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55화 (754/1,559)

제 755화

한순간에 나타났고, 한순간에 사라진 꾀죄죄한 인상의 사내.

“크으윽?!”

하지만 사내가 만들어낸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마치 검기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수차례 주변을 자르고 베어내며 충격파를 터뜨렸다.

검붉은 빛의 검기는 수차례 허공을 너울거렸고, 그 결과 카트시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그는 자신의 몸에 생겨난 자상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단단하게 변한 그의 갑각은 마치 꽃문양이 있는 칼로 썰어버린 것 마냥 너무도 허무하게 찢어발겨 있었다.

“크윽! 빌어먹을 다 된 밥에 이렇게 재를!”

격하게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그가 도망치기 위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움직이지 마.”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바로 뒤에서 들려온, 또 다른 목소리 때문이었다.

검은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를 한 소년의 티를 갓 벗어난 청년.

그는 말없이 쓰러져 있는 페르세르크와 숨을 헐떡이며 과부하 상태에 돌입한 륀느를 바라보았다.

“이런!”

청년의 존재를 눈치챈 카트시가 급히 도망치려 했다.

푸욱!!!

하지만 청적색의 검이 순식간에 파고들어 그의 몸을 꿰뚫었고, 청년은 그런 그를 검에 꿴 채 그대로 질질 끌고 가듯 밀어붙인 뒤 한 바퀴 돌려 땅에 메다꽂아버렸다.

평소와는 다르게 굉장히 흉포한 공격방식이다.

세피로스로 각성한 륀느가 꽂아 넣은 천칭을 녹여낸 창에 꿰이고도 일어났던 카트시였다. 평소라면 초단이에게 찔렸다 해도 금방 벗어나 반격을 가했을 테지만 그의 몸은 그의 의지를 벗어났다.

“쿨럭?! 커헉 큭!”

몸을 비틀거리던 그의 육신이 빠르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시 작은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피를 울컥 토해내고는 비틀거렸다.

“데이비…… 올 라운…….”

그는 마치 데이비를 분석하듯 바라보았다.

“…….”

반면 데이비는 쓰러진 페르세르크와 숨을 헐떡이는 륀느를 보며 조용히 침묵했다.

겉보기엔 평정심으로 무장한 듯 보였지만 그의 주변에 넘실거리는 오오라는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폭발 직전의 무언가를 보는 듯한 모습이다.

“큭!”

상황이 심각함을 깨달은 그가 상처가 난 복부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콰직!!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파고든 데이비가 초단이를 이용해 그의 팔을 잘라내 버렸다.

“크아아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그가 잘려나간 팔을 재생하지도 못하고 물러났다.

‘빌어먹을…… 악재가 겹치는군.’

그로썬 최악이었다.

꾀죄죄한 사내가 만들어낸 대격변으로 인해 상황이 뒤집힌 것도 큰데 그의 검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파고들어 카트시의 육신에 지대한 상처를 남긴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존재와 싸워왔지만, 그 사내가 내두른 검기는 그의 기준으로 보아도 너무 기이하고 치명적이었다.

이대로 싸우면 곤란하다. 본래엔 그의 본체가 아직 알프 온라인에 갇혀있고 지금 이곳에 있는 그는 힘을 끌어다 쓴 화신체에 불과하기에 죽을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 꾀죄죄한 사내가 휘두른 검기는 끝없이 그를 좀먹었고, 데이비가 가진 저 청적색의 검과는 다르게 그의 존재 자체에 치명상을 남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데이비는 묵묵히 그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지만 말이다.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사내의 검기와 청적색의 검. 거기에 기괴한 헤라클래스의 힘까지 뒤섞인다면…….

‘다른 종족들의 힘을 전부 회수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겠네요.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생각은 쉽지만 쉽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딜 도망가.”

그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생긴 틈을 놓치지 않았는지 데이비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파고들어 그의 목을 틀어잡았다.

콰앙!!!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의 머리통을 지반에 내리찍었다.

“크억?!”

끔찍한 고통에 카트시가 비명을 내질렀다.

이에 데이비는 멈추지 않고 수차례 같은 공격을 반복해서 퍼부었다.

‘아…… 안돼!’

서서히 의식이 흐려진다. 이대로 의식을 놓는 순간 그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봉인되어서까지 버텨냈다! 1만 년을 견뎠단 말이다!’

고작 이깟 홀른에게 죽기 위해 그 긴 시간 정신을 놓지 않고 버텨온 게 아니었다.

타나토스의 권능을 끌어쓰기 시작한 화신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세피로스 륀느의 각성부터 모든 것이 뒤틀렸다.

왜 이런 변수가 자꾸 프리아의 진영에서만 생겨나는가.

억울함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그가 비틀거렸다.

탈출을 위한 최후의 수단까지 막힌 상황이라면 냉정하게 분석해볼 때 그에게 남은 건 죽음뿐이다.

그것도 변수로 인해 생긴 진짜 죽음.

이클립스와 싸울 때도 느끼지 못했던 진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여기서 느끼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한 그였다.

“이대로 죽을 거라면…….”

차라리.

데이비의 공격을 받던 카트시의 전신에서 검은 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데이비가 흠칫하며 물러났다.

‘돌이킬 수 없다. 내가 죽게 되면 내가 이끄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나의 창조주조차…….’

그렇다면 하다못해 자폭의 방법이라도 찾아야 하리라.

‘이걸 활성화하면 지금의 나는 반드시 죽겠지.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촤악!!!

틈을 보고 파고든 데이비가 다시 한번 그의 육신을 베어 넘겼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공격은 처음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빌어먹을 그 홀른 때문에…….’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는데.

그 빌어먹을 꾀죄죄한 홀른이 베어버린 살아있는 검기 때문에 모든 것이 망가져 버렸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졌습니다.”

짧게 그가 승복했다.

“웃기고 자빠졌네. 이게 무슨 스포츠 경기인 줄 아나.”

“당신이 오기 전에 사태를 뒤집어 놓은 그 빌어먹을 홀른만 아니었다면 완벽했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되었다면 별수 없을 터.”

그의 육신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아아…… 신이시여. 나의 창조주이자 아버지이시여. 당신의 뜻이 밝히는 길이 비록 고난일지라도. 당신의 무력으로써 당신의 길을 따르겠나이다. 그것이…… 당신께 모든 것을 바친 제 소망일지니.”

서서히 사라지던 그가 피를 울컥 토하고는 데이비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시선을 마주하며 그를 똑바로 노려보고 말했다.

“당신이 지킨 타나토스의 화신은 이제 끝입니다.”

“개소리.”

“몰랐습니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똑바로 말해.”

“절대보옥으로…… 쿨럭…… 심연을 틀어막은 걸 당신은 후회하게 될 겁니다. 기도나 하십시오. 천에 하나, 만에 하나의 확률로 제가 회복하는 그 순간. 당신은 종말을 맞이할 테니.”

파스스스스…….

그 말과 함께 그의 육신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강했던 존재의 죽음치고는 너무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그가 부활의 가능성을 언급하긴 했지만, 그의 말마따나 확률이 낮다면 크게 문제가 되진 않으리라.

카트시가 사라진 직후 륀느의 6익 중 4개의 날개가 조각조각 부서지며 그녀가 쓰러졌다.

이후 데이비는 빠르게 달려가 륀느를 둘러업으며 소리쳤다.

“미련하게 뭐 하는 짓이야. 명령 지키자고 제 목숨을 버려?!”

“륀느…… 페르 님을 지키지 못했다고 보고…… 륀느의 불량을 매우 낮게…… 평…… 가.”

그 말과 함께 그녀의 머리 위에 뜬 기하학적인 문양의 헤일로가 서서히 일그러지며 다시 본래의 원고리 형태로 변했다.

그녀에게서 뿜어지던 어마어마한 신성력은 모조리 사라진 직후였다.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데이비는 곧이어 그녀를 안아 든 채 페르세르크에게 다가갔다.

“페르세르크……”

“왜 온 게야…….”

헛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그녀에게 데이비도 헛웃음을 흘렸다.

“적 쳐 죽이러 왔지. 그러는 넌 왜 여기 온 건데.”

“쿡쿡…… 적을 쳐 죽이러 온 게지.”

“약해빠졌으면서.”

“그대가 본녀와 상성이 안 좋을 뿐…….”

그 말과 함께 그녀는 눈을 감았다.

“미안해 데이비…… 말하지 못해서…… 그동안 계속 숨겨서…….”

“위험한 건 지부터 말해줘.”

“…… 깨어나면…… 그때 말해줄 터이니.”

상황을 잘 알진 못하지만, 그녀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데이비는 쓴 한숨을 내쉬었다.

* * *

페르세르크와 륀느의 극심한 부상에 모두가 침묵했다.

적의 수장 중 하나인 카트시는 분명 큰 상처를 입고 도망쳤다.

하지만 언제 왔는지 뒤통수를 노리고 찾아왔고, 조금만 늦었어도. 아니 그보다 기현상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둘 중 하나는 큰 문제를 치렀을지도 모른다.

“륀느는…… 한 번 죽었지.”

나는 낭랑한 얼굴로 제 가슴을 열어젖힌 채 발을 통통 튕기는 이 엉뚱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데이비 님. 페르 님은?”

“심력 소모가 커. 실제로 큰 부상은 없었으니까. 대부분 치유하고 지금은 잠들었어, 그에 반해 넌 심각해 임마.”

페르세르크의 생명력이 그렇게까지 떨어졌는데 그녀의 육신 자체엔 큰 상처가 없었다.

무엇이 되었건 그녀가 깨어나야 제대로 된 진단을 할 수 있다.

현재로선 심연과 가장 밀접한 베르단데가 봐주고 있지만 불안함을 애써 숨기고 있는 입장이었다.

울드의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았던 모양인지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표정을 하던 베르단데가 떠올랐다.

“데이비 님. 륀느의 육체. 과부하를 제외하곤 문제없다고 보고.”

“거짓말하지 마라.”

그녀의 머리를 쿡 찍어 누른 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데우스 액스 마키나가 멈추려면 한순간에 말도 안 되는 양의 과부하가 걸리거나 그에 준하는 데미지를 받을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넌 그 둘 다 해당이고.”

카트시의 공격에 충격을 받았고. 세피로스로 강제 각성하며 또 한차례 무리가 갔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냐? 조금만 운이 없었어도 넌 지금 조각조각 분해되었을 거라는 소리다.”

간단히 말하지만 절대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자신이 앉은 철 선반의 다리를 그녀의 새하얀 다리로 통통 튕기며 장난을 칠 뿐이었다.

“륀느. 더욱 성장해야 한다고 명시. 이에 따른 륀느의 출력량을…….”

“분명 과거의 너에 대한 모든 데이터가 말소되었을 텐데…….”

나는 보았다.

그녀의 등 뒤에 돋아난 3쌍의 날개와 머리 위에 생겨난 특유의 문양을 말이다.

지금이야 평소의 륀느가 하는 모습과 똑같지만, 그때의 모습은 맹한 얼굴의 륀느라기보단…….

“전장의 여신 같았지.”

그녀의 내부에 타버린 부품을 빼내 교체하면서 내가 중얼거렸다.

“륀느. 전자의 여신. 매우 깜찍하고 귀엽다고 보고해.”

“웩이다 이놈아.”

손에 쥔 드라이버의 손잡이로 그녀의 이마를 툭 하고 때린 내가 다른 부품을 찾아 끼워 넣었다.

그녀의 육신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내가 추가로 넣은 부품들은 모조리 망가졌다.

힘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만든 코어 마정석 또한 부서져 풍화될 정도였으니 말 다 한 꼴이다.

“륀느. 메인 구동 심장이 가동을 중지하며 데이터 포맷이 일어났다고 보고.”

“…….”

“그로 인해 륀느의 기억 데이터 속의 새로운 정보를 인스톨.”

전장의 여신화.

세피로스화는 어쩌면 그녀의 육신을 만든 존재가 그녀의 죽음을 상정하고 넣어둔 보험일지도 몰랐다.

“그 힘. 또 쓸 수 있나?”

“가능할지는 미지수. 하지만 데이비 님의 명령이라면 륀느, 그 힘의 사용을 높게 평가.”

지금 데우스 액스 마키나의 출력으론 그녀의 세피로스화를 견뎌내지 못한다.

그 강대한 빛의 천사가 되는 방법은 그녀에게 막대한. 아니 상상도 못 할 압도적인 무력을 쥐여준다.

하지만 그 대가가 그녀의 목숨이라면.

그건 함부로 선택할 문제가 아니었다.

“륀느.”

“…….”

“네 목숨을 우선순위로 둬라.”

“데이비 님 그건 명령?”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그렇다고 배신하란 소리는 아니고.”

“륀느. 명령 불이행. 소유자 데이비 님의 명령과 신변 보호는 절대적이라 보고해.”

그녀의 고집스러운 대답이 들려오자 나는 짜증스레 그녀의 부품 중 하나를 툭 건드렸다.

“으갸갸갸갸갸갸갹!!”

그러자 륀느가 온몸을 발작하며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까불지 말고.”

“…….”

다시 부품을 건드리자 그녀가 본래대로 돌아왔고 나는 그녀의 가슴 안쪽 부품에 시선을 집중하며 조용히 말했다.

“나는 단 한 번도 널 소모품으로 부린 적이 없어.”

내 말에 그녀는 맹한 시선을 내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작업에 몰두하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손을 뻗어 내 머리에 올려놓았다.

“뭐하냐?”

“데이비 님. 륀느의 감정회로가 매우 빠른 속도로 가열 중. 이것을…….”

“…….”

“부끄러움이라 판단. 부끄러움은 륀느의 몫이 아님을 명시해.”

“그럼 다음부터 그딴 걸로 변하지 말라고.”

그녀가 1만 년 전 어떤 존재였건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 그녀가 살아있는가 죽었는가일 뿐.

“작업은 다 됐어?”

“의식을 치르는 거 아니었나?”

“이제 마지막이야. 케인이 무리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돼.”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 사나흘 간 지속되는 절대보옥을 통한 의식.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완전히 차단시키는 이 의식만 성공하면 이클립스를 포함한 모든 전쟁이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보다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분명…… 카트시가 말했었지.

절대보옥을 활성화하면 후회할 거라고. 의문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열어두었던 륀느의 피부를 닫아 다시 잠근 후 녀석의 옷가지를 덮어 주고는 공간을 뛰어넘었다.

카트시와 페르세르크, 륀느가 싸운 싸움의 흔적이었다.

페르세르크도 페르세르크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이곳에서 보였다.

“이거 분명 마령검인데…….”

이 세상에서 마령검을 쓸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아니 천중원에 천마의 후손이 있으니 가능은 한데. 솔직히 그의 실력으로 이런 흔적을 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 말인 즉.

페르세르크와 륀느가 위기에 처한 순간.

내가 급히 이곳으로 오고 있던 그 와중에. 누군가가 와서 카트시를 베어버리고 사라졌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심장이 터질 것처럼 크게 띠었다.

아직 알 수 없지만 만약에 이 흔적이 본 주인이 만들어낸 그것이 맞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회랑 영웅주에서 무력만큼은 최상위에 위치하던 검의 귀신.

단순 검술의 조예만큼은 하레스와 다른 방향으로 극히 높은 존재.

압도적으로 강한 두 영웅인 헤라클래스와 로 아이아스에게 바래졌을 뿐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저런 경지까지 이루었는지 의문스러운 인물.

천마 독고준.

이미 죽어 영혼이 회랑에 있어야 할 그가 이곳에 나타났었다.

“그럴 리 없어.”

나는 홀린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럴 리 없어야 하는데…….”

미친 듯이 날뛰는 넬타리드와 타나토스에 비해 프리아 여신이 너무 조용하게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녀가 한 짓은…….

“경고하는데. 그 양반들의 혼을 희생시키는 짓을 했다간 그걸로 정말로 끝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내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회랑에 머무르고 회랑에 묶인 존재들.

죽은 그들은 세상의 섭리에서 벗어났기에 그곳에서 계속해서 진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강제로 이곳에 잠시나마 불러낸다면…….

그건 그 영혼의 회광반조와 같은 상황이리라.

간단히 말해서 정말 이곳에 천마 독고준이 나타난 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걸 유도한 게 프리아 여신이라면. 그녀는 회랑의 영웅의 영혼이 사라지는 것을 대가로 잠시 이곳에 신에 가까운 무력을 불러냈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이번 싸움이 중요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녀가 지키고자 한 것은 페르세르크인가. 아니면 륀느인가.

머릿속으론 답을 알고 있는데. 제발 그것이 페르세르크이길 바라고 있는 것도 씁쓸한 일이다.

내가 모시는 신이지만 프리아 여신은 페르세르크에게 상당히 자비가 없으니까.

어찌 되었건, 영웅의 혼을 희생시켜서 그를 잠시 불러냈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건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제발 아니길 빕니다.”

내가 모르던 진실이 하나둘 알려질 때마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쿠웅!!!

저 멀리서. 아주 멀리서. 케인이 진행하는 절대보옥의 의식이 막바지에 들었는지 막대한 에너지가 담긴 충격파가 퍼져나갔고 지름 5미터가 넘는 벽옥색의 거대한 빛의 기둥이 하늘을 향해 상승기류가 퍼져나가듯 쏘아져 올라가기 시작했다.

스팡!!

뒤이어 나를 향해 다가온 베르단데가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의식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네.”

“그래.”

“선택은 지금이야.”

“뭐?”

내가 그녀를 돌아보며 말하자 그녀가 복잡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페르세르크. 타나토스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그녀가 그의 권능을 사용한 건 알고 있지?”

대상을 들여다보고, 대상의 모든 것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는 절대적인 힘.

그 권능은 본래 페르세르크가 사용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3천 년 전 마족과 인간의 싸움에서 인간은 절대 이기지 못했을 테니까.“

“결론부터 말해줄게. 그녀의 육신을 확인하던 도중 기억의 일부를 읽었어.”

“기억의 일부?”

“그녀는 숨기려 한 모양이지만 우연스레 발견했거든.”

“요점만 말해.”

“절대보옥으로 심연과 이곳을 단절시키면 심연은 더 이상 이곳으로 오지 못해.”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타나토스의 화신화가 진행된 그녀 또한 이곳에서 사라질 거야.”

“뭐?”

그녀의 말에 내가 인상을 찡그린 채 그녀를 노려보았다.

“늦든 빠르든 멍청한 네가 심연과 싸우고 있을 때 카트시가 그녀를 각성시켰다고.”

힘을 완전히 각성해버린 그녀는 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가장 큰 변화는.

그녀의 내면에 완전히 잠들어있던 황혼의 신 타나토스의 신의 인격. 페르세르크를 타나토스의 근본에 한없이 가깝게 만들어준 그 인격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카트시는 애초에 저 의식을 방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의 목적은…….

“처음부터 페르세르크라는 존재의 각성이었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