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85화 (784/1,559)

제 785화

발인식이 시작되었다.

허무한 사고로 가장이자 아버지를 잃은 소년 소녀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아버지의 관이 땅에 묻히는 걸 지켜보았다.

“그래도…… 선산이 하나 있어서 다행이구나.”

땅의 질이 좋지 않은 작은 터라 사실상 돈이 되는 땅은 아니지만 죽은 사내의 아버지였던 노인이 오래전 조상들에게 물려받았던 땅에 결국 그는 고이 묻힐 수 있었다.

“할아버지…… 아빠 죽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요?”

“그놈들…… 벌을 받았다더구나. 윤미야. 넌 용서하고 싶니?”

“싫어요…… 아빠 못 보잖아…… 그 사람들 때문에 아빠가 여기 있어야 하잖아…….”

작은 소녀가 울먹거리자 소년이 이를 뿌득뿌득 걸었다.

“하느님께 기도한 게 먹혔나 봐요. 나쁜 놈들이 벌을 받는 걸 보니.”

“그래. 정말 신께서 너희들을 가엽게 여기신 모양이구나.”

씁쓸한 미소를 담은 채 노인이 쿨럭쿨럭 기침을 토해냈다.

“할아부지!”

“괜찮다. 자.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해야지?”

“네…….”

“흑…… 흐흑…….”

“그리고. 못된 놈들 벌을 준 분에게도 고맙다고 기도하려무나.”

“나중에 커서 꼭 판사님이 될 거에요. 그래서 나쁜 놈들 전부 그렇게 혼내줄 거에요!”

작은 소년이 주먹을 꼭 쥐고 외친다.

아빠는 죽어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조금이나마 구원이 되기를.

노인은 자신에게 온 편지를 기억하며 쓰게 웃었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청년은 알고 보니 타 세계의 왕자였다. 그는 처음 보는 자신의 아들을 진심으로 애도해주지 않았던가.

앞으로 애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지가 걱정이긴 하다만. 그거야 그가 좀 더 노력하면 될 일 일터다.

그때였다.

“맞다 할아부지.”

“응?”

“그 형아야가 아빠 장례식장에 와서 주고 간 거예요.”

“으잉? 니가 이걸 왜 가지고 있니?”

“그게…… 봉투가 예뻐서…….”

“허허…….”

쓰게 웃으며 봉투를 열어본 그가 눈을 부릅떴다.

“커헉?!”

노인의 행동에 관을 안치하던 사람들이 다가왔다.

“어르신 왜 그러시는…… 허어억?!”

봉투의 내용물을 본 이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 달러수표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인한 이의 이름은 영어로 알하자드라 쓰여있었다. 과거 영어 관련 직업을 가지고 있던 노인이었기에 그것을 읽을 순 있었다.

“워메……이거 달러 아녀? 세상에 이게 얼마야…….”

환산하면 800억에 달하는 돈. 너무 말도 안 되는 돈에 놀란 그가 경악했다. 그 이후 노인은 깨달을 수 있었다. 판결문이 온 이후 그에게 도착했던 편지의 마지막에 쓰인 내용을 말이다.

[부디 아이들이 기죽지 않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데이비 올림.]

* * *

[판결문 온 거 봄?]

[원래 타국에서 판결문을 보내주는 거였나?]

[아님, 내가 볼 때 나름대로 이유 담아서 보낸 거 같은데. 어쨌건 그 악마 새끼들 확실히 조져줘서 개 속 시원하다.]

[꺼억.]

[근데 좀 너무 잔인하지 않나…… 산사람 시력하고 목소리를 빼앗고 평생 노역이라니…….]

[미국도 죄질 나쁘면 사형이고 러시아는 그 자리에서 총살임. 뭐가 잔인함.]

[그리고 그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은 그래도 쌈.]

[솔직히 우리나라도 법 고쳐서 진짜 악질들은 저래야 됨. 아 물론 저렇게 까진 안 해도 형량 쎄게 때려야지]

[근데 노역이라는데 그럼 쟤들 데리고 티오니스 가는 거임?]

[강제 이세계행이네.]

[그러면 뭐함. 아무것도 못 보고 말도 못 하는데.]

[근데 그 국회의원 어떻게 됨? 그 악마 새끼들 두둔하던 그 인간.]

[검찰에서 털었다더라. 돈 받아먹은 게 있다는데 출처를 아직 밝혀내진 못했다고 함.]

[미친 진짜 어처구니없는 일이네. 그래서 그 인간 어떻게 됨?]

[모름, 일단 지켜봐야 아는데 조진 건 확실한 듯.]

[진짜 타국에서 간섭한 거긴 한데, 개 속 시원하네.]

인터넷엔 연일 그들의 처벌에 관련하여 글이 올라온다.

잘 죽었다.

또는 꼭 이렇게까지 해서 여지를 남길 필요가 있나 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결국 대부분은 데이비 올 라운이 넘겨준 판결문을 보고 아주 속 시원해하는 입장들이었다.

그들이 저지른 죄는 상상 이상으로 악랄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챙그랑!!

“이 천한 새끼들이!! 뗏법으로 피해를 본 놈들이 또!!”

유리잔이 박살 나며 그 안에 담긴 독한 술이 쏟아져 내렸다.

씨익씨익 거리는 중년 남성이 서슬 퍼런 시선으로 이를 빠득 갈았다.

“이 개 x같은 매국노 새끼들. 뗏법에 휘말려서 감히 내 아들을 팔아먹어?”

쓸모없는 놈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저들도 알게 모르게 다 불법을 저지르면서! 그런 주제에 사람 하나 죽였다고 감히 이런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한국은 돈이 많으면 살기 좋은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아들이나 자신이 법에 저촉되는 일로 이런 징벌을 받을 거라곤 여기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범죄를 저질러도 잘 숨겨오지 않았던가.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아들놈을 구하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항의한들 돌아오는 것도 없고, 현시점처럼 혼란한 세계에 힘으로 무언가를 해결하려 해도 티오니스의 왕자는 논외의 대상이다.

대체 어떻게 해야 그 빌어먹을 놈들을 복수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였다.

[힘이 필요한가.]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야.”

갑작스런 목소리에 취기를 가누지 못해 비틀거리던 사내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힘이 필요하냐 물었다.]

“누구냐고!! 당장 튀어나와!!”

[원한다면, 네 아들을 버린 이 나라에 복수할 힘을 주마.]

복수할 힘. 달콤한 유혹이지만 그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지구 전체를 위협하던 적들도 하나같이 티오니스의 왕자 세력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는 마당에 그가 힘을 얻은들 무엇이 달라질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빌어먹을 조 대통령은 쪼르르 달려가 그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할 터.

간도 쓸개도 다 빼주는 간신이라 욕하지만, 그의 행동 덕분에 한국이 현재 세계에서 손꼽히는 안전국가로써 해외자본 유입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

덕분에 경제까지 순식간에 좋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사실상 회의적이기도 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꺼져, 지금 나는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나와 계약하라. 네게 힘을 주겠다.]

“아니 글쎄…… 커헉?! 이…… 이게 무슨?!”

갑작스런 구토 증상에 그가 비틀거리며 무너져 내렸다.

검은 무언가 마치 살아있는 액체 슬라임 같은 것이 꾸무럭거리듯 바닥의 틈으로 기어 나와 그에게 모여든다.

[어차피…… 네게 선택권 따윈 없었다.]

“커헉…… 사…… 살려…….”

비명 지를 틈도 없이 그가 서서히 검은 액체 먹힌다. 무릎을 대고 손으로 땅바닥을 짚은 채 괴로워하던 그는 곧이어 괴로운 듯 몸을 비틀었다.

그의 몸을 거의 장악한 검은 액체는 서서히 그의 얼굴까지 잠식한다.

[나는 넬타리드…… 너희들을 만든 창조자이니라.]

“커헉…… 컥…….”

[네 육신을 내게 넘겨라. 네가 증오하는 존재들에게 복수를 해줄 터이니.]

그 말과 함께 얼굴까지 모조리 검은 슬라임에게 먹힌 그가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속이 비치지 않는 검은 타이즈를 쓴 것처럼 휘감아진 그의 얼굴에 황색의 안광과 뿔이 돋아났고, 곧이어 검은 슬라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대신 멀쩡해진 사내의 눈 한쪽의 흰자위에 검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순간 일렁였다.

동시에 그는 천천히 일어났고 통짜로 된 유리로 고층 빌딩 아래를 내려다보다 천천히 손을 뻗었다.

동시에 그의 손에서 뻗어져 나간 검은 기류가 길을 걷던 한 인간에게 스며들었다.

“끄으으…… 끄흐흐…….”

[크흐흐흐흐.]

마치 목소리가 중복되다 바뀐 것처럼 기괴한 소리로 변한다.

얼굴의 절반이 검게 변해버린 그가 중얼거렸다.

[이대로 무너질 거라 생각지 마라. 프리아여. 나는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이니.]

넬타리드는 반쪽이 되어 싸우고 있다. 평온과 파괴.

평온의 힘이 극도로 강해진 이상 파괴에게 남은 건 흡수, 혹은 소멸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넬타리드의 일면, 즉 파괴는 다른 수단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삼신 중 가장 위태위태하던 한 신의 최후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 * *

“잘 하는 짓이네.”

이실디의 빈정거림에 자리에 앉아있던 베르단데를 대신하여 스쿨드가 앞으로 나선다.

“뭐라고?!”

“꺼져. 너와 이야기하려고 온 게 아니니까.”

“윽…….”

스쿨드는 분한 듯 이를 악물었다.

이실디는 그녀에게도 공포의 대상 중 하나였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내게 타나토스의 속박에 대해 열변하던 네가 배신을 할 줄이야. 솔직히 심연의 공주로써 틀린 행동은 아니지만 너나 나나 서로 목적이 있는 이상 심연으로 돌아갈 순 없어.”

이실디의 말에 베르단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만,

“차라리 나를 죽여줘.”

이실디와 나를 향해 애원한다.

“너무 고통스러워. 아버지가 일궈놓은 것을 내 손으로 망가뜨릴 수도, 심연에 잡혀있는 어머니를 구해내지도 못하는 걸 보는 것도.”

기억을 되찾은 그녀였기에 이도 저도 할 수 없다. 반대로 스쿨드의 경우 아직 애매한 입장이었다.

그녀는 기억을 되찾은 게 아니었으니까.

그건 울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울드의 경우는 타나토스의 공격에 당해 치명상을 입은 후 서서히 소멸하고 있다.

사실상 죽음이라 봐도 무방했다.

“본래라면 널 죽였을 거다.”

“홀른!!”

스쿨드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클립스에게 빚을 지지만 않았어도. 그러니 내 손으로 당장 널 죽이진 않을 거다.”

내 말에 그녀의 얼굴에 슬픔이 어렸다.

“그래서 어떻게 방법이 있어?”

이곳의 상황을 깨달은 이실디가 물어왔다.

“이클립스는 솔직히 본신 자체만으로도 절대적인 존재야. 슬리지아도 그녀의 앞에선 몸을 최대한 사렸다고.”

“…….”

실질적으로 심연에서 가장 강한 개체이니까.

같은 심연의 공주라도 슬리지아는 최상위일 뿐 절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클립스는 절대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은 존재였다.

“애초에 그 페르세르크인지 하는 네 여자에게서 타나토스를 떼어낸 것까진 좋은데. 그 이후에 이렇다 할 계획이 전혀 없잖아.”

“없지.”

대체 무슨 수로 이클립스만을 소멸시킬 수 있는가.

일단 절대보옥의 힘을 채워 놓아야 하기에 채워놓았지만 당장 머리를 굴려봐도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장 내가 하인스 영지로 돌아가 의식을 준비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아비트는 그렇게 말했다. 이클립스의 성격이라면 나대지 말고 문을 닫으라 했을 거라고.

그녀는 그 정도로 입이 거칠지만 올곧은 존재였다.

꽤 마이웨이 기질이 강한 헤라클래스와 어떻게 부부생활을 했는지는 의문스럽지만, 그녀의 성격은 내가 처음 보았던 이클립스의 그 천진난만하던 모습과는 다르다.

물론 그녀의 의지는 오딘의 힘으로 인해 아주 잠시 깨어난 것일 뿐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를 구할 순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의식을 치러 그녀를 가둬버리면?

일은 쉽게 풀릴 테지만 나는 앞으로 평생을 그 일에서 해방되지 못할 것이다. 후회할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이클립스를 온전히 소멸시켜 그녀를 해방하고 타나토스만을 심연 속에 가두는 것이 베스트 방법인데.

그게 가능하진 않다.

“난 다시 티오니스로 돌아갈 거다, 만약 하인스 영지에서 의식준비를 마쳤는데도 아무런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그땐…….”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연다.

“나를 죽여주지 않을 거라면, 나도 같이 보내줘. 내가 어머니의 곁에 갈 수 있게…….”

베르단데가 다시 심연의 공포에 미쳐버린다 할지라도 그땐 다시는 이곳으로 나오지 못할 터. 그녀는 자신이 죽는 게 안된다면 차라리 이클립스와 함께 영원히 그곳에 있기를 바랐다.

차라리 같이 그곳에서 영원히 잠식되겠다는 뜻이었다.

“어머니가 혼자 괴롭지 않게.”

이클립스가 들으면 화를 낼 테지만 베르단데가 그런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스쿨드는 예외야. 그동안 스쿨드와 울드 언니의 몸에 있던 심연의 공주로서의 본능을 봉인하고 있었어. 타나토스가 영원히 갇히면 이 둘은 해방될 수 있으니까.

“언니!!”

“그 일에 너 까지 희생될 필요는 없어.”

“싫어!!”

눈물을 뿌리며 거부하지만, 베르단데는 확고했다.

“이미 한번 배신한 시점부터 예상한 결과야. 하지만 넌 아니잖아.”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내게 동의를 구하듯 시선을 보내왔다.

“…… 그래.”

그리고 그땐 나도 어쩔 방법이 없다.

“참 가관이네. 그나저나. 쟤는 왜 저 모양이야.”

낡은 집 한 쪽에 누워 잠들어있는 울드를 가리킨 이실디가 물었다.

“타나토스에게 당했어.”

“잘하는 짓이네. 겁이 없는 것도 정도껏 이지. 특별히 강한 것도 아니면서 신에게 덤볐다고?”

“너어!!!”

스쿨드가 악을 쓰며 덤벼들려 하지만 이실디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걷어차 버렸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처박혀버린 그녀를 이실디는 심드렁하게 쏘아붙인다.

“까불지 마. 난 지금 내 사제들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주 거지 같으니까. 그 원인이 너희들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녀는 그녀 나름의 이유로 화가 나 있었다.

이실디가 내게 협력하는 이유는 그녀를 구속하는 타나토스가 제거된 이후 중원으로 가 자신들의 사제를 다시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게 저들로 인해 방해를 받았으니 화가 날 수밖에.

이후 이실디에게 정확히 내 의사를 전했다.

“넌 여기 남아.”

“야! 여기에 마음껏 날뛸 수 있는 게 있다며!”

“남아서 지구에 있는 몬스터들이나 조금씩 처리해. 조만간 넬타리드의 일면이 최후의 발악을 할 거다. 반쪽이라곤 해도 신의 저항이야. 그때를 대비해야 해. 그리고 베르단데가 여기 있으니 네 폭주를 제어하는 것도 여기가 더 좋을 거다.”

그녀 정도면 이곳에서 무슨 문제가 벌어져도 해결이 가능할 테니까.

현아를 지킬 이로 이실디 정도면 괜찮은 보디가드가 따로 없다.

“내 가치가 그것밖에 안 돼?”

“당연한 걸 묻네.”

피식 웃음을 터뜨리자 그녀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쉰다.

“네 맘대로 해. 마음껏 날뛸 수 있으면 사실 상관없으니까.”

이후 그들을 뒤로한 채 아스가르드로 돌아가던 중 나는 일루전 마법으로 모습을 바꾸고 홍단이와 청단이가 좋아하는 특제 메이커 도넛을 서너 박스 샀다.

그리고는 인파를 뚫고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사람이 지나가고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자동차의 경적이 들린다.

전생에선 단 그토록 바랬던 광경이다.

익숙하면서도 너무 오래된 과거 기억 속에서 내가 그토록 바랬던 사람들 사이를 걷는 풍경은 참…… 숨이 막히면서도 그리운 느낌이다.

그때였다.

스르륵.

나는 나를 스쳐 지나가는 기괴한 기운에 멈칫하고 고개를 돌렸다.

“음?”

기분 탓이었을까.

나는 한참 동안 인파들 사이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분명 기이한 무언가가 느껴졌었는데.

아주 잠깐 느껴진 이질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완전히 사라져버렸기에 외려 헷갈릴 지경이었다.

적들이 거의 제거된 상황이다. 이렇게 길 한복판에 적이 있을 리도 없으니 결국 예민해진 내가 착각한 것이리라.

결국,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선 나는 적당히 길거리 배회를 즐기다 공간을 뛰어넘었고 아스가르드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에이리아와 페르세르크. 그리고 케인만을 대동한 채 다시 차원을 넘을 준비를 했다.

“내가 없는 동안 늘 하던 대로 잘 부탁할게. 티아라.”

“예이~예이~”

처벌을 받은 그 6명을 티오니스에 유치시키는 것도 일이니까.

내 말에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 들었어, 가는 거야?”

조용한 복도를 걷던 도중 아스가르드에 승선해있던 현아도 만났다.

나를 향해 그녀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래.”

“언젠가 갈 줄은 알았는데. 너무 갑작스럽네.”

그녀가 시선을 피한다.

“언니한테도 말하지…… 삼촌도…….”

“지금만 때가 아니니까. 넌 의도하지 않게 들켰지만, 연희 누나에게까지 말하는 건 그래도 마음의 준비가 좀 필요하겠더라.”

“풉…… 그래. 언제 돌아올 건데?”

“오래 안 걸려.”

내 말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메가로드리아.”

이윽고 메가로드리아에게 의념을 보낸다.

[무슨 일이냐.]

“너도 여기에 남아. 아직 넬타리드의 반쪽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니까 네가 있어야 안심이 될 거 같다.”

이실디만으론 안심할 수 없다. 게다가 오는 길에 느낀 그 아주 잠깐의 이질감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았다.

이에 메가로드리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 나는 아스가르드에서 띄워 올린 소형 비공정에 올라타고는 차원 열쇠를 가동했다.

동시에.

아스가르드에서 나온 소형 비공정 하나에 올라타 있던 내 몸을 시작으로 소형 비공정 전체가 입자화하듯 사라진다.

스팡!!!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갑판 위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인스 영지는 늘 그렇듯 활기로 가득했다. 이건 구조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유지하는 자의 역량이지.

사실상 내가 영지의 영주라지만 실질적으로 현재 영지를 굴리는 건 내 시녀였던 에이미였다.

에이미가 영지 경영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걸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여긴 정말 아름다운 곳이에요. 사람들의 미소에 행복이 있는 걸요?”

에이리아가 기분 좋은 듯 내 곁으로 다가와 예쁘게 웃어 보인다. 페르세르크는 이미 몸을 작게 만들어 내 어깨에 올라앉아 있었다.

“이제 곧 네 가족이 될 사람들이니까.”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뭣하면 그냥 푹 쉬어도 좋아.”

어차피 페르세르크든 에이리아든 내가 그녀들에게 무언가를 맡겨 책임을 느끼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들은 나와 함께 웃고 떠들면서 같이 있어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후 나는 엘프 병사들에게 포박되어 끌려 나오는 6명의 지구출신 인간들을 고개만 돌려 뒤로 바라보았다.

“은공, 이들은 어떻게 할까요?”

“이 새끼들은 일단 감옥에 처넣어. 다음 날이 밝는 대로 싸그리 잡아서 하오지로 보낼 테니까. 몬미더에게 전하면 될 거다.”

하오지는 과거 2왕자 칼루스와 3왕자 베네디트가 역모를 꾀한 이후로 끌려갔던 악명높은 수용소였다.

“네. 알겠습니다.”

엘프 몇 명이 존경을 담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괴성을 지르는 아이들을 떠나보낸 후 영주 성에 들어섰을 때,

나는 기괴할 정도로 고요한 느낌을 받았다.

바깥엔 그러지 않았는데 그새 무슨 일이 있었나.

“저하.”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내 뒤로 노년의 사내가 다가온다.

“베르닐 시종장. 오랜만이야. 그동안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지?”

“저하.”

내 장난스런 말에 그가 나를 다시 불렀다.

“왜 그래.”

“속히 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시옵소서.”

“바리스의 결혼식은 아직 기간이 남은 거로 아는데? 린디스 제국과 약속한 에이리아와의 혼약식은 시간이 남았고, 혹시 윈리가 문젠가?”

내 여동생 윈리는 이미 마탑의 마법사였던 나의 친우이자 천하의 도둑놈 새끼인 율리스와 속도위반을 해버렸고 아이를 가져버렸다.

딱히 큰 문제는 없을…….

싱글거리며 생각하던 내 상상을 베르닐 시종장이 끊었다.

“…… 저하.”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던 내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운 채 그를 보며 조용히 경고했다.

“베르닐 시종장. 나는 선을 넘는 장난은 안 좋아해.”

“크리아네스 올 라운 국왕 폐하께서…… 저하의 아바마마께서.”

정중한 그의 말에 나는 우뚝 굳은 채 침묵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하루 전 서거하셨습니다.”

그 말에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이미 타냐 왕녀 저하와 윈리 왕녀 저하 그리고 에오니샤 왕녀 저하께선 바리스 왕자저하의 연통을 받고 궁으로 향하셨습니다.”

“데이비, 이게 무슨?”

놀란 페르세르크와 에이리아가 나를 바라본다.

그런 그녀들의 걱정스런 시선을 받으면서도 나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그래서. 궁으로 가라고? 미안하지만 난 바빠. 이곳에서 할 일이 산더미다.”

“데이비!!”

“데이비 님?!”

“미안한데 폐하가 돌아가시는 건 이미 예측된 상황이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었을 목숨을 이어붙인 거니까.”

기간을 늘리긴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싸늘하게 말한 내가 베르닐 시종장을 지나친다.

“궁으로 돌아가는 건 화장하는 날 당일 하루 예의 차릴 겸 참석한다. 그 외엔 없어. 이곳에서 할 일도 바빠.”

내 대답에 베르닐이 드물게 화를 내듯 소리쳤다.

“저하!! 그분은 저하의 아버지이십니다!”

콰앙!!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단단한 대리석 기둥을 후려쳐 반쯤 금이 가게 만들어버린 내가 그를 노려보았기 때문이었다.

“닥치라고 했지! 베르닐 시종장. 한 번만 더 경고하는데, 그 사람을 내 아버지라 칭하지 마.”

“저하…….”

“알아들었어?”

싸늘하게 일갈한 나는 모두를 뒤로한 채 모든 계획을 머릿속으로 지워버리고 내 개인 침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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