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79화 (778/1,559)

제 779화

뀨우우우우우!!!

기괴한 소리와 함께 근육 토끼들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사라진다.

힘의 근원을 절대보옥에 흡수하자 벽옥색의 보석은 거대한 힘 덩어리를 마구잡이로 먹어치웠다.

“…… 좋아. 됐다.”

“비열한 자식.”

“이기면 된 거야. 난 그런 놈이랑 힘 싸움하기 싫다.”

오한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아나는 기분이었다.

근육 토끼들이 사라지고 난 자리엔 마족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시체만이 남아있었다.

말없이 다가가 그들의 목덜미에 손을 올려본 나는 이미 늦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죽은 자들이 근육 토끼가 되어 다시 일어나는 꼴이니.

“그럼 이제 가장 위험한 놈은 처리했으니…… 나머지 놈들을 처리해보자.”

세계수를 먹은 마물 펜릴은 근육 토끼를 제외하면 가장 위험한 놈이니 그래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 * *

이미 봉인이 풀려버린 놈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놈들은 나오지 않았다.

놈들은 내가 놈들의 봉인을 풀기를 바라는지 모른다.

그저 봉인을 견고하게 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놈들의 힘을 경계해 놈들이 튀어나와 날뛰는 꼴을 원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아이어에는 두 명의 감응자가 존재한다.

첫째. 이미 봉인이 해제되었으나 근육 트레이닝에 미쳐버린 보팔레빗.

이놈은 좀 극 혐오스러운 몰골을 하곤 있지만 그래도 제법 얌전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 뱀은 조금 다르다.

아마 봉인이 풀리는 순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려 할 테니 먼저 선빵을 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일 것이다.

“말씀하신 이로 추정되는 이들을 찾아보았습니다만…… 찾기가 쉽지 않아서…….”

“흐음…….”

“무엇보다 현재 영지의 민심이 반반으로 갈려있습니다…… 따라야 하는 쪽과 따르지 말아야 하는 쪽으로.”

“협조도 반반이라 잘 안 되는데. 고대 마수 놈들은 내가 감응자들을 죽일 줄 알고 꽁꽁 숨기고 있다라…….”

감응자가 살아남아야 저들이 자신의 힘을 이용해 빠져나올 테니까.

알프레드의 경우가 조금 특수한 케이스라 할 수 있었다.

“웬만하면 인도적으로 해결하고 싶은데. 제발 그러길 빌지.”

“저…… 마왕님.”

“뭔데?”

“알프레드는…….”

“쇠약이야. 감응자가 되어서 힘을 끌어다 쓰면서 생명력을 대가로 바친 모양인데. 진기가 빠져나간 게 아니니까 회복은 할 수 있어. 여기.”

종이에 마족들에게 좋은 약초들을 적어준다.

“거기 비율대로 배합해서 하루에 삼시 세끼 먹고 나서 먹여. 한두 달 정도면 기운을 차릴 거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화색이 돋은 얼굴로 그가 고개를 숙여 소리쳤다.

그는 마치 구원을 받은 것처럼 내게 몇 번이고 엎드렸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흐흑…….”

아들을 살려준 존재가 설사 과거의 적이었다 할지라도, 그는 내게 고마움을 숨기지 않았다.

부성이라는 게 어디 가벼운 것이겠는가.

생각해보면 크리아네스 올 라운. 즉 나의 아버지였던 라운 왕국의 국왕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국왕의 자리와 자신의 입장 때문에 애정을 표하지도 정작 중요할 때 지켜주지도 못했으니까.

일개 마족과 인간의 국왕의 큰 차이가 있음에도 아들을 향해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못했는가의 차이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의 수명도 이제 길지 않지…….’

비록 내가 그를 반쯤 의절했다곤 하지만 그의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은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곧 펠리스티 공국의 공녀와 결혼하는 동생 바리스는 그런 슬픈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참 동안 흐느끼며 내게 고맙다는 말만 반복하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마왕님.”

“할 말이 있나?”

“마왕께서는 지금 땅에 봉인된 그 고대의 괴물이라는 존재들의 봉인을 해제하시려는 겁니까?”

“그래.”

항거불능의 괴물을 풀어놓겠다는 뜻과 같지만, 그는 나를 향한 믿음을 보였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다른 모든 마족이 당신을 두려워하고 증오한다 할지라도 저만큼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신 세바스찬. 은혜를 모르는 마족이 아닙니다.”

“뭘 하려고.”

“찾으시는 감응자들을 찾아내겠습니다. 거친 방법을 써서라도요.”

“됐어. 그렇게 안 해도 돼.”

내 말에 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실례지만 마왕께선 빠르게 그들을 소환하고자 하시는 게 아니신지.”

“맞아. 페르세르크가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을걸?”

페르세르크라는 이름이 거론되자 세바스찬의 낯빛이 하얗게 변한다.

장난스레 말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첫 감응자를 찾은 건 좋은데. 두 번째부터 사실 조금 막막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때였다.

화르르륵…….

보랏빛 화염이 내 앞에 타오르기 시작한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화염 속에서 마치 허상 같은 거대한 뱀의 눈동자가 나를 본다.

섬뜩함이 서린 시선에 세바스찬이 그대로 주저앉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쓰으…… 하아…… 보팔레빗의 기운이 사라진 건 네놈의 짓이렷다. 필시 놈을 다시 봉인한 것이겠지.]

봉인? 나는 따로 봉인한 적이 없는데.

“욤이라고 했나?”

[그렇다. 필멸자여. 우선은 감사를 표하지. 보팔레빗은 우리와 다른 존재라 할 수 있다. 놈은 우리의 계획에 방해가 되었지.]

이놈, 의외로 계속 나타나서 설명해주는 것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한번 맞고도 정신 못 차리고 나오지?”

[흥. 수천 갈래로 쪼개진 조각 중 하나를 해치웠다고 기고만장 하지 마라. 하찮은 필멸자여. 한낮 필멸자 나부랭이가 감히 진정한 불멸자인 우리를 어찌할 수 있다 보느냐?]

욤의 도발은 끝나지 않았다.

[네가 무슨 수로 보팔레빗을 봉인했는지 알 수 없으나. 나를 속일 순 없다. 네놈이 가진 특수한 힘이 우리에게 먹힌다 한들. 네놈이 우리를 죽일 가능성은 티끌만큼도…….]

“됐고. 하나만 물어보자…….”

[…….]

“너희 자칭 고대신들은 내가 파악하기론 총 넷에서 다섯 정도인데. 맞나?”

[그렇다 두려워하라. 포식의 마수, 펜릴. 세상을 휘감는 뱀. 바로 이 몸인 욤! 그리고 천공의 지배자인 메뚜기 칸! 그 셋 중 어떤 존재도 네놈이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음이니]

“그래? 그럼 우리 한번 시도해볼까?”

내 미소에 욤의 눈동자가 나를 직시한다.

“지금부터 내가 너희 전부를 한자리에 해방시켜주마. 그러니 개수작 부리지 말고 당당하게 한번 붙자.”

[하찮은 수작을.]

“수작? 크흐흐. 뭔가 착각하나보다 너.”

비웃음을 던진 나는 근처에 있던 와인병을 깨뜨려버린 뒤 신력을 담았다.

그리고는 그를 향해 말했다.

“니들 전원이 덤벼도 감히 내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마.”

혼과 육신이 동기화 되기 전.

또 신력이 없던 시절.

제대로 된 반신의 위계도 없던 시절.

그 외에 추가적으로 아비트로 인해 강화된 금기의 힘조차 없던 시절.

그때와는 다르다.

세계수를 먹은 늑대?

세상을 휘감는 뱀?

그딴 게 알게 무엇인가.

[네놈의 장단 따위에 놀아날 생각 따윈 없다. 곧 우리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날지니. 그때 네놈에게 파멸을 안겨주마.]

“아니! 그러지 말고 그냥 나한테 협조하라니까? 너희 다 꺼내준다고. 그렇게 자신 있으면 한판 붙어보면 되지.”

깨진 와인병의 끝을 그에게 겨누며 말하자 그는 끝까지 자신의 할 말만을 한다.

[기다려라. 그때까지 세상의 종말을 준비하는 것도 좋을 터다.]

“아오!! 이 자식이 진짜 끝까지 자기 할 말만 하네?! 좋아. 니들이 그렇게 나오면 이쪽도 방법이 있어요. 개자식아.”

스르륵 하고 사라져버리는 놈을 뒤로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내가 주저앉아 벌벌 떠는 세바스찬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감응자는 내버려 둔다.”

내 말에 세바스찬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동시에 케인의 표정이 찌푸려진다.

“또 뭔가 이상한 계략을 꾸미시려고.”

“아니. 별거 아니야. 마계 땅에 어떤 문제가 생기건 내가 직접 한자리에 세 놈을 모조리 꺼내야겠어.”

방법이 하나, 존재한다.

비록 그 대가는 세계수 알이 치르겠지만.

내가 알아서 하라고 했으니 그에 맞춰주는 수밖에.

* * *

세계수 알은 느긋하게 기대듯 몸을 눕힌 채 과일을 입에 물었다.

“맛이 농익었구나. 이번 추수는 아주 풍년이겠어.”

“정말인가요 어머니?”

신목의 성녀 에밀리아의 물음에 알은 느긋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아…… 좋구나. 그 골칫덩어리도 없고, 그 말썽부리는 놈도 없고. 아주 평화로워.”

“골칫덩이라면…….”

“누구겠느냐. 매번 검술 수련한다고 숲을 다 부숴 먹는 녀석이지.”

“아하…….”

“앓던 이가 쏙 빠졌어. 아주.”

그동안 이실디로 인해 그녀가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에밀리아가 쿡쿡 웃어 보였다.

그때 그녀의 귀가 쫑긋거린다.

“그런데 어머니. 그분이 떠나기 전에 열매를 주시지 않았나요?”

“몸보신하라고 하나 던져주긴 했지.”

단순히 몸보신 수준을 넘어선 물건이긴 하지만 그에겐 크게 가치가 있는 물건이 아니다.

쓰기에 따라 엄청난 효과를 줄 수 있기도 하다.

“그럼…….”

“에이 설마. 엄한 짓 할 때 쓰겠느냐.”

설마가…….

사람 잡는다.

“흡?!”

갑자기 벌떡 일어난 알이 눈을 부라렸다.

“이…… 이이이 천지 분간 못 하는 놈이!! 대체 열매로 무슨 짓을?!”

비명을 지른 그녀가 빛으로 화해 사라지자 에밀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열매를 이용해 데이비가 무슨 짓을 했을 거다.

그러니 그녀가 저렇게 당황하는 것일 테지.

그런데. 열매로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어머니가 저렇게 당황하시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에밀리아는 곁에 다가온 사슴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 * *

“좋아 좋아! 다 먹어치워라. 이 새끼들아!”

세계수의 열매.

방대한 세계수의 힘을 품고 있는 절세의 영과라고도 불리는 물건이다.

그 효능은 사용하기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지금 내가 하는 짓도 충분히 가능범위에 있다.

현재 내가 하는 짓은 알의 입장에선 경악스러운 짓이었다.

그럴 수밖에.

세계수의 일부나 다름없는 이그드라실 열매를…….

이곳, 아이어의 중앙광장에 심어버렸으니까.

이그드라실 열매가 새로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 새로운 세계수의 가지는 본래의 세계수와 서서히 이어지면서 대량의 힘을 빨아들인다.

마치 태반에 자란 아이가 모체의 영양분을 받아먹듯 말이다.

당연히 세계수가 자란 땅은 비옥해지고, 더욱 생명력으로 가득해질 수밖에.

마족에게 정령 에너지가 마냥 좋다곤 할 수 없지만 상관없었다.

빌어먹을 고대 마수들이 깔짝깔짝 모으는 힘을 단번에 그들에게 줄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세계수의 힘으로 보옥을 충전하면 되는 게 아니냐 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엔 그녀가 잃어야 할 힘이 너무 크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대량의 힘이 이 대륙 전체의 핵을 타고 열매에 전해지기 시작한다.

세계수의 열매를 이렇게 심어서 강제로 부화시킬 거라곤 아마 그녀도 생각지 못했을 터다.

그리고.

나의 이런 행동에 경악한 건 알 뿐만이 아니었다.

새로이 자라난 세계수의 가지가 주변의 땅에 방대한 생명력을 뿌리기 시작하자 땅이 비옥해지고 황폐하던 마계에 생 에너지가 감돌기 시작한다.

거기에 대고 나는 이 세계수의 에너지가 마족들에게 친숙해질 수 있도록 마왕의 힘을 발현했다.

대량의 에너지가 유동되기 시작한다.

아마 세계수 알이 이를 부득부득 갈며 나를 씹어대겠지만 알아서 하라고 했으니 알아서 하는 것일 뿐.

물론 단점도 존재했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으로 인해 이 땅에 어떤 큰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고대 마수가 튀어나오면서 비어버린 공간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다만.

그 또한 세계수가 할 일이지.

세상을 떠받치는 땅의 어머니가 그런 것도 못 해줘? 어?

마치 춤을 추듯 손가락을 허공에 휘저어주자 대규모의 마법진이 허공에 나타나며 대량의 힘을 유동하기 시작했다.

“세계수의 힘을 이용해서 마계에 에너지가 감돌게 만들고 남은 찌꺼기는 모두 먹이로 그놈들에게 먹인다. 최고의 일석이조네.”

“세상에…… 세계수가 당신을 찢어 죽이려 들 겁니다.”

“알 게 뭐야.”

담담하게 말한 내가 마법진의 저항력을 낮추자 어디선가 모종의 힘이 세계수의 힘을 강탈해가기 시작했다.

필시 세 마리의 고대 괴물들일 터.

놈들은 풍부한 에너지를 먹어치우기 시작했고.

내가 열매를 심어 그 힘을 계속해서 퍼뜨릴수록 계속해서 강해졌다.

놈들로썬 거부할 수 없는 미끼였을 것이다.

그리고.

오래가지 않아 반응이 나타났다.

어두운 마계의 하늘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힘. 그런 힘을 먹어치우고 강제로 봉인을 부수고 마계를 죽음의 기운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것은 내가 있는 이곳. 거대 도시 아이어였다.

애초에 저 멍청한 놈들은 미끼를 물고 자신이 해방될 수 있다는 것에 취해 내가 놈들을 이곳으로 유도해 불러냈다는 것을 전혀 모르니까.

한곳에 세 마리 모두 불러낸 탓일까.

지독할 정도로 강한 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나는 경악한 채 덜덜 떠는 마족들을 뒤로한 채 이실디에게 말했다.

“새어 나오는 놈은 모두 죽여.”

“내가 네 말을 따라야 해?”

“…….”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덜덜 떨고 있는 마족들을 모아놓고 소리쳤다.

“들어라!!”

“…….”

“이 땅에 잠든! 너희들을 두렵게 만든 괴물이 모두 태어났다. 그것도 나의 손에!”

내 외침에 마족들의 얼굴에 절망과 분노가 서렸다. 대체 마족이 뭔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까지 하냐라는 시선들이었다.

“다만 겁먹지 마라!! 내가 마계에 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니!”

나의 외침에 주변이 고요해졌다.

보팔레빗을 제외한 세 마리의 강해진 고대 괴물들의 힘으로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은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이 땅을 죽음으로 물들이고 너희들의 삶을 척박하게 만든 놈들이다. 그런 놈들에게 평생 피해 보며 살고 싶은가?”

내 외침에 그들이 움찔거렸다.

“아니면.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저놈들을 싸그리 청소해주길 바라나!”

그러한 외침에 마족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였다.

“다들 뭐하는가!! 비록 전쟁이 있었다곤 하나 이분은 마왕이시다! 마왕께서 우리 종족을 구원하기 위해 직접 너희들을 향해 묻고 계시지 않는가!!”

“하…… 하지만 저자는 인간…… 거기다가 수많은 마족을 죽인…….”

“마족의 정통성을 잊지 마라! 이분은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마왕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정통성 있는 마족이시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신다! 그럼에도 거부할 텐가?!”

“하…… 하지만 저 괴물들은 어찌 처리한단 말입니까!! 저희들이 무기를 들어봐야…….”

“누가 니들 보고 싸우래?”

“예…… 예?”

“너희들이 할 건 딱 하나다.”

당당하게 외친 내가 양손에 청단이와 홍단이를 뽑아 들었다.

스릉!!

두 개의 권능이 모여 신력과 합쳐지며 대량의 힘을 내뿜기 시작했고 이내 두 검의 파장이 합쳐지며 한 자루의 청적색 장검으로 변한다.

“너희들은 여기서 지켜봐라. 내가 너희를 지킬 존재라는걸. 당장 이곳에 새겨라.”

“…….”

“믿어라. 비록 내가 밉고 두렵겠지만 너희의 삶에 관심 없이 그저 복수만을 부르짖던 과거의 지배계층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마!”

“내가 너희를 구원해주마. 그깟 티오니스 대륙에 가지 않아도 이곳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이곳을 낙원으로 만들어주겠다! 묻겠다!!!”

내가 잠시 뜸을 들이자 모두가 나를 바라본다.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인 것을 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를 나눠 차별할 것인가?!”

마족 중에 하나가 나를 향해 용감하게 소리쳤다.

“그게 뭐가 중요하오!! 당신이 우리 가족을 죽였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데!!”

선공은 마족이 했지만, 그 선공을 결정한 건 이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피해자일 뿐.

“나를 증오해도 좋고 언젠가 복수해도 좋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선 살아남아라! 살아남아야 복수를 할 테니!”

이들에게 내가 제대로 다가가게 할 순 없다. 평생을 가도 내가 이들 마족과의 전쟁에서 많은 마족들을 죽인 건 사실이니까.

아마 이렇게 말해도 바뀌는 건 크지 않을 테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말하며 초단이를 들어 올린 내 등 뒤로 검은빛의 날개가 서리기 시작했다.

[칭호 불완전한 마왕을 장착]

나의 외침에 주변이 술렁이고 그 술렁임은 거대한 의념의 파장을 만들어낸다.

대량의 신력과 마왕의 마기가 뒤섞이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칭호 불완전한 마왕이 마왕으로 변합니다.]

[칭호 장착 시 마족에게 절대적인 위엄과 신뢰를 만들어냅니다.]

기본적인 해금방식이 아닌 특정 상황에서 칭호가 변한 건 처음이다.

토스 고맙습니다. 새침데기 여신님.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곧 저편에서 지면을 부수고 나타난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초거대의 보랏빛 늑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놈은 나를 향해 맹렬한 분노를 토해냈다.

구면이니까.

[빌어먹을 필멸자!! 아주 잘 걸렸다! 네놈이 나를 다시 그 어둠 속에 처박았을 때부터 네놈을 한입에 삼킬 날만을 기다렸노라!!]

세계수를 먹은 마물. 본래 방식대론 죽일 수 없는 괴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놈들이야 이미 지겨울 정도로 봐오지 않았나.

놈과 만났을 때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다르듯이.

놈을 향해 한 발 내디딘 내 육신이 스르륵 떠오른다.

거대한 늑대의 접근에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움직이던 마족들도 날아오르는 나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거대한 포효를 흘리며 도시를 향해 돌진해오는 초거대 늑대를 향해 빠르게 허공으로 날아오른 내 주변으로 새카만 검들이 수천 자루 이상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마기로 만들어진 수천 자루의 검 끝이 일제히 금기의 힘을 머금으며 거대한 보랏빛 늑대를 향해 겨누어졌다.

금기의 힘이 마기를 지우지 않는 건 이제 완전히 내 힘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일 터.

그거면 충분하다.

[마령검]

[이기어검 술]

[마황 강림]

[씹어삼키리라!!]

“어검. 강 출.”

내 명령과 함께 검은 검들이 비처럼 놈을 향해 쏟아진다.

크기 차이만 봐도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지만.

결과가 꼭 크기로 정해지진 않는다.

놈이 거대한 포효를 흘리자 금기의 힘을 머금은 검들이 한차례 주춤하지만, 그의 포효를 뚫고 들어간다.

그에 놀란 놈이 안광을 흠칫하며 앞발로 지면을 후려쳤다.

그러자 검은 늪지대 같은 것이 바닥에서 생겨나며 거대한 그림자의 늑대들이 튀어나와 검을 향해 날려 들기 시작했다.

그 수는 검과 같은 수천.

요격이라도 시킬 생각이었던 모양이지만 놀랍게도 금기의 힘을 머금은 검은 놈의 검은 늑대와 충돌해 상쇄되는 것이 극히 일부. 나머지는 모조리 관통하듯 놈을 향해 날아들었다.

세계수 알의 힘이 놈의 몸 안에서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탓일 터,

함부로 주워 먹으니까 이 꼴이 나는 거다.

[이깟 검으로 내 단단한 피부를…… 크아아악?!]

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콰직!! 콱!!

그의 단단한 피부를 뚫고 파고드는 검은 검의 위력에 당황한 녀석이 움찔거리며 멈추려 하지만 그보다 내가 더 빠르게 놈을 향해 접근했다.

쩌억!!

그리고 놈이 직접 휘두른 거대한 앞발을 그대로 뚫어버리듯 관통하며 놈의 미간에 검을 찔러넣었다.

놈의 육신이 터져 나가며 거대한 에너지의 파장이 퍼져나가고 하늘의 검은 구름 중 일부를 찢어발기듯 터져나갔다.

게다가 결계로 보호하던 마족 도시 아이어의 일부 건물들이 결계를 뚫고 들어온 위력에 부서져 내린다.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수천 자루의 검이 놈의 몸을 꿰뚫고 지상에 처박히고 놈의 미간을 뚫어버린 초단이가 청적색의 옅은 안개를 검신에서 뿜어냈다.

이후 침묵해버리는 펜릴의 머리에서 검을 뽑아낸 내 검 끝에 마치 심장 같은 작은 무언가가 딸려 나온다.

[커헉…… 이…… 이게 무슨…… 분명 욤은 네놈이 우리를 죽일 힘이 없다고…….]

어쩐지 뱀 자식이 안 나타나더라니. 그새 간을 보고 있었나 싶었다.

“속은 거야 멍청아. 게다가 힘이라고 아무거나 함부로 주워 먹으면 안 되지.”

애초에 놈들의 봉인을 해제하게 도와준 힘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흡수하긴 했지만. 예전과 다르게 세계수가 두 번이고 제 몸을 먹힐 멍청이는 아니다.

봉인을 강제로 부수고 나오는데 대량의 힘을 썼고.

그들의 힘을 보충해줄 세계수의 힘이 빠져나가다 못해 극독으로 놈의 힘을 뒤흔들어놓았다.

게다가 본 상태로도 최선을 다해야 할 적에 대한 방심까지 했으니 그 결과는 애들이 봐도 뻔할 수밖에.

놈의 내단을 뽑아낸 내가 그것을 절대 보옥에게 먹이자 순수한 펜릴의 어마어마한 힘이 보옥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사실 고대 마수의 힘도 대단하긴 하지만 그들의 힘으로 그만큼 대단한 세계 격변을 일으킬 정도의 출력을 내는 절대보옥이 더 놀라울 따름이다.

절대보옥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비유하자면 자동차의 배터리와 같았다.

시동을 걸 때 아주 소량의 전극만 주면 휘발유를 통해 자동으로 계속해서 굴러간다.

절대보옥에 넣은 거대한 힘은 그 아주 잠깐의 전극역할을 하는 것이다.

휘발유는 무엇이냐고?

아무도 모른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렷다.

마음속에서 조급함과 스산한 광기가 마치 춤을 추듯 나를 유혹한다.

금기의 힘을 쓸수록 광기가 내게 점차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한번 묶었다가 해방하려 했던 것이 트리거가 되었던 모양이다.

거대한 거체가 입자단위로 부서지듯 사라지며 쓰러진다.

이후 나는 대량의 힘이 느껴지는 두 방향을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놈들도 이제 알았을 것이다.

그동안 염원하던 봉인이 풀린 건 좋은데. 뭔가 잘못되었다는걸.

바깥에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을 터.

“꼭꼭 숨어라. 개자식들아.”

머리카락 보일라.

내가 한 발 내딛기가 무섭게 두 방향에서 느껴지던 힘이 변한다. 명백히 내게서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 시간 마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신화의 괴물들이지만, 놈들은 내가 그들을 향해 접근한다는 사실에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가긴 어딜 가!”

위기의 배터리들.

놈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정확히 깨달았다.

그렇게 놈을 쫓아가려던 그 순간이었다.

[뀨?]

갑작스런 소리와 함께 지면이 뚫리며 내 주변에서 거구의 근육질 토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무시하듯 도망치기 시작한 두 마리의 고대 마수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보팔레빗은 분명 죽었는데?

[어머나, 오빠. 정말 화끈하더라. 마음에 들었어. 난 당신을 따를래. 놈들을 잡으면 되는 거지?]

느끼한 남성의 목소리.

마계에 온 지구 가장 두려운 발언이 내 머릿속으로 스며들어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