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61화 (760/1,559)

제 761화

214.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네 이름은 뭐야? 울드? 하 웃긴 이름이네. 그럼 넌? 없다고? 헤라클래스. 뭐 이런 것들을 주워왔어. 쟤는 베르단데. 쟤는 스쿨드. 자 됐지? 다됐으면 내 눈앞에서 사라져.]

[멍청아. 네가 아프면 누가 헤라클래스의 어깨를 주물러 주냐고. 얼른 이거나 처먹고 일어나. 남쪽 산에서 거드름피우고 있는 해왕의 간이다.]

[베르단데가 요즘 나를 자꾸 따라 하는 거 같다고? 흥. 할 테면 하라지. 무슨 상관이야.]

[어떤 빌어먹을 비만 도마뱀 x끼들이 내 새끼들을 울렸나. 너야? 너야? 너 이 새끼들 전부 내가 비늘 발라서 회 쳐 먹어버릴 테니까 거기 기다려.]

베르단데는 눈을 감은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바닥에 쓰러진 프레이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허망하게 빛이 꺼져가는 절대보옥을 바라보았다.

“아…… 안돼…… 신의 소망이…… 우리 종족의 염원이…….”

쓰러진 그녀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그동안 충전해온 절대보옥이 다시 꺼진다.

의식의 마지막에 비틀림이 발생하면서 모든 것이 박살 난 것이다.

“…….”

그리고. 칼에 찔린 채 무릎을 꿇고 침묵하고 있는 케인의 앞에 서 있던 소녀가 자신의 품에 안은 마법서를 꼭 끌어안았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그의 편이었던 척 한 겁니까?”

힘없이 묻는 케인의 시선이 피를 뿌리며 쓰러져 있는 프레이아를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차라리…… 몰랐다면…….”

그런 케인의 몸에 검을 꽂아 넣은 베르단데는 곧 검을 입자화시키듯 부숴버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목소리엔 처절한 아픔이 서려 있었다.

“차라리. 떠올리지 못했다면…….”

“변명하지 마십시오. 당신 때문에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당신이 선택한 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을지는 당신이 모르진 않겠지요.”

“…….”

“죽이십시오. 신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제게 더 이상 존재의의는 없습니다.”

케인의 싸늘한 독설에 베르단데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

“말해보십시오!! 그렇게 즐거웠습니까?! 당신의 손에 수많은 생명이 죽게 생긴 것이 그리 즐겁냔 말입니다! 빌어먹을 심연을 믿는 게 아니었습니다! 빌어먹을 적은 보이는 족족 죽였어야 했어요!!”

눈물을 한 방울 툭 떨어뜨린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출혈이 상당하다.

아무리 잘난 육신이라도 이클립스에게 그렇게 공격을 허용해줬는데 멀쩡할 틈이 있을까.

“좋은 말 할 때 비켜라.”

내 말에 스쿨드가 긴장한 듯 나를 바라보며 울드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언니…….”

“…….”

반대로 울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막으려고?

“분명히 경고하는데…… 후우…… 후우…… 지금 몰골이 이 지경이라도 너 하나 조지는 데는 어렵지 않아.”

숨을 짧게 고르며 초단이를 든 내 눈에 살기가 서렸다.

비록 몸을 움직일 때마다 비명을 지르곤 하지만 계속해서 회복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단순히 하드웨어 스펙만으로 몰아붙이는 울드에게 지기엔 이쪽이 너무 강해졌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침묵하는 울드를 향해 내가 앞서나가려 할 때였다.

쩌적!!

공간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용의 발이 내 몸을 후려치듯 지면에 꽂아버렸다.

“쿨럭!!”

파워 실화세요.

정신이 아득해지는 공격에 비틀거린 나는 온몸의 간담이 서늘해지는 싸늘한 공기에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푸욱!!

그리고. 또 한차례 이클립스의 손에 내 몸을 꿰뚫렸다.

“쿨럭…….”

피가 울컥 터져 나왔다.

타나토스를 흡수하고 폭주한 이클립스가 스산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동시에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동시에 매혹적인 미소를 지은 그녀가 뒷짐을 진 채 나를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색으로 변한 눈동자와 마치 기계같이 울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그렇게 물러날 줄.”

“…….”

“알았어?”

귀여운 목소리로 물어오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콰앙!!!

동시에 무형의 충격파가 내 전신을 감싸며 나를 마구잡이로 튕겨내 버렸다.

터엉!!!

베르단데의 배신으로 기회를 놓쳐버린 나는 짧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 목숨 담보로 하는 도박은 이래서 위험하다.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다. 이클립스에 타나토스의 의식이 일부 각성한 것도 섬뜩한데 여기에 심연의 공주까지.

여기서 내가 죽으면.

프리아 여신 진영이 패배한다.

그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말없이 침묵하던 나는 파르르 떨리는 손을 들어 내 입가에 묻은 피를 스윽 닦아낸 뒤 허공에 튕겼다.

그러자 붉은 핏방울이 사방으로 터져나간다.

블러드 롤.

내 손에서 내 마나가 아닌 요시아의 혈기가 일렁인다.

동시에 페르세르크의 반지로부터 붉은 회오리가 일렁이며 그녀와 륀느를 감싸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최대한 빠르게.

그녀를 피신시킨다.

물론 타나토스는 그리 녹록한 의지가 아니었다.

위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쓰러진 내 몸 위에 올라타며 고혹적인 미소를 짓고 제 손가락에 묻은 피를 스윽 핥았다.

“도망치게에?”

배시시 웃는 그녀는 이클립스와 흡사했다. 하지만 좀 더 천진난만한. 또 순수한 느낌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데에…… 헤헤헤.”

그렇게 웃어 보인 그녀는 곧이어 페르세르크와 륀느를 감싸던 핏방울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쩌엉!!

그러자 충격파가 터져나가며 륀느와 페르세르크의 몸이 튕겨 나갔다.

“헤헤헤. 정말 나를 떨쳐낸 것 같았어?”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나를 붙잡은 그녀가 뒤이어 페르세르크를 가리켰다.

“잘 봐요.”

그러자 페르세르크의 붉은 혈안이 주홍빛으로 일렁인다.

“악!! 아아아아아악!!”

그러자 그녀가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이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고.

이내 그녀를 완전히 집어 삼켜버렸다.

“이클립스에게선 벗어날 수 없어. 영원히.”

그 말과 함께 페르세르크가 비명을 멈추고 우뚝 멈춰버렸다.

이후 그녀는 재미를 봤다는 듯 사뿐사뿐 걸어 몸을 돌렸다.

“재롱이 귀여웠어요. 오늘은 이클립스 그냥 돌아갈래요. 아! 이클립스랑 재밌게 놀아요!”

그렇게 외친 그녀가 손뼉을 쳤다.

“조만간. 재밌는 놀이를 가지고 올게요. 하지만 그전에…….”

그렇게 말한 그녀의 손에 검은 구체가 모여든다.

반사적으로 내 몸에 남아있던 신력이 내 몸을 감싸지만, 그녀의 힘은 신력을 서서히 밀어내더니 그대로 내 몸에 접근해왔다.

이대로라면 심장을 관통당한다.

이대로 죽는 건 좀 많이 억울한데.

그렇다면 최소한 이쪽도 마지막 한 수 정도는…….

카아앙!!!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이었다.

갑작스런 충격음에 고개를 돌려보니 방금까지 침묵하던 울드가 무형의 기운을 방출해 이클립스를 튕겨내 버렸다.

“아야아아…….”

물론 타격이라곤 티끌만큼도 들어가지 않았는지 이클립스가 쓰러진 몸을 대번에 일으켰다.

“흐응…… 재밌네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울드가 천천히 나를 지나쳐 그녀의 앞을 막아선다.

마치 그녀에게서 나를 지키듯 막아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타나토스의 근원을 흡수한 이클립스를 분노하게 하는 데엔 충분했다.

“감히. 잔재 따위가.”

“난 네 잔재가 아니야.”

싸늘한 말로 받아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순식간에 날아든 검은 빛줄기가 울드의 팔 한쪽을 그대로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털썩!!

“언니!!”

놀란 스쿨드가 급히 그녀에게 날아들어 검은 기운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언니! 그러니까 도망치자고 했잖아!”

울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저항하는 거야? 뭐 그러면 혼이 나야겠네.”

그렇게 말한 그녀가 손뼉을 가볍게 쳤다.

“커헉?!”

동시에 울드와 스쿨드가 무형의 무언가에 목이 잡힌 듯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클립스와 하나가 되는 거야.”

“…….”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며 울드가 버둥거리지만, 그녀의 압도적인 신체능력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듯 보였다.

그럴 수밖에. 안 그래도 강한 이클립스에 신의 근원까지 스며들었으니. 저걸 이길 괴물이 존재할지나 의문스럽다.

“누구부터 혼내줄까아…….”

뒷짐을 쥔 채 폴짝폴짝 걸어간 그녀는 처음 들고 있던 양산을 어디서 꺼냈는지 들어 올리고는 그대로 펼쳐 들었다.

그리고는 순수하게 웃어 보였다.

“이쪽부터?”

“꺄아아아아아악!!!”

스쿨드의 몸이 비틀어진다.

“아니면…… 이쪽부터?”

“커헉!”

울드의 몸이 비틀어진다.

압도적인 유린 속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륀느는 나를 보호하는 데에 급급했고 페르세르크는 미동도 하지 않았으니까.

방금까지 방해를 한 주제에 이제 와서 나를 보호한다고.

하.

웃긴 것도 적당히 해야지.

내 몸 안에서 검은 기류들이 넘실거린다.

흉포한 사령 마나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날뛰었고 신성력이 서서히 가라앉듯 잠들었다.

새침데기마냥 툴툴거리던 원소 마나가 고요하게 분노하며 움직인다.

내 의지의 이성이 서서히 흩어지며 내 안에 남아있던 광기가 완전히 일어난다.

이클립스는 그런 상황에서도 둘을 가지고 놀 듯 장난을 쳐댔다.

이윽고 그녀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동시에 스쿨드의 눈이 크게 뜨여졌고 울드가 놀란 얼굴로 악을 쓰더니 이클립스의 속박을 걷어내고 그대로 스쿨드의 앞을 막아섰다.

촤아아아악!!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대량의 피를 뿌리며 울드가 쓰러졌다.

미동도 하지 않는 그녀는 죽은 것처럼 보였다.

“언니?…… 언니!!!”

경악하는 스쿨드가 쓰러진 울드를 붙잡고 절규하기 시작하자 이클립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흐응…… 빨간 거 많이 나와.”

헤헤 웃어 보인 그녀가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아. 오빠. 나랑 같이 가.”

그때 그녀가 방향을 바꿔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이클립스랑 잠깐 이클립스의 고향으로 가.”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나를 들어 올렸다.

“오빠가 이클립스를 끝없이 내팽개치려 한 그 지옥으로.”

그렇게 말한 그녀의 전신으로 검은 기류가 넘실거리더니 이내 나를 집어삼킨다.

마치 슬라임마냥 나를 서서히 감싸는 검은 타르 같은 것이 내 목을 빼고 모조리 집어삼켰다.

서서히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면…….

나는 몸 안에 날뛰기 시작하는 광기를 제어하지 않고 그대로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딴 상황이라면.

내가 죽어도, 저년을 지워버리리라.

스스스슷!!!!

폭주하듯 내 몸에서 힘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하자 이클립스가 흠칫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그건…….”

어디 끝까지 가보자 이년아.

서서히 흐려지는 이성 너머로 모든 것을 찢고 부수고 싶은 충동과 함께 묵직한 힘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힘이 나를 완전히 잠식하는 일은 없었다.

“마나 공멸.”

작은 목소리와 함께 주변의 마나가 모조리 동결되고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했지. 넌 아직 한참 멀었다고.”

너무도 그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나는 그딴 식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고 말했는데.”

자박자박 소리와 함께 내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약골에 약골이던 네가 그 지경이 되고 영웅 몇 명이 소멸했는지 잊었나 봐? 불로 태워버리기 전에 멈춰.”

작은 소녀의 목소리와 함께 너무 익숙한 이의 얼굴이 보였다.

“오…… 오…….”

“닥쳐! 한 번만 더 내 가슴을 비하하면 영원히 헬파이어로 태워버리는 수가 있어.”

내가 언제?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친 그녀가 나를 퍽 걷어차고는 나를 지나쳐 이클립스에게 다가간다.

“10초…… 길진 않네. 긴 시간이었지만 이걸로 나도 끝이구나.”

담담하게 말한 금발에 안대를 한 소녀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를 본 이클립스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프리아!!!!!”

극대노한 그녀의 외침과 함께 마나가 동결되면서 내 의식이 완전히 밀려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