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1화
그녀는 티오니스에 있어야 했다. 본래 이곳에 데이비와 함께 온 게 아니기에 어느정도 티오니스의 상황을 아는 이들은 그녀의 존재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일리나의 입장에서도 곤란한 건 매한가지였다.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는 통칭 선조님 덕분에 새로운 검을 배웠고 헐거워진 차원의 틈에 칼디라스의 권능을 발현하여 꽂아 넣을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이곳에 와서 데이비를 한번 구해낸 건 좋은데 개인적으로 돌아가려면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지낼 곳이 없었던 것이다.
“고마워요. 덕분에 곤란할 뻔했네요.”
일리나는 익숙하게 우아한 자태를 뽐내듯 고개를 숙여 윤 씨 남매에게 감사를 표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구수를 자랑하는 이 지구에서 아는 이를 만난다는 건 제법 운이 좋지 않고선 쉽지 않은 일일 테니까.
“아뇨. 도울 수 있다면 도와야죠. 그런데 황녀님께서 직접 그…… 피임 도구를 사러 오신 건가요?”
“아…… 아니에요!! 일부러 산 게 아니라……!”
차가운 눈매로 인해 성격도 싸늘할 거라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일리나는 제법 푼수끼가 상당했다.
산소의 물음에 당황하여 허둥지둥거리던 일리나가 재빨리 종이 상자를 허공에 집어 던진다.
그리고.
스릉…….
철컥!!
아주 잠깐 그녀의 손에 쥐어진 브로치가 번뜩였고 허공에 던져진 문제의 종이상자는 흔적도 없이 찢겨 사라져버렸다.
“하아…… 하아…….”
시뻘게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를 보며 산소맛곰탕, 즉 윤지아는 그녀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 술을 사러 온 것뿐이에요.”
“혼자서요? 수행원은 어디 가고…….”
“사정이 있어서 혼자 왔어요. 호위기사도 없구요. 데이비…… 아아아!! 데이비와도 따로 왔어요! 사정이 있어서 비밀로 하고!”
데이비를 언급하자마자 빨개진 얼굴로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그녀의 행동에 수소가 피식 웃어 보인다.
“황족도 사람은 사람이구나.”
“사람 맞거든요?!”
빼액 소리치듯 두 사람을 노려본 일리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잔할래요? 마침 저도 술이 좀 고팠는데.”
배시시 웃는 윤지아의 제안에 일리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다 이내 황녀로서의 위엄과 우아함을 갖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 우아한 황녀께서 혼자서 편의점에 들러 소주를 무더기로 사다가 신분증에서 걸려버린 것부터가 우아함을 날려버린 꼴이지만 애써 티 내는 이는 없다.
“그럼요. 얼마든지 환영한답니다.”
“편하게 대해주세요. 일리나 황녀님. 아 참. 지구에서 그런 복장은 눈에 띄니까 일단 가요. 마침 친구의 집에 들르고 있었거든요.”
“친구요?”
“네. 최근 들어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있어요. 아마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에 일리나는 티오니스로 돌아갈 힘을 모을 동안 어디서 지낼까 고민하던 찰나였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윤지아가 일리나를 데리고 간 곳은 상당히 고급진 저택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친한 친구의 집이라는 모양인데 상당히 고급진 것으로 보아 제법 부잣집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지구의 건축양식은 그녀로썬 하나하나가 놀라운 느낌이지만 말이다.
익숙하게 준비된 열쇠를 이용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좀 전까지 누가 있었던 것 같은 온기가 집안 곳곳에서 느껴졌다.
혼자 사는 친구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 것 치고는 제법 넓다.
“그런데…… 친구분은?”
“곧 올 거예요. 먼저 준비하고 있죠. 유나는 황녀님도 아는 사람이고 나머지 한 명도 황녀님과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아 참. 깜빡했다. 누나. 마가 그 여자가 말한 거 사러 갔다 올게.”
“뭐? 깜빡한 거야?”
“설마 황녀님을 만날 줄 알았나.”
수소가 가볍게 담장을 뛰어넘으며 말하자 지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해. 최근에 밤길에 이상한 걸 봤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으니까.”
“이래 봬도 각성자라 어디 가서 뚜드려 맞진 않아.”
느긋하게 말하며 사라지는 수소를 뒤로한 채 일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들어와요. 아. 신발은 벗고 들어와요.”
“이야기는 들었어요. 이곳 풍습에 대해서.”
“아. 그랬죠? 후후. 그나저나 지구엔 언제 오신 거죠?”
“하루도 안 됐어요.”
“세상에. 금방 왔군요. 그런데. 티오니스에서 지구로 오는 방법이 생각보다 간단했나 봐요?”
“아뇨. 그건…….”
말하길 꺼려하는 모습에 지아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손님이 온 게 나쁜 건 아니죠.”
담담하게 말한 그녀는 일리나를 안내해 따듯한 방바닥에 앉혔다.
그리고, 익숙하게 자리를 까고 안주를 펼친 지아가 종이컵에 붉은빛을 띠는 소주를 따라주자 그것을 노려보았다.
방바닥에 앉아 소박하게 소주잔을 까고 있는 황족이라…….
일리나는 데이비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그의 전생에 대해 들은 바 있으니까.
그 덕분에 그녀는 그에게서 지구에서의 삶이나 이야기를 많이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런 걸 두고…… 꽤 소박하다고 했던가.
나쁘진 않은 기분이다.
“꽤 향이 강하네요.”
“그렇죠? 각성자들이 술에 잘 취하지 않는 탓에 각성자들을 위한 술이 만들어졌거든요. 사람이란 참 신기해요. 필요한 것들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내놓으니까요.”
키득거리며 잔을 내밀자 일리나는 그에 맞춰 쿡쿡 웃은 채 종이로 만들어진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을 쭉 들이켰다.
“크으…… 쓰다.”
“…….”
담담한 얼굴로 술을 보던 일리나는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데이비와 가끔 술을 마실 때면 그가 작정하고 꺼내놓는 술을 마실 때가 많다.
보통 마스터 급 이상의 존재는 마나로 인해 술의 취기가 금방 해소되곤 한다.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주량을 어필했다가 어찌 되었던가.
우화등선주? 열반주?
대체 제조방식이 어떻게 되먹은 술인지 한잔에 뻗어버렸던 기억이 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크흠. 맛은 깔끔하지만 역시 너무 약하구만, 이보게 후손님. 마나를 내가 알려주는 대로 운용해봐. 그럼 취기가 올라올 게야.]
그녀의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데이비는…… 잘 있나요?”
“글쎄요. 솔직히 지금에 와서 은인께서는 마치…….”
잠시 말끝을 흐린 윤지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먼 세상 사람 같아요.”
“먼 세상이요?”
“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담이나 하던 분이었는데…… 지구 전체를 돌아다니며 문제란 문제는 다 해결하고 흉신까지 거의 다 처리한걸요.”
“흉신이라…… 이야기는 들었는데. 많이 강한가 봐요?”
“상위 흉신이라는 존재가 한번 날뛰면 인류 멸종은 별반 문제 될 게 없다고 하더군요. 뭐. 물론 지금에 와서는 거의 다 죽었다는 모양이지만요.”
세계를 움직이는 남자.
얼마 전 뉴스에서 뜬 그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정말 오글거리는 단어였다. 일리나도, 윤지아도 데이비를 잘 알기에 데이비가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손발가락을 꼬아대며 괴로워할지 알았지만, 그 칭호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지구에는 러시아라는 국가가 있어요. 사실상 군사 최강국이었죠. 각성자가 나타난 이후에도 쿠틴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각성자 강국으로도 이름을 날렸어요.”
조용히 잔을 들이킨 그녀가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그런 대국이 단 한 명이 열 받았다는 이유로 제 나라를 정신없이 들쑤시고 있더군요.”
중국도 마찬가지.
미국이라고 다를까.
“그는 비록 지구의 사람은 아니지만, 그가 움직이는 것 하나로 수많은 국가가 움직이고 있어요. 간단히 말하면 눈치 보는 거죠.”
지아의 말을 일리나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티오니스라고 다를 게 없으니까.
티오니스가 조용했다면. 평화로웠다면 그런 일은 일어날 일이 없었겠지만 놀랍게도 티오니스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사건들을 겪었다.
이미 대륙 내에 수많은 국가들이 라운 왕국이 아닌 하인스 영지의 눈치를 살피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되니까 이제 실감이 되더라구요. 정말 그 사람은 멀리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씁쓸한 듯 중얼거리는 그녀였다.
“게다가…….”
지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다.
최근 티비나 인터넷을 통해 간간이 전해져오는 은인의 표정이 예전과 다르게 상당히 조급해 보였어요. 그 사람이 그렇게 바삐 움직이는 것도 처음 봤구요.“
일리나는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 데이비가 얼마나 중요한 순간에 놓여있는지를 말이다.
그는 이곳에 와서 제 전생의 동생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긴 했을까.
심연과의 싸움 때문에 과할 정도로 지쳐있는 건 아닐까.
자신을 희생하려 들던 페르세르크로 인해 슬퍼하진 않았을까.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도 데이비는 혼자였다.
그에 반해 적은 수도 없이 많고 시시각각 그를 노리고 들어온다.
아마, 그도…….
‘지쳤겠지.’
괜히 안타까운 심정이 밀려왔다.
본래 힘을 회복하는 대로 티오니스로 돌아가려 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아의 말을 듣고 나니 그가 보지 않는 곳에서 그를 돕고 지켜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그녀였다.
물론 데이비가 들었다면 까분다며 안마를 핑계로 온몸의 근육과 뼈를 분지를 기세로 주물러 댔을 테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정치나 국가, 혹은 복잡한 모든 것과 동떨어진 소박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제 나잇대의 소녀가 할법한 주제로 서로가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즐겁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드는 일리나였다.
“사실 좀 부럽네요.”
일리나와 다르게 취기가 올라온 윤지아가 술기운에 발그레해진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네에? 부러워요?”
“황실에 있을 때와 다르게 이곳은 거짓이 없으니까요.”
“흐음…… 이곳 사람도 거짓말은 하는걸요.”
“거짓이 정당화되는 세계는 아니니까요.”
황족의 삶은 마냥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거짓이 정당화되는 공간이 바로 황실이다.
같은 형제자매끼리 권력으로 인해 싸우고, 황실 유통 내탕금을 두고 이를 갈며 서로를 음해하기도 한다.
팔란 제국에는 많은 황족이 있었지만 사소한 문제부터 큰 문제까지 얼마나 많은 오라버니들이 죽었던가.
평민 목숨 파리목숨이라고 말하지만, 황족의 목숨도 사실 별다를 바가 없었다.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침묵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저…… 잠시 자리 좀…….”
“다녀와요.”
자리에서 일어난 일리나가 걸음을 옮겼다.
복잡해진 기분에 바람을 좀 쐬어야 답답한 마음이 풀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흠칫 놀란 그녀가 고개를 돌린다.
정원으로 걸어 나온 그녀의 기감에 잡힌 것.
그건 끔찍할 정도로 어두운 무언가였다.
이에 그녀는 바람을 쐬던 것도 잊고 몸을 튕겨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멀리서 느껴지는 끔찍한 무언가를 따라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위험해. 방금 느낀 섬뜩한 기류가 착각이 아니라면…….’
자칫 큰 사고가 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곳에 왔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향해 날아든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쉬리릭!!!
쩌엉!!
반사적으로 기운을 폭사시키듯 끌어올린 그녀가 이를 악물고 몸을 날렸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뻔했다.
‘안돼…… 아직 차원 가르기의 여파로 힘을 끌어내기 힘든데…….’
아무리 특수한 폐관 수련을 거쳐 검로에 변화가 생겼다지만 아직 그녀는 완전하지 않았다.
[안돼! 후손님! 피해!]
그녀의 사생활을 위해 어지간해선 나서지 않는 영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에 그녀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든 그 순간.
그녀의 시야에 밤하늘 아래 검은 인영이 그녀를 향해 손을 뻗는 게 보였다.
촤악!!!
그리고,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날아든 날카로운 식물 줄기들이 순식간에 그녀의 전신을 난자해버렸다.
“커헉…….”
제대로 반응조차 못 한 채 쓰러져버린 일리나를 말없이 내려다보던 검은 인영은 조금 독특한 생김새의 여성이었다.
마치 식물이 여성이 되면 이런 모습일까.
티오니스의 고서에나 나오는 알라우네와 흡사하게 녹빛이 감도는 피부와 머리에 돋아난 꽃이 그녀의 존재를 입증시켜주었다.
“감히…… 감히 카트시 님을 죽이고…… 멀쩡히 살아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
싸늘하게 일갈한 그녀는 쓰러진 일리나를 차갑게 노려보다 고개를 돌렸다.
“네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을 모두 부숴버릴 테니까. 러시아의 일은 시작일 뿐이야.”
그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검디검으면서도 섬뜩한 힘을 내뿜었다.
“신께서 맡기신 이 힘으로.”
그렇게 말한 그녀의 손으로 식물 줄기들이 마치 뱀처럼 얽혀오며 뭉쳐진다.
그리고 날카로운 바늘 같은 검을 만들어냈다.
“일리나 황녀님!!”
그때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지아가 어디서 꺼낸 건지 모를 장검을 내리 세우며 그녀를 공격해 들어왔다.
카아앙!!!
철저한 기습이었고 빈틈없는 일격이었다.
하지만 피를 뿌리며 쓰러진 일리나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있던 그녀는 공격에 당하지 않았다.
마치 보지 않아도 알고 있다는 듯 손을 날카로운 바늘 같은 검으로 윤지아의 장검을 쳐내버린 것이다.
“신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이 저주받은 땅의 하찮은 미물 따위가.”
싸늘하게 일갈한 그녀가 지아를 노려본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오한이 돋을 정도의 공포가 엄습해오자 지아는 쓰러진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일리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경악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알프 온라인에선 이미 수차례 유저들의 퀘스트를 통해 흉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려진 정보들이 존재한다.
종족 알라우네.
바늘 같은 장검을 쓰며 자연의 힘을 다루는 흉신.
다른 흉신과 다르게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이면서 흉신 서열 2위에 존재하는 재앙 급의 괴물이다.
5위 이상의 흉신들은 하나같이 방대한 힘을 바탕으로 한번 강림했다 하면 국가 하나를 잿더미로 만드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는 존재들이다.
“휴…… 흉신 키르시나…….”
레이드도 아니고 혼자서다.
게임 스펙을 고스란히 가져오지도 못했다.
문제는 키르시나라는 이 고위서열의 흉신은 각성자의 입장에선 레벨 50에 만난 200레벨짜리 레이드형 보스 몬스터라는 소리였다.
무더기로 준비를 하고 와도 과거 흉신 메세스 때처럼 일순간에 뭉개질 수 있는 판국에 무려 서열 2위가 나타났다.
데이비와 아직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인데 괴물을 만난 것이다.
최근 근처에서 기이한 것들이 자주 목격된다는 소문이 나돌았는데…….
어쩌면 그녀가 그 범인이었을지도 몰랐다.
지아는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 일리나를 걱정스레 보다 한 손을 뒤로 숨겼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익숙하게 터치한 뒤 통화버튼을 꾸욱 눌렀다.
“그녀를 놔줘.”
긴장한 어투로 그녀가 서열 2위 흉신 키르시나를 향해 말했다.
키르시나가 작정하면 지아의 힘으론 수초 안에 고깃조각이 되어버릴 정도로 힘의 차이가 크다.
힘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라는 말이 여기서 그대로 써 먹혀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었지만 물러날 수 없었다.
그녀가 여기서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설사 도망친다 해도 그렇게 되면 일리나의 죽음이 확실시되기 때문이었다.
이에 지아는 스마트폰을 꼭 쥐고 숨긴 채 긴장한 얼굴로 눈앞의 살아남은 유일한 흉신이라 추정되는 여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물…… 러나세요.”
말 한마디를 하는데에도 공포가 전신을 엄습하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