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7화
“멍청한 작자 같으니. 그대로 있으면 이쪽에서도 손을 못 댈 텐데.”
물론, 가만히 둬도 그의 파멸은 예정된 것이다. 그가 거대한 문어 다리를 마치 송전탑처럼 사용해 흉신들을 이곳에 유지시키고 힘을 부여했다는 것만으로도 팽팽하던 힘의 접전을 관둔 꼴이니까.
파괴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폭이라는 극도의 악수를 두었다.
[마냥 그렇게 생각지 마십시오. 신이 위계를 버렸다 할지라도 그 위상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겠지.”
[우선 넬타리드의 일면이 잠식한 지구의 사람들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현재…… 환각에서 빠져나온 이는 극도의 소수일 뿐입니다. 그건 맹주가 계시던 그 비공정의 존재들도 마찬가지겠지요.]
페르세르크. 에이리아. 륀느, 그 외에도 드워프와 엘프들까지.
모두가 환각에 갇혀있는 현재 그들을 구할 필요가 있다.
“금기의 힘으로 하나하나 빼내는데에도 한계가 있는데.”
[맹주.]
나를 부르는 아비트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명심하십시오.]
그는 내가 죽으면 가장 곤란한 존재 중 하나였다. 헤라클래스가 사라지고 오로지 죽고자 3만 년에 달하는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으니 말이다.
붉은 공허는 새로운 세상의 씨앗이 되는 곳이다.
새로운 세상이 태어나는 게 마냥 쉬울 리가 없다.
그는 천천히 몸을 빛으로 화했고.
이내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천천히, 아주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아주 잠깐동안 그가 하는 말을 곰곰이 들은 내가 그에게 한 대답은.
“참고해둘게.”
라는 말이 전부였다.
[명심하십시오. 맹주께서는 절대로 사라지시면 안 됩니다.]
“나도 죽을 생각 없어. 살자고 하는 짓인데 설마 내 목숨 버릴까.”
[흠. 그런 것치고는 제법 겁 없이 싸우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한 그가 문득 생각난 듯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받으십시오]
“이건 또 뭔데?”
[맹주께서 가지고 계시던 스태프를 기억하십니까.]
“그렇지?”
[그것과 같은 것입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아비트가 내민 것은 보석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아비트, 설마 심장 뽑았냐?”
[비록 태생부터가 위대한 고대룡은 아니지만 3만 년을 살아온 존재입니다.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말끔한 붉은빛의 보석을 내려다보자 알 수 없는 고동이 느껴졌다.
자신의 심장. 즉 힘의 근원까지 내미는 그의 모습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심장이 사라져도 죽지 못하다니. 저것도 나름의 저주나 다름없으리라.
그가 그렇게까지 해준다면, 이쪽에서도 박자를 맞추는 수밖에.
정중하게,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는 그를 뒤로하고 나는 한 손을 가볍게 휘저어 금기의 힘을 내 손에 둘렀다.
이 공간에만 오면 금기의 힘이 내가 가진 단순한 분해의 특성과 다르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발현하기 쉽다.
이곳에서만큼은 금기의 힘이 단순히 독립을 넘어선 무언가로 진화한다는 소리였다.
애초에 금기의 힘의 기본베이스가 완전 독립일뿐 특성은 헤라클래스와 내가 가진 성향이 달랐으니 말이다.
벌써 몇 차례 이곳에 온 덕분일까.
나는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금기의 힘이 균열을 여는 것을 보고 그대로 몸을 움직였다.
나를 부른 아비트에게서 빠져나와 다시 나왔을 때.
나는 언제부터 내가 [파괴]의 환각에 빠졌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느낀 이질감이었구나.”
다른 이들은 전혀 몰랐지만 그나마 눈치라도 챈 것이다.
순간적으로 오한이 돋아 고개를 들자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는 불길한 색의 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산한 색의 띠가 달의 테두리를 감싸 마치 월식의 일면을 보듯 타오른다.
마치, 세상을 내려다보는 눈처럼.
기괴한 색으로 타오르는 붉은 달은 세상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그 불길하고도 섬뜩한 달의 모습을 보면 느낄 감정은 두려움, 혹은 전의 정도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생각한 것을 행동에 옮겼다.
“다시 보기 힘든 건데 저런 건 찍어놔야지.”
현재 세상은 파괴가 육신을 얻어 강림했다. 그 덕에 어마어마한 인간. 혹은 다른 생명체들이 환각에 빠져 그 자리에 굳어버린 것이다.
마치 돌이라도 되어버린 것처럼.
움직이던 인간이 그 자리에 굳어버리면 아마 수많은 사고가 터질 터.
관리가 안 되면 원전만 해도 이른 시간 안에 폭발해버릴 것이다.
하나하나 관리할 틈이 없고, 붉은 공허도 아닌 이상 금기의 업으로 파장을 만들거나 신력을 통해 구하는 데에는 효율이 너무 좋지 않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큰 문제가 터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이 사태를 끝낸다.
넬타리드가 어떻게 되냐에 따라 타나토스 또한 해결책이 나올 테니 말이다.
우웅…….
나는 가장 먼저 이 땅 어딘가에 숨어있을 넬타리드의 육신보다 아스가르드 쪽으로 좌표를 잡았다.
그리고.
[워프.]
전신에 마나를 해방시키며 마법을 발현한다.
혈도 서클에 도는 마나가 심장에 간이 서클을 만들고 두 가지 서클이 동시에 회전하며 효율을 극대화한다.
스팡!!!!!
일순간에 인파가 가득하던 시내거리에서 한적하고 고요하며 강풍이 부는 창공으로 뒤바뀐다.
고요한 분위기로 뒤바뀌어버린 거대한 선체의 갑판에 내려서기가 무섭게 나는 전신에 끓어오르는 신의 죄. 아니, 금기의 힘을 그대로 방출하기 시작했다.
신이었던 자가 다시 신을 포기하고 필멸자가 되어 간섭한 힘이다.
금기의 힘이나 내게 허락되고 녹아든 태초 신의 신력이 그 정도에 밀릴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프리아 여신의 신력이기에 그녀가 간섭하는 꼴이 되지만 이 힘은 현재 그녀를 떠나 내게 완전히 스며들었기에 결국 그녀가 아닌 내가 초월적인 힘을 잠시 발현하는 것과 같다.
‘자. 마음껏 날뛰어도 좋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령 마나가 내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신력을 머금고 미친 개마냥 맥동했다.
화아아아아악!!!
내 몸을 기준으로 삽시간에 시꺼먼 안개가 마치 파도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다들 일어나.”
빌어먹게 이어지는 전쟁도 슬슬 끝을 내야지.
* * *
내 몸엔 아직 다량의 신력이 남아있다. 나를 흡수하기 위해 내게 강림하던 프리아 여신이 남겨놓은 잔재.
그 양이 무한하진 않지만 알뜰살뜰하게 쓰는 건 내 역량에 해당한다.
신력을 품은 검은 안개인 저서클의 마법 다크 포그가 순식간에 비공정 자체를 완전히 감싼다.
넬타리드가 제아무리 잘나도 하나하나 작정하고 잠식하진 못할 터. 효과는 충분하리라.
순식간에 비공정 전체를 휩쓸고 사라지는 검은 안개 이후로 고요하던 비공정에 당황한듯한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망설일 시간 따윈 없었다.
나의 기척을 깨닫기가 무섭게 갑판 위로 올라오는 륀느가 보인다.
녀석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빠르게 정신을 차린 듯 보였다.
“데이비 님. 륀느 기이한 상황을 체험. 이것을 낮게 평가. 설명을 요구해.”
“넬타리드가 제 위계를 버리고 막판 스퍼트를 하는 모양이다. 시간이 늦어서 대규모 참사가 벌어지기 전에 재워버려야 해.”
내 대답에 륀느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새 회복을 마친 것일까.
완전한 세피로스화는 하지 않았지만 제 몸의 두 배는 너끈히 되어 보이는 길이의 황금빛 창인 천칭을 녹여낸 창이 소환된다.
“륀느. 데이비 님의 서포트 대기 중.”
“여기 있어.”
“륀느의 감정회로의 온도가 불안정하게 변동되는 것을 확인 이것을 불안감이라 명시.”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페르세르크는 심연의 권능을 모두 잃어버렸기에 이제 전력으로썬 큰 기대를 할 수 없다. 중급 정령을 다루게 된 에이리아 또한 마찬가지.
그 외에 아스가르드 내엔 사실상 큰 전력이 될만한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에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둥둥 떠오른 채 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그녀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경고했다.
“분명히 말하는데. 네가 네 신변이 파괴되게 하지 마라. 명령이다.”
이전에 그녀는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다 버리려 했다.
그녀의 육신은 대부분 생체 골렘인 터라 죽어도 죽는 게 아니지만 자아를 관장하는 중추가 부서지면 그것으로 끝이니 말이다.
“명령…… 인계 완료.”
나를 말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올려다보지만, 륀느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 녀석이 상당히 불만이 쌓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비 님. 대상을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요청.”
적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냐는 질문에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바라보는 곳은 창공이 아닌 까마득히 아래에 있는 지상이었다.
넬타리드는 분명 한국에 있다.
그리고. 나를 부르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질 정도로 섬뜩한 힘이 느껴져 왔다.
“메가로드리아. 차후에 의념을 보낼 때까지 여길 잘 지켜줘.”
아스가르드만으론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다.
지상에는 샨드라미네아를 창공에는 메가로드리아를 배치해놓은 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도발하는 듯한 방대한 힘이 느껴지는 곳을 시야에 담은 뒤 아스가르드에서 미련 없이 떨어져 내렸다.
쿠우우우웅!!!!!
바람을 가르는 어마어마한 소리가 들려온다.
나를 따라 등허리에 돋아난 작은 한 쌍의 날개를 팔락이며 내려오는 륀느와 다르게 나는 그저 중력에 몸을 맡기듯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한참을 떨어졌을까. 구름을 뚫고 마치 포격을 가하듯 낙하하던 내 몸을 륀느가 낚아챈다.
“륀느. 저쪽이다.”
“명령인수.”
내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륀느가 빠르게 비행한다.
그리고 곧이어 나를 뒤에서 끌어안듯 안아 들고 추락속도를 제어하던 륀느가 내 등에 붕대를 감아놓은 작은 발을 데었다.
“데이비 님. 이곳의 방해물은 륀느가 처리할 것을 요청.”
“분명히 말하는데. 네 육신과 자아의 파괴는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그 말과 동시에 지상에서 붉은 달을 감싸는 기괴한 띠와 같은 색의 기류들이 쏘아져 올라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륀느가 특정 방향을 잡은 뒤 그대로 내 등을 밟던 발을 밀어내며 나를 포탄처럼 쏘아 보냈다.
낙하 에너지라는 게 참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리고 나를 걷어차듯 지상으로 튕겨낸 륀느는 몸을 회전시키듯 곡예비행을 하며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는 황금빛이 뒤섞인 창이 소환되기 시작했고, 그녀의 등허리에 돋아난 작고 앙증맞던 날개는 거대하게 변하며 3쌍으로 늘어난다.
머리 위에 있던 원 고리는 순식간에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변하며 마치 기계 태엽장치가 돌아가듯 신기한 형태로 각자 회전하기 시작했다.
방대한 에너지가 그녀에게서 터져 나온다.
기계장치의 신이 서서히 세피로스화에 적응하면서 그녀가 허용 가능한 힘이 늘어나고 있다.
본래의 백익에 비하면 보잘것없겠지만.
-키이이이이익!!!!!
잠식되어 변형되어버린 거대한 새의 무리를 상대로는 지금도 충분하다.
단일종족. 일인군단.
백익 세피로스 륀느가 전투에 돌입하기가 무섭게 나는 넬타리드의 기운이 느껴지던 인천 항구 쪽으로 폭격을 떨어뜨리듯 착륙했다.
콰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항구에 쌓여있던 수많은 컨테이너가 뒤흔들렸고 몇 개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가 쓰러졌다.
콰르릉 소리와 함께 먼지투성이가 되어버린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난 내가 몸을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검은 슬라임같이 흐물거리는 옷을 입은 무표정한 존재들.
인간이되 넬타리드에게 잠식되면서 그의 수족이 된 인질이나 다름없다.
죽이면 조금 곤란한데.
굳이 위협적이진 않았기에 나는 미련 없이 주변에 박살 난 컨테이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을 집어 들었다.
이거면 되겠다.
“좋은 말 할 때 비켜라. 계속 막으면 좋은 꼴 못 볼 거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은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숟가락이었다.
니들 숟가락 살인마 모르지?
잠식돼도 좀 많이 아플 거다.
저벅…… 저벅…….
이윽고 나를 포위하듯 모여든 수십 수백 명의 인간이 하나둘씩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검을 뽑아 들기 시작했다.
일부는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총기류를 들고 나를 겨눈다.
츠츠츠츠츳…….
마나 하나 느끼지 못하던 인간들이 오러를 뽑아낸다라…….
티오니스 대륙의 익스퍼트 기사들이 보았다면 거품을 물고 인생무상을 외칠법한 모습이다.
수십 명의 인간들이 익스퍼트의 상징인 오러를 뿜어내고 수십의 인간이 각기 총화기의 총구를 내게 겨눈 채 총 자체에 대량의 마나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래. 말 들을 거라곤 생각 안 했다.”
마나를 총화기에 담는 익스퍼트급 적수만 일백에 가깝다.
츠츳…….
그리고, 선공은 그들이 먼저 시작하기 시작했다.
넬타리드의 일면인 파괴가 내 간을 보려는 것인지 시간을 끌려는 것인지 이들은 효율적이면서도 시간을 끌 수 있는 방향으로 나를 압박해 들어온다.
그리고.
익스퍼트의 상징인 오러를 머금은 검을 나의 급소란 급소에 일제히 찔러넣었다.
쩌엉!!!!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속의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 * *
주변이 검붉은 아지랑이 같은 것으로 잠식된 공간. 완전히 박살 나버린 원형테이블의 중앙에 홀로 고고하게 서 있던 검은 피부의 인간은 눈앞에 보이는 시야를 보며 눈을 서늘하게 빛냈다.
시야에 비치는 장면은 일백여 명에 달하는 인간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앙엔 피 묻은 숟가락을 들고 여유롭게 서 있는 소년, 혹은 청년이 보인다.
소년의 티를 갓 벗어난 듯한 청년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그와 시선을 마주한 파괴는 곧 그의 행동에 스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보고 있는걸 알고 있다는 듯 그가 피 묻은 숟가락의 목 부분을 엄지로 눌러 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숟가락을 던져버린 뒤 엄지만 펼친 손으로 제 목을 긋는 시늉을 한다.
그는 숨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채 익스퍼트급 이상의 존재들, 그리고 총화기를 포화하는 이들 사이에서 느긋하게 움직였다.
일백여 명에 달하던 수하들의 연결이 끊어지는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1분 남짓.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력 차를 보여주면서도 그는 긴장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윽고 그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스산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 이들을 사뿐히 지르밟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거 한 인간을 잠식하듯 먹어치운 파괴는 말없이 손에 새카만 뇌광으로 만들어진 검을 만들어낸 뒤 서서히 떠올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시커먼 것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주 잠시였을까.
말없이 기다리고 있던 파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시야에 천천히 움직이는 사물용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쿠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누군가가 거대한 덩치의 인간을 가볍게 던져버리며 나타났다.
“숟가락 배달시키신 분.”
장난스레 말한 그는 반쪽이라곤 하나 한때 신이었던 존재를 상대로도 전혀 물러남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배달을 시켰으면 말을 해 이 양반아.”
싸늘하게 일갈하며 데이비가 [파괴]를 향해 숟가락을 집어 던졌다.
쩌어어엉!!
그리고 공간이 일그러지듯 뒤틀리며 원 형태의 파장이 세로로 퍼져 나간다.
콰직!!!!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검은 기운이 숟가락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원 형태로 일그러진 공간을 한순간에 관통하며 묵묵히 서 있던 넬타리드의 얼굴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에 넬타리드의 육신의 눈이 섬뜩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버티던 공간의 일그러짐이 검은 기류에 순식간에 굴복하듯 사라진 것이다.
자신의 뺨을 스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기괴한 검은 괴물의 형태를 지닌 파괴가 안광을 빛냈다.
아아, 저건 불경한 자를 보는 눈매로구나.
“피차 아쉬울 것도 없고, 서로 끝장 한번 보자고.”
담담하게 말한 데이비가 한 발 내디뎠다.
동시에 파괴가 그를 향해 손을 뻗는 그 순간.
쩌어엉!!
투웅!! 쩌어엉!!
도저히 숟가락으로 낼 수 없는 소리가 더욱 강하게 울려 퍼진다.
마치 투검처럼 날아온 숟가락은 허공에서 녹아내리듯 일그러지며 찢겨 나가버린 넬타리드의 베리어를 녹여냈다.
아주 잠깐의 틈이 생긴 것으로 충분했다.
일순간 검은 검과 뒤이어 허공에서 손으로 빨려 들어온 초단이가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