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0화
아직.
이클립스가 그들에게 관심을 두게 해선 안 된다.
‘물러나!! 페르세르크를 절대 범위 내로 들이지 말고!’
내공을 이용한 전음을 통해 륀느에게 보내자 그녀가 눈을 부릅떴다.
“우응…… 더 신나게 놀자!!”
내 행동에 주변이 변한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녀가 양손을 펼쳐 들었다.
쩌적!!
공간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시커먼 화염들이 터져 나오며 일대 전체를 마치 사막화하듯 모래로 뒤바꾸기 시작했다.
한국의 영토 내에 사막이라…….
복구하려면 고생 좀 하겠네.
물론 내 목숨도 걱정해야 할 터다.
이클립스는 처음과는 확연히 다르다 싶을 정도로 절제되면서도 위협적인 공격을 쏟아 부어왔다.
단순히 사방이 퍼뜨리듯 부숴대던 공격에서 정확히 나를 집중한 공격으로 바뀌니 그 위력부터가 남다르다.
콰직!!
이클립스를 향해 초단이를 내지르자 그녀가 고개를 살짝 틀어 공격을 빗겨 내버린다.
회심의 일격이 빗나가버린 이상 그 자리를 유지하는 건 극히 위험하다.
망설임 없이 거리를 벌리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이 더욱 빨랐다.
순식간에 내 팔을 낚아챈 그녀가 팔 전체를 기괴한 각도로 꺾어 부서뜨려 버린 뒤 그대로 내 복부에 몸통박치기를 가해온 것이다.
“커헉!!”
작은 체구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막대한 충격이 전신에 퍼져나가자 육신의 통제권이 사라졌고 허공에 떠오른 그런 나를 향해 그녀가 작고 앵두 같은 입을 벌렸다.
치잉…….
동시에 그녀의 뒤편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며 거대한 용의 머리가 나타났고. 상상을 초월하는 고열. 이전보다 더 강해진 브레스가 정확히 나를 집어삼키고 하늘을 찢어발겼다.
‘버티기 더럽게 힘드네! 진짜.’
* * *
실제로 이클립스의 재앙을 본 페르세르크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압도적인 힘이 서린 브레스가 데이비를 삼키다 못해 그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려 들자 륀느가 눈을 부릅뜨며 섬광처럼 페르세르크의 앞을 막아섰다.
[프로토콜 온라인]
[전장의 여신 가동]
륀느의 입에서 기계적인 음성이 흘러나오며 그녀의 날개가 순식간에 세 쌍으로 늘어났다.
거기에 이어 그녀의 전신에 마치 발키리 같은 아름다운 갑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륀느가 신갑 브륀힐트를 높게 평가.”
쿠웅!!!
그 말과 함께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오른 원고리가 기하학적인 형태로 변하며 거대하게 불어났고 그녀의 머리를 떠나 앞쪽으로 뻗어져 나가며 거대한 장벽이 되었다.
쩌어엉!!!
브레스의 여파가 일대 전체를 감싼다.
륀느도 페르세르크도 사실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데이비가 방법이 있으니.
그에 따라 무언가를 하려 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저건…….”
문득 브레스를 쏘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이클립스를 보던 페르세르크의 시선에 기이한 게 보였다.
이클립스의 양어깨와 다리에 붉은빛이 머금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푸확!!
그리고.
연기를 뚫고 튀어나온 피투성이가 된 데이비가 그녀의 주먹을 고스란히 맞으며 그녀에게 육탄 돌격을 시도했다.
“오빠! 엄청 튼튼해!”
“알아. 그래서 좀 골골대게 만들려고.”
“응?”
의아한 듯 바라보는 그녀의 명치에 손을 뻗은 데이비가 입을 열었다.
“제발 한 번에 가자.”
* * *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양팔과 다리, 그리고 명치에 새겨진 붉은 빛이 일순간 점멸하며 거대한 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읏?!”
“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제법 따끔할걸?”
그녀가 강한 건 사실인데.
절대보옥도 빼앗기고. 이쪽도 강해진 입장에서 마냥 그녀가 권총 앞의 터미네이터마냥 단단할 순 없으리라.
“쿨럭!?”
순식간에 힘이 과부하 당했는지 그녀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러났다.
하지만 그 틈을 놓칠 내가 아니었다.
“아?”
전신에 상처가 가득한 내가 그녀를 덮치듯 덤벼들었기 때문이었다.
“오…… 빠?”
순진무구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를 향해 내가 손을 뻗었다.
“제발. 헤라클래스의 취향이 그 성격이 아니길 빌지.”
[1급 대주술]
[천명부동진]
우웅!!! 다섯 개의 주술이 뒤섞여 그녀를 묶고 약화시키는 진이 되리라.
“꼴에 내 주술스승의 비기나 다름없다.”
“크윽?!”
주술사 우치.
나의 스승이던 그가 최후의 적을 상대할 때 사용했던 힘은 역시나 큰 효과가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지구인 만큼 그 효과가 배가 되는 것도 사실이리라.
물론, 그녀가 현신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카트시와의 싸움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점을 꽂아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으웅…….이클립스 몸이 안 움직여!”
당황한 그녀가 파닥거리며 소리치지만, 거기에 장단을 맞춰 웃어줄 여력이 내게 없었다.
마법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나 스스로 거의 자해하듯 몸을 돌보지 않고 이클립스를 끌고 오지 않았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제발 가능하길 빌며 그녀의 양어깨에 손을 얹고는 사령 마나를 모조리 개방했다.
반신의 위계.
초월계 흑마법. 임퍼펙션 데스 로드의 패시브 효과를 발현한다.
모든 영혼이 나의 손에 있고. 그 영혼의 그릇은 나의 의지에 따라 바뀔지어다.
[망자의 왕이 귀환하였으니]
[임퍼펙션 데스 로드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죽은 자의 밤을 열어라.]
순식간에 내 전신에 귀기가 감돌며 내 시야가 마치 보랏빛으로 바뀐 것처럼 세상의 색이 변했다.
쿠웅!!!
명계의 문이 열리며 세상의 규칙이 아주 잠깐 간섭된다.
회랑에서도 성공해본 적 없는 마법이지만 이제야 반신의 위계에 오른 탓에 성공한 것이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마법의 여파가 퍼져나가며 나와 페르세르크의 육신이 마치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무너져 내렸다.
반대로 이클립스는 아주 잠깐 영혼이 튕겨 나간 듯했지만, 본래대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영혼이 존재하지 않았는지 륀느는 인상을 찡그리며 비틀거릴 뿐 쓰러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아를 가진 인공 생명체다. 비록 세피로스화 하였다 하여도 그녀는 과거의 실존했던 륀느와 달랐으니까.
그저 같은 기억을 지닌 레플리카일 뿐이었다.
결국, 영혼이 빠져나온 건 나와 페르세르크뿐이었다.
이클립스의 영혼을 적출하는 건 불가능하고 잠시 묶어두는 게 전부였다.
물론,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주술을 사용해 그녀의 힘을 방해하고 약화시킨 것이니까.
그릇은 충분하고.
나는 영체화된 양손을 뻗어 사방을 허리케인에 휘말린 것처럼 회전하는 영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잠시동안 윤회의 고리에 오르는 모든 영혼들까지 강제 하이잭하면서 일대 영역을 마치 진짜 명계처럼 바꾸어놓았다.
그곳에서 나는 가장 익숙하며. 가장 소중한 한 영혼을 찾아 손을 뻗었다.
동시에 연녹빛의 광구 같은 것이 사람의 형체를 한 빛무리가 되며 내 품에 안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페르세르크의 영혼이었다.
그녀의 혼은 평소의 그녀의 모습과 동일했다.
하지만 명계의 문을 열어젖힌 당사자인 내 눈엔 정확히 보였다.
그대로 그녀를 품에 안듯 잡아당기자 영체가 된 그녀가 놀란 듯 나를 바라본다.
[데이비!]
“아무 말 하지 말고 믿어.”
육신을 벗어나 영혼상태가 된 내가 그녀를 꽉 끌어안고 입을 열었다.
영웅들은 한 가지 분야에 한해서 극한을 이루어냈다.
나는 거기까지 이르진 못할 테지만.
다른 영웅들과 다르게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은 회랑 유일의 존재라 자부할 수 있다.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어야지요. 나는 당신의 어린양이며, 당신의 첫 번째 종이나. 나의 직급은 신의 거래자.]
나는 당신께 타나토스를 데려다 놓을 테니.
당신은 감히 그 위대한 정신의 일부를 내게 강림하사. 내 와이프에게 붙은 몹쓸 년을 떼어주시기를.
그 대가로, 당신의 바람을 단 하나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내 기도에 미약한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수천을 반복해도 바뀌지 않을 운명에 저항하는 가련한 거래자. 그대의 앞길에 후회가 가득할지라도. 나는 그대를 연민한다.]
재수 없게 무슨 소리를.
칭호효과.
[강신.]
내 전신에서 강대한 신의 힘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머리카락이 새하얀 은발에 길게 늘어나며 눈동자 색도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본래 데이비의 모습은 사라지고 륀느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내 등 뒤로 길이를 가늠하기 힘든 새하얀 날개가 펼쳐지며 그녀의 영혼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프리아 여신이 대체 뭘 준비하느라 힘을 이렇게 못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예부터 이런 말이 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
쩌적!! 쩌저저적!!!
동시에 페르세르크의 영혼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뜯겨 나오기 시작한다.
프리아 여신의 강신에 정면으로 노출된 타나토스가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려 하는 것이다.
그동안 페르세르크의 육신이 가장 안전한 도피처였다면.
그 도피처를 박살 내 다른 곳으로 강제 이사를 가게 만들어주마.
마침 좋은 도피처가 있지 않나.
반쯤은 도박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페르세르크에게서 떨어져 나간 그녀의 권능이자 심연의 근본. 타나토스 그 자체가 완전히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그동안 저항하지 않은 채 인상을 찡그리며 명계를 바라보고 있는 이클립스를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아…… 아아아아아아!!!”
그녀의 입에서 고통스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찌나 강한지 이클립스는 닥치는 대로 주변의 영혼까지 빨아먹었지만, 프리아 여신이 강신한 나는 그녀의 영혼을 강제로 끌어안고 버티며 이클립스에게 빨려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안돼!!]
누군가의 처절한 외침이 들려왔다.
안되긴 뭐가 안돼.
남 부인의 몸에서 이제 그만 꺼져라.
공허한 검은 안개가 버둥거리며 나를 향해 소리쳤다.
[결국, 바뀌는 건 없을지니. 나의 분노를 알아야 하리라. 나의 억울함을 알아야 하리라. 역겹고도 역겨운 태초의 의지여. 나의 분노는 절대 멈추지 않을지니!]
쩌적…… 쩌저적!!
프리아 여신을 상징하는 거대한 날개가 부서지기 시작한다.
강신이라 해도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은 신의 분노를 한낮 화신체가 막을 수 있을 리가 있나.
스르르륵…… 쿠우웅!!
이윽고 거대한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주변의 배경이 원래대로 돌아왔고 나는 페르세르크의 영혼을 그대로 그녀의 육신에 심어 넣었다.
콰아아앙!!!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제야 회복시키기 시작하며 고개를 돌렸다.
본래 명계의 문을 여는 것에 내 영혼은 빨려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페르세르크의 영혼에 직접 간섭하기 위해선 나도 영체가 될 필요가 있었기에 내 저항력을 극도로 깎아내리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그것이 나를 극도의 빈사상태로 만드는 것.
이윽고 타나토스의 근원을 흡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클립스가 폭주하기 시작한다.
“아아…… 아아아아아!!”
몸을 파르르 떨며 경련하는 그녀를 바라보던 내 전신에 식은땀이 흐른다.
안 그래도 강한 적에게 신의 권능까지 쥐여줬으니. 이제는 저년을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 아닌가.
하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이클립스와 싸울 필요가 없었으니까.
“엘라임. 마지막까지 고생 많았다. 마무리 짓자.”
내 말과 동시에.
사방에서 물로 이루어진 마법진을이 일렁이더니 바닥이 물의 거울로 변했고. 다시 한번 이클립스의 육신이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폭주한 이클립스가 빨려 들어가는 것을 기준으로 아공간에서 통신기기를 꺼낸 내가 익숙하게 그것을 귀에 걸었다.
“케인. 10초 안에 문 닫아.”
어차피 심연으로 끌려들어 가면 그녀가 나올 걱정은 없으니까.
페르세르크에게서 빼낸 심연의 권능. 그리고 타나토스의 근원은 그녀에게서 도망쳐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이클립스에게 스며들었다.
그 말인 즉.
심연의 문을 닫는 순간 근원이 되는 타나토스를 따라 이클립스도…….
끌려들어 갈 수 밖에다.
가장 위험한 적과 잠재적인 적을 모두 심연에 가두어 영원히 문을 닫아버리는 것.
나이 빌어먹을 전쟁을 끝낼 최선의 방법이다.
뒤이어 들려오는 소리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둘 순 없어.]
익숙한 목소리였다.
“베르단데?”
케인의 목소리가 아닌 베르단데의 목소리에 내가 눈을 크게 떴고 뭔가 잘못 돌아감을 깨달은 내가 급히 움직이려던 찰나.
내 앞을 막아선 두 명의 심연의 공주가 나타난다.
한 명은 처음 나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괴물 같던 심연의 공주. 울드였고.
또 하나는 과거 악마종을 심연이 탈취해갈 때 본 적 있던 동그란 안경을 쓴 작은 심연의 공주였다.
이름이 분명…… 스쿨드였나.
말없이 내 앞을 막아선 두 심연의 공주를 지나치려 하지만 이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내 육신이 만신창이가 되어있다는 건 변치 않는다.
이런 배신은 애초에 상정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했어야 했다.
쉬리리릭!!!!
최후의 계획에서 케인의 의식을 방해한 베르단데.
그리고. 내 앞을 막아선 울드와 스쿨드.
나는 이를 빠득 갈며 물었다.
“이유라도…… 쿨럭…… 말해 빌어먹을 년아. 결국, 너도 심연의 편이었냐?”
심연에서 벗어나려 그토록 발버둥쳐놓고?
모든 것이 완벽했는데.
그걸 망쳐?
내 분노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당신의 계획을 따를 수 없었어…….]
그녀의 슬픈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당신은 희생을 막기 위해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한 거니까.]
그녀의 연락에 나는 조용히 몸을 비틀거렸다.
[수천을 반복해도 바뀌지 않을 운명에 저항하는 가련한 거래자. 그대의 앞길에 후회가 가득할지라도. 나는 그대를 연민한다.]
오랜만에 들었던 그 여신의 목소리.
그녀는 상황이 이리되리라는 것을 어쩌면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