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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49화 (748/1,559)

제 749화

211. 보이지 않으나 알 수 있는 것

티오니스 대륙의 북부.

고대엔 한 왕국의 터였으나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아니 정확히는 비밀리에 활동하는 한 기사단이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는 장소.

현재 라스트 위스프의 기사단 지부인 리인 포스 알파가 주둔하고 있는 이곳에 기괴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젊은 여성 기사단원의 말에 모두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현재 감시 중인 알파 베타 감마 구역에 관해서 올라온 보고입니다.”

“늘 그렇듯 별문제가 없으면 좋으련만…….”

정령사이자 견습 기사단원을 가르치던 실리아가 한숨을 푸욱 내쉬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한차례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알파 팀이 있는 곳의 마물들이 대규모 이동을 시작했구요. 실제로 베타 팀의 감시구역과 감마 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천재지변이 오면 가장 먼저 그 낌새를 느끼고 도망치는 건 동물이다.

그리고. 마물들 또한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그런 생존 기술을 터득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왜 나오는가.

실상은 간단했다.

갑자기 판도라 영토의 마물들이 북쪽으로 일제히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물왕을 관리하는 델타 팀은?”

“보고. 델타 팀에서의 보고입니다. 감지된 마물왕 급 존재 세 마리 모두…….”

잠시 뜸을 들이는 모습에 실리아가 침을 꼴깍 삼켰다.

데이비라는 천재지변 급의 인간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마물왕이 움직이거나 날뛰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재앙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마물왕이란 그들에게 그런 존재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마물왕이 움직인다.

그것도 그냥 움직이는 게 아닌 도망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심각한 일이군…… 기사단 본부에 곧바로 보고를 올려야 합…….”

“급보입니다!!”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며 피투성이가 된 한 남녀가 급히 들어왔다.

“회의 중에 누가 이리 소란스럽게!”

엄한 표정으로 소리치던 상급기사들이 눈을 부릅떴다.

남녀의 몸에는 갖은 상처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가!”

“아…… 안돼! 필디르! 정신 차리세요!”

피투성이가 된 채 들어온 건 부상을 입은 팔라딘 필디르와. 그의 파트너이자 초대 성녀 다프네의 광신도나 다름없는 인물. 루시아 쉘만이었다.

“쿨럭…… 보…… 보고 드립니다. 마물왕…… 기간테스가…… 정면으로 기사단 쪽을 향해 이동 중…… 움직임으로 보건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

그 말을 한 필디르가 그대로 쓰러져 버리자 주변에 싸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쿠당탕!!

“뭐? 마물왕이 이쪽으로 온다고?”

“마물왕의 서식처에서 생긴 기괴한 균열이 그 원인인듯합니다.”

기괴한 균열.

현재 티오니스 곳곳에서 생겨난 정체불명의 균열로 어디론가 이어진 것 같긴 한데 아무리 접촉하고 조사해봐도 도저히 무슨 균열인지 알 수 없는 공간이 존재했다.

애초에 균열 너머로 들어갈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데이비가 언급했던 절대 다가가선 안 되는 이들의 힘이 그 균열에서 흘러나온다는 점.

그리고.

그 힘을 본 마물들이 일제히 도망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마물왕이 대륙의 북단으로 도망치는 건 큰 문제가 돼도 당장 이쪽으로 온다면…….

“전원 대비하세요. 마물왕은 지원 없이는 토벌이 힘듭니다.”

“수호자님…… 그럼 어떻게…….”

수호자 바사라. 본래 라스트위스프 총 본산에 있던 사내였지만 지금은 리인 포스 알파에 파견되어 주기적으로 기사단을 조력하고 있는 실력가다.

“매뉴얼 따위는 잠시 접어두지요. 놈이 그대로 움직이게 두면 문제가 발생할 테니.”

“우회시키자…… 이 말씀입니까.”

노인 기사단원의 말에 바사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왕은 마스터 급 기사단원들조차 순식간에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괴물들입니다.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많이 바뀌었다. 조직의 근본을 위해서라면 희생도 마다하지 않던 수호자들의 변화는 단 한명의 신입기사단원으로 인해 생겨났다.

세계 오지에 파견되어있는 라스트 위스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티오니스 대륙 전체가 뒤숭숭해진다.

* * *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되어감에 따라 내 몸은 절반 이상 투명해졌다.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막상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떠들다 보니 아주 짧게 책정한 시간을 너무 짧게 정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말해봐.”

불안함이 서린 내 물음에 그녀가 키득거렸다.

“글쎄?”

피식 웃는 그 모습에 나는 속으로 불안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둘 중에 하나만 해 이년아.

순간적으로 온 전신에 섬뜩함이 몰아쳤다.

마가의 말에 따르면 남자와 어느 정도 선을 긋는 그녀가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건 처음이라고 말한 바도 있었으니까.

냉정하게 분석해라 데이비 올 라운.

넌 저 말린 오징어의 오빠다.

“절대 안 돼.”

이윽고 결단을 내린 내가 못을 박았다.

“뭐?”

“절대 안 된다고.”

“왜?”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외려 말문이 막혀버렸다.

물론,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 인생이 천년을 넘었다. 이깟 변명쯤이야.

“외…… 외국…… 아니다. 타 차원이라면서. 떠나야 할 인간이라면서? 거기다가 뭐? 유부남? 니가 미쳤냐 지금?”

“내가 그 사람이 유부남이라는 이야기를 했던가?”

“했어. 이년아.”

기억에 혼란이 오긴 했다만 밀어붙이면 장땡이다.

“흐음…… 뭐. 그렇긴 한데. 사람이 매력적인 건 사실이야. 게다가 그 인간. 부인이 있으면서 결혼할 사람이 또 있는 모양이고.”

“뭐? 둘이나 있다고? 그럼 더더욱 안돼.”

단호한 내 말에 그녀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야. 시베리아 꼴뚜기 같은 자식아. 뭔데 그렇게 이래라 저래라야?”

“웃기고 있네! 팬서같은 년이. 너 내가 경고하는데. 잠깐 혹한다고 쓸데없는 마음 품지 마라?”

“내 마음은 내가 알아서 할거거든?”

“야. 이 오빠가 사람 보는 눈이 있어서 해주는 말인데.”

“사람 보는 눈은 얼어 죽을 맨날 인터넷으로 만나던 인간들이 대부분인 주제에.”

병실 밖으로 나간 적이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아무튼. 난 말했다. 내가 지하에서 피눈물 흘리는 꼴 보기 싫으면 절대 엄한 생각하지 마.”

“흥. 내 맘이거든?”

“야!”

결국, 폭발한 내 외침에 그녀가 나를 걷어찬다.

“아 몰라! 내 맘대로 할 거야! 내 인생 왜 오빠가 이래라 저래라야!”

훈훈하게 만나놓고 결국 아득바득 싸우는 걸 보면 그녀와 나의 상성은 최악인 모양이었다.

“이게 뚫린 입이라고 막 지껄인다 그치?”

“하여튼 포악한 꼴뚜기 성격 어디 안 간다더니.”

이를 부득부득 갈며 서로를 노려보던 그녀와 내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덤벼들었다.

나는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잡아당겼고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마구잡이로 나를 두드렸다.

“야! 놔라?! 놔! 놓으라고!”

“이게 어디 건방지게 하늘 같은 오라비한테 주먹질이야 주먹질이!”

“누가 하늘 같은 오라비야! 비실비실해서 힘도 못 쓰던 게! 죽고 나서 영혼 되니까 아주 신이 나셨어. 그치 응?!”

악악 소리 지르며 그녀와 투덕거리던 그때였다.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는지 내 손이 바스러지듯 사라지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아…….”

“시간 다 됐나 보다.”

“아…… 안돼! 잠깐만! 이렇게 가는 게 어딨어!”

“여기 있어 이년아.”

그렇게 말한 내가 한발 물러났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미소지어주었다.

“오빠는 싹 잊고 살라고. 너만 사랑해주는 좋은 남자 만나서. 예쁜 조카들 낳고 행복하게 살라고.”

“흥…… 이런 세상에서 잘살아봤자…….”

“아마 오래가지 않을걸?”

“오빠가 어떻게 아는데?”

“다 아는 수가 있지.”

내 미소에 그녀가 피식 웃어 보였다.

“언니는 안 보고 가도 돼?”

“사람이 욕심을 적당히 부려야지.”

게다가 연희 누나는 기억을 못 할 테지만 그녀는 이미 나를 만났고, 나를 금방 알아보지 않았던가.

더 이상 서로 간에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다.

이후 나는 결국 눈물을 터뜨리는 그녀에게 무언가 말해주려다 말고 말없이 그녀를 끌어안아 주었다.

물론, 육체적으로 닿진 않았지만 반 영체화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디 가서 꽃사슴 같은 남자 하나 잘 잡아서 행복하게 살아. 내 눈엔 그 꽃사슴 물어뜯고 있는 표범으로밖에 안 보인다만.”

어떤 불쌍한 놈이 내 동생에게…….

씁쓸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주자 그녀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쁜 새끼…… 끝까지…….”

“아. 그리고. 납골당 이야기는 들었다. 나는 그딴 건 됐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내 영정사진 앞에 내가 좋아하던 짜장면이나 잡채나 올려줘.”

“오빠야…….”

“사랑한다. 동생. 그리고 미안했고, 고맙다.”

애초에 그녀에게 했던 말 중 거짓은 없었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그녀였다.

이윽고 나는 사령 마법을 통해 완전히 영체화 하여 그녀의 앞에서 사라지듯 모습을 감추었다.

그녀는 귀안이 열렸기에 영체화 한 나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그녀의 귀안이 가진 수준으로는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니라 희끄무리한 안개처럼 보일 터.

여기서 조용히 흩어지듯 물러나 주면…….

완벽해진다.

차라리 잘되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찰나였다.

“역시 그 사람 자꾸 신경 쓰이네.”

그때 내 발목을 잡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의 중얼거림에 돌아섰던 내가 멈칫했다.

“음…… 오빠야 말 듣기는 싫고…… 솔직히 사람도 착해 보이고…… 조금 난봉꾼 기질은 보인다만…….”

누가 난봉꾼이야 누가.

보는 사람 없다고 아주 뒷담화를 제대로 까는구나.

재회 당시엔 상당히 무거운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무표정의 차가운 아가씨였는데. 지금 보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 변화도 없다.

“까짓거…… 술 먹이고 확 사고 쳐버려?”

“야 이년아!!!”

그녀의 한마디에…….

나는 반사적으로 외치고 말았다.

“오빠야?”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다시금 그녀에게 드러나 버렸다.

“…….”

-데이비 님! 의식을 눈치챈 흉신들이 몬스터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만…… 이게 큰 문제는 아니죠. 심연입니다! 심연에서 대규모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뭐?

심연이 어떻게?

이클립스도 지금 지구로 못 넘어와서 갇혀있는 이 상황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빨리 의식장으로 오십시오! 이대로 그들에게 공격을 허용해서 의식에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다시는 같은 장소에서 의식을 치를 수가 없습니다!

케인의 다급한 외침에 나는 조용히 침묵했다.

“오빠? 간 거 아니였어?”

“너…… 나중에 보자.”

그렇게 말한 내가 스윽 돌아섰다.

“킥…… 내가 참 기가 막혀서…….”

황당해하는 현아의 목소리는 귓가에 들려오지 않았다.

* * *

피투성이가 된 몸을 수복시키고 있는 흉신 서열 1위.

카트시가 짧게 신음했다.

“아아…… 나의 신이시여…….”

억겁을 지탱할 나의 존재의 근본이시여.

그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감히 피조물로써 당신의 큰 계획을 읽지 못한 아둔함을 용서하소서. 당신의 계획을 쉬이 믿지 못하는 불민한 피조물을 구원하소서.”

쿨럭!!

피를 울컥 토해낸 그가 비틀거렸다.

역시 괴물. 이클립스는 과거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제약만 없었다면 카트시가 일방적으로 밀려버릴 만큼.

그런 그녀가 당장 움직일 순 없지만.

넬타리드의 일면 파괴는 자신의 존재가 위태로워지는 그 순간까지 계략을 준비했다.

이클립스의 돌발행동. 그리고 그에 분노한 카트시의 항쟁까지.

모든 것은 그의 신의 계획의 일부였음을.

이클립스에게 죽기 직전까지 대항한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쿨럭…… 빨리 회복하고 나서야겠군요…….”

의식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쪽에서 오랜 시간 준비해온.

여왕의 각성을 시작할 때였다.

“타나토스. 당신의 존재는 참 기괴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카트시의 손에 쥐어진 구슬에는 한 소녀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의 머리 위엔 백색의 뿔이 한 쌍 돋아나 있었고. 나긋나긋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전쟁은 결국 우리가 이길 것이다. 프리아의 개여.”

지구와 티오니스 대륙.

그곳에서 생겨난 수많은 균열들이 일순간 방대한 에너지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존재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을 파멸로 이끌어버릴.

오랜 시간 프리아 여신에 의해 갇혀있던 절망하던 자들의 손길이 동전의 앞면으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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