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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89화 (788/1,559)

제 789화

“다수의 숫자. 매우 불합리하다고 판단. 륀느가 이것을 낮게 평가.”

넬타리드에게 잠식된 수많은 날짐승들이 륀느를 향해 날아든다.

하지만 륀느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마치 태엽 감기듯 제각각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날개에서 수십 가닥의 섬광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륀느, 신벌포를 채택. 이것을 륀느가 높게 평가!]

콰앙!! 쾅!!

하늘을 가득 채우는 폭발 속에서도 륀느의 몸은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 진화하는 심장은 그녀의 회복과 성장에 박차를 가했다.

마치 날랜 제비처럼 창공을 활공하며 그녀를 쫓는 수많은 날짐승들을 격추한다.

단순한 날짐승이 아니었다.

세상 어디에도 오러를 내뿜으며 섬광처럼 돌진하는 독수리는 없으며 날개를 펄럭여 바람 칼날을 방출하는 제비 또한 없다.

서로 뭉쳐 거대한 에너지광선을 만들어내는 벌레는 어떠한가.

지치지도 않고 몰려드는 그들의 목적지는 엄연히 아스가르드 비공정.

륀느는 자신의 힘을 더욱더 끌어올리며 중얼거렸다.

“륀느. 뛰어난 전투 골렘. 륀느의 요격능력 풀가동을 높게 평가!”

그녀의 손을 떠난 백금빛의 섬광이 사방으로 다시 흩어진다.

섬광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그 어떤 생명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날짐승들이 파괴의 힘에 잠식당해 움직이고 있는 꼴이지만 그들 하나하나의 생명을 지키기엔 수가 너무 많았다.

그때였다.

쿠웅!!!

하늘조차 떨릴 정도로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저 멀리서 황금빛의 기둥이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간다.

그 수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륀느의 시야에만 비친 것으로 봐도 수십 개에 해당하는 숫자.

본능적으로 륀느는 저것이 파괴의 힘에 의해 생겨난 것임을 인지했다.

저대로 두면 데이비에게 뭔가 큰일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스릉…….

천칭을 녹여낸 창을 회전시키듯 틀어잡은 그녀가 다시 움직이려는 그 순간.

이전보다 더 많은 날짐승들이 그녀의 전진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빛은 찬란하되 너무도 어둡고 섬뜩한 느낌을 주는 빛의 기둥이다. 저런 게 프리아 여신이나 평온의 신이 된 넬타리드의 힘이라곤 여길 수 없다.

“불길한 에너지를 감지. 빠른 시간내에 해결할 것을 촉구.”

륀느의 날개가 한차례 접혔다가 펼쳐진다.

동시에 허공에서 빛의 기둥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며 새하얀 빛으로 만들어진 인영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전에 한번 나타난 적이 있던 존재들로 바로 그녀와 같은 종족이자, 그녀의 의지로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엘더브레인.

데이비가 붙여준 별명이었지만. 실제로 세피로스에서 륀느의 직급은 엘더브레인과 흡사한 무언가였으니 말이다.

“엘더브레인의 권한으로 명령 하달.”

륀느가 작디작은 주먹을 꼭 쥐며 그녀의 손에서 만들어진 존재이자 종족, 세피로스들을 향해 명령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륀느가 창공에서 싸우고 있을 그 시각.

지상에 숨겨진 곳에서 거대한 붉은 보석과 함께 그 보석 속에 숨은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 * *

콰앙!!! 쾅!!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 없다는 듯 [파괴]와 나는 서로를 쉬지 않고 몰아붙였다.

다만 싸움의 양상이 내 쪽으로 상당히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단순히 독립하고 상대의 힘을 분해하는 이전 금기와 다르게 이번에는 나의 힘을 증폭시키거나 상대의 힘을 변질시키는 짓도 어렵지 않게 해낸다.

금기의 힘은 프리아 여신이 죄를 지으면서 생겨난 붉은 공허의 존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심연이 모든 세상을 상대로 치외법권 같은 규칙을 지니듯.

붉은 공허 또한 비슷한 양상을 지니고 있다는 소리였다.

콰앙!!

순식간에 놈의 검과 초단이가 충돌하고 그 틈을 파고든 내가 주먹에 금기의 힘과 넬타리드의 은총이 담긴 신력을 담아 그의 육신을 후려친다.

본래 금기의 힘은 모든 힘으로부터 피아 구분 없이 독립한다.

그렇기에 본래라면 금기의 업과 신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없는 게 정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넬타리드는 내가 가진 금기의 힘을 잘 인지했고, 신력을 대여하듯 내려주는 게 아닌 완전히 내게 양도시켜서 넘겼다.

실제로 프리아 여신이 내게 남긴 신력조차 완전한 제어권이 없으니 사실상 넬타리드의 신력은 출력만 떨어질 뿐 호환성에선 프리아 여신의 신력 그 이상의 효과를 보였다.

신력과 금기의 시너지는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힘을 발현해냈다.

게다가 이곳에는 애꿎은 피해자가 생길 염려가 전혀 없는 혼돈 그 자체의 공간.

[메테오 스트라이크]

치지지직!!

공간이 찢어지며 이곳에서 만들어진 운석들이 소환되어 고속으로 낙하한다.

벼락이 내리치고 대지를 뒤흔들어 용암을 들끓게 만든다.

이곳에서만큼은 이전과 다르게 광역마법, 파괴마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범위가 비록 도시 하나 국가 하나를 전복시킬 정도로 위험하다 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곳에는 이런 광역마법에 휘말릴 피해자가 없으니 말이다.

쏟아지는 메테오를 피해 내게 접근하던 그를 향해 빠르게 손을 펼쳤다가 웅크리자 손바닥 안에서 빛의 궤적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양손 바닥을 서로 마주 보게 조금 띄워 대량의 마나를 응축시켜 마법을 강화한다.

“커져라. 뚝딱.”

내 말과 동시에 허공에서 추락하듯 내리꽂힌 스태프 초월의 종언이 빛을 발한다.

단순한 매직 미사일이 거대한 미사일이 되어 그를 추적하고 그의 방어를 거침없이 부숴버렸다.

[쿨럭!!]

수차례의 마법 세례를 모두 피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는 실패하고 말았다.

처음엔 잘 피하다가 갑작스레 당황하는 듯하더니 그대로 적중당한 것이다.

피가 아닌 검은 슬라임 같은 것을 토해내며 그가 비틀거리고 물러난다.

파괴는 저 젤리 같은 형태를 이용해 숙주를 집어삼키고 육신을 만들어 내게 맞서고 있다.

놈의 힘이 강해지는 속도가 현재로선 소모되는 속도보다 빠른 탓에 이렇게라도 버티는 것이지 본래라면 진즉에 끝났어야 하리라.

피로 누적.

그의 움직임이 이따금 더뎌지는 이유는 사실 거창한 게 아니었다.

단순히 지치고 피로가 쌓여 몸이 말을 안 듣는 것일 뿐.

제 잘난 신이었기에 이런 것조차 겪어 본 적은 없겠지.

비록 넬타리드가 과거 프리아라는 여인을 마음에 품고 있던 반신이었다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파괴는 그때의 넬타리드가 아니다.

불멸자로썬 느껴 본 적 없는 피로를 필멸자가 되어 느끼게 되니 그가 당황할 수밖에.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필멸자의 몸이라는 건 불멸자였던 존재에게 거추장스럽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런 티끌 같은 요소들이 모여 큰 영향을 끼친다.

명백히 이쪽이 유리하다.

체력의 요건을 생각지 못한 놈의 움직임이 계속될수록 빈틈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치명타가 적중한다.

게다가 이곳 붉은 공허에 들어온 이후부터 이 공간 자체가 그를 적대하듯 모든 요건에서 그를 방해한다.

치명적이다 싶을 정도로 불리한 이 상황에서도 그는 버텨냈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절반 이상 떨어졌음에도 놈은 죽지 않았다.

“기가 막히네 진짜. 꼴에 필멸자 껍데기를 쓴 불멸자도 아니고.”

분명 치명상을 수차례 먹였다.

하지만 놈은 죽지 않았다. 어째서인가. 아직 위계가 떨어진 신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만큼 무리한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놈은 붉은 공허로 끌려왔으면서도 지구와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힘을 회복하고 있다.

아직까진 소모되는 힘보다 회복되는 힘이 크다.

수많은 지구의 인간들이 다 죽어 나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그럴 터.

무슨 이유인지 그는 이곳에 넘어온 뒤로도 지구와 힘을 연결해 그 힘을 끌어내고 있었다.

연결하는 무언가 매개체가 있다는 뜻인데 쉬이 보이지 않는다.

터엉!!!

초단이가 튕겨 나가며 허공을 갈라 바닥에 꽂혔다.

심장을 파괴당할 정도의 공격을 받았으면서도 반격을 개시한 탓에 검을 놓치게 된 나는 멈추지 않고 맨주먹에 권강을 둘러 그를 압박해 나갔다.

“큭?!”

“내가 검을 주로 쓰긴 하지만 다른걸 못 쓰는 게 아닌데.”

콰직!!

튕기듯 쏘아진 발이 놈의 다리를 박살 내며 균형을 뭉갠다. 순식간에 자세가 비틀려 쓰러지는 놈을 깔아뭉개듯 올라타며 손을 뒤로 뻗자 좀 전 내 손을 떠나 날아갔던 초단이가 자석에 이끌리듯 내 손으로 다시 끌려들어 왔다.

푸욱!!!

그리고.

놈의 심장을 겨눈 채 금기의 힘까지 두른 초단이의 검기가 정확히 놈의 심장을 겨눈다.

[어리석은 놈! 심장 따위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마라!]

“좀 전부터 계속해서 이곳만 피하던데 한번 까보면 알겠지!”

처음엔 심장을 제대로 방어하지도 않더니. 이곳에 오고 몇 번의 접전 이후 그는 눈에 띌 정도로 자신의 심장을 보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나는 놈의 심장을 찌르기 위해 초단이를 내리찍고, 그는 검게 변한 자신의 손을 계속해서 재생시키며 초단이의 검을 필사적으로 막아낸다.

금기와 신력을 둘러 권능을 수차례 증폭시킨 초단이를 마냥 무시한다는 건 불가능 할 테니 효과기 없진 않을 것이다.

놈을 깔아뭉갠 채 심장에 검을 역수로 쥐고 내리 찌르고 있는 나와 검은 발톱 같은 손으로 초단이의 날을 잡은 채 필사적으로 버티는 파괴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당황스러움이 묻어나는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이번 공격이 제대로 빙고였던 모양이다.

푸욱!!!

그때였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놈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서렸다.

그도 그럴 것이 검은 기류로 이루어진 검이 언제 다가온 것인지 등 뒤에서부터 나를 찔러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중앙으로 향해있었어도 척추가 반 토막이 날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양손으로 내 검을 잡아 버티면서 검은 검으로 내 몸을 꿰뚫은 그가 스산하게 웃어 보였다.

[나를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이곳의 존재는 놀랍다만 그래 봐야 불안정한 공간일 뿐이다. 네놈은 이곳에서 내게 죽으리라.]

“거 말 많네!”

으직!!!

뼈가 부러지는듯한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더 강한 힘으로 놈을 내리찍어 누르자 그가 계속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렇게 믿는다면 어디 한번 진실을 마주하고 절망하는 것도 흥이 돋겠구나.]

그렇게 말하며 버티던 그의 손에 힘이 점점 빠진다.

그리고, 초단이의 검 끝이 서서히 그의 심장에 파고들었다.

치명상은 분명한데.

마치 놈은 나를 놀리듯 서서히 공격을 허용한다.

대체 어떻게 되 처먹은 몸인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몸을 관통한 검은 검에서 흘러나온 기류를 신력과 금기의 업이 실시간으로 지우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이 검은 기류에 잠식되어 죽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네놈은 절대 나를 죽이지 못한다. 하찮은 피조물이여.]

나를 놀리듯 웃어대는 그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던 나는 초단이의 그립을 다시 말아쥐고는 신성력을 끌어냈다.

지금 부족한 것은 힘이다.

[스트랭스]

이미 버프 마법이 걸려있지만 나는 거기에 대고 복합영창을 사용해 근력강화마법을 추가했다.

[큭?!]

한차례 강해진 힘에 그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스트랭스]

거기에 나는 한 번 더. 근력 강화마법을 건다.

같은 마법을 중첩해서 건다는 건 그 마법의 난이도를 제곱수준으로 올리는 것과 같다.

효율도 좋지 않으면서 난도만 더럽게 높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딘에게 죽도로 괴롭힘을 당하며 단련한 병행 영창의 실력이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스트랭스]

[스트랭스]

[스트랭스]

계속되는 근력 강화 마법에 그의 낯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이!]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내게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이렇게 한들 네놈이 나를 죽일 순 없다!! 지구에 있을 나의 힘의 근원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나는 불멸이다!]

불완전하지만 불멸이라. 이 이기적인 새끼 같으니라고.

그의 외침에 지친 기색을 숨기지 못한 내가 조용히 뇌까렸다.

“망할. 당신이 만들어낸 하위 신조차 필사적으로 일하고 있는데 대체 언제까지 구경만 할 겁니까!”

가장 위대하고.

가장 태초에 존재했으며.

절대적인 이름 그 자체이면서. 결국, 하는 것 없이 빈둥거리기만 하는 망할 여신.

당신이 시련을 내리는 것을 좋아하고, 내게 화가 난 건 알겠는데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아야지!

몸을 관통한 검 때문에 힘이 빠지는 걸 근력 강화마법으로 보충하며 억지로 찔러넣는다.

결국, 검은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아직 지구와 연결된 그의 육신 때문인지 대량의 에너지가 그의 죽음을 막아내고 있었다.

거대한 에너지가 심장을 대신하여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소리였다.

지구와 연락할 수도,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지금 그의 힘의 근원을 찾아 부수지 않은 것이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그가 이곳에 끌려오고도 여유가 가득했던 것은 역시 그것 때문이었나.

내가 다시 티오니스로 돌아가기 위해선 붉은 공허의 문을 완전히 닫을 수 없다.

다만 그 때문인지 계속해서 지구에서 힘을 끌어내는 그가 버티는 것도 마찬가지인 상황.

게다가 그는 내게서 벗어나기 위해 무리할 정도로 힘을 끌어오고 있는 게 피부에 저릿하게 느껴진다.

이대로 가면.

수억은 우스울 정도로 많은 인간이 힘을 빼앗기고 사라지리라.

“당신의 종자이자, 당신의 종, 데이비 올 라운이 간청하옵건대!”

거친 언사를 숨기지 않은 채 내가 경건하고 신실한 마음을 담아 소리쳤다.

“그만 빈둥거리고 일하시죠?!”

화아아아아악!!!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량의 신성력이 퍼져나간다. 동시에 금기의 힘으로 계속해서 증식을 막아내던 검은 검이 삽시간에 가루가 되듯 부서져 내린다.

[태초의 이름으로 허락된 자가 위대한 검을 뽑아 들었음이니. 믿고 기다림에 의하여 그 기적을 하사하리라.]

실로 오랜만에 듣는 프리아 여신의 목소리였다.

차가우면서도 따스하고, 두려우면서도, 친근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대체 무슨 수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의식이 순식간에 날아갈 것 같은 고통을 참은 채 서서히 힘을 가해 초단이를 찔러넣었다.

* * *

“…….”

말없이 눈을 감고 있던 화사한 금발의 소녀가 천천히 눈을 뜬다.

좀 전까지 기적이 그녀의 곁에 머물렀다.

붉은 안개 속에서 검은 존재와 싸우는 데이비는 이곳에 없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 모습이 보였다.

신의 기적은 때때로 참 놀라운 현상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적과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고 있는 마당에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당연할 수밖에. 힘을 잃은 페르세르크가 나설 것인가. 강하지 않은 에이리아가 나설 것인가.

당연히 둘 다 불가능하다.

이곳으로 오기 전 륀느가 놀라운 모습으로 변해 닥치는 대로 빛의 기둥을 파괴하는 것을 보았다. 사실 이것들이 대체 무슨 효과가 있는지 의문스러웠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이것을 부수지 못하면 데이비는 이기지 못한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거대한 심장 같은 붉은 보석을 바라보았다.

기괴한 살점으로 이어 붙여진 보석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고동한다.

[신의 이름으로, 감히 규칙을 어긴 존재를 처벌하리라.]

그 말과 함께 보석을 감싸던 무형의 장막이 일순간 소멸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소녀, 일리나가 한 발 내디뎠다.

“시작하죠. 선조님.”

[신의 은총이 닿았다면 이제 일해야겠지. 회랑의 막내가 이렇게 필사적인데 후원자들이 놀면 쓰나.]

“다른 영웅들은 어떻게 되었는데요?”

[궁금한가?]

그 질문에 일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알랴줌.]

“…….”

고요한 침묵에 희끄무리한 인영이 머리를 긁적였다.

[안 웃겼나?]

“전혀요.”

[후우…….]

권태로움이 묻어나는 남성의 의지가 전해져 온다.

“이걸 부수지 않으면 데이비가 이길 수 없다고?”

그녀가 싸한 표정으로 웃으며 칼디라스의 그립을 말아쥐었다.

“그럼 내가 부수면 되는 거 아냐?!”

화끈하게 소리치며 그녀가 칼디라스를 튕기듯 휘두른다.

서걱!!!

동시에 시원한 절삭음이 울려 퍼졌고 이내 붉은 보석이 거대한 고동을 일으켰다.

두근! 두근! 하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진다.

“아직 좋아한다고, 연모한다고 한마디도 못 전했는데 죽게 둘 거 같아?”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반으로 갈라진 힘의 근원이 완전히 부서져 나간다.

마치 갇혀있던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석 안에서 새빨간 무언가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가기 시작했고 대량의 풍압이 몰아쳤다. 하지만. 변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파괴가 믿던 마기만 한 가지가 부서진 이상.

데이비의 손에 그가 생존할 확률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우니까.

파삭!!

이윽고 마치 먼지가 되어 풍화되듯 부서진 붉은 보석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신의 황혼이 시작됐구나.]

그녀에게 들러 붙어있는 어떠한 의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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