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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56화 (755/1,559)

제 756화

213. 페르세포네 작전

“흣!”

어둠 속에서 페르세르크가 눈을 떴다.

그녀의 주변에 보이는 것은 공허함과 어두운 안개가 가득한 협곡의 깊숙한 곳이었다.

어떤 온기도,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싸늘한 바람만이 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또 이곳이로구나. 참으로 질리지도 않는 게지.”

이 꿈을 꾸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던가.

보통 꿈이라는 것이 잠에서 깨면 언제고 흐릿해지기 마련이지만 지금 그녀가 꾸는 꿈은 단 한 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잊혀진 바가 없었다.

[저항하지 마라. 우리는 하나다.]

어두운 목소리와 함께 페르세르크의 시야 앞으로 새까만 안개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개는 곧 두껍게 모여들어 한 인간의 형체를 만들어낸다.

검은 안개가 인간의 형태를 취한 후 유일하게 다른 빛나는 눈동자가 그녀를 직시했다.

“이제 그만…… 본녀에게서 떨어지시게. 이깟 꿈을 통해 몇 번이고 말한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될 리 없을 테니.”

[나는 너이며, 너는 나일지니.]

“본녀의 이름은 타나토스가 아니라 페르세르크일세!!”

[우리는 하나다…… 우리의 슬픔을 너는 알아야 할 것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막무가내식으로 자신의 할 말만을 하는 검은 안개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자 페르세르크가 뒷걸음질 치듯 물러났다.

쿠웅!!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온 검은 안개는 그녀가 서 있던 지면을 내리치며 빠르게 다가왔다.

동시에 주변의 검은 안개들이 휘몰아치며 페르세르크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거칠게 휘날렸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흩날리는 자신의 머릿결을 지탱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수를 써도 잠을 자는 이는 깨어나기 마련.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왔음이니.]

“절대보옥으로 심연과 모두 단절되면 당신의 증오도 얼마 가지 못할 터.”

[그리한다 한들 변하는 것은 없으리라.]

그렇게 말하며 검은 안개가 페르세르크를 에워쌌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서서히 다가오며 말했다.

[기억하라. 인지하라. 나의 슬픔을. 나의 아픔을. 나의 배신감을…… 태초의 손에 태어났으나 태초에게 버림받아 나락의 끝에 떨어진 나의 목소리를.]

벌써 몇 번이고 반복된 말이었다.

오로지 저것만을 말하는 존재.

“본녀는…….”

짧게 말끝을 흐린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다시 말할 테니 귓구멍 열고 똑바로 새겨들어! 본녀는 페르세르크지 타나토스가 아닐지니!”

다시 한 번 각인시키듯 그녀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처음엔 절규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 비극 같은 현실에 절망하여 괴로워하며 몇 날 며칠 잠조차 못 자고 꿈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꿈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현실을 직시시켜주었고.

그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이거면.”

짧게 중얼거린 그녀가 슬프게 웃어 보였다.

[너는 알아야 할 것이다.]

눈물을 한 방울 흘린 그녀가 표정을 굳혔다.

“잘 들어 타나토스.”

처음엔 두려웠고. 두 번째엔 절망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마음을 굳힌 이상 더 이상 두려울 건 없었다.

“본녀의 허락 없이 당신이 이 세상에 발을 디디는 일 따위.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게야.”

쿠웅!!

그녀의 의지가 방대한 힘을 내뿜으며 타나토스의 형체를 밀어내 버렸다.

“흡!”

동시에 그녀는 눈을 떴고 숨을 헐떡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데이비.”

“왜 숨겼어.”

“…….”

다 괜찮다 생각했는데.

그의 눈가에 어린 연민과 미안함, 슬픔을 마주하기가 무섭게 그녀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설움이 북받쳐 오르는 기분이었다.

“흑…… 흐흑…… 미안해…… 미안해 데이비!”

“…….”

데이비는 한참 동안 그녀를 끌어안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결말에 저항했으나 절대 변하지 않는 진실 속에서. 그녀가 택한 것은 간단한 것이었다.

* * *

그 사실을 안 것은 심연의 공주 울드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타났을 때였다고 한다.

나의 행방불명 이후 그녀는 나를 찾기 위해 싸움이 있었던 격전지에 다다랐고. 강대한 심연의 공주가 내뿜는 파장 때문에 머릿속에 봉인해둔 기억이 깨어났다고 했다.

타나토스가 꿈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심연의 권능과는 비슷하면서 다른 권능이 서서히 그녀의 몸 안에서 눈을 뜬 것도 그때부터였다.

타나토스의 부활은 막을 수가 없다.

그리고. 넬타리드 때와 다르게 심연의 중추, 즉 타나토스의 경우 신의 창조주가 아닌 신의 분노 그 자체가 세상에 닿으리라.

아무리 강해져도 신에게 저항할 순 없다.

프리아 여신이 전면에 나서서 타나토스를 찢어버린다면 모르겠지만 그녀는 절대 그런 문제에 관해선 직접 나서지 않는다.

아니 나서지 않는 건지, 못 나서는 건지.

중요한 건 프리아 여신의 손에 의해 탄생했으나 프리아 여신에게 버림받은 이 황혼의 신은 극도로 세상 자체에 증오를 품고 있다.

그리고, 환골탈태했음에도 타나토스의 근본은 페르세르크의 내부에서 서서히 꿈틀거리며 눈을 뜨기 시작했다.

환골탈태로 그녀를 구했다고?

평행선에서 존재하던 나와 똑같은 존재와 머리를 마주 대면서 내린 결론으로 그녀를 구원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심판을 늦췄을 뿐 피할 순 없다.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그녀의 삶이 조금 힘들더라도 마왕의 자리에 남겨두었을 것을.

“후회하지 말아.”

페르세르크가 품에 안겨 와 조용히 말했다.

“본녀는 행복했어. 너무도 행복해서 지금의 기억을 절대 잊지 못할 게야.”

“페르.”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쿡쿡 웃으며 내 손에 뺨을 얹고는 조용히 쓸어내렸다.

“본녀는 그대를 사랑해.”

“…….”

타나토스는 자신이 영원히 묶어둘 테니 자신을 놓아달라.

그녀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

하지만.

처음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내 결정은 변하지 않는다.

“이틀.”

“하루에서 하루 반나절.”

“음?”

“그 안에 널 구할 방법을 찾아낼 거다.”

“데이비.”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불가능하면 타나토스를 적출해 찢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하기 위해 붉은 공허에 나를 팔아치우는 한이 있어도.”

타나토스를 찢어버린 작자가 누구던가.

프리아 여신?

아니었다.

인간의 육신으로 절대적인 존재가 된 인물.

홀른. 인간족의 황자.

헤라클래스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가능성은 충분해.’

베르단데의 말대로 타나토스가 프리아 여신의 손에 창조되고 배신당한 불쌍한 신이라 할지라도. 그 빌어먹을 타나토스가 내 가정을 박살 내려 든다면.

다시 한번 찢어버리는 수밖에.

게다가 나의 검술스승 중 하나였던 술고래 천마 독고준이 세상에 현신했었다는 흔적이 있었다.

프리아 여신이 회랑의 영웅들을 현신시켜 무언가를 하려 했다면 헤라클래스와 어쩌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생각이었다.

“데이비…….”

“넌 그냥 입 닥치고 내가 주는 구원을 받기만 하면 돼. 이견은 없고, 두 번은 말 안 한다.”

한 번만 더. 이따위로 홀로 희생하려 했다간. 후회하게 해줄 테니.

그렇게 말한 뒤 나는 조용히 그녀를 끌어안았고. 한참 뒤 그녀를 놓아주고 걸음을 옮겼다.

케인의 지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중요한 사실도 몰랐던 멍청한 녀석이니까.

프리아 여신의 은총과 지혜를 기도할 수도 없다.

프리아 여신은 타나토스나 다름없는 페르세르크 자체를 처음부터 달갑지 않게 여겼었다.

넬타리드는 자신의 반쪽과 싸우느라 어떤 은총도 계시도 내릴 수 없는 상황.

그러니.

극단적인 방법으로 맹목적인 충성을 보내오는 또 다른 공간의 주인을 만나는 수밖에.

내 품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다는 듯 한참 동안 떨어지지 않는 그녀를 밤새 다독인 나는 그녀가 잠들고 나서야 케인이 절대보옥을 활성화하며 만들어낸 벽옥의 빛의 기둥을 창밖으로 볼 수 있었다.

심연이 물러가기 시작했다지만 아마 최후의 한방을 준비하고 있을 터.

당장은 폭풍전야처럼 고요하다.

싸늘하다. 바깥에 비바람이 몰아치더라.

너희가 허접한지 우리가 허접한지 결과…… 음…… 이건 아니구나.

말없이 창밖으로 보이는 벽옥의 빛의 기둥을 보던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내 행동에 륀느가 따라붙었지만 상관없었다.

아비트가 내 육신과 혼을 동기화시키면서 각성시킨 금기의 힘. 정확히는 신의 죄라는 이름을 지닌 이 힘을 응용하며 붉은 공허를 연결한다.

내가 붉은 공간을 만들어내자 륀느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따라와 주었다.

흉포하고 차가운 붉은 안개가 피부에 스치며 싸늘함을 전해온다.

“아비트.”

[맹주. 다시 오셨군요.]

내 부름에 붉은 안개 속에서 거대한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요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격변이 심하게 요동치는 공간이다.

실제로 이 공간을 지배하고 안정화시키는 과정에서 헤라클래스가 생존전문가가 되었다고 하였나.

마치 행성이 태어나 격변하듯 수백 수천 번을 죽어가며 헤라클래스가 안정화 시킨 이 세상은 어떤 의미로 보면 프리아 여신이 만든 세상과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세상이다.

물론, 이곳에 남은 건 붉은 안개뿐이지만 말이다.

“하루하고 반나절, 그 뒤에 절대보옥이 활성화되면서 심연과 모든 통로가 단절될 거야. 그 전에 타나토스를 찢어버릴 거다.”

[타나토스…… 를 말입니까?]

“이클립스가 방해하건 빌어먹을 카트시가 방해하건 결과는 변치 않을 거야.”

[맹주]

“방법을 말해라.”

극도로 오만하지만, 그 누구도 내 행동을 저지하지 못했다.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붉은 공허의 시간은 바깥과 다르니까.

내 물음에 그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신을 죽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맹주. 피조물과 창조주는 그 위계가 다르니까요.]

“누가 그걸 몰라?”

[예?]

“방법. 찾아내라고.”

내 말에 아비트가 거대한 눈동자를 끔벅끔벅했다.

안 되면 되게 해야지.

안된다고 포기할래?

내 말에 아비트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맹주. 일단 고정하시고 무슨 일인지 제게…….]

“빌어먹을 타나토스를 직접 찢어 죽일 생각이니까 말하라고.”

심연의 신. 비록 태초이자 주신 프리아 여신에게는 못 미친다만 결국 타나토스도 신이다.

심연의 공간과 심연의 모든 생명체가 타나토스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 정도로 막대한 힘을 지닌 신이라 할지라도.

내 스승이 한 것을 내가 못 할 리 없다.

[맹주. 저는 이제 쉬고 싶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을 살아…….]

“사표는 거절하마. 좀 더 일해야지?”

[방법이…….]

이윽고 아비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상황은 대충 알겠습니다만…… 방법이 딱 하나…… 있습니다.]

“있다고?”

[혹시 이런 전설을 아십니까. 명계라는 곳이 존재하고. 산자가 그곳의 음식을 먹으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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