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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82화 (781/1,559)

제 782화

흡사 멍청한 무언가를 보는 듯한 시선이 날아든다.

“거의 도박 아니었어? 너도 진짜 대단히 미친놈이구나?”

금기의 힘을 제하고서라도 슬리지아와 싸워 이길 정도로 방대한 마나량을 칸이 먹어치웠다.

당연히 놈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그 정도 되면 당연히 이실디의 힘으론 감당하기 힘들어질 수밖에.

그 와중에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없던 내가 마나의 대부분을 놈에게 양도해버렸으니 사실 잘못 꼬였다면 폭주하듯 강해진 놈에게 둘 다 사이좋게 잡아먹히는 엔딩으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계략은 성공했고, 결국 칸의 몸은 세 등분이 되어 잘려나갔고 놈의 내단은 보옥으로 깔끔하게 양도되었다.

제힘이 아닌 만큼 칸을 죽일 때 속도는 생명이었다.

힘들게 먹인 영양분을 놈이 써버렸다면 굳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가 없을 테니까.

메뚜기 떼의 주체인 칸이 사라져버린 탓일까.

사방에서 모여든 메뚜기 떼는 곧이어 흩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하…… 하늘이…… 하늘이 열린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어두컴컴하던 마계의 하늘이 환한 빛을 머금으며 밝아지기 시작했다.

“역시 이놈들이 화근이었구나.”

마계의 하늘은 상당히 어두운 편에 속했다. 하지만 마지막 마수나 다름없는 칸이 사라진 직후 하늘이 개기 시작한다.

보팔레빗의 경우 이미 마계를 어찌할 정도의 여력도 남지 않았을 테니까.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 싶었더니. 역시 이게 문제였구나 싶었다.

“하늘이…… 하늘이 맑아졌어!!”

“믿을 수가 없어…….”

적을 물리친 것이 기쁜 것인지. 아니면 하늘이 맑아진 것이 경악스러운 건지 마족들의 얼굴에 화색이 돋기 시작한다.

마족들은 하늘이 다시 어두워질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환호를 질러댔다.

“대체 무슨 위험한 짓을 하는 겁니까.”

그런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던 내 곁으로 케인이 다가왔다.

“이럴 게 아니라 오지에 있는 마물왕들을 잡아 흡수해도 되었을 텐데요.”

마물왕.

티오니스 중부의 북부에 위치한 판도라 영토의 북부. 그곳에는 샨드라미네아의 분신체와 같은 다수의 마물왕이 존재한다.

하나하나가 소드마스터 수십 명과 견줄 정도의 괴물들로 실제로 그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샨드라미네아의 분신체가 움직이면서 리인 포스 알파 기사단의 마스터 급 기사들이 대거 죽고 다치는 사태도 있었다.

그런 존재들이 하나라면 몰라도 다수가 모인다면…… 가능하긴 할 터다.

실제로 그게 가장 효율적이기도 했고.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틀란티스 비늘천갑이 제대로 효과를 보는지 보고 싶었던 것뿐이야.”

“솔직히 말씀하십쇼 그냥 까먹은 것이지 않습니까.”

쉬이 믿지 않는 녀석의 말을 무시한 채 나는 가볍게 몸을 튕겼다.

날뛰던 신화의 괴물들을 모조리 처치한 덕분에 맑아진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이들은 나의 등장에 모두 침묵했다.

“죽은 놈 손들어봐.”

“…….”

대답이 있을 리가 있나.

사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솔직히 전부 살릴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만…… 생각보다 공백이 크네.”

내 중얼거림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침묵하는 모든 마족의 귓가에 닿았다.

“미안하게 됐다. 한번 죽은 이를 되살릴 수도 없으니 결국 나는 약속을 못 지켰구나.”

살릴 방법.

하나 있긴 하지만 그건 웬만해선 채택할만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 대가로 수명이 얼마나 증발할지도 모를 일이기도 할 테니.

씁쓸함을 숨기지 못한 내 중얼거림에 치안대장 곤다가 나선다.

“비록 당신이 우리 가족을 죽인 존재이기에 껄끄럽고 미운 건 사실이오.”

진정한 충성은 힘들다.

가족을 죽인 원수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우리를 지켜야 할 지배계급 마족이 도망치고 당신이 우리를 구하러 온 것 또한 사실! 당신이 없었다면 모두 죽었을 거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소!”

그가 절도있는 자세로 할버드를 내리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리며 병사들을 향해 짧게 침묵했다가 소리쳤다.

“마왕께 경의를!!”

그가 한 말은 형식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마족 병사들은 곤다를 따라 일제히 도열하듯 섰고 이내 절도있는 자세로 마족 특유의 경례 자세를 올렸다.

“감개가 무량하네.”

당장은 마족과의 골이 가까워질 순 없다. 아스타로트를 포함한 총괄적으로 마족을 지배하는 초고위계층은 나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혼란스러운 마계를 중재하려 애를 쓰고 있다.

반대로 중간 지배계층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족들의 피를 빨아먹듯 그들을 쥐어 짜내고 있다.

혼란스러운 세상이라는 소리였다.

자연스레 그렇게 쥐어 짜이다 보니 이쪽에도 여론이 파고들 여지가 생기긴 한다만 결과적으로 마족이라는 존재에게 나라는 새로운 마왕이 신뢰를 주긴 어렵다.

하지만 단추도 하나씩 맞춰가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시간이 많은 만큼 나는 마족 또한 이 땅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게 만들 작정이었다.

적이었던 존재에게 왜 그렇게까지 하는가.

그건…….

두 명의 마족과 한 약속, 그리고 이번 일을 감행한 내가 해야 할 책임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들을 내몰았을 뿐 결국 어느 쪽도 피해자나 다름없으니까.

그 원흉에 대적자와 마왕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낸 프리아 여신이 존재하지만, 그녀에게 대항할 수단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니 이 악물고 기회를 보는 수밖에.

[어머나, 가는 거야?]

“넌…….”

보팔레빗이 남았지만, 이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나는 현재 오빠야 에게 붙어있거든? 어딜 가던 나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거야. 어때? 황홀해?]

“역겹다.”

* * *

지구로 돌아오는 좌표는 한정적이다.

차원열쇠의 현재 사용 쿨타임은 이틀에서 사흘 정도.

주기적으로 힘의 양에 따라 변하긴 하지만 지금은 사흘 정도면 충분히 아스가르드 정도의 거대 비공정을 옮기고도 남을 정도의 수준이다.

차원을 이동하기가 무섭게 주변의 풍경이 변한다.

마족 특유의 건축양식이 가득하던 반파된 도시에서 이제 복구를 시작하는 지구의 건축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며칠 정도의 차이일 뿐인데 오랜만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구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던 흉신은 모두 죽었으니 사실상 이곳에 남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 이제 이곳을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선 비공정 전체를 다시 티오니스로 옮겨야 하기에 결국 지구로 가야 하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그리고.

나를 신현수라고 확신하고 알아버린 현아에겐. 적어도 작별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한번 떠나면 어지간한 일이 아닌 이상 지구로 오지 않을 테니까.

차원의 틈 사이로 이어진 웜홀 같은 공간으로 들어서자 무형의 힘이 나를 저편으로 밀어낸다.

무중력 공간에 떠 있는 것처럼 그 힘에 몸을 맡겨 지구로 향하고 있으니 차원이동을 하는 게 익숙지 않은 이실디는 멀미라도 온다는 양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게 보였다.

“이곳은 볼 때마다 신기한 곳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케인이 손을 휘저어 거대한 소용돌이의 면을 두드린다.

그러자 각 차원의 모습이 아주 잠깐 시야에 담긴다.

유르기안 대륙,

천중원의 무림맹.

원하는 장면을 볼 순 없지만 각 차원의 틈새인 만큼 어디로든 각 차원과 이어져 있는 건 사실이니까.

“무림맹…….”

“네가 안정화되면 금방 갈 수 있을 거야.”

아직 그녀는 완전히 안정화 된 상황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녀가 그저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고.

그때였다.

기다림이 지루해진 케인이 장난을 치듯 거대한 흐름을 두드리자 지구의 광경이 드러났다.

“어?”

그냥 지구의 모습이라면 놀랄 것도 없다.

하지만 내가 착각이 아니라면 조금 놀랄만한 일이다.

“내가 잘못 봤나?”

“뭘 보셨습니까?”

“아니. 기분 탓인가보다.”

아주 잠깐 보인 익숙한 이의 뒷모습이다. 사람이 본래 비슷한 것을 보면 같은 것을 본 것이라 착각한다지만 그래도 조금 당혹스러운 감은 없잖아 있다.

츠츠츠츳!!

이윽고 차원의 틈이 정해진 위치로 나를 포함한 셋을 밀어낸다.

그때였다. 갑작스런 무형의 힘이 나와 이실디를 떼어놓기 시작했다.

“읏?! 이게 무슨?!”

당연히 차원을 다루는 힘이 없는 이실디는 그대로 내게서 멀어졌고 케인이 급히 그녀를 따라 사라지기가 무섭게 나는 그 둘과 떨어져 이상한 곳으로 내팽개치듯 떨어져 나갔다.

[그대에게, 신의 뜻을 행하라.]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린 내가 있는 곳은 죽은 사람을 기리는 장례식장이었다.

“아아…… 아아아…….”

작은 소년이 한 남자의 영정사진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그 곁에는 아직 어린 소년 소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누군가가 죽은 장례식장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케인이나 이실디는 보이지 않았다.

주변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죽었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적었던 것일까.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중 어떤 꾀죄죄한 인상의 노인이 휠체어에 탄 채 내게 다가왔다.

“이보게 젊은이. 자네도 아들놈의 명복을 빌어주러 왔는가.”

초로한 표정을 한 노인의 질문에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에 웬만하면 내 얼굴이 알려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좌표가 꼬이는 거야 늘 있는 일이라지만 왜 하필 내가 떨어진 곳이 이곳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이미 들어온 마당에 뭐라 하기도 애매한 터라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누군진 몰라도 적어도 죽은 이에 대한 명복을 빌어주고 신성 축복을 내려주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말없이 들어가자 작은 아이들이 울먹이는 얼굴로 나를 본다.

그리고는 이내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내게 절을 해왔다.

맞절을 해준 뒤 향에 불을 피우고 고개를 들자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 내의 한 사내가 보였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쩌자고 저 어린것들을 놔두고 이리 떠났을꼬…….”

뒤에서 휠체어를 탄 노인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찾아……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딸꾹질을 하며 소년이 내게 고마움을 표한다. 고요한 장례식장에 느낌이 묘하다.

나는 말 없이 아공간을 열었고 찾는 게 있는지 뒤져보다 손에 짚이는걸 꺼내 들었다.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봉투 속엔 지폐로 추정되는 것들이 들어있으리라.

나는 근처에 놓인 펜을 하나 빌려 그 자리에서 내 이름을 쓰고 그대로 밀어 넣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비록 힘들겠지만. 힘내세요.”

담담하게 말하며 돌아서서 나가려던 찰나였다.

“식사는 하였는가?”

“예?”

“식사…… 라도 하고 가주게.”

노인의 말에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저기 관짝에 누운 놈은 사실 못난 내 아들일세.”

“애도를 표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자고 꺼낸 이야기는 아니야. 단지…… 몸이 이러해서 애들 아비가 죽고 어찌 저 녀석들을 키워야 할지 막막했던 터라 푸념을 좀 했네.”

“사고로 돌아가신 겁니까?”

“뭐, 뉴스도 신원은폐를 해댔으니 모를 수밖에. 최근에 떠들썩했던 사건있지 않는가.”

그의 힘없는 목소리에 나는 조용히 침묵했다.

“미성년자에 음주운전, 차량 절도까지 한 아이들이 사람을 치고 도망쳤다는 이야기. 그 피해자가 바로 이 못난 애비의 아들놈일세.”

정말 성실하게 살았다고 한다. 아이가 네 명이나 되는데 아이 엄마가 지병으로 일찍 떠나고 홀로 남아 아이들을 키웠다는 모양이었다.

“…….”

그날도 그러했다. 본래 직장에 이어 아이들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야간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돈을 벌던 그였다.

대리운전 일을 하고 돌아가던 와중에 갑자기 달려온 차량이 그를 쳤다는 모양이었다.

“의사 말로는 바로 병원으로 데려갔다면 살았을 거라는 모양이야. 게다가 형사의 말로는 차량이 차에 치인 아들놈을 다시 깔아뭉개고 지나갔다더군. 갈비뼈가 완전히 가루가 되어서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말이야.”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그의 얼굴에 눈물이 서린다.

“어찌 이리 불효를 한단 말인가…… 에잉…… 아비보다 먼저 가는 아들놈이라니…….”

“불효자네요.”

담담한 대답에 그는 쓰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를 한잔 벌컥벌컥 들이켰다.

“앞으로 저 아이들을 어찌 키워야 할지…… 정작 아들놈의 인맥이 마냥 넓은 편은 아니었네. 일에만 미쳐 살다 보니 사교활동을 못 한 탓에 친구라곤 5명 정도가 전부였거든. 지금은 자리를 비웠지만 사실 장례식장에 찾아온 이도 그들이 전부였어. 그래서 자네가 고마운 것일세.”

그들을 제외하고 일면식 가족 하나 없는 그를 기리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 나뿐이니까.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로 몇 사람의 마음에 조금의 편안함이라도 서린다면.

그까짓 거 못 해줄 것 없다.

나는 말 없이 물었다.

“그런데 저분을 친 차량을 운전한 미성년자? 그놈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 질문이 트리거였을까.

노인은 결국 참다못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강직해 보이던 모습과 다르게 노쇠한 노인의 슬픔이 그대로 묻어난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목소리가 잠긴다.

“운전을 한 아이는 고작 13살이었다더군. 자네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닌 듯하지만 이 나라는 13세 미만 소년에겐 제대로 형벌을 지우지 않으니까. 촉법소년인지 뭔지하는 게 있다더군.”

“열…… 세 살이요?”

세상이 미쳐 돌아가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게다가 같이 타고 있던 놈들은 직접 운전한 게 아니기 때문에 집행유예로 모두 풀려났다더구나. 그 자리에서 훈방조치 된 게지.”

노인이 오열한다.

“신이 있다면 이럴 순 없는걸세…… 반평생 교회를 다니며 신께 기도를 해왔네!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인가. 아이들을 열심히 키우는 아들이 제발 건강하게만 있어 달라 그리 빌었네! 하지만 무심하게도 하느님께선 아들놈을 거둬가셨지. 그뿐인가.”

하다못해 아들을 죽인 그 악마 같은 놈들을 처벌해달라 그리 빌었네. 이 노인네가 오래 살아 얼마나 살겠나! 다 죽어가는 노인네의 마지막 기도조차 하느님께선 듣지 않으셨어…… 신께서 존재한다면…… 이럴 순 없는 것일세.“

흐느끼는 그에게 손수건을 건네주고 등을 토닥인다.

“이런 말씀 드리긴 뭐합니다만……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는 한참 동안 눈물을 거두지 않았다.

아들을 잃은 늙은 아버지의 눈물은…….

너무도 서글프게 다가왔다.

* * *

“이렇게라도 와주어 정말 고맙네. 아들놈도 고마워할 거야.”

“어르신. 이걸 좀 보세요.”

내 말에 그가 내 손을 바라본다.

따악!!!

[신성 마법]

[리커버리.]

노인의 몸에 있던 병원균이 눈에 띄게 약해진다. 그래 봐야 하반신이 굳어버린 것까지 어떻게 할 순 없지만 조금 그를 편하게 해주는 정도라면야.

“언젠가 나쁜 놈들은 벌을 받을 겁니다.”

“그래…… 그래…… 말만이라도 고맙네…….”

물론 내가 어떻게 할 순 없었다.

내가 한국정부에 압박을 넣어 그들을 처벌하게 하는 거야 어렵진 않지만. 그렇게 할 명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날뛰는 건 어디까지나 내 소속에 관한 이들과의 문제일 뿐. 실질적으로 그 외엔 어떤 움직임도 자제해왔다.

비록 계승권을 포기해도 나는 라운 왕국의 왕자니까.

결구 이 일은 내가 아니라 한국의 일이다.

남의 집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순 없다.

엉엉 우는 아이들을 뒤로한 채 분향소를 빠져나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케인과 이실디가 나타났다.

“여기 계셨군요. 그런데…….”

“표정이 안 좋다?”

“좀 많이 씁쓸한걸 봤거든.”

“여긴…… 인간의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군요. 별문제 없어서 다행입니다. 어서 티오니스로 돌아갈 준비를 하죠.”

“그래.”

담담하게 대답한 뒤 지하로 통하는 장례식장의 문을 바라보던 내가 등을 돌렸다.

어정쩡한 도움은 안 한 것만 못할 테니까.

* * *

티비에선 연일 미성년자 문제로 말이 많았다.

차량을 절도한 것도 모자라 미성년자들이 음주를 하고 그걸로 사람을 쳤으니까.

그런데 경찰에선 사실을 일정 은폐하고 범인들의 인권을 명목으로 신상을 숨겼다.

그뿐인가. 아이들의 나이를 빌미로 집행유예와 훈방조치.

끔찍한 결과다.

지구에 온 이후 잠시 활동했던 개인방송 채널에 들어가 보니 그곳은 사람들의 잡담을 하기 위한 게시판이 되어있었다.

애초에 관리를 안 했으니 당연한 결과긴 하다.

[이게 나라냐?]

[xx 진짜 세상이 이 지경이 돼도 더하구나]

[이 지경이 됐으니까 더한 거지. 이 새끼들 선거철 다가오니까 적당히 이용해먹고 버리는 거 봐라]

[얼마 전에 피해자 장례식장을 본 적이 있어요. 아무도 없더라. 말만 번지르르하게 했지 다들 무관심하고.]

[세상 참…….]

그래 봐야 내가 뭘 해줄까.

나는 씁쓸하게 그들의 대화내용을 무시한 채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내가 돌아왔음을 깨달은 아스가르드의 선원들과 잠시 재회 이후 앞으로의 상황을 공표한 뒤 륀느의 상태를 점검하던 중이었다.

“어?”

륀느의 육신 일부에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륀느.”

내 물음에 무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였다.

“이거 뭐냐?”

내가 가리킨 곳은 륀느의 다리 부분. 그녀의 다리 부분은 안 그래도 무리한 수리로 인해 약해져 있다. 쇠파이프로 후려쳐도 흉터가 남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그녀의 다리에 큰 일그러짐이 보인다.

내 물음에 륀느는 조용히 나를 보다 답했다.

“지구의 강철차량. 륀느와 충돌. 륀느는 버텨냈음을 확인. 륀느의 내구성 비록 수리 중이라곤 하나 품질의 우수를 높게 평가.”

그 말에 내 손이 멈칫한다.

“뭐에 뭐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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