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9화
[여기서 꺼져!]
터엉!!!
거칠게 걷어차인 것처럼 내 영혼이 튕긴다. 나를 옭아매던 마치 끈적끈적한 검은 안개들이 그대로 나를 뱉어내며 찢겨 나갔다.
화아아악!!!
어둠 속에서 본 것은 나를 향해 손을 뻗던 심연인 검은 안개와.
그 검은 안개 속에서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누군가의 목소리다.
이클립스?!
눈을 크게 뜬 나는 어둠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다시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웜홀처럼 열린 균열은 나와 페르세르크를 완전히 빨아들였다.
[대가 없는 선행 따윈 없어.]
웜홀에서 튕겨 나가기 직전 나는 그녀에게서 들려온 목소리를 곱씹으며 그대로 육신으로 영체 전체가 튕겨 나가 스며들어버렸다.
그리고 눈을 뜨자 보이기 시작했다.
내 몸에서 흘러내리는 갑각 조각 같은 무언가와.
내 손에 목을 잡힌 채 바닥에 처박혀 침묵하고 있는 륀느를 말이다.
“…… 륀느.”
내 부름에 바닥에 쓰러져 눈을 감고 있던 륀느가 천천히 눈을 뜬다.
“륀느…… 계산상 존재할 수 없는 생존을 경험했다고 보고. 이것을 륀느가…….”
이 와중 에도 장난치듯 말한 륀느의 몸에서 힘이 빠진다.
“높게…… 평가…….”
척 퍼지듯 대자로 드러누운 그녀가 콜록콜록 기침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님 륀느의 순환장치에 문제가 생겼다고 보고…… 세심하고 직접적인 전신 점검을 요구해.”
“…… 그래.”
멍하니 녀석을 보던 나는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시간은 얼마 되어 보이지 않았다.
타나토스에게 잠식당하면서 내가 폭주하기 시작했을 테니 길어야 몇 분 정도.
시간을 엄청나게 잡아먹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륀느의 안전은 확보되었다. 영혼이 타락하기 시작했던 내 육체가 날뛰기 시작한 것도 적절할 때에 제지했다만…….
페르세르크는?
나는 주술과 결계로 움직임을 봉인해둔 페르세르크에게 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영혼을 내가 빼냈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조금의 시간의 흘렀을 때.
그녀의 육체가 크게 한번 움찔거리더니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성공했나?”
“그 말 하지 마라.”
베르단데의 목소리를 잘라버리며 나는 긴장한 얼굴로 페르세르크를 바라보았다.
가짜 육신을 환골탈태시켰다곤 하지만 그녀의 영혼이 똑바로 안착이 될지는 사실 조금 의문이다.
1초가 하루 같은 아주 느릿느릿한 시간이 흘렀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페르세르크를 직시하던 나는 곧이어 그녀의 떨림이 멎는 것을 느꼈다.
“콜록…… 콜록콜록…….”
작은 미성으로 옅게 기침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마치 오랜 시간 굳어있다가 해방된 것처럼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후…… 됐다.”
그녀를 구하는 데엔 성공했다.
그 결과…….
“데이비…….”
나를 부르는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반사적으로 뛰어가 쓰러지려는 그녀를 안아 든 내가 그녀를 포박하던 주술을 해제하자 그녀가 내 품에 안긴 채 작게 기침을 콜록콜록하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미련하긴…… 어찌 그곳까지 찾아와…….”
“네 노랫소리 아니었으면 못 찾았을걸?”
“본녀는 모르는 일인데.”
그녀의 말이 거짓인지 진짜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빌어먹을 타나토스의 개수작에서 그녀를 해방시켰다는 점뿐이다.
물론 그녀의 영혼이 돌아오며 다시 억눌린 심연의 힘 일부가 남아있지만, 이전처럼 그 힘이 강해져서 그녀를 잠식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뭐가 되었건 지켜봐야 하는 일인 건 분명했다.
차르르르르릉!! 철컹!!
이윽고 결계 해제한 베르단데가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할 일이 남았어.”
그녀가 나를 본다.
“마지막으로 할 일?”
페르세르크의 의문 어린 시선에 나는 바닥에 꽂혀있던 청단이를 손으로 불러들였다.
내가 혹시라도 제어 못 하게 날뛰면 청단이 홍단이로 나를 죽이라 명령했는데.
륀느는 끝까지 그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데이비?!”
놀란 페르세르크가 나를 보며 소리쳤지만 나는 청단이를 천천히 뽑아 들며 그녀에게 다가간다.
[아빠…… 많이 아파?]
걱정스런 청단이의 의지가 전해져온다.
‘괜찮아.’
이에 부드럽게 답해준 나는 청단이의 검날을 그녀의 목에 겨누었다.
이번엔 그녀의 목숨을 연장시켜줄 어떤 기적도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체념한듯한 얼굴이었다.
“네가 사용한 종속 계약마법의 계약대로 스쿨드는 손대지 마. 그 아이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보던 내가 천천히 검을 빼낸다.
스릉!! 창!!
절도있는 자세로 검을 들어 올린 나는 곧이어 검을 그녀를 향해 내리그었다.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었다.
생각지도 못한 거친 손속에 륀느와 페르세르크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지만 나는 오로지 먼지만을 직시했다.
“…… 왜?”
먼지가 걷히고 나타난 인영은 내게 의문을 던졌다.
“왜 날 살려준 거지?”
“네 부모에게 물어봐.”
스릉!!!
청단이를 깔끔하게 검집으로 밀어 넣으며 허리에 건 내가 돌아섰다.
“가자.”
“데이비 님.”
놀란 듯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에 의문이 서린다.
내가 그녀를 죽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죽이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약속은 지켜야지.”
빌어먹을 상황에서 나를 도운 건 그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였다.
왜 이제 와서라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생각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법이었다.
* * *
륀느의 수난시대는 참 길고도 길다.
겨우겨우 수리하긴 했는데 또 다시 망가졌으니까.
사실 내가 하는 수리라고 해봐야 일부적인 것뿐이었다.
대부분은 륀느가 자체적으로 광석을 분해하여 자신의 육신을 재구성하는데에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륀느에게 물어보아도 그 원리는 자동적인 것이라 그녀 또한 알지 못한다고 대답할 뿐이다.
“데이비 님!”
커다란 수술 침대에 눕힌 륀느의 이곳저곳을 점검하고 고쳐나가던 중 수술실의 문이 열리며 에이리아가 들어왔다.
“에이리아.”
“무사하셨네요!”
눈물을 흘리며 내게 다가온 그녀가 움찔한다. 본래라면 그대로 안겨들었겠지만, 그녀의 이성이 그것을 필사적으로 제지한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안 할까.
한 발 더 다가오지 못해 멈춘 그녀에게 내가 한 발 내디뎌 그녀를 안아주자 그녀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거봐. 내가 뭐랬어.”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녀는 울먹거리며 내게 말했다.
“아무리 강해도…… 아무리 대단해도 죽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녀의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인걸요……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걸요…….”
“그래…… 미안하다.”
아무리 확신이 가득해도 세상사 어찌 될지 모른다고 한다.
당연히 에이리아로썬 마음을 졸이며 피가 마르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내가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을 즈음이었다.
“데이비. 애정행각은 좋다만. 하던 일은 마저 끝내는 게 좋지 않을까?”
몸을 작게 한 채 작업실 곳곳을 날아다니며 자제를 옮기던 페르세르크의 말에 에이리아가 화들짝 놀라 내게서 떨어졌다.
“죄…… 죄송해요.”
“본녀가 그대에게 무슨 타박을 할 자격이 있다고.”
키득거리며 내 곁으로 다가온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작은 마석 조각을 내게 던져주고는 에이리아의 얼굴 쪽으로 날아갔다.
현재 페르세르크의 크기는 에이리아의 손바닥만 하다.
그런 그녀가 말없이 에이리아를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뺨을 쓸어내리고는 말했다.
“고마워.”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정말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만…….”
임시방편이겠지.
아직 완전히 해방된 게 아니니까.
하지만 한번 큰 힘 싸움에서 이겼으니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후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륀느의 부서진 육신을 수복시켰고 절대안정이라는 팻말을 그녀의 목에 걸어주고 나서야 나올 수 있었다.
“그때 그 목소리…… 분명…….”
“이클립스였어.”
내 대답에 내 곁으로 날아온 페르세르크가 조용히 나를 본다.
“미안해 데이비. 본녀가 이런 꼴이라.”
“준비가 미흡했던 것뿐이야. 어디 도망갈 생각하지 마.”
물론 도망이라기보다는 동화책에 나오는 납치당하는 공주의 포지션 같지만 말이다.
“그녀는 미쳐버렸던 게 아닌가?”
“미친 건 맞아. 아무리 잘난 존재도 거기서 그렇게 오래 버티고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순 없으니까.
그곳은…….
내 생각 이상으로 끔찍한 장소다.
강제로 망각시키고. 강제로 절망시키며. 강제로 두렵게 만든다.
심연의 끝은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공간이었고. 그만큼 혐오스러우며 미지의 무언가였다.
본래 동전 앞면의 세상이 되어야 했으나 되지 못해 썩어 문드러진 세상이라 하였나.
프리아 여신이 왜 갑자기 타나토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심연은 상상 이상으로 깊고 어둡다는 것을.
“데이비…….”
나를 부르며 다가온 그녀가 내 손을 꼭 잡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손을 떨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직도 후유증이…….”
“오래가진 않겠지만 나온 지 얼마 안됐으니까.”
자칫하면 트라우마가 남을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아니 보통은 트라우마가 남고도 넘쳐서 미쳐버렸겠지.
“그녀는 어쩌면 정신이 멀쩡했던 게 아닐까?”
“아니야. 미친 건 분명해. 다만……."
이클립스는 미친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녀가 마지막에 타나토스를 떼어내고 심연으로 끌려 들어가던 나를 튕겨낸 건…….
오딘…….
그녀가 타나토스를 심연으로 강제 추방시키면서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일 터다.
타나토스의 근본이 이클립스에게 스며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오딘의 힘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잠시 심연 끝에 잠겨있던 그녀의 의식이 다시 눈을 뜬 것일지도 모른다.
“…….”
본래대로라면 이클립스의 눈을 감겨주어야 할 것이다.
그녀도 희생자니까. 심연의 문을 닫더라도 그녀를 죽여야 하는 게 맞는데.
사실상 그게 불가능하다.
게다가. 절대보옥이 한번 실패한 탓에 납골당 쪽에서 다시 의식을 치르는 것도 불가능하다.
케인은 이제 의식을 진행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며 절망했지만…….
나는 한곳. 딱 한곳 더 알고 있다.
하인스 영지.
모든 영지의 자연요건이 내 의도대로 바뀌는 고대유적으로 둘러싸인 땅.
조용히 침묵한 채 생각을 한다. 다시 절대보옥의 에너지를 모으는 것도 일이지만…… 정말 이대로 심연을 닫는 게 옳은 일일까.
애초에 베르단데가 살아있는 이상 그걸 다시 닫아버린다고 하면 그녀는 반드시 제 목숨을 버려가며 나를 제지하려 들것이다.
괜히 살렸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한번 실패한 작전은 두 번 쓰는 것도 사실상 내키지 않았다.
“이클립스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방법을 좀 찾아야겠어.”
신검도 좀 필요할 거 같고.
“여기서 일주일 정도만 쉬고.”
내 말에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나를 본다.
육신을 다시 키운 내가 그녀를 안아 들었기 때문이었다.
“티오니스로 돌아가자. 칼디라스나 세계수 알에게 조언을 좀 받아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