀른(인간) 아닙니까. 카트시 님, 어찌하여 그리 인간을 두려워하십니까. 당신과 제가 온전한 상태라면…….”
“그는 프리아의 대리자입니다. 어쩌면 저희가 모르는 또 다른 한 수를 숨겨놔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안타레스가 당한 건 그가 멍청했기 때문입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이제 저희 동족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흥. 약해빠진 동족들은 다시 만들어내면 그만입니다. 카트시 님. 걱정 마십시오. 이곳에 있는 건 절대 놈이 찾아낼 수도 없을 것이고. 설사 어렵사리 찾아낸다 해도 절대 방해하지 못할 겁니다.”
“나는 당신이 더 걱정입니다. 오트가르스.”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카트시의 말에 오트가르스는 무슨 감동이라도 받은 듯 눈물을 꾹꾹 짜냈다.
“아아…… 나의 주군, 나의 카트시 님. 언제고 당신을 따르겠어요.”
붉어진 얼굴로 양손을 모아 기도하는 듯 말하는 그 모습에 카트시는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아아…… 나의 동족이여. 현재 그 홀른이 동양 쪽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저희들의 위치와 진위를 파악하지 못한 그 순간이 절대적인 기회. 걱정 마십시오.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계략은 그가 알아채기 전에 끝날 겁니다.”
“카트시 님. 말씀하신 결계가 완성된 듯합니다. ”
서열 4위의 오트가르스.
서열 1위의 카트시.
그리고. 또 하나.
정체불명의 힘을 머금고 있는 상위 서열의 흉신이 나타나 카트시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왔습니까. 레우셀. 그 인간 조직은 어찌하고 있답니까.”
“예, 카트시 님. 놈들이 변이체의 수를 늘려 몬스터와 협공하겠다고 답변을 주었습니다.”
“좋군요. 다만 그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홀론(인간) 종족입니다. 그러니 조심하여야겠지요. 이곳은 두 분께 맡기고 저는 급한 일을 하겠습니다. ”
그 말과 함께 카트시의 신형이 사라져버렸다.
“흥. 어차피 이곳을 그 인간이 찾을 리 없지.”
오트가르스의 중얼거림에 레우셀이라 불린 또 다른 상위 흉신이 침묵했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레우셀의 입장에서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지잉…….
갑작스런 파장이 느껴진다.
그리고.
본능적인 위기를 눈치챈 오트가르스가 벌떡 일어나기가 무섭게.
새하얀 빛의 창이 수차례 그들이 있는 지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커억?! 이 무슨?!”
“스…… 습격이다!! 놈이 어떻게 이곳에?!”
경악한 두 흉신이 대비하듯 모든 기세를 끌어올렸다.
먼저 반응한 것은 힘의 주인을 눈치채고 두려움에 몸이 굳어버린 오트가르스가 아닌 또 다른 상위 흉신. 레우셀이었다.
오트가르스의 시선에 허공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빛의 굴절? 빛의 반사? 그딴 것이 아니었다.
저 눈앞에 보이는 일렁임은 상위의 힘으로 이루어진 인식 저해. 인식왜곡.
도저히 상식적으론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계통의 힘이었다.
츠츳…….
이윽고 일그러진 허공이 완전히 사라지며 그 안에서 한 청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대체 어떻게 그가 여기에?!
그녀를 한 차례 죽음까지 몰아넣을 뻔했던 증오스러우면서도 공포스러운 인간이 미소를 지으며 두 흉신을 내려다 보는 게 보였다.
분명 카트시는 그가 동양 쪽에서 아직 자신들의 소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프리아 여신이 알려준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아무리 신이라도 되는 게 있고 안되는 게 있으니까.
파아앙!!!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어떻게 찾아왔는지 모르나 가루로 만들어주지!”
그때 겁에 질린 오트가르스를 대신해 다른 흉신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레우셀은 안타레스와 흡사하지만, 무려 서열 3위에 해당하는 강자였다.
오트가르스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사실상 전력으로 쳐도 그녀보다 한 수 위의 흉신이 바로 그 존재였다.
그의 방어력은 어지간해선 뚫을 수 없고, 응축된 방어력을 공격으로 바꾸어 쏟아붓는 그 힘은 재앙에 가깝다.
하지만. 오트가르스가 한 모든 예상은 너무도 가볍게 뒤집혀 버렸다.
“커헉!!”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레우셀이 피투성이가 된 채 소년이 던진 창에 꿰여 지상에 처박혀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이럴 순…… 없!”
“있어.”
쿠웅!!!
그리고. 겁에 질린 오트가르스가 등 돌려 도망가기가 무섭게 하늘에 떠 있던 홀른족 청년이 빛처럼 날아들며 그녀를 발로 걷어차 지상에 처박아버렸다.
“둘밖에 없어? 분명 한 놈 더 있었는데?”
마치 다 알고 왔다는 듯.
바닥에 쓰러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오트가르스는 비명을 내질렀다.
대체 어떻게 여길 알았고, 대체 어느 틈에 이곳까지 온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였다.
* * *
순식간에 두 흉신에게 큰 타격을 가하는 것까진 좋다.
선빵필승이라고, 먼저 제대로 한번 후려치면 우선권은 이쪽으로 오게 될 테니까.
다만, 확인된 흉신은 고작 둘.
분명 이곳에서 카트시의 기운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놈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나는 방심하지 않고 쓰러진 놈들이 일어나는 동안 다음 마법을 소리 없이 준비했다.
“크윽! 이 빌어먹을 홀른 놈이!!!”
이윽고 쓰러져 있던 민머리의 거구를 지닌 흉신이 몸을 일으키며 거대한 힘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무식한 육체파라고 말하듯 놈이 그대로 덤벼 들어왔다.
코로나 디스트로이어로 방어를 파괴하고 일격을 가했지만 핵죽창의 파괴력만으론 놈을 죽이기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애초에 그럴 수밖에.
고대룡에 준하는 힘을 지닌 존재가 바로 상위 흉신이다.
비록 그 힘이 과대평가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약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해 못 할 상황도 아니었다.
애초에 놈들의 차원이동은 나와 같이 안정적인 케이스가 아니니까.
“슬리지아를 죽인 게 이렇게 두고두고 도움이 되네.”
승산 자체는 충분했다.
나는 순식간에 주변을 짓누르는 오트가르스의 염동력을 저항하며 내게 돌진하는 또 다른 흉신을 향해 전진했다.
[칭호, 파괴자를 장착.]
파괴적인 물리력을 동반하던 흉신 안타레스의 힘이 내 전신에 깃들기 시작했다.
쿠웅!!!
“크으…… 이런 짓을 하다니.”
망설임 없이 그와 주먹을 맞부딪혀 서로 힘겨루기를 시작한 내가 나머지 한 손을 놈의 팔을 잡아 제지했다.
“그깟 홀른의 힘으로 내 힘을 막을 성싶으냐! 기습공격은 칭찬해주마!!”
그렇게 말하며 그가 괴성을 지르고 더욱 힘을 가한다.
서서히 내 쪽이 밀리기 시작한다.
예열이 덜되었다곤 하지만 버프 마법까지 걸어둔 근력으로도 밀리는 꼴이 거지 같다는 건 변함없는 진실이었다.
“아직 예열이 덜됐구나.”
힘이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어쩌면 이 흉신 또한 안타레스와 비슷한 힘으로 싸우는 케이스일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흉신 안타레스의 서열은 5위. 오트가르스를 포함한 다른 흉신들은 어떤 면에서건 안타레스보다 상위의 존재였기에 그렇게 책정된 것일 터.
방심할 순 없었다.
츠츳…….
내 팔을 꺾어 제압하고 일격을 가하려는 그에게 그대로 끌려가듯 힘을 풀어낸 나는 미리 캐스팅해둔 마법을 발현했다.
[9서클 사령 마법]
[왕의 뼈 창]
까드드드득!!
검은 사령 마나들이 모여들어 마치 뼈의 창처럼 변해 놈의 몸을 순식간에 꿰뚫었다.
“큭!!”
콰앙!!
순간적인 타격에 주춤한 그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은 내가 놈의 몸을 걷어차 날리고 거리를 벌렸다.
“아비트 네가 없었으면 조금 곤란할뻔했다.”
[흉신들이…… 오트가르스에 이어 레우셀까지 있을 줄이야…… 어찌하여 저들이 모두 살아있단 말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아비트를 무시한 채 내가 다시 놈에게 파고든다.
힘들게 데려왔으면 밥값을 헤라.
“베르단데!”
우웅!!
그 말과 함께 정체불명의 힘이 주변 현실을 왜곡한다.
그녀의 힘은 심연의 공주들 사이에서도 극렬할 정도로 이질적이니까.
마술과 흡사한.
현실을 왜곡하는 그녀의 힘이 레우셀과 일대 영역 모두를 순간적으로 장악했다.
힘의 근원을 모르는 저들은 기습적인 힘의 방출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내 육신을 짓누르던 힘을 반대로 적용시켜 압박을 해제한다.
레우셀의 시각을 포함한 감각을 뒤집어 순간적으로 틈을 만들어냈다.
적이 아니길 정말 다행이다 싶은 존재가 베르단데가 아닐 수 없다.
“고작 잔재주를!!”
“잔재주? 넌 그럼 잔재주에 뒤질지도 모르겠네.”
내 말에 레우셀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미리 준비한 마법이 그것뿐이라 여기지 마라.
그의 복부를 걷어차 날린 내 손에 초단이가 쥐어졌다.
[중검]
[마스터 피스]
[노네임드 킹]
마계에서 투신 발록의 왕을 처리할 때 사용했던. 검신의 최종 검기.
페르세르크의 숨통을 끊었던. 그 일검이. 불완전한 것이 아닌 완전히 회복해버린 현재의 내 경지와 깨달음으로 다시 펼쳐진다.
이전과는 격이 다른 일검이 놈의 전신을 한차례 베어 넘기며 일대 폐허가 된 도시의 어마어마한 부위를 반으로 잘라냈다.
“끄륵?!”
방어가 부서졌음에도 상처 입는 정도로 끝나는 그의 방어력에 절로 혀가 내둘러진다.
그냥 싸웠으면 어지간한 공격은 아예 먹히지도 않았겠네.“
힘은 안타레스의 완벽한 상황에 비하면 비교할 게 못 되지만.
방어력 하나만큼은 안타레스가 감히 비빌 수 없는 수준이다.
힘으로 찍어누르는 하레스의 검술과는 반대되는 상성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파고들어 갈라내는 쪽으로 가는 수밖에.
세 번째 80번째 마령검이 손에서 서서히 발현되기 시작했다.
[마령검]
[82초식 유검술]
[안빈낙도]
스르릉…… 카앙!!!
단순히 강대한 힘으로 찍어누르는 게 아닌 파고드는 검술이 놈을 베어낸다.
“커헉?!”
눈을 부릅뜨며 물러난 그의 상체에 피가 튀었다.
한차례 방어가 부서졌다 해도 중검을 버텨내던 그의 방어가. 결국, 틈새 공략에 당해 틈을 보인 것이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그의 전신에 둘려 있던 힘이 집중된 그 순간.
나는 그의 다리를 걷어 넘기듯 쓰러뜨리고 그대로 제압하듯 올라타 그의 명치에 손을 올렸다.
“네…… 네놈?!”
“넌 좀 과하게 방해된다.”
혼과 육신이 동기화된 이상 빌어먹을 스승이라던 작자들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전전긍긍할 순 없는 노릇이다.
“너도 한번 보자. 어디까지 견디는지.”
9서클 마법은 3단계로 나뉜다. 이해. 실현. 초월.
그리고. 인제 와서는 그 이상의 것도 마음껏 끌어낼 수 있으리라.
[오딘표 개조 마법]
[9서클 파이어볼]
[태양계]
역회전 마법이었던 화이트 노바 같은 다수의 정신 나간 시스템구조를 지닌 마법의 근본이다.
아트렐리아 대륙의 마법사의 신, 위대한 대마법사. 오딘의 주특기 중 하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일순간 태양을 아득히 상회하는 초고열의 화염구가 극도로 응축되듯 내 손에 모여들었고 이내 내 전신으로 파고들며 마치 내 육신의 일부가 불의 정령이 된 것처럼 모여들었다.
놈의 방어력은 압도적이다.
그렇기에 초단이의 권능조차 억지로 버텨낼 정도로 생명력이 질기다.
물리 데미지가 안 먹히면 상태 이상으로 잡는 수밖에.
[방화광. 네 검을 빌려줘.]
화염의 정령왕 이프리트가 가진 정령 여제 유리아나가 건네준 검.
세상을 태우는 불타는 검 레바테인이 내 손에 구현되기 시작했다.
애초에 내 검이 아니기에 내가 사용함으로써 상당히 많은 부담을 주지만 상관없었다.
위기를 눈치챈 레우셀이 내게서 벗어나려 하지만 놈을 제압한 그 순간 이미 점혈로 놈의 움직임을 아주 한순간 봉인시켜둔 뒤였다.
레바테인의 화염과 오딘의 마법 태양계가 스며든 내 육식이 연동되며 화염의 위계가 올라서기 시작했다.
“이깟 불…… 커헉?! 이…… 이게 무슨?!”
그가 가진 방어력을 뚫고 들어가는 초고열의 열기가 그의 육신을 불태운다.
비명조차 채 지르지 못한 채 쓰러져 버린 그를 지나치며 내가 숨을 짧게 골랐다.
오딘의 마법은 혼과 육신을 동기화해도 따라 하기 쉽지 않다.
“다음은 너냐?”
내 물음에 다른 흉신 오트가르스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머지 한 놈은 어디 있나.”
내 말에 주변이 고요하게 침묵한다.
“설마 했는데 당신이 여길 찾아올 줄이야.”
섬뜩한 기세에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촤악!!!
하지만.
그와 동시에 뺨을 스치고 지나간 무형 무취 무색의 칼날이 내 뺨을 한차례 찢고 사라졌다.
“역시 과할 정도로 강해졌군요. 숨겨둔 패를 다 드러내지 않고서도 레우셀을 압도할 정도로.
언제 다시 돌아온 것일까.
내 눈앞에 검은 머리의 어린 소년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틀란티스의 왕. 카트시라고 합니다. 당신에겐 나름대로 예우를 갖춰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다른 흉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흉신 서열 1위의 공포스러울 정도로 묵직한 힘이 주변을 장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