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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62화 (761/1,559)

제 762화

희미해진 의식 속에서 나는 작은 소녀를 볼 수 있었다.

겉보기엔 상당히 어려 보이지만 나는 그녀의 나이가 겉보기처럼 적지 않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다.

회랑의 영웅.

아트렐리아의 마법사의 신이라 불리던 그녀는 엄연히 헤라클래스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니까.

물론, 헤라클래스의 추정 연령이 1만 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오딘이라고 해봐야 그의 반절 정도밖에 되지 않을 테지만.

“자알~ 한다.”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 그녀가 손에 쥔 초월의 종언을 들어 올렸다.

뭐야 그거 내 건데.

내 지팡이 돌려줘요.

빠악!!

이윽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초월의 종언으로 내 머리통을 후려쳐버렸다.

“흡?!”

몽롱하던 정신이 멀쩡히 돌아온다.

“정신 차려, 니가 누구한테 마법을 배웠는지 잊었어? 벌써 다 까먹었냐 멍청아? 헬파이어로 태워줄까?”

심드렁하게 말하지만, 그녀의 한방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 잘살라고 내려보냈더니 이 꼴이라니…….”

씁쓸하게 중얼거린 그녀가 천천히 다가온다.

작은 체격으로 다가온 그녀는 주저앉아있던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우리 막내.”

너무 따스한 한마디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깟 초월 의지가 뭐 대수야? 지가 뭐 신이라도 돼?”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억해. 넌 우리가 키워낸 최고의 천재이며 제자야. 잊지 마.”

고운 말을 해준 적이 거의 없던 오딘이 이렇게 잔잔하게 나를 다독이는 느낌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완전히 사라진다.

“자…… 잠깐만!! 오딘!”

“됐어. 이제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 할매!”

“…….”

사라지던 그녀가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성큼성큼 내게 다가오자 나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빠악!!!

“한 번만 더 할매라고 부르면 영원히 불구덩이에 던져넣어 버리는 수가 있어.”

스산하게 경고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됐어. 보니까 예쁜 부인도 뒀더만. 기괴한 걸 몸에 심어놨던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기회를 주는 것뿐이야. 네가 구해내.”

그 말과 함께 그녀가 다시 빛으로 변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잠깐만, 잠깐만요.”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런 나를 그녀는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죠?”

어떻게 된 거냐. 왜 당신이 여기 있냐 하는 그런 많은 질문들이 있었지만.

그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떠오른 불안한 기분은 그것이었다.

“이대로…… 사라지는 거 아니죠?”

질문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사라지면서 멍하니 나를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죽은 자는 죽은 대로 있어야 하는 법이야.”

“좀 알아듣게 이야기합시다. 우리. 망할! 없어지는 거 아니라고 말하세요. 빨리!”

아직 내 인생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적어도 내가 그 빌어먹을 공간에 가서 어떻게 살았다. 어떻게 했다. 빌어먹게도 앞을 막는 어떤 놈들은 이렇게 해버렸다!

그렇게 자랑할 기회라도 줘야지!

내가 이뤄낸 것 없던, 아무것도 없는 꼬맹이라는 걸 알았을 때 싸늘한 시선을 보내던 양반들에게 그대로 전해주기로 약속도 했을 텐데.

그녀에게 기어가듯 다가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가 말했다.

“데이비.”

“아무 말…… 아무 말 하지 마세요. 그냥.”

내 중얼거림에 그녀가 킥 웃어 보였다.

“회랑을 떠날 땐 웃으면서 가던 녀석이 왜 질질 짜고 난리야.”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영혼은 언젠가 윤회의 고리에 든다.

하지만.

그걸 알고 진리에 수긍해도 괴로운 건 있는 법이다.

“회랑의 모든 영웅들은 네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되었건 널…….”

친아들처럼. 친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한다는걸.

* * *

데이비가 쓰러지고, 페르세르크가 침묵한다.

륀느는 힘에 짓눌려 쉽게 움직이기 힘든 상황.

오롯이 서 있던 작은 금발의 소녀는 데이비를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싸늘한 시선으로 이클립스를 향해 물었다.

“너야?”

“…….”

“네가 우리 막내 이 꼴로 만들었냐고.”

담담한 물음에 이클립스가 섬뜩한 파충류의 눈을 번뜩이며 오딘을 노려본다.

“감히 피조물 따위가. 프리아의 피조물 따위가!!”

“내가 물었지.”

쩌엉!!

주변의 마나가 뒤틀린다.

동시에 거대한 무언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네가.”

그그그그그극!!!!

대기가 흔들린다. 마치 천체가 멈추는 것처럼 법칙이 엉망진창으로 날뛰기 시작하자 이클립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이클립스의 힘이 마치 차단당하듯 죄다 멈춰버렸기 때문이었다.

“마…… 말도 안 돼! 고작 인간이! 반신의 위계에도 들지 못한 인간이 어떻게?!”

경악하는 그녀를 향해 오딘은 조용히 손을 뻗었다.

“운 좋은 줄 알아.”

시간이 20초만 더 있었어도.

네가 어떤 존재건 내 소중한 막둥이를 이 지경으로 만든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

콰직!!

동시에 이클립스를 구성하고 유지하던 원자 단위의 비틀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보통 마법사가 만들어낸다고 보기엔 너무 말도 안 되는 영역.

그 변화에 이클립스의 몸에 빛이 머금어지며 그녀의 검은 고딕 드레스가 찢어지고 몸에 비늘이 돋아난다.

작디작은 소녀가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룡으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디스펠.”

너무도 간단하면서도 절대 가볍지 않은 마법이 모든 것을 비틀어버렸다.

“커헉!!”

거룡으로 변하던 이클립스의 육신이 마치 정지라도 걸린 것처럼 멈추더니 다시 되감기를 하듯 작은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헤라클래스의 말대로였네. 그가 슬퍼할 만해. 작은 꼬마.”

담담하게 말한 오딘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륀느를 바라보았다.

이에 륀느가 그녀를 올려다보자 오딘은 제 안대를 스윽 들어 보이며 붉게 변색된 눈동자를 보여주었다.

“역시. 신기한 녀석이구나. 데이비가 깨어나면 말해줄래?”

무언가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말한 그녀가 다시 표정을 싸늘하게 바꾸며 이클립스를 노려보았다.

“여기서 꺼져.”

그 말을 끝으로 이클립스의 육신이 완전히 추방되듯 사라져버렸다.

갑작스레 나타난 절대적인 존재.

륀느의 시선에서 보인 두 번째 회랑의 영웅은 너무도 경이롭고 경악스러운 힘을 내뿜고 사라졌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었다.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다 상체를 일으키고 고개를 돌리자 초거대 비공정 아스가르드의 창밖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아!!”

그리고. 멍하니 있던 나를 제일 먼저 발견하고 달려든 것은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작고 귀여운 소녀. 홍단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청단이가 부끄러운 듯 우물쭈물하다 그대로 침대 위로 돌진하듯 내 품에 안겨 온다.

“우아아아앙!!”

엉엉 우는 두 아이를 말없이 다독이던 나는 찌르르 울리는 머리에 몸을 움직이려다 인상을 찡그렸다.

몸 상태가 최악이다 싶을 정도로 온몸이 저릿한 기분이 들었다.

무리한 자해로 생긴 상처가 절반이고 피하지 못해 생긴 상처가 절반이다.

계획이 실패했다.

완벽하다시피 한 계획은 두 가지 요소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첫째 빌어먹을 심연의 공주. 베르단데의 배신.

그리고, 신이라는 존재를 너무 쉽게 봤다는 점이었다.

현재의 타나토스는 모든 심연의 잔재들이 모여들지도 않았다.

즉, 불완전한 신이라는 소리였기에 이쪽에서 가능성은 충분했지만, 타나토스의 저항은 생각 이상으로 강렬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머리에 퍼뜩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페르…… 페르 어딨어!”

홍단이와 청단이를 안아 든 채로 벌떡 일어난 내가 소리쳤다.

상체만 움직이는 것으로도 온몸에 격통이 일어날 지경이지만 내 머릿속은 그런 것을 판단할 여력이 전혀 되지 않았다.

의식을 놓기 전, 회랑의 스승을 만나기 전 페르세르크는 타나토스의 힘에 의해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다.

“데이비 님.”

“에이리아! 페르는?”

뒤늦게 내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에이리아가 들어왔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나갈 것처럼 구는 내 팔을 낚아챘다.

“진정하세요! 온몸의 부상이 심각하단 말이에요!”

“대답부터 해줄래?”

지잉 울리는 머리를 잡은 채 묻자 그녀가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시선을 피한 채 조용히 말했다.

“일단…… 몸 상태부터 점검해주세요. 그 후에 말씀드릴게요.”

그녀의 말에 나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야.”

“사흘 정도. 되었어요.”

그녀는 그저 내가 안정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

내가 쓰러진 직후 시간은 사흘이 흘렀다.

심연을 모조리 박멸하듯 쫓아버리기 위해 내세운 계획이 실패하고. 궁지의 끝에 역으로 몰리게 되었을 때.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아트렐리아의 마법사의 신이라 불리던 절대 마법사.

오딘이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고작 10초밖에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천체의 규칙을 뒤바꾸는 초대형 마법이 발현되었고 모든 것이 뒤바뀌어버렸다.

타나토스를 흡수한 이클립스는 거대한 균열에 집어 삼켜지며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오딘 또한 사라졌다.

아마 시간이 다 지난 것이리라.

물론, 그녀는 사라지기 전 내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페르세르크에게도 무언가 마법을 걸었다.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 그게 가르침의 기본이다.”

말없이 아스가르드의 함교 내에서 침묵하고 있던 내게 다가온 륀느가 나를 올려다본다.

륀느의 몸 곳곳엔 상처가 가득했다.

“륀느.”

“데이비 님. 륀느의 육체를 고칠 수 있는 건 데이비 님이 전부라고 판단. 륀느의 현 상태로는 제대로 된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이것을 륀느가 낮게 평가.”

“어디서 이렇게 된 거야.”

내 물음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나를 올려다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거대한 숲이 보이고 있었다.

“페르세르크 님.”

그녀의 말에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거대한 계획을 내세울 때 실패했을 경우 돌아오는 리스크는 거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계획이 실패했고.

그 결과 엄청난 리스크를 동반한다.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린 마나 출력장치에는 커다란 숲이 마치 입체형식으로 구현되어있었다.

반쯤 반파된 숲의 일부에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커다란 나무에 몸을 눕힌 채 잠들어있는 은발의 소녀.

그녀의 머리에 돋아난 뿔이 그녀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복장도 다르고 분위기도 완전히 다르며, 그녀의 주변에 마치 공작새의 문양 같은 붉은 눈 같은 것들이 그녀의 주변을 감시하듯 떠 있지만 모를 순 없었다.

엄연히 그녀는 페르세르크였다.

그러니까. 륀느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게 그녀라고?

“페르 님. 현재 폭주상태. 륀느가 가까이 접근했을 때 공격을 가해왔음을 확인. 환수왕 메가로드리아의 조력이 없었으면 륀느의 기계 심장이 다시 한번 가동 정지했을 거라 분석해.”

“…….”

“그 외의 정보. 고대룡 이클립스의 경우, 정체불명의 에너지 활동에 휩쓸린 것으로 판단. 어디로 사라졌는지 분석 불가능. 하지만 죽진 않았을 거라 판단.”

“…….”

“또한, 지구의 인구 2억이 추가로 소멸.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

“…….”

“심연의 공주. 베르단데의 경우.”

콰앙!!

이 일의 원흉.

내 눈에서 스산한 살기가 마치 안광처럼 흘러나온다.

“그년 어딨어.”

갈 곳 잃어버린 분노로 인해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현재 저항하지 않고 아스가르드 함교 지하의 창고에 구금 중.”

“…….”

나는 곧바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륀느가 내 팔을 잡아챘다.

“륀느. 이거 놔라.”

“전언. 본래 불가능하지만, 대가를 지불.”

“뭐?”

“데이비 님을 구한 인물. 데이비 님께 남긴 한마디.”

오딘이다.

오딘이. 나를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그 성질 더러운 쥐방울만 한 마법사가.

그녀가 내게 말을 남겼다.

“뭔데.”

“부디 자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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