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8화
221. 파괴의 황혼 그리고 놓칠 수 없는 기회 (2)
인지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며 서로를 향해 휘둘러진 검은 정확히 서로의 급소를 확실하게 노리고 파고들었다.
신이라는 존재는 불사, 불멸의 존재. 절대 피조물이 이길 수 있는 성질의 의지체가 아니다.
태초의 프리아 여신은 물론 그녀가 만들어낸 타나토스도, 그 관련 존재인 넬타리드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반쪽짜리 신은 이야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이제 신이 아닌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신이 위계를 버린 상황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큰 문제가 된 적이 없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카앙!!! 카가가가각 촤악!!!
순식간에 검은 화염의 불똥이 튀긴다. 아주 찰나의 순간 수차례 검을 충돌한 내가 놈의 팔을 베어내자 놈은 피가 흐르는 팔을 스윽 훑어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회복시켰다.
공격이 먹힌다. 그의 생명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게 확실해졌다.
하지만, 신력을 둘러도, 금기의 힘을 써도 그의 생명력은 시시각각 회복되고 있었다.
신의 권능조차 독립하는 금기의 힘조차 제대로 먹히지 않는 이는 이로써 두 번째가 되었나.
애초에 헤라클래스처럼 힘을 제대로 다루진 못하기에 그 힘의 본래 성질과는 많이 다를 수밖에.
[위계를 버린 신은 육신을 필요로 합니다. 아마 지구의 인간 중 당신에게 상당한 증오를 품은 존재에게 들러붙겠지요. 시시각각 악해질 겁니다. 그래서 그는 지구의 인간들의 환상과 꿈, 그리고 그 외에 많은 것들을 흡수하여 자신의 힘을 키우겠지요. 그 기간은 어림잡아도 꽤 긴 편입니다.]
아비트가 했던 말.
대체 그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환상 속에서 본 엘프의 모습이지만 피부색이 회색빛이다.
손에 검은 기류가 넘실거리는 검을 쥔 그가 다시 한번 움직인다.
서로 간에 지금은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한다는 판단이 선 상황에서 더 말해무엇할까.
한마디 한마디가 정보가 될 뿐이다.
[신은 특수한 조건에 한해선 절대적인 간섭을 발휘합니다. 여기서 신이 아니게 된 것들은 어떤 조건에서도 간섭할 자격을 박탈당하는것이지요. 대신 필멸자로써, 필멸자가 허락된 범위 내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바로 맹주처럼요.]
처음엔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 싸운다 생각했다.
평온에게 먹혀 다시금 제어권을 완전히 빼앗기느니 차라리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나를 처리하고 살아남고자 한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파괴는 어째서 평온과의 힘 싸움을 포기하고 나와의 싸움을 선택한 것일까.
[그 이유에 관해선…… 맹주께서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신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담당하는 영역을 지키는 존재입니다.]
내 앞에 있는 존재. 한때 신이라 불렸던 파괴의 신이 담당하는 것은 파괴.
그는, 사라지기 직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내려와 자신의 존재의의를 다한다.
카아앙!!!!
“정말 당신네 신들이라는 족속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내 물음에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필멸자가 되고 흐름이 보이지 않는구나.]
“…….”
[하찮은 미물의 시선이란 이런 것이지. 알고 있느냐 필멸자여.]
“알든 모르든 결과는 똑같아.”
그가 사라지건 내가 죽건.
대화가 통하지 않는 적이라면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지우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설사 신이었던 존재의 반쪽이라 할지라도.
[오라. 내 안에는 너와 나의 반쪽이었던 존재를 향한 증오와 파괴 욕구로 들끓는다. 이것을 분노라 하였느냐. 나는 이 분노를 나의 이름에 걸맞게 사용할 것이다.]
쩌어엉!!
힘을 겨루듯 서로 검을 비틀어 급소를 노리고 공격한다.
수차례 약속이라도 한 듯 검을 빗겨내고 쳐내며 대치를 하던 중 파괴의 손에 검은 무언가가 머금어졌다.
그리고, 파괴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손에 움켜쥐고 완전히 숨겼다가 펼쳤다.
쩌어어엉!!!
그가 다루는 힘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실제로 그가 사용하는 힘은 신력이라고 할 수도 없고 마나라고도 할 수 없으니까.
[명심하십시오. 지금의 맹주께서 가진 힘이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확실하게 그를 죽일 거라는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타락하고 추락한 신은 스스로 사멸할 때까지 모든 것을 부수는 자연재해와 같다.
너무 억지스러울 정도로 불합리하다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절대 해칠 수 없는 존재를 한낱 피조물이 살해하는 것부터가 어마어마한 메리트를 이쪽에 넘긴 것과 같다.
게다가 또 한 가지 사실도 존재한다.
“흐읍!”
초단이가 순식간에 그의 검과 충돌하며 튕겨 나갔다.
말도 안 되는 악력에 손아귀의 피부가 찢어진 것 같은 느낌이 밀려오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 명줄을 끊고 다시 파괴를 이어나가기 위해 검을 찔러넣는 그를 향해 나는 오히려 몸을 빼지 않고 파고들었고.
필멸자가 되어 틈이 생긴 그에게 파고들어 그대로 피가 터진 오른손을 말아쥐고 당겼다.
[마왕 유르그 식(式) 무격술]
[명치.]
스스슷…….
공기가 순간적으로 뒤틀린다.
내 행동을 눈치챈 그가 나를 향해 무릎을 걷어차 올리지만 이미 한발 늦은 후였다.
[으깨기]
투쾅!!!!
방대한 마나를 응축시킨 주먹이 그의 명치에 닿고.
무형에서 유형으로 변한 충격파가 그의 등 뒤부터 하늘을 부술 듯 퍼져 나갔다.
“커헉!”
일격에 그의 육신이 허공으로 튕겨 나간다.
그래, 효과가 아예 없을 수가 있나.
절대 다칠 일 없고, 죽을 일 없는 신이었던 자가. 일개 필멸자의 육신을 입었으니.
허공으로 튕겨 나간 그를 향해 나는 몸을 살짝 웅크렸다.
궁신탄영의 방식을 통해 바닥을 완전히 파괴하며 퉁겨져 올라간 내 손으로 허공을 부유하던 초단이가 쥐어졌다.
“크륵?!”
아직 제 몸에 익숙하지 않을 거다.
아니. 실시간으로 힘이 오르락내리락하니 익숙해질 수가 없을 거다.
그 틈이. 내가 그를 몰아넣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방심은 죽음을 통하는 지름길.
나는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절대 놓치지 않은 채 초단이를 양손으로 쥐고 그에게 파고들었다.
서걱!!
그리고 거침없이 초단이를 이용해 그의 몸을 크게 비스듬히 베어냈다.
촤아악!!!
시뻘건 피가 허공에 튄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허공에 서 움찔거리는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멈출 생각 따윈 없다. 숨통이 끊어지기 전에 멈췄다간 내가 시체가 될 테니까.
서걱!! 촤악!!
굳어버린 그를 향해 초단이의 검신에서 일어난 청적색의 오러 블레이드를 고밀도로 응축시켜 또다시 베어냈다.
촤악!!!
붉은 피가 사라지고 이번엔 검은 파편 같은 것이 튀었다.
한차례 두 차례.
아주 짧은 시간에 수십번을 베어내자 그의 육신이 걸레짝처럼 일그러졌다.
[크으?!]
기이한 목소리를 내며 그가 섬뜩한 안광을 빛내며 입을 쩍 벌렸다.
인간, 혹은 엘프라고도 할 수 없는 괴물의 형태로 바뀌어버린 그의 입이 쩍 벌어지며 섬뜩할 정도로 많은 양의 이빨이 드러난다.
아직 멀쩡하다며 나를 위협하며 반격을 가하는 그의 손이 거대한 발톱이 되듯 검은 무언가로 변했다.
초단이는 이미 그의 육신을 찔러 관통한 상태.
이대로라면 놈의 검은 손톱은 내 육신을 가차 없이 찢어버리리라.
[필멸자라 할지라도 감히 나와 맞서려 들지 마라!]
“프리아 여신께서 네게 전하라는 말씀이 있으셨다.”
차앙!!!
순식간에 그의 몸에 박힌 초단이가 빛으로 휩싸이며 분해된다.
동시에 그의 눈이 크게 뜨여졌고, 두 자루의 검으로 분리된 초단이. 아니 청단이와 홍단이를 쥐고 내가 스산하게 웃어 보였다.
프리아 여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엿 먹으라.
서걱!!
검은 기류의 손이 청단이의 비 물리 법칙을 베는 검기에 잘려나갔다.
[크아아아아악!!!]
끔찍한 옥타브로 비명을 지르는 그를 나는 가만히 두지 않았다.
청단이와 홍단이를 들고 떨어지는 그의 육신을 이리저리 튕기며 미친 듯이 베어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체력 분배가 안 되지만 틈을 줄 순 없었다.
숨겨놓은 한 수를 쓰기 전에 그를 죽일 수 있다면 그보다 완벽한 작전은 없을 테니까.
쿠웅!!!
내 등 뒤로 돋아난 신력으로 만들어진 새하얀 빛의 날개가 바람에 흩날렸고 이내 파괴를 지상에 내리꽂기가 무섭게 크게 펄럭이며 주변의 먼지를 몰아냈다.
스릉…….
고통과 치명상으로 경련하는 그를 마무리 짓기 위해 다시 한번 초단이로 합체시킨 청단이와 홍단이를 쥔다.
그리고는 필멸자의 한계나 다름없는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그의 베이스는 결국 인간이니까.
카앙!!!!
하지만 파괴는 그리 녹록한 대상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검은 기류로 둘러싸인 손으로 초단이를 막아낸 그가 나를 올려다본다.
[크아아아앙!!!!]
그리고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소리에 담아 토해냈다.
“쿨럭!”
수십장 겹쳐놓은 마법 장막이 일순간 박살 나며 내 몸이 튕겨 나가 바닥을 두세 번 굴렀다.
강제로 손을 지면에 대고 고정시켜 자세를 잡은 내가 숨을 크게 한번 들이켰다.
[크륵…… 크르르륵…….]
당장이라도 반격을 가할 줄 알았는데 놈은 움직이지 않는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그의 육신은 처음과 달랐다.
엘프의 모습을 하고 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한 인간의 모습에 검은 슬라임 같은 것이 반절 삼키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저 남자가 아마 넬타리드의 숙주이자 내게 강한 증오를 품고 있는 존재이리라.
어디서 본 인간의 모습인데?
문득 나는 넬타리드가 감싼 인간이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기억이 났다. 그는 내가 잡아 들인 악마 같은 놈들. 6명의 소년소녀들 중 두 명과 상당히 닮아있었다.
아무래도 돈을 이용해 애들을 막돼먹은 것마냥 키워댔던 장본인이리라.
자신의 아들을 내가 잡아가고 잔혹한 판결을 내렸으니 분노할 수밖에.
어떤 인간이냐에 따라 조금 씁쓸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라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을 듯싶었다.
[크으…… 크아아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검은 슬라임 같은 것이 다시 사내를 집어삼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서 대량의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러를 내뿜던 일반인들.
그들을 이용해 내 앞을 막아 시간을 벌려는 수작이렷다.
순식간에 나를 포위하는 이들을 향해 내가 경고를 던진다.
“그 칼 내려놔.”
평범한 가정주부, 회사원, 학생. 작은 아이. 덩치가 크고 문신이 있는 남성까지.
종류는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동일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오러를 내뿜으며 죽는 한이 있어도 나를 막으려는 듯 움직인다는 점.
본인들의 의사 없이 육신만을 빌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두 양반이 제때에 일을 좀 해줘야 하는데.”
나름대로 회심의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살아있는 놈들을 향해 한 발. 또 한 발 내디뎠다.
오러를 내뿜는 익스퍼트급 기사와 동일한 전력을 지녔지만 애초에 파괴와 내게는 한없이 미약한 수준.
애초에 싸움의 건덕지가 될 것도 없었다.
순식간에 신력을 완전히 거두고 금기의 힘을 양손에 두른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파고드는 이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는 대상의 몸에 순식간에 마법 장막을 설치하며 손을 뻗었다.
[유르그 식(式) 군중제어기]
[핵딱밤]
터엉!!! 검지에 대량의 마나가 응축되었다가 금기의 힘과 함께 터져나간다.
본래라면 머리통이 증발해버릴 화력이지만 마법 장막이 그것을 막는다.
마치 배트에 맞은 야구공처럼 튕겨 나가는 그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금기의 힘으로 조종을 해제해버린 그를 다시 찾아 조종할 만큼의 여유가 그에겐 없을 테니까,
터엉!! 텅!!
마치 준비해둔 것처럼 물 흐르듯 하나하나 날려버리기 시작하자 파괴가 인상을 찡그리며 검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내게 덤벼든다.
쩌엉!!!
마치 일점 송곳이 된 것처럼 돌진해온 놈이 내가 펼쳐둔 장막을 순식간에 꿰뚫으며 내 복부를 찔러넣었다.
“쿨럭!”
알싸한 통증이 밀려온다.
이래서. 안면 없는 인간까지 구하려 들면 손해 본다는 건데.
피를 울컥 토해내며 나는 파르르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머리통 뒤쪽으로 겨누었다.
터엉!!!
그리고. 그의 육신 채로 내 몸을 꿰뚫기 위해 검을 찌르던 한 소녀의 머리에 딱밤을 갈겼다.
마지막 한 명이 튕겨 나간 것이다.
[어리석구나! 고작 필멸자 하나를 지키자고 네 목숨을 걸었느냐!]
“죄 없는 사람을 죽여 뭣해.”
[웃기는구나! 내 눈에 너는 선인이 아닌 이기적인 존재에 가깝다! 이제 와서 회개라도 하고 싶은 것이냐?! 네 몸에 있는 그 저주로 인해 영원히 소멸되는 것이 두려워서 영웅이 되고자 하는가!]
이놈 이거, 뭔가 많이 알고 있구나.
“착각하지 마 멍청아.”
순식간에 그의 육신을 붙잡은 내가 섬뜩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렇게 가면 손해가 너무 크겠어.”
내 말에 그의 얼굴조직이 일그러지며 괴물 같은 입이 벌어진다.
[크르르르르…….]
스산한 소리를 내며 나를 위협하는 그의 모습에 천천히 고개를 든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와 싸우던 나머지 반쪽은.”
[흡?]
“지금 어디 앉아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줄 알았지?”
그 말과 동시에 내 손목에서부터 넬타리드의 신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반쪽짜리 신의 은총이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네가 원한 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련일지니.]
후회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이 정도로 질길 줄 몰랐지.
하필 주변에 인간들이 많아서 광역 마법도 못 쓰는 마당에.
[지금부터, 나를 도운 네게 신으로서의 은총을 하사하노라.]
또한.
[감히 규칙을 어기고 위계를 포기한 무책임한 신을 징벌할 것을 여기서 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압도적으로 강한 힘을 얻지만, 그가 잃는 대가는 크다.
아비트는 그렇게 말했었다.
[세상에 일방적인 것은 없습니다. 신이 위계를 버린 것, 예. 큰일이지요.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세상의 근본을 이루는 규칙은 절대 녹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설사 신의 추락이라 할지라도.]
신의 추락은. 세상의 규칙에 위배되는 것. 파괴의 이러한 선택으로 인해 세상의 규칙이 그를 배제하기 시작했고, 그 의지체인 반쪽짜리 신이 그를 지우기 위해 권능을 내리기 시작했다.
[평온의 이름으로 대리자 데이비 올 라운에게 신력을 하사한다.]
프리아 여신이 남겨놓았던 신력에 이어 이제는 조화가 아닌 평온이 된 넬타리드의 힘이 성흔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프리아 여신과 다르게 그 힘은 모두 너의 시련에 대한 대가일지니.]
“그건 됐고. 일부터 합시다!”
나를 향해 내려오는 넬타리드의 계시를 끊으며 내가 소리쳤다.
복부에 검이 뚫려서 아파죽겠는데 쓸데없는 소리는.
내 외침에 성흔의 빛이 강해진다.
[대체 무슨 짓을?!]
“뭐긴. 개도 자기 집에선 한 수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
초대하마. 지금으로서 내가 가장 강해질 수 있는 영역에.
쩌적!!!
그를 끌어안은 채 평온의 신 넬타리드가 열기 시작한 거대한 균열 너머로 내가 몸을 튕겼다.
[이…… 이건 무슨?!]
붉은 공허의 존재에 닿은 것이 처음일까.
그의 표정이 심상찮게 변하며 검은 슬라임이 괴물의 입을 만들어 내 어깨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하지만 나는 미련 없이 놈과 함께 붉은 공허 속으로 떨어진다.
이곳에 남아 날뛰는 인간은 륀느가 잘 처리해줄 테니.
내가 할 일은 이쪽에 존재하리라.
후우우웅!!! 쿠웅!!
끝없는 붉은 안개가 뒤틀리며 거대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공간 바깥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드래곤이 나타났고 이내 그가 지나간 자리에 거대한 모래시계가 떨어져 내렸다.
[맹주. 당신의 힘을 증폭시킬 겁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소중하게 사용하시길.]
“잘 쓰마.”
담담하게 말하며 그를 걷어차 날린 내가 복부에 꽂힌 검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뽑아내 던져버렸다.
“어서와, 일단 내 세상에 온건 처음이지?”
아비트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의 나는 태초의 신 프리아 여신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더라.
그것도,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로.
실제로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붉은 공허의 정지된 에너지들이 마치 나를 주인이라 여기는 것처럼 모여들어 막대한 힘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 속해서 언젠가 이곳에서 떠나지 못하는 존재가 되지 않는 이상.
이곳의 에너지는 내게 힘을 보태주지 않는다.
하지만 아비트의 모래시계가 아주 잠깐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언젠가 이곳에 소속되어 이 붉은 공허를 새로운 세상으로 만들고 생명을 탄생시켜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지만 그딴 건 사실 내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아비트가 그동안 폭주하지 않게 시간을 멈춰 잡아둔 에너지들이 내게 스며드는 것이다.
이 정도로 판 깔아놨는데 지면…….
혀 깨물고 뒈져야지.
내 말뜻을 이해한 파괴가 괴성을 내지르며 섬뜩한 기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네놈은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건 내가 판단하는 일이고.”
[너를 죽이고 이곳을 먹어치우겠다, 그리고 이곳을 파괴하리라! 네 목숨은 그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이.”
그의 말을 무시하며 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넬타리드와 프리아 여신을 대신해서 내가.”
[널 구원해주마.]
“널 구원해주마.”
서로의 목적은 같다. 상대의 완전한 죽음.
시간이 늦어 지구가 파멸하던지. 그 전에 내가 놈을 죽이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