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04화 (803/1,559)

제 804화

“증거가 없습니다. 유죄를 입증할 정황은 있으나 증거가 없지요. 거기에 저하를 무죄로 증명할 수단 또한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마나 구속구를 양손에 채운 채로 나는 현장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땅의 기억도 지워졌다. 이건 상위 정령이나 강한 힘으로 지운 게 아니라 흩어버린 거야.’

방식이 다르다. 강제로 지운 힘은 반드시 복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건 정령의 기억을 강제로 흩어버린 것이다.

‘노움.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내 물음에 자연 정령인 노움이 바들바들 떨며 대답을 못 한다.

이에 고개를 까딱이자 내 곁에 소환된 상위 땅의 정령이 강대한 에너지를 뿜기 시작했다.

이에 화들짝 놀란 노움이 벌벌 떨며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이 사라진 게 아니라.

아예 그때 당시의 기억이 없다.

이런 건 단순한 마법으로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역시, 그 냄새와 관련이 있는가.

“저하. 굳이 이곳을 찾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대로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면 저하의 입장이 곤란해지십니다.”

나를 따라온 페일트리스 후작의 말이 들려왔다.

내가 죽였다는 확실한 물증도 없지만, 정황 증거는 있다.

“후작. 나는 이번 일이 단순 우발적 범죄라곤 생각지 않아요.”

“저하.”

“그러니까. 꼬리도 못 자르게 싸그리 쳐낼 겁니다.”

대륙 곳곳을 배경으로 여성들만 납치하는 실종사건.

그리고 이번 사건.

모두가 같은 범인의 소행이다.

범인의 목적은 무엇인가.

잠시 고민하던 나는 기본 원점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대체 범인은 왜 굳이 롱소드에 백작 영식의 피를 묻힌 뒤 단검으로 처참하게 살해했을까.

“그냥 롱소드로 베면 될 텐데 말이지.”

“저하?”

“페르세르크. 네가 생각하기엔 어때.”

“롱소드가 아닌 그 망고슈 형 단검이 아니면 원하는 결과를 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겠지.”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였다.

롱소드로 무기를 위장했으나. 실질적으로 영식을 죽인 건 짧은 단검이다.

“왕자비 저하? 그게 무슨…….”

“단검에 특수한 힘이 서린 케이스일 터. 왕궁에는 특수한 마나 파장과 혈향 같은 것들을 감지할 수 있는 마도구가 널리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혈향이 그렇게 한순간에 퍼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인 게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혈향이 억눌려있었다는 점. 그리고, 데이비가 맡았다는 특수한 냄새. 정령의 기운까지 모조리 지운 것까지.”

그것을 생각하면 답은 훤한 일이다.

“그…… 그럼 이번 사건의 열쇠는 그 흉기에 있다는 뜻입니까?”

페일트리스 후작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돌렸다.

“데이비.”

“…….”

“본녀는 본녀 나름대로 조사해볼 터이니…… 너무 걱정 말아.”

“몸조심해. 페르세르크.”

담담하게 대답하며 사라지는 그녀를 본 페일트리스 후작이 의아하게 나를 본다.

“저하?”

“지금부터 잡아서 한번 물어보면 되겠지.”

담담하게 말하며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걷어차 날렸다.

콰앙!!!

묵직한 소리와 함께 충격파를 일으킨 돌멩이가 커다란 나무를 파괴하기가 무섭게 그 뒤편에 숨어있던 누군가가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 저자는?!”

“일단 잡고 시작합시다.”

“예?! 예!”

“보통 살인자 새끼들은 자기가 죽인 범행현장에 다시 나타나는 법이지요.”

그게 아니라도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냥 놓치면 쓰나.

내 말에 페일트리스 후작은 전신에 기운을 폭사하며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도망치는 괴한을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아공간을 가볍게 열어 무언가를 꺼낸 뒤 가볍게 그들을 뒤 따르기 시작했다.

마나 구속구?

잘 쳐 줘봐야 7서클까지 밖에 봉인하지 못하는 그거…… 혹시 먹는 건가?

* * *

파스스스스!!!

“허억…… 허억!”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이가 뒤를 돌아본다.

“이놈!!! 게 섯거라! 감히 지엄하신 폐하께서 계신 이 궁에서 살인 사건을 일으키고도 다시 현장에 나타나다니 뻔뻔하기 그지없구나!”

필사적으로 도망쳐보지만, 소드마스터인 페일트리스 후작을 쫓기엔 무리가 있었다.

쒜에에엑!! 빠아아악!!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온 페일트리스 후작의 발차기가 그의 몸을 후려친다.

동시에 몇 차례나 튕겨 나간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쿨럭! 쿨럭쿨럭!”

“이놈!”

그리고 그를 순식간에 제압한 페일트리스 후작이 검을 빼 들려는 그 순간이었다.

“흡?!”

몸을 웅크리고 있던 사내가 다급히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페일트리스 후작을 향해 검을 내찔렀다.

짧은 망고슈 형태의 단검.

그 검의 존재에 페일트리스 후작이 검을 쳐내려던 그 순간이었다.

투웅!

정체불명의 파장이 페일트리스 후작이 가진 검의 오러를 흩어버린 것이다.

빠악!!

물론 소드마스터라는 게 어디 노름으로 따지는 것이던가.

오러가 흩어진다고 그의 실력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순식간에 사내를 걷어차 제압시킨 페일트리스 후작은 그의 손에서 단검을 떨어뜨린 후 목에 다시 검을 겨누었다.

“네놈, 정체를 밝혀라.”

그렇게 말하며 복면을 쓴 사내의 복면을 거칠게 벗겨낸 그 순간이었다.

페일트리스 후작의 눈이 부릅 뜨여진다.

“베…… 베트소프 자작?! 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굴란 백작과 같은 중앙 정계 귀족. 사실상 데이비라는 인간과 어떤 일면식도 없는 그저 시대에 흐름을 맡기고 국왕파로써 자리하고 있던 평범한 귀족이다.

그가 대체 왜 이곳에 있는가.

멍하니 그를 향해 물어보지만, 베트소프 자작은 흉흉한 시선으로 그를 노려볼 뿐이다.

이에 뭔가 심상찮음을 깨달은 그가 자작을 제압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파스스스…….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살기가 쏟아지며 일순간에 페일트리스 후작을 향해 단검들이 날아온다.

급히 그것들을 쳐낸 그였지만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것처럼 나타난 검은 무복의 사내들이 후작을 포위하며 나타나 그를 밀어내고 자작을 보호하듯 빼낸 것이다.

“감히…… 암살자 따위가 여기가 어디라고!!”

“그를 죽여라.”

“오냐 이놈들!! 감히 폐하께서 계신 궁에 당당하게 나타나고도 내게 검을 겨누는 그 오만한 작태를 직접 단죄해주마!”

그에 격분한 페일트리스 후작이 오러 블레이드를 피워올린다.

오러를 내뿜는 암살자들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

당연한 이치였다.

이윽고 페일트리스 후작이 마치 날랜 호랑이처럼 파고들며 그들을 하나둘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접전에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피가 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암살자들은 순식간에 차륜전을 펼치듯 후작을 압박해왔지만, 실질적으로 부질없는 저항에 가까웠다.

순식간에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그들을 베어내기 시작한 후작의 움직임은 하나의 날랜 호랑이와 같았고, 그의 검은 범의 발톱처럼 날카롭고 빨랐다.

눈부신 검강이 사방에 흩뿌려지며 시체들이 하나둘 쓰러진다.

후작은 거침없이 그들의 사이로 파고들어 검을 휘둘렀고 마치 곡예를 하듯 암살자들의 숨통을 끊어냈다.

그야말로 순식간의 제압.

그 끝에 후작을 향해 단검을 찔러넣은 암살자의 칼을 지나쳐 팔목을 강하게 후려친 그는 암살자가 놓친 단검을 빠르게 회수한 뒤 그대로 집어 던졌다.

푸욱!!!

그 단검이 날아간 곳은 도망치던 자작의 다리였다.

“끄륵!”

기괴한 비명과 함께 비틀거리는 그를 보며 왕국의 소드마스터, 페일트리스 후작이 짧게 숨을 고른다.

“후우…… 나이를 많이 먹은 게지.”

오러를 피워올리는 상위 암살자들을 상대로 이렇게 일방적인 도살을 펼쳤음에도 그는 자신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사방은 십수 명의 암살자들의 시체로 가득했고 다리에 피를 흘리며 기어가는 자작만이 살아남았다.

그는 죽어선 곤란하다.

그렇기에 그를 생포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흡?!”

오싹한 기분에 고개를 돌린 그가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경악한 듯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방금 하나같이 급소를 베어 죽인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그를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은 이들이었기에 경계를 하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검을 뻗어 암살자의 심장을 관통한 그가 다시 검을 뽑아내려는 그 순간이었다.

콱!!

“무…… 무슨?!”

심장을 꿰뚫린 자가 양손으로 그의 검을 꽉 틀어쥐고 그의 움직임을 제약한다.

그리고, 나머지도 그의 목숨을 공격하기 위해 덤벼들었다.

순식간에 페일트리스 후작의 눈을 찌르려는 검이 다가온다.

언데드도 아닌데 심장을 뚫리고 인간이 살아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현실로 일어났고 그렇기에 후작을 당황케 만든다.

쩌엉!!!!

물론 눈을 찌르려던 암살자의 독특한 단검이 페일트리스 후작을 헤치진 못했다.

정말 아무런 기척도 없이 지근거리까지 다가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 데이비가 그대로 한쪽 발을 이용해 후작을 공격하던 이를 발로 까듯 밀어버린 것이다.

“저, 저하!”

“비키세요.”

담담한 중얼거림과 함께 데이비의 손이 허공으로 뻗어졌고 공간이 깨지며 그 안에서 평범한 검이 끌려 나왔다.

“홍단이 청단이를 못쓰니 좀 답답하네.”

아비트의 드래곤 하트로 개조를 하려다 보니 두 아이의 힘을 현재 봉인해둔 게 문제였다.

물론 두 아이가 없어도 결과는 변치 않는다.

끼기기긱!!

서걱!! 촤악!!

피가 튀는 치명상에도 그들이 일어난다.

끼기기긱…….

기이한 소리와 함께 데이비는 마치 혼자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것처럼 부드럽고 아주 느릿느릿 암살자들 사이를 파고들며 닥치는 대로 그들을 유린하고 베어버렸다.

급기야 관절기를 걸어 들어오는 암살자들의 공격을 그대로 흘리듯 역이용하여 발로 짓밟아버린 뒤 역으로 목을 꺾어버렸다.

치명상으로 베어 죽였음에도 다시 일어난 암살자들이 데이비를 향해 검을 들이민다.

하지만.

암살자의 목을 꺾은 뒤 가만히 그 시신을 내려다보던 데이비는 마치 바닥에서 실타래를 끌러 잡아당기듯 팔 한쪽을 천천히 뒤로 당길 뿐이었다.

끼기기긱!!! 티잉!!!

짧은 단검이 데이비의 머리 바로 지근거리에서 강제로 무언가에 의해 멈춰진다.

공격을 멈춘다? 어째서?

이해할 수 없지만, 데이비를 공격하던 암살자들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굳어있었다.

데이비 또한 그들을 보지도 않은 채 느긋하게 대처할 뿐이다.

끼기긱…… 끼긱…….

기이한 소리에 페일트리스 후작이 움직이려던 그 순간.

그의 뺨에 무언가가 걸렸다.

은빛을 빛내며 기존의 빛을 반사해 거의 보이지 않는 단단한 무언가가 보인다.

“미스릴…… 강사?!”

그리고, 페일트리스 후작은 마나 구속구까지 찬 이 괴물 같은 힘을 지닌 존재인 성자, 데이비 왕자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수십 가닥의 잘 보이지도 않은 은사.

수십 가닥의 실이 주변을 완전히 장악하며 닥치는 대로 암살자들의 팔과 다리, 목을 포박해버린 것이다.

끼기기긱!! 마치 물 흐르듯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적을 베어 넘기면서도 마법을 쓰지 않고 적을 쉽게 제압하기 위해 은사를 펼쳤다?

마나 구속구를 차고?

페일트리스 후작에게 저런 기행이 가능한가 물어본다면 단연코 불가능하다 대답하리라.

아니 그뿐만 아니라 단순히 그 어떤 소드마스터도 마나를 쓰지 않고 이 같은 일을 벌이는 게 쉬울 리 없다.

식은땀이 흐른다. 소드마스터로써 살아온 그였지만 데이비의 무력은 그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독보적이었고 이질적이면서, 현란하고, 무시무시했다.

“다친 곳은 없습니까?”

“저…… 저하…… 어, 어찌하여…….”

“상황이 좀 웃기게 돌아가서 부득이하게 나섰습니다. 언데드도 아닌 새끼들이 언데드 흉내나 낼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는 움직이려 애쓰는 그들을 더욱 강하게 포박하며 팔을 잡아당겼다.

푸확!!!

그러자 강사의 힘을 이기지 못한 암살자들의 몸에서 피가 튀기 시작했다.

검술실력도 경악스러울 정도인데 암살자들조차 반응 못 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은사를 걸어 두었다. 조금만 잘못해도 사지가 잘려나갈 정도로 예리한 실들이었다.

“이…… 이놈들이 대체 왜…….”

“여기 이 인간을 죽이러 온 것이겠죠.”

그 말과 함께 나는 자작의 몸을 붙잡았다.

역시나. 내가 먹어치운 힘이 그의 몸 안에서 느껴진다.

다만 그의 상태는 꽤 불안정해 보였기에 나는 내가 먹어치운 힘을 서서히 사용하기 시작했다.

최면 같은 힘이다.

독특한 냄새가 퍼져나가며 그 냄새에 노출된 자작의 몸이 파르르 떨린다.

그러더니 이내 눈을 부릅뜨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아!! 으아아아!!!”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행동에 놀란 페일트리스 후작이 그를 급히 진정시키려 결국 그는 쓰러져 사망해버렸다.

유일한 단서 중 하나가 이렇게 죽어버린 것이다.

“이런!”

당황한 그가 낭패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의 사체에 손을 뻗어 사령 마나를 끌어냈다.

화아아악!!!

영혼을 다루는 흑마법이 그의 영혼을 잠식한다.

동시에 육신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내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전능하신…… 나를 구원하시고……앞으로의 나아갈 길에…….”

마치 홀린 것처럼 계속해서 정체 모를 말을 내뱉는 영혼을 강제로 틀어잡은 내가 그와 눈을 마주친다.

무슨 힘이든 간에 감히 영혼 자체를 바꿀 순 없다.

[임퍼펙션 데스 로드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망자는 군주의 부름에 응하라.]

내 목소리에 그의 육신이 크게 흔들렸다.

[망자는 군주의 부름에 응하라.]

다시 한차례 내 언령이 퍼져나간다.

그러자 계속해서 중얼거리던 그가 중얼거림을 멈추며 공허해진 얼굴로 나를 보기 시작했다.

두 차례의 영혼 잠식 끝에 그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그의 영혼을 향해 물었다.

“굴란 백작 영식을 죽인 게 자작인가?”

-제가…… 제가, 피, 피 냄새…… 피 냄새…….

기계적인 어조다. 임퍼펙션 데스 로드의 경지에 이른 언령이 강제로 대답하게 만들 뿐 그의 영혼은 이미 절반 이상 망가져 있었다.

“세상에, 저하. 이게 무슨……”

비록 영체이지만 사령 마나로 현신화 시킨 덕인지 페일트리스 후작도 그것을 지켜보았다.

“저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되긴요. 죽은 혼이 성불하기 전에 잠시 봉인한 겁니다.”

다른 말로 하이잭이라고 했던가.

내 말에 그가 복잡한 심경으로 자작의 영혼을 바라본다.

-내, 냄새…… 냄새 독특한 냄새가…… 난 것 말고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이한 냄새? 역시 내가 맡은 그 냄새가 분명할 것이다.

-그 이후의 기억이…… 없어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기억나는 부분만 말해봐.”

-숲에서…… 숲에서, 굴란 백작 영식을 기다렸다가…… 목소리가 시켰…… 으윽?!

“차근차근 말해봐.”

-그를 죽여라. 그를, 그를 죽여라. 그를. 그를. 그를…….

그의 목소리에 내 인상이 찌푸려졌다.

“누가. 어떤 놈이 자작에게 영식을 죽이라 했나.”

내 외침에 한참 동안 삐걱거리며 중얼거리던 그가 멈췄다.

그리고는 기이한 각도로 목을 꺾으며 나를 바라본다.

-사…… 살리반…… 황태자…….

“사…… 살리반 황태자라니! 팔란 제국이 연관되어있었단 말인가!”

경악하는 페일트리스 후작의 모습을 보면 확실히 놀랄 일이긴 하다.

팔란 황태자가 라운 왕국의 귀족을 매수해 나를 함정에 빠뜨린다는 건 제법 큰 문제였으니까.

-살리반…… 황태자의 목소리…… 자기를 살리반 황태자라 칭한 목소리…… 숲속에서 영식을 기다리고 있다가 나타나면 준비해둔 단검으로 그를 찌르고…… 무기를 숨기기 위해…… 롱소드로 위장을…….

“위장을? 조금만 조사해봐도 단검이 범행도구라는 건 알 수 있을 텐데요.”

“저 암살자들과 다르게 자작의 상태는 조금 불안정하니까요. 아마 이 일을 꾸민 놈의 예상과 다르게 변수가 작용한 걸 겁니다.”

본래 흉기가 롱소드인 것처럼 완벽하게 위장해야 하는데.

자작의 상태가 생각 이상으로 불안정하다.

그래서 그는 정체 모를 강박증세로 꼬리를 남겼다. 이후 우리는 그 꼬리를 밟은 것이고.

살리반 황태자라…….

나는 말 없이 자작의 영혼을 바라보았다.

“가서 항의해야 합니다! 살리반 황태자에게 정식으로 이 일에 대해 추궁하고!”

“이것 봐라. 재밌는 짓을 해놨네.”

이중트랩이다.

내 싸늘한 중얼거림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저…… 저하? 자작은 분명히 이 일의 범인이나 그는 본디 어질고 청렴한 성정의 사내였습니다!”

“그러니까 이용당했겠지요."

스스스슷…….

동시에 내 손으로 기이한 힘이 모여든다.

마나와는 다른 힘이며, 지금 이 사태를 만들어낸 힘이기도 하다.

아직 이 힘에 대해 전부 분석하진 못했지만. 이 힘에 영향을 받는다는 건 알 것 같았다.

나는 닥치는 대로 그의 영혼에 남아있던 이 정체불명의 힘을 먹어치워 동화시키기 시작했고, 이내 그 통제권을 얻기가 무섭게 그것을 모조리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 그으으으으으으!!! 그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소리.

그는 힘에 노출되었으나 상당히 불안정하게 노출된 탓에 틈이 있었다.

그 틈을 나는 놓치지 않았고 그대로 그것을 모조리 빨아들이자 검게 뒤틀린 그의 영혼이 점차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쿵!!

그리고 그렇게 정체불명의 힘의 잠식에서 빠져나온 그의 영혼이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쓰러져 나를 올려다본다.

-으…… 으으…….

고통을 호소하는 영혼의 몸에는 이제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자작.”

-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임퍼펙션 데스 로드의 명령권으로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은 그의 이성이 정말로 기억을 못한다는 점이다.

이에 나는 조금 강수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자작. 여기서 자작을 해칠 사람은 없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떠올려봐.”

마치 세뇌하듯 내가 속삭이며 물었다.

-이상한…… 노랫소리. 딸아이의 방으로 가던 중…… 이상한 냄새가 나고……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아요…… 어떻게…… 어떻게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순종적으로 답하는 그의 말에 페일트리스 후작이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노랫소리라니. 이건 또 무슨…….”

“내가 맡은 냄새와 노랫소리. 전부 같은 놈 소행입니다. 후작.”

“저하? 그것을 어찌…….”

“빛의 용사 레이나가 직접 찾아와서 알려주더군요.”

내 말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가 침묵했다.

“자작. 분한가?”

-…….

그는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제…… 딸아이…… 딸아이는…….

“확인해보지 않으면 몰라. 확인해보지.”

그렇게 말한 나는 은사에 의해 포박된 암살자들을 향해 마나를 퍼뜨렸고 그들을 강제로 재워버렸다.

마치 잠이라는 게 없다는 듯 버티던 암살자들이었지만 지속된 마법에 노출되자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고 이네 완전히 잠든 듯 침묵한다.

피슝!!!!

이윽고 아공간을 뒤적거리다 하인스 영지산 폭죽을 꺼내 하늘로 쏘아 보낸 뒤 종이를 꺼내 글귀를 남긴다.

-이놈들 전부 마나 구속구 채우고 가둬라.

간단한 명령이었다.

“직접 찾아가 보지. 자작의 저택으로.”

“저하?! 지금 궁을 나가시면 저하의 결백을 증명하기 힘들어집니다!”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담담하게 말하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제가 인솔하겠습니다. 그리하면 법정에서도 함부로 언급하진 못하겠지요.”

“그렇게 해주세요.”

자작의 저택은 수도의 귀족가 외곽에 위치해있다.

영혼의 힘을 빌려 자작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 나는 기이할 정도로 싸늘함만을 느낄 수 있었다.

중앙 귀족은 자작이라도 사용인이 많다.

하지만 지금 이 저택엔 아무런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사용인조차 없다라…….”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나를 두고 자작의 혼이 나를 떠나기 시작했다.

-저곳…… 저곳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딸아이의 방으로 향했다.

물론, 딸아이의 방에는 어떤 흔적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이다.

“기억나는 게 있나?”

내 물음에 그는 조용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딸아이의 작은 인형을 만지려 한다. 하지만 영체만 남은 그의 혼은 딸아이의 인형을 만지지 못했다.

-아…… 아아아…… 아아아아!!

그 사실이 괴로웠던 것일까. 그의 영혼은 극도로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괴로워하며 절규하는 그 모습에 나는 그의 영혼을 붙잡고 물었다.

“자작. 자작은 죽었다.”

-…… 저하……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 딸아이…… 제 딸아이는…….

“그대의 영혼을 내게 맡길 수 있나?”

-저하…….

“그대가 만약 억울한 죽임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조종당한 것이라면.”

-…….

“내가 반드시 그 기억을 찾아 범인을 색출해주겠다. 그 후에 똑같은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약속하마.”

내 말에 자작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와 딸아이의 인형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하…… 부디…… 제 딸아이를 찾아주십시오. 제발…… 제발!

그 말과 함께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그의 영혼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우선은 흑마법 계통의 기억 흡수를…….

-안돼…… 그걸 쓰지 마…….

마치 사령 마나가 속삭이듯 말한다.

더 좋은 게 있으니 그걸 쓰라는 듯. 아주 조용히, 매혹적으로 속삭여왔다.

-할 수 있어…… 넌 이제 할 수 있어. 완벽한 데스 로드의 그것을.

내 손에 평소와 다른 방식의 사령 마나가 모여든다. 간섭을 불허하는 절대적인 탄성을 지닌 힘.

데스 로드의 고유 흑마법은 내가 사용할 수 없는데.

어째서일까.

포식의 특성으로 먹어치운 이 정체불명의 냄새를 풍기는 힘과 뒤섞인 이후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윽고 내 손끝을 타고 그의 기억이 내게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는 준비해둔 영상석을 이용해 그의 기억을 복사해 영상석에 담아낸다.

범인이 남긴 이 특수한 특질능력.

오감을 자극하는 특수한 힘.

그것이 어떤 연유로 사령 마나에 적용되고. 내가 사용할 수 없던 절대적인 데스 로드의 영역까지 발을 들이밀 기회를 만들었다.

대체 그 오감을 다루는 힘과 데스 로드의 힘이 무슨 연관인지는 모르나, 적어도 톱니가 맞으니 맞아들어가서 변화한 것이겠지.

무엇이 되었건.

이제. 작정하면 나 또한 그녀의 마법을 구현할 수 있다는 건 제법 큰 수확이다.

점점. 타나토스를 해치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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