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90화 (789/1,559)

제 790화

[커헉!! 이…… 이놈이!]

대체 무슨 이유인지 지구에서 파괴에게 힘을 전해주던 매개체들이 박살 나기 시작했다.

륀느가 그것들을 전부 처리한 것일까. 아니면 프리아 여신이 나선 것일까.

파괴의 말에 따르면 륀느 혼자선 그것을 모두 해치울 수 없다고 했던가.

생각해보면 간단한 해답이었다.

지구에…… 영웅이 내려와있다.

그리고, 그 영웅이. 넬타리드의 일면인 [파괴]를 버티게 해주던 근원을 파괴했다.

지금까지 나타난 다른 영웅들은 길어야 10초 남짓으로 사라졌었지만 지금 지구에 있는 영웅은 다르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어찌 되었건, 1만 년 동안 이어져 왔으면 내 인생 설계에 지대한 방해를 해온 삼신 중 첫 번째 신이 사라진다.

[크륵…… 크르륵…….]

피가 끓는 소리를 내며 시뻘겋게 변한 섬뜩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놈과 눈을 마주한다.

“가자, 멀리 안 나간다.”

검은 슬라임 같은 파편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요동치며 내 손을 타고 올라오려다가 무형의 힘에 막혀 떨어지고 다시 붙기를 반복했다.

1만 년 동안 이어진 싸움이 아닌가. 고대시대. 신이 되었으나 파괴의 힘에 먹혀 폭주해버린 조화. 넬타리드.

프리아 여신의 황혼을 당당하며 그녀가 쉬는 동안 새로운 세상을 다스렸던 잠과 꿈의 상징이었으나 프리아 여신에게 버려져 극도의 증오와 분노로 인해 뒤틀린 공간, 심연을 만들어낸 타나토스.

마지막으로 태초의 언약이자. 태초 그 자체. 세상을 이루는 절대 법칙인 규칙과 같은 존재인 프리아.

죽이는 것조차 본래 불가능한 신들의 전쟁으로 피조물들이 영향을 받고 싸움을 지속해왔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그 삼신 중 하나가. 완전히 소멸한다.

동시에 내 몸을 찔렀던 새까만 검이 서서히 흩어지며 사라진다.

넬타리드의 일면인 파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영향과 권능. 그 관련된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신의 황혼.

그것을 지금 나는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본래의 인간 육신만 남겨놓은 채 사라지던 그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그를 깔아뭉개고 검을 찔러넣고 있는 내 멱살을 잡아당겼다.

[육신이…… 파괴되는구나. 네 승리다.]

놀랍게도 그는 끝까지 발악하지 않고 저항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하지만 잊지 마라. 내가 추락하기 전 바라본 네놈의 운명에…….]

그가 스산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평온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

[크흐흐흐흐흐 가련한 미물이로구나. 너라고 우리와 다를 줄 알았느냐? 결국, 같은 버림 패인 것을.]

저들과 같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토사구팽.

사냥을 끝마친 개는 솥에 던져진다.

넬타리드도 타나토스도 결국은 프리아 여신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그녀에게 버림받아 이 꼴이 되었으니까.

애초에 넬타리드와 타나토스가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프리아 여신이 모종의 이유로 두 신을 제거하려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프리아는 자신에게 반항하는 나와 타나토스가 사라지면 그 후에 너를 지워버릴 것이다. 크흐흐…… 알고 있지 않으냐. 너를 도와주었던 존재들이 지금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지를.]

그 말에 나는 침묵했다.

천마 독고준,

마신 오딘.

그 외에도 지금 지구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영웅.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영웅들이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들이 하나하나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나를 돕는다는 핑계로.

하지만, 만약에 이 모든 사태가 그녀의 청소작업에 유도된 것이라면…….

[파괴]의 말대로 프리아 여신의 마지막 타깃은 내가 될 터.

다른 피조물은 불가능하지만 나는 프리아 여신이 작정하면 언제든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존재일 수 있다.

실제로 신벌 같은 방식을 통해 나를 한차례 없애려 하지 않았던가.

그것조차 모두 연기라면…… 뭐 할 말은 없으렷다.

그동안 나를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구해준 데스 로드의 저주, 흐름 거부조차 그 사실에 힘을 더해준다.

그러니까, 프리아 여신은 자신을 도울 존재를 만들었고 쓸모를 다해 지우려 했다.

문제는 생의 욕망을 지닌 신이 그것을 거부하고 반항했다는 점.

태초의 신이나 신이 되어버린 존재를 지우기는 쉽지 않았던 탓에 골치가 아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녀는 선택한 것이다.

그들을 지울 가능성을 품었으면서, 후에 언제든지 지워버릴 수 있는 장기 말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렇게 선택된 것이…… 나라는 존재라는 뜻.

“그럴듯하네.”

거의 다 사라진 그를 보며 나는 비웃음을 던졌다.

그가 죽어가면서 짜낸 시나리오치고는 제법 짜임새가 있다.

파괴는 완전히 사라졌고 그의 육신이 되었던 중년 사내만이 시신이 되어 남았다.

천천히 일어나 돌아선 내가 손을 튕기자 작은 불씨가 일어나며 중년 사내의 몸을 불태운다.

신의 마지막치고는 참 조촐하기 그지없지만 무슨 상관인가.

지친 얼굴로 비틀거리며 공허의 공간에서 나가려는 내게 아비트가 빠르게 착지해 내렸다.

“맹주.”

노인의 모습이 되어 내게 다가온 그가 지팡이를 톡톡 바닥에 두드렸다.

그러자 그가 만들어준 모래시계가 사라지며 내 몸에 넘치던 힘이 다시 안정화되기 시작한다.

단순히 내가 가진 스펙을 넘어선 절대적인 힘의 향상.

이곳은 그런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타나토스를 이길 순 있을까. 타나토스도 타나토스인데 그와 하나가 된 이클립스는? 위계를 떨어뜨려 타나토스와 이클립스를 동시에 소멸시키는 게 말처럼 정말 쉽게 될까.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직접 부딪혀보니 진짜 기가 막히네. 이걸 무슨 수로 이겨?”

“맹주…….”

피조물은 신을 죽일 수 없다.

신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신뿐.

그렇기에 위계를 포기한 후에야 파괴를 죽일 수 있었다.

문제는 [파괴]가 고작해야 반쪽짜리라는 점.

타나토스는 완전한 하나라는 점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일은 더욱 험난하다 못해 지금의 준비로는 어림도 없게 된다.

“망할 여신 같으니!”

콰앙!!

손을 거칠게 휘두르자 무형의 공기 충격파가 터져나가며 붉은 안개 일부를 날려버린다.

“아니, 신끼리의 문제면 자기들끼리 처리할 것이지 왜 내게 떠넘기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네.”

타나토스는 엄연히 프리아 여신이 만들어낸 하위 신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마음대로 없앨 수 있을 텐데. 왜 그녀는 타나토스를 죽이지 못하는 것일까.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단순 시련이라고 하기엔 이번 시련은 너무 난도가 높다.

“몸을 생각하십시오.”

아비트의 조언에 나는 몸에 생긴 통증에서부터 아릿한 통증이 몰려옴을 느꼈다.

엔도르핀이 과다 분비되어 이제야 고통이 제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빠르게 신성마법으로 육신을 치료했지만, 부상이 심각한지 회복이 더디다.

“이런. 시간이 되었군요. 어서 나가십시오. 막대한 힘의 충돌로 이 공간이 당신을 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냥 이곳에 집어 삼켜져 이곳의 지배자. 즉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된다면 그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그는 인내를 선택했다.

“아비트.”

“명심하십시오. 만에 하나라도 타나토스가 당신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그땐.

“반드시 선택하셔야 할 겁니다.”

이곳의 신으로서.

제약과 규칙이 없는 이 절대적인 공간의 절대자로서. 살아남고 타나토스를 죽이는 것을.

“절대자가 된다면 당신은 이 붉은 공허에서만큼은 프리아 여신조차 어찌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가 될 겁니다. 그깟 심연의 신 따위가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이 세상은 아직 규칙이 없는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프리아 여신의 세계처럼 규칙과 법칙이 존재하여 신이 간섭을 못 하는 그런 일 또한 벌어지지 않는다.

최적의 상대법이긴 한데…… 한번 소속되면 나는 이 공간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

지금처럼 들락날락하는 것조차.

“나는 영원히 이어지는 야근은 원하지 않아.”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붉은 공허에서 빠져나왔다.

의식이 흐릿하다.

내 육신을 끊임없이 회복시키던 붉은 공허의 에너지에서 벗어나자 그 부상의 여파가 그대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피가 울컥울컥 터져 나오는 걸 지혈하며 천천히 걸어 나간 나는 눈앞에 있는 부서진 거대보석을 올려다 볼 수 있었다.

고요한 폐공장의 중앙에 설치된 보석은 날카로운 무언가로 빠르게 잘려나간 모습이었다.

짧게 숨을 고르며 몸을 빠르게 회복해나가던 나는 부서진 보석 조각을 손에 쥐었다가 놓으며 기둥에 기대어 앉았다.

밤의 달빛만이 비치는 어두운 폐공장의 기둥에 주저앉아있던 내게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생했다. 프리아.

젊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한 번만 더 프리아라고 부르면 당신도 남은 반쪽 꼴이 날 줄 아십쇼.”

넬타리드.

싸움에서 승리한 넬타리드의 반쪽이 내게 모습을 드러냈다.

“신이 이렇게 현신해도 됩니까?”

신이라는 것은 초월적인 개념이다.

이렇게 현신화하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신은 피조물이 죽일 수 없다. 신은 오로지 신이 소멸시키거나 봉인할 수 있지. 하지만 나는 힘이 부족하여 타나토스를 지울 수 없다.

“프리아 여신이 나서면 참 일이 편해질 텐데.”

넬타리드의 험담대로 타나토스도 결국 프리아 여신의 피조물인데. 창조주나 다름없는 프리아 여신은 타나토스를 소멸시키지 못했다.

아니. 안 한 것인지도 모른다.

-프리아 여신이 널 어찌하지 못하게 내가 최대한 지켜주마. 그 전에…… 네 몸을 치료할 이부터 구해야겠구나. 신벌이 내려졌다. 비록 반쪽이라곤 하나 그가 네 몸에 독을 남겼어.

“그래서? 어떻게 후우…… 할겁니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겠지만 1초가 부족한 상황에 그런 건 원치 않는 듯 보였다.

-기적을 보여주지. 좋은 꿈 꾸도록.

그 말과 동시에.

바스락!!! 콰작!!

무언가가 바스락거리는 비밀 소리가 울려 퍼졌고 멍하니 앉아 몸을 회복시키고 있던 내게 누군가가 급히 뛰어오며 소리친다.

[!!]

무어라 외치는 듯한데 청각이 잠시 망가져 있었는지 소리가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해서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내 앞에 나타난 것은 검은 정장을 입은 소녀였다.

멍하니 고개를 든다.

시야가 생각보다 많이 흐릿했다. 눈앞에 있는 게 누구인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런!! 상태가 심각하군!!]

심각하긴 무슨 침 바르고 조금만 기다리면 낫는구먼.

누군지 모를 익숙한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누가 이렇게 호들갑을 피우는지.

[시간이 없다 후손님! 그와 접촉해! 내가 직접 마나를 불어넣을 테니!]

“예? 그러면 선조님도 사라지는 거 아닌가요?!”

[나도 그럴 줄 알았다만 그게 아니었나 보군!]

다급한 남성의 말에 금발의 소녀로 추정되는 이가 나를 빠르게 끌어안는다. 내 전신에 축축하게 묻은 피가 그녀의 검은 정장에 묻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자 시야가 잡히기 시작한다.

나를 끌어안은 건, 이곳에 있을 리 없는 소녀인 일리나였다,

하. 내가 헛것을 보나?

놀라운 것은 그녀의 뒤에 빙의하듯 떠 있는 인물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뒤에 있는 유령 같은 형체는, 페르세르크의 아버지이자 검신이라 불렸으며.

칼디라스의 본래 주인.

검신 하레스.

아. 이거 꿈이구나. 멍하니 속으로 중얼거린 나는 괜스레 장난기가 돋았다.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맺힌 채로 나를 부둥켜안는 그녀와 급히 그녀를 통해 내게 힘을 불어넣는 하레스라.

조합이 말이 되지 않는다.

넬타리드가 내게 기적을 보여준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그것이 꿈이었던 모양이었다.

꿈이라는 소리인데…… 꿈은 어떻게 깨더라.

나는 힘이 빠진 손을 스르륵 움직였다.

그리고는.

우드드득!!

“꺄아아아악!!!??”

늘 그렇듯. 익숙하게 그녀의 전신을 주물러 마사지한다.

그녀에게 늘 해주듯 말이다.

역시 일리나 데 팔란, 꿈에서조차 제법…… 손맛이 살아…….

“이…… 이 자식이 진짜?!”

당황한 그녀가 눈물이 고인 얼굴로 나를 노려본다.

“넌 빈사상태에서도 나만 보면 그것밖에 생각 안 나?! 어?! 오냐 그래! 나도 내 마음대로 할 거다!”

서서히 시야가 돌아오기 시작했고.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주물러 힘을 빼려던 내가 멈칫한다.

그녀가 순식간에 돌진하듯 몸을 끌어안고는 그대로 내게 입을 맞춰왔기 때문이었다.

익숙하지만 생소한 감촉과 동시에.

그녀와 접촉한 입술을 통해 대량의 마나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게 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