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72화 (771/1,559)

제 772화

지잉! 우우웅…….

신나게 요동치던 거대한 마나 핵 소형원자로가 꺼진다.

“휴…… 점검 시작할게요.”

티아라의 말에 마법담당인 엘프 마법사 몇몇이 나섰다.

그들은 데이비를 따라 하인스 영지에 귀화한 영지민으로 본래 지원을 받아 정령 마법과 원소 마법을 연구하던 이들이었지만 현재엔 아스가르드에 승선하여 내부에서 장비 점검이나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익숙하게 마법진을 발현하여 장치를 점검하기 시작하자 티아라가 고개를 돌렸다.

“할배. 왜 안 자고 있어.”

“에잉. 쯧쯔…… 네 녀석이 멀쩡히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이 할애비가 어떻게 자겠냐.”

“하! 웃기지 말고 가서 눈이나 붙이지? 벌써 며칠째 밤새고 있는 건지 내가 모를 줄 알아?”

볼멘소리를 내며 입을 삐쭉이는 붉은 머리의 아름다운 소녀의 타박에 에디손은 껄껄 웃어 보였다.

“고놈 참. 거 이제야 흥미로운 연구 소재를 찾아서 열정을 불태우는 이 할애비에게 할 소리냐. 엄한 소리 하지 말고 너나 쉬어라.”

“어! 바퀴벌레다!!”

“우어억!!”

당황한 에디손이 펄쩍 뛰며 물러나자 티아라가 꺄르륵 웃어 보였다.

“아하하하하하!! 거짓말인데에!”

“에잉! 못난 것 쯧쯧…….”

자신의 추태에 역정을 낸 에디손이 혀를 끌끌 찼다.

“그나저나. 은사는 어찌하고 있다더냐.”

“우리 왕자비님이 당분간 깨우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구요. 너무 고생했을 거라고.”

실제로 데이비가 페르세르크를 구하는 데에 쓴 시간은 체감시간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그 사실을 모르지만 언제나 여유 넘치던 데이비가 지친 기색을 전부 숨기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모두를 포용하는 만큼 많은 문제를 홀로 끌어안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하인스 영지민이자 그의 가신이 된 이상 어지간한 일은 좀 기대어주었으면 하는 입장이지만 그는 끝끝내 그러지 않았다.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위험할까 봐 홀로 전부 떠안는 게 로구먼.”

“마치 동화책의 용사님 같지 않아요? 홀로 마왕성을 찾아 여행하는 그런 용사님이요.”

“겉보기엔 멋진 일이지만 그건 참 고독하고 힘든 일인 게다. 우린 우리가 할 일을 하면 되는 게야.”

에디손의 연륜이 묻어나는 말에 티아라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할배.”

“엥?”

“만약에 말이야. 내가 데이비 은사님과 정략 관계가 이어져서 진짜로 혼약을 했다면.”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다. 애초에 대륙 6대 미녀 중 하나라는 거추장스러운 칭호까지 받았던 그녀가 마음에 둔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눈앞에 있었으니까.

그녀의 취향은 정말 독특함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음?”

“할배는 어땠을 거 같아?”

“흥. 사람은 좋지. 능력도 좋고. 하지만 그 애송이 은사님은 너무 홀로 떠안는 게 문제지. 옆에서 보는 사람은 걱정하느라 피가 마를 게다.”

“그렇겠지?”

“그보다. 그 어디냐 지구에서 은사가 챙기던 인간이 있었잖느냐. 확인은 했느냐?”

“엘프분들도 그렇고 수차례 중첩해서 결계 마법을 쳐놨어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알 수 있는 걸요?”

“최근 그 근방에서 기괴한 게 목격된다는 소문이 돈다는 모양이더라.”

노파심에 말하는 에디손의 말에 티아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어디서 들었대요?”

“거 다 아는 수가 있다.”

입맛을 쩍쩍 다시며 그가 손에 쥔 지구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허어…… 아쉽구먼. 돌아갈 땐 이걸 놓고 가야 한다니…….”

“기억의 상당량이 지워질 거라고 했잖아요.”

이곳에서 아무리 이곳의 기술을 배워도 돌아가면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반대로 마법 지식을 지구의 인간이 배워 돌아온들 그것을 기억할 리 없다.

“거봐. 아무 문제 없네.”

근처에 있는 아티펙트를 조작해 결계의 작동 여부를 확인한 티아라의 대답에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보게.”

“왜 그럽니까?”

“거, 준비해둔 영상 송출장치 좀 켤 수 있나?”

“송출장치요? 잠시만요.”

엘프가 아티펙트를 조작한다.

“할배. 결계 무사하다니까?”

“이 할애비의 감이다.”

뭔가 기묘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에디손의 위기 감각은 제때에 빛을 발했다.

“세상에…… 이게 뭐야?!”

홀로그램처럼 출력된 마나 파장을 본 엘프 선원이 경악한 듯 소리쳤다.

“설명 좀…… 해줄래요?”

“구멍이 뚫렸어요! 세상에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결계가 뚫린다는 건 자연재해라도 벌어지지 않는 이상 불가능…….”

결계 감지 장치는 멀쩡했는데 마치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처럼 훤히 열려 있었다.

말을 하던 엘프와 이야기를 듣던 티아라의 표정이 하얗게 질린다.

자연재해.

그들에겐 제법 익숙한 단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지구에 남은 유일한 적인 마지막 흉신으로 추정되는 서열 2위의 상위 괴물.

자연재해를 불러일으키는 아틀란티스인 키르시나가 살아있지 않던가.

러시아에서도 키르시나로 추정되는 존재가 나타나 인간들을 세뇌시켜 페르세르크를 공격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번 습격은 예상했었어야 했던 부분이었다.

게다가 키르시나가 그곳으로 향했다면 그 이유야 뻔하다.

데이비가 이상하게 챙기고 드는 신현아라는 여성을 노린 것.

데이비를 파멸시키기 위해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을 흉신이라면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이기도 했다.

물론 한 번에 그녀를 죽여버릴 수 있음에도 저런 짓을 했다는 건…….

“은사를 부르는 것일 테지…….”

손톱을 잘게 물어뜯는 티아라의 행동을 저지한 에디손이 그녀를 본다.

“할아부지. 빨리 은사님…….”

“아니. 함정일지도 모른다. 은사는 휴식이 필요해.”

그 말에 그녀가 인상을 찡그린다.

“흉신을 그 사람이 아니면 누가 상대한다고!”

그냥 흉신은 현재 한국의 군부대에 주둔하며 늑장을 피우고 있는 그 어마어마한 크기의 흑룡, 메가로드리아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상위 흉신이라면 메가로드리아 홀로의 힘으론 힘들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곤히 잠든 데이비를 깨우자니…….

그는 티아라가 보기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

짧게 침묵한 그녀가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할배.”

위이잉!! 덜컹!

그때 마나로 작동하는 대리석 벽이 열리며 한 청년이 걸어들어왔다.

“방금 뭔 개 같은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헙…….”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줄래?”

피곤한 기색이 남아있는 데이비가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 * *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일리나에게서 관심을 끊은 키르시나가 천천히 산소맛곰탕, 즉 윤지아를 향해 다가갔다.

일리나는 괜찮은 것인가.

그녀가 소드마스터라는 존재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각성자에겐 까마득히 강한 존재일지 모른다.

과거 흉신 굼다 대규모 레이드에서조차 제대로 된 타격조차 못 주던 게 각성자였으니까.

하지만 상위 흉신은 그런 마스터 급 존재조차 어찌해볼 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다못해 이곳에 없는 제 동생이나 친구인 현아, 유나가 없다는 점은 그나마 볼 수 있는 작은 다행이었다.

스르르륵!!

“재밌네.”

그때. 산소는 자신의 몸에 닿은 기괴한 감촉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학을 떼며 몸에 달라붙은 무언가를 떼어내려 했다.

물컹물컹하면서도 제대로 된 감촉이 없는 그것들이 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연의 힘을 마치 제 수족처럼 다룬다.

물을 이용해 이런 포박을 하는 건 사실상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원래 목표는 네가 아니라 더 있지만, 상관없겠지.”

저벅저벅 다가온 그녀가 무성의하게 지아의 팔다리 그리고 목을 휘감은 채 일렁이는 물줄기 속에 팔을 불쑥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물로 만들어진 검을 뽑아냈다.

그리고는 지아의 목에 겨누었다.

“흡?!”

물줄기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던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아스가르드에서 주기적으로 그녀나 수소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직 살아남은 흉신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사실 현아의 집이 약속장소인 것도 사실 그 이유 때문이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결계 안에서 행동해달라.

지금에 와서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피 냄새에 어그로가 제대로 끌려버렸지만, 그 말을 잊으면 안 되었다.

“죽일까…… 말까…….”

놀리는 듯한 질문의 의도는 번했다.

살려달라고 빌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끄륵…… 끅…… 은…… 은인께서 오면 당신도 금방…….”

“글쎄. 그게 쉽진 않을걸? 인간은 지칠 수밖에 없거니와 그가 오기 전에 나는 널 죽이고 도망치면 되거든.”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손을 휘젓자 물줄기들 대부분이 흩어졌다.

대신 그녀의 목을 휘감은 물줄기만이 더욱 두꺼워 거칠게 흔들렸다.

“커헉!! 컥…… 컥!”

마치 교수형을 당하듯 허공에 들려진 윤지아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와 끔찍한 고통 때문이었다.

“살고 싶어?”

“커헉!! 컥!!!”

눈물이 점차 짙어진다.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며 윤지아가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그래…… 살고 싶겠지. 사는 건 생명체의 당연한 욕구니까. 그런데 너희가 죽인 우리 동족은? 아틀란티스들은 그렇지 않았나?“

“마…… 말도 안 되는 논리…….”

괴로워하면서도 윤지아가 중얼거렸다.

“당신들이…… 공격하지만 않았…….”

푸욱!!!

“으으으으으읍!!!!!!”

순식간에 물줄기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고 키르시나의 손에 쥐어진 물의 바늘이 그녀의 대퇴부를 거칠게 찢어놓았다.

대퇴부 뼈가 부서지는 끔찍한 고통에 그녀가 절규하며 소리를 지르려 하지만 물줄기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아 버린 터라 들려오는 것이라곤 악에 가까운 신음뿐이었다.

악을 쓰며 윤지아가 괴로워하자 키르시나는 즐겁다는 듯 스산하게 웃어 보였다.

그때였다.

“아야야…… 아파.”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와 함께 새하얀 초승달 형태의 검기 몇 개가 물줄기와 바늘을 관통하고 지나가며 모조리 베어버렸다.

이에 목이 졸려 죽어가던 윤지아가 빠르게 해방되었다.

갑작스런 기습이다.

반응할 틈도 없었다는 사실에 경악한 키르시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그녀는 이내 자신의 뒤에 멀쩡히 서 있는 이가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일리나 데 팔란.

처음 그녀가 기습 공격한 황금빛 머리칼과 눈동자를 가진 소녀였다.

놀라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겸비한 소녀는 천천히 일어나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큰일 날뻔했네.”

담담하게 말한 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긴장감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 치명상이었을 텐데?

실제로 그녀의 몸에는 피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 부상은 거짓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 같은 인간이 방금처럼 그녀를 방해할 힘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아니. 그게 무슨 상관일까.

지금 자신이 하는 것은 데이비가 오기 전에 최대한 이곳을 짓밟는 것뿐인데 말이다.

“데이비를 구하겠다고 했으면서 정작 내가 아직 이렇게 약하면 안 되지.”

담담하게 중얼거린 그녀의 손에 빛이 모여든다. 그리고 섬뜩한 느낌이 드는 백은색의 거검이 쥐어지기 시작했다.

“굳이 일어나서 처참하게 찢기고 싶다면 말리진 않을게.”

키르시나는 한차례 그녀를 해친 경험이 있기에 여유롭게 받아치며 다시 물줄기를 만들어내려 했다.

하지만.

“어?”

물줄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잠겨버린 것처럼 말이다.

“어이.”

그리고, 일리나의 상당히 불량한 말투가 들려온 그녀가 급히 고개를 든 그 순간.

키르시나는 볼 수 있었다.

익숙하게 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튕긴 일리나의 전신에 감도는 푸른색의 바람을 말이다.

뭔가…… 잘못됐다.

분명 약해빠진 인간이었는데.

이전과는 분위기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 과거 일리나가 중검을 활성화할 때 보이던 폭발적인 마나 폭사. 즉 전신에 푸른 마나를 퍼뜨리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지만, 키르시나는 그것을 몰랐다.

마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처럼 신비로웠고.

천상의 천사의 곁에 신의 기적이 머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느낌이 든다.

멍하니 일리나를 보던 키르시나는 자신의 이변에 경악하며 급히 움직이려 했다.

감히 그녀를.

다른 존재도 아니고 흉신, 그것도 재앙에 가까운 진짜 존재인 상위 흉신인 그녀를 두렵게 만든다.

그러니 그 존재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면 그만이다.

다가오는 일리나를 찢어발기기 위해 강제로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중검]

[눈보라.]

기세가 차갑게 변한다.

그녀의 주변으로 마치 눈송이 같은 새하얀 이기어검이 만들어진다.

검의 형태가 아닌 마치 눈송이 같은 보잘것없는 형태지만 그 힘의 성질이 달랐다.

반사적으로 굳어버린 키르시나가 일리나를 바라보았다.

알라우네의 꽃이 파르르 떨린다.

마치 봄인 줄 알고 만개하였으나 현실은 겨울이었던 것처럼. 키르시나의 몸이 절로 두려움을 내비친다.

‘두려워한다고? 내가?! 웃기지 마! 하찮은 인간에게 패배의 고배를 마시는 건 한 명이면 족해!!’

인간은 약한 종족이다.

그건 과거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그래야 했다.

그래야 했는데…….

거의 악을 쓰듯 일리나를 향해 덤벼드는 키르시나의 행동에 그녀가 조용히 한 발 더 내디뎠다.

쩌억!!!

그리고. 키르시나를 지나치듯 앞서나가며 칼디라스를 가볍게 튕겼다.

“커헉…….”

키르시나의 몸이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줬으면 받아야지.”

일리나는 자신이 누굴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느긋하게 중얼거리며 키르시나를 반 토막 내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