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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75화 (774/1,559)

제 775화

218. 위기의 배터리들

“…….”

제안 자체는 좋은데 마족들은 선 듯 나서지 않는다.

그 이유야 훤했다.

“너무 뜬금없는 데다가 타이밍까지 좋아서 의심스럽나?”

내 물음에 그들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고대의 괴물들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 그걸 해결해준다고 하니 누가 믿겠는가.

하물며 마족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종족의 비원을 꺾어버린 폭군이나 다름없는 것을.

당장 덤벼들지 않는 것도 목숨이 아까워서 일뿐 사실 마족 내에서 나의 여론은 극도로 안 좋을 수밖에 없다.

“거절하겠소.”

그때 가만히 있던 노인 아스타로트가 나를 향해 말했다.

“뭐?”

“당신은 마왕이니 명한다면 따라야겠지.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명할 거요?”

“자유는 보장해주지.”

“그렇다면 역시, 거절하겠소.”

어째서? 라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는 말 없이 그를 노려보았고 그는 긴장한 듯하면서도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현 마계의 상황은 어느정도 알고 있다.

“이봐!! 영감탱이!!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땐가?!”

“동족들이 동요하고 있네. 자네가 일족의 수장이라면 그에 따른 현명함은 보이도록.”

“…….”

잠시 침묵한 내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너희도 참 피곤하게 산다.”

“공식적으로 도울 순 없소. 다만. 알리타가 조만간 감찰관의 자격으로 외곽도시 칼라로 향할 거요. 그곳에 놈들이 선택한 마족들이 있다는 소문은 돌더이다. 아 물론 혼잣말이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나를 보필하며 일을 해결할 순 없지만 정보 정도는 건네주겠다 이 말이다. 공식적으로 그들은 나를 도운 게 아니라 혼잣말이니까.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서 할 이야기가 없음을 깨닫고 물러났다.

물론 가기 전 그를 향해 중요한 요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 2미터 정도 되는 커다란 병이 있나? 아 참 이건 명령이야. 자유 권한 없으니까 죽기 싫으면 무조건 구해와.”

투박하지만 유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내 물음에 아스타로트가 의심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성의 마족 시녀를 시켜 내게 그것을 구해다 주었다.

“마법 시약을 제조할 때 쓰는 병이오. 대체 어디다 쓰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마왕인 당신의 명령이니 가져왔다만…….”

“요긴하게 쓸데가 있어. 아마 조만간 쓸 건데. 아. 휘하 기술자 마족 중에 유리장인이 있나? 돈이 얼마나 들어도 좋으니까 2미터, 3미터, 5미터, 8미터, 12미터, 20미터까지 유리병을 좀 만들어줘. 대충 만들어도 돼 어차피 내가 강화 마법을 인챈트할 거니까.”

인챈트 한 번에 라이플로 갈겨도 깨지지 않는 유리가 탄생한다.

그것이 바로 창조경제. 가성비의 왕이렷다.

의문스러워하는 그를 뒤로한 채 병을 아공간에 억지로 밀어 넣은 나는 속이 후련한 표정으로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후 고성을 빠져나가던 중 이실디가 말을 걸어왔다.

“이봐. 바쁘다면서. 이렇게 어영부영 넘어가는 거야?”

“바쁘지. 페르세르크가 그렇게 보여도 몇 번 일을 겪더니 내가 늦으면 상당히 바가지를 긁어대기 시작했거든.”

신혼부부라고 싸우지 말란 법은 어디에도 없다.

옛말에 그런 말이 있다.

인간이 둘 모이면 반드시 언젠가는 싸운다.

“그런데 왜 물러나?”

“무슨 뜻이냐?”

걸음을 멈춘 내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두운 복도 너머 나를 바라보는 그녀는 인상을 찡그린 채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너라면 말 안 듣는다고 싸그리 아작을 내버릴 줄 알았는데.”

“아스타로트 입장도 이해 못 할 건 아니야. 그리고 차라리 이게 나아.”

일단 성자이니 라운 왕국의 왕자이니 하지만 나는 내 선택에 따라 스스로 마왕의 자리에 올랐다.

지금에서야 권능을 가지고 마왕이라 떠드는 놈들이 있다만 기본적인 마왕의 뼈대 규칙 자체는 바뀔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이 나를 두려워하면서도 막연한 증오를 보일 수 없는 것이고.

증오를 보인다는 건 즉 반역. 내게 마왕쟁탈전을 신청한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언제든 덤비라 하였지만 제 목숨 아까운데 함부로 덤빌 놈은 아직까진 없다.

한 명이 있긴 했다만.

나는 이 중앙 고성의 1층 로비 중앙에 걸린 거대한 무기를 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발록의 무기이다.

“막 덤비진 못해. 마족의 특성이 그렇거든. 그런데 마족의 입장에서 나는 저들의 숙원을 개 박살 낸 장본인이야. 수많은 마족을 죽였고.”

자신들의 적이었던 이에게 알랑방귀를 뀌는 상부 지휘계층을 보고 있으면 당연히 밑에 있는 마족들이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그들은 나를 돕지 않았으나 내가 나서서 그들을 돕는다.

나는 나에 대한 아직 불확실한 여론을 불호(不好)에서 호(好) 쪽으로 돌리고 그들은 내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다 주는 간신 같은 모습을 피할 수 있다.

간단한 여론 논리이다.

“이상하군요. 제 이면에 있는 케인이 팔란 황실에서 본 책에는 마족은 힘을 숭상하며 힘으로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들었는데요.”

“맞아, 그냥 종족 특성답게 짓누르고 말 안 듣는 것들은 다 처단하면 되는 거 아니야?”

담담하게 섬뜩한 소리를 하는 그녀였지만 나는 그 말에도 마냥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시간이 부족했다면 정말 그렇게라도 했을 테니까.

“같은 프리아 여신을 모시던 든든한 우방이었던 마족과 인간이 이렇게 갈라져 있다는 게 참 웃기네.”

“우방? 마족은 원래 홀른의 편이었어?”

“적어도 1만 년 전엔 그랬다더라.”

출처는 붉은 공허 속에서 나만을 기다리고 있는 3만 년 묵은 노인 고대룡. 아비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가능하면 두 종족의 원한까지는 몰라도 이 냉전 상황은 끝내고 싶거든. 그렇게 하기 위해선 힘으로 짓누르는 방식은 언젠가 버려야 돼.”

힘으로 강제 납득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로 인한 납득이 되어야 한다.

별문제가 없을 경우 시간이 지나면 증오는 퇴색된다.

그리고 조금씩 교류가 열리면 곧 두 종족은 지구촌의 다수국가의 국민처럼 친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마족과 인간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단순한 전통?

머리에 뿔?

아니면, 마나를 다루는 인간과 마기를 다루는 마족?

사실 하나도 중요한 것 따윈 없다.

“심연과 싸워 이기면 끝이 아니잖아. 마계는 앞으로 내가 집권하며 개편해야 할 장소야.”

“그러다가 내가 온 그 심연에서 신이 튀어나오면.”

그녀가 타나토스의 존재를 떠올렸는지 두려운 기색을 애써 숨기며 물었다.

애초에 타나토스가 모두를 흡수할 때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던 심연의 존재들은 모두 흡수되었지만, 베르단데의 도움으로 자신의 자아를 확립한 이실디는 그런 희생을 껄끄러워하고 두려워한다.

그녀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가장 강한 심연의 공주는 이클립스라 하지만 이클립스는 워낙에 특이한 케이스일 뿐 사실상 가장 강한 존재는 슬리지아였다.

그런 그녀조차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게 바로 눈앞에 있는 이 맹꽁이 같은 여자일 뿐이고.

그만큼 강자조차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맹꽁이 같은 게.”

“뭐? 야! 그게 뭔 뜻이야?! 지금 기분 엄청 나쁘거든?!”

“무슨 뜻인지 모르는데 화를 내나?”

“뭔가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 화가나!”

“조용히 하고 따라와.”

내 말에 그녀가 방방 뛰며 성질을 부렸다.

“야!! 거기 안 서?! 거기 서라고!”

“닥치세요. 심연.”

물론 그녀의 독주를 막는 이도 있었다.

그녀를 싸늘하게 노려보는 케인의 행동에 이실디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뭐라 그랬어? 너 뒤지고 싶어?”

“내가 할 말입니다. 빌어먹을 심연.”

“닥쳐! 너흴 배신한 건 베르단데지 내가 아니야!”

“그딴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도 결국은 똑같은 심연이라는 게 중요하죠.”

“너도 그 입 좀 닥쳐, 케인.”

결국, 내 중재로 으르렁대던 두 인물은 화를 삭이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나는 알리타가 출발한 마족의 도시를 향해 별개로 발걸음을 옮겼다.

단순히 걸어가기엔 거리가 멀다.

마계의 땅덩어리는 제법 큰 편이니까.

그래서 날아다니는 자연산 와이번 한 마리를 끌어내려 구타라 쓰고 조련이라 읽는 숭고한 행위 끝에 완벽한 탈것을 만들어냈다.

마족들의 도시 중 하나인 칼라.

가장 큰 도시는 아니지만 제법 번화한 도시는 이전과 크기에 비해 상당히 조용하고 어두웠다.

아, 하늘이 어두컴컴해서 그렇다는 게 아니고.

마족들의 삶은 사실상 마냥 호화롭진 않았다.

태생부터 거친 놈들이라 한번 싸움이 벌어지면 눈 돌아가는 게 대다수였으니까.

마족들의 영역에 들어서자 인간임을 알아챈 마족들이 쏟아내는 증오와 두려움이 피부에 저릿하게 닿았다.

내가 마왕임을 모르는 이도 있다. 마왕의 권능인 막내 힘인 마기를 거의 숨기고 있어서 겉보기엔 인간처럼 보일 테니까.

나를 제지하려던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인간에게 패배했다.

도시에 입장할 땐 최면마법으로 넘겼지만. 도시에 들어온 이상은 이제 내 정체를 드러내는 게 오히려 좋다.

인간이 여기 있다.

니들이 무서워하던 데이비 올 라운이 여기 있다.

어그로는 최고다.

“음 냄새 좋은데?”

“이…… 인간이 어떻게 여기에!? 아…… 안 팔아요!”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작은 마족 소년이 파르르 떨며 나를 향해 소리친다.

두려움은 가득하지만 맞서는 눈빛이었다.

“이 녀석! 칼룸!”

그때 마족 꼬마 소년의 부모로 보이는 마족이 달려와 그를 끌어안고 내게서 멀어졌다.

“안돼! 맞서지 마! 저자는 인간이야! 마왕의 끄나풀이 일지도 모른다고!”

마왕. 원래는 충성과 존경의 대상이지만 지금의 마왕은 그들에겐 공포와 증오의 대상일 뿐이다.

애초에 이곳에서 내 여론이 좋을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어딜 가든 시선은 다 똑같네. 두려움에 떨면서 짖는 것밖에 못 하는 강아지들.”

이실디의 신랄한 평가에 케인이 비웃음을 던진다.

“배신밖에 할 줄 모르는 독사 같은 여자도 세상에 있습니다.”

“한 번만 더 지껄이면 저 자식이 있건 없건 널 죽여버리는 수가 있어. 분명히 경고하는데. 나는 예전처럼 정의를 부르짖는 멍청이가 아니야. 내가 홀른의 편에 선건 내 스승의 유지와 사제들 때문이라고.”

사제들이라…… 무화낙섬을 본능적으로 익히고 있던 천열문주의 딸과 독고준의 후손.

언젠가 잘 지내는지 안부 정도는 알아봐야 할 것이다.

과거 이실디는 정의를 찾아대던 무림맹의 단장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녀의 본능을 억누르고 그녀의 존재가 본래와 달라진 탓에 어느정도 포악한 심성은 남아있다.

“케인. 그만하라 했을 텐데?”

“저는 솔직히 지금의 당신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싫습니다! 사실 가장 많이 화가 나야 하는 건 제가 아니라 당신 아닙니까?”

심연에 대응하기 위한 종족답게 아주 칼 같은 답변이었다.

“일단 납득하게 설명해줄 테니까 귓구멍 열고 잘 들어.”

그럼 여기서 돌아가. 라고 해서 저놈의 심지를 꼬아 삐지게 만드는 건 내 관심사가 아니다.

“베르단데는 심연과 달라. 그녀가 배신한 건 심연의 문제가 아니라 이클립스 때문이었고.”

아무리 화가 나도 확실히 짚을 건 짚고 넘어가야 하는 법이다.

“…….”

“그리고 여기 있는 이 멍청한 맹꽁이는 제 종족들이 전부 합쳐질 때도 버려진 팔푼이야. 심연이라고 보기도 힘들고, 애초에 베르단데와도 다르니까. 베르단데와 심연, 이실디는 모두 다른 입장이다.”

“그래 봐야 같은 심연입니다. 그녀가 당신을 배신하면요? 관상을 보십시오. 좀만 문제가 생기면 대번에 당신을 배신할걸요?”

면전에 대고 앞담을 까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이실디의 몸에서 스산한 기운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나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후려쳐 진정시켰다.

“애가 으르렁댄다고 너까지 그럴 거냐?”

“네가 한 말 중에 애든 어른이든 잘못했으면 맞아야 한다던 말이 있는데 말이야.”

“그 주둥이 좀 다물면 넌 참 예쁘고 좋은데.”

담담하게 말한 내가 케인을 보았다.

“널 배신하고 날 배신한 게 이 맹꽁이냐? 아니면, 심연이냐. 그것도 아니면 베르단데냐.”

“…….”

“이실디의 출신이 어떻든 일단 이 녀석은 훌륭한 전력이야. 손이 부족한 이 상황에 그렇게 하나하나 쳐낸다니, 너 전쟁에서 이길 생각이 있긴 한 거냐?”

내 물음에 그가 움찔거렸다.

내 말대로 손이 부족한 게 현실이니까.

“죄송…… 합니다.”

“넬타리드에게 남은 건 이제 너와 프레이아 둘 뿐이다. 처신 똑바로 해. 네가 못날수록 욕을 먹고 먹칠을 당하는 건 네가 아니라 너를 믿고 내게 보낸 넬타리드니까.”

케인은 둘이다.

일리나를 부모로 따르는 그 철부지와 그 철부지의 인격 속에 있던 또 다른 케인.

둘의 관계는 내 알바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의 케인 mk2 녀석은 그래도 말이 통하던 녀석이다.

“넌 그냥 쌓인 울화통을 풀 대상이 필요한 거잖아.”

“…… 후우…… 맞아요. 솔직히 분노를 풀 대상이 필요합니다. 어렵게 구한 의식장을 쓸 수 없게 만들고 어렵게 회복한 절대보옥의 힘을 모두 날려버린 것도 화가 납니다!”

물론 그녀의 사정 따윈 케인도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알바가 아니다.

그녀는 죽이는 게 맞지만, 이클립스 때문에 죽이지 않고 있는 것뿐.

“근본이 같다고 같이 화를 내는 연좌제는 내가 제일 혐오한다. 나는 그걸로 이실디에게 뭐라 할 생각이 없어. 그리고 베르단데의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거고, 이실디의 전력은 차후 생길 싸움에서 반드시 도움이 될 거다.”

차디찬 결정에 그가 이를 악물었다.

내 말대로 손이 부족하니까.

“오…… 너 좀 멋있어 보여. 알겠어? 너 지금 나한테 실수하는 거야 이 빌어먹을 꼬맹아.”

잠시 침묵이 일었다.

“하…… 세계수 [알]이 왜 널 보고 속 터져 죽으려고 했는지 알겠네.”

넌 X, 눈치도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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