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6화
페르세르크의 목소리에 모두가 다시 침묵했다.
“다친 곳은 없어?”
담담하게 물어보자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는 본녀를 좀 더 믿을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네가 발 구르기로 행성을 쪼개는 강자라 해도 걱정할 수밖에.”
-…….
내 말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미안해. 다음부턴 좀 더 자세히 알려줄 터이니 걱정 말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분노가 서린 것을 확인한 나는 슬금슬금 기어 도망가던 네토 라 리리 공작을 향해 아공간에서 꺼낸 단검을 던졌다.
“커헉!!”
순식간에 날아간 단검은 그의 다리를 꿰뚫으며 바닥에 처박혔고 그는 핏발이 선 눈으로 이를 악문 채 비명 하나 지르지 않고 그 자리에 멈췄다.
“어딜 도망가.”
“저…… 저자를 포박하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페일트리스 후작의 외침에 병사들이 그를 향해 접근하고 부상을 입고 이를 악물고 있는 그를 제압했다.
“어떻게…… 분명 마나의 운용을 방해하는 약을 먹였을 텐데…….”
그는 페르세르크가 멀쩡한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는 듯 보였다.
확실히 페르세르크는 심연의 권능을 잃어버렸고 일리나의 힘의 근원은 마나에 속한다.
에이리아 또한 정령 마나를 소량 가지고 있지만,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는 그런 극약들은 정령사에게도 치명적이다.
그는 재판에 오기 전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해 페르세르크와 일리나. 거기에 에이리아까지 불러들여 그녀들에게 약을 먹이고 제압해두었다는 사실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어이, 사이코패스.”
담담하게 말하며 그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린 내가 싸늘하게 웃어 보였다.
“내가 좀 걱정이 많은 인간이거든.”
“…….”
“만약 정말로 페르세르크의 몸에 문제가 있었다면, 넌 여기 재판에 오지도 못했을 거다.”
“크…….”
쾅!!
그를 집어 던져버린 나는 그의 몸에 혈도를 봉했다.
특질능력자들은 영혼의 힘으로 특수한 힘을 낸다.
하지만 그 힘을 내는 과정엔 반드시 육신에 힘이 흐르게 해야 했다.
일차적으로 나는 그것을 점혈로 봉한 뒤 그의 입을 한 손으로 콱 틀어쥐듯 잡아채고 서늘한 시선을 보냈다.
“고맙다곤 해두마.”
덕분에, 사령 마법의 사용범위가 극도로 넓어졌으니.
그리고.
한 가지 더.
스르르륵…….
“끄윽?! 큭! 끄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놈이 핏발이 선 눈을 부릅뜬 채 바닥에 쓰러져 부들부들 떨었다.
“감옥에 가둬놓으세요.”
“저하, 군사를 준비시킬까요.”
“나중에 따로 신호를 보낼 테니 뒤에 합류하세요.”
그 말과 함께 법정 밖으로 걸어 나간다.
“데이비 왕자! 나도 가겠습니다.”
살리반은 제 동생이 걱정되어 참을 수가 없는지 내게 합류를 요청해왔다.
“그냥 여기서 기다리시죠?”
“데이비 왕자.”
“황태자의 동생, 황태자께서 생각하는 것만큼 보호만 받는 존재는 아닙니다.”
작정하고 전력을 끌어내면 현재 대륙에서 그녀를 제압할 수 있는 건 나를 제외하곤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전력의 수준을 넘어서 그녀가 가진 시공격검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힘이니까.
* * *
터엉!!!
포탄처럼 날아든 붉은 섬광이 무기를 쥐고 빠르게 접근하는 검은 기사들을 조각내버렸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싸늘한 얼굴로 막아서는 적들을 조각내는 린디스 제국의 대공, 불여우 카트린느 카라벨라의 손속에는 자비라는 게 없었다.
맨손으로 철문을 우그러뜨리고 검을 쥐어 부숴버린다.
척 봐도 단단히 분노했다는 것을 알 만큼 그녀의 투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내가 현재 와있는 곳은 페르세르크와 같이 끼고 있는 반지를 통해 이어진 길을 따라 도착한 수도 외곽에 위치한 작은 별장이었다.
물론 별장이라 해도 어지간한 귀족가의 저택보다 거대한 것이 현실이지만 말이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내게 따라붙은 카트린느는 별장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검은 무복의 사내들과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을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수십 명의 방어자가 있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 남은 것은 조각나버린 이들과 일어나지 못한 채 침묵하는 적들이 전부였다.
“개자식들이…….”
전신에 화염 같은 투기를 일으키며 으르렁거리던 그녀가 별장의 거대한 문을 한차례 두들겼다.
투웅!!!
하지만 놀랍게도 거대한 별장의 입구는 그녀의 공격을 버텨냈다.
“이것 봐라? 마법 장막?”
그녀는 자신의 공격이 막혔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차갑게 웃으며 다시 재차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마법 장막 처리가 된 문은 몇 차례고 그녀의 공격을 버텨낸다.
이에 열이 받은 것일까.
싸늘할 정도로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 그녀가 발을 들어 보임과 동시에 내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비켜봐요.”
발차기로 완전히 문을 박살 내버리려 드는 그녀의 행동을 저지한 채 내가 나선다.
콰드득!!! 쿠르르릉!!!
동시에 주먹으로 강대한 힘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파고든 주먹이 단단한 마법 장막으로 가려진 문을 박살 내버렸다.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
“풉.”
“와…… 진짜 얄밉네요.”
나를 향해 그녀가 질렸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굳이 대꾸하지는 않았다.
천천히 내부로 걸어 들어간 나는 곧 예상과는 다르게 깔끔한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리나의 성격상 날뛰었다면 멀쩡한 곳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녀들이 있는 곳은 이 건물 자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왕자!”
그때 카트린느의 큰 외침이 들려오며 어둠 속에서 검은 무복을 입은 이들이 순식간에 나를 공격해 들어왔다.
메이드 인 하인스 영지 제품인 결계 검을 빠르게 찔러넣는 그들의 행동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티잉!!!!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허공에서 그들을 잡아채는 무언가에 의해 그대로 묶여버린 탓이다.
“무슨…… 강사?!”
놀란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빛을 반사하는 강사가 사방에 펼쳐져 그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다.
“저런 건 또 언제 설치하신 거예요?”
“좀 전에 설치했습니다.”
나는 은사가 묶인 비도를 하나 손에 쥐고 가볍게 돌리며 보여주었다.
“세상에…… 던지는 것도 못 봤는데…… 그런데 왜 죽이지 않는데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그들의 복면을 벗기면서 드러났다.
“어린애?”
놀랍게도 복면이 벗겨진 이의 정체는 아직 어려 보이는 소녀였다.
“키가 작고 근육량이 적어서 이상하다곤 생각했는데.”
아직 소녀다.
하지만 아이는 공허한 얼굴로 나를 향해 끝없이 공격을 시도했다.
“우웁…… 그럼 방금 내가 죽인 것들도.”
“전부는 아니지만, 다수는 그렇겠지요.”
“리리 공작 이 개x…….”
용사 레이나는 분명 특질능력인 오감조작의 흔적이 있었던 곳에서 여성과 여아들이 실종된다고 말했었다.
아마 그 희생자가 아닐까.
입구를 포함한 저택 전체는 기본적으로 고요한 분위기였지만 단 한 장소. 리리 공작의 집무실만큼은 난장판이라도 표현해도 좋을 법했다.
한쪽에 놓인 침대에는 누군가를 구속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듯한 여러 구속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침대를 기준으로 수많은 이들이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일리나 이 무식한 년. 얼마나 때려 부순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왕자께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죠.”
집무실의 안쪽엔 내부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존재했다.
그곳으로 들어가니 본격적으로 흔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작정하고 부순듯한 흔적들이 가득하다.
처참하게 널브러진 검은 무복을 입은 남녀들이 사방에 쓰러져 있다.
그렇게 한참 안쪽으로 들어가자 어둠 속에서 순식간에 은빛의 섬광이 날아들었다.
카앙!!!!
“윽?!”
반사적으로 카트린느 대공이 앞으로 나서 금속 아대로 공격을 쳐냈지만…….
카트린느 대공의 표정이 찌푸려진다.
“어? 불여우 대공? 당신이 어떻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일리나였다.
그녀는 손에 쥔 칼디라스를 거두며 놀란 듯 달려왔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데이비였구나…… 미안해요. 대공. 방금 전 기감을 엉망으로 만드는 무기를 지닌 놈들이 나타나서.”
“황녀님…… 큰일 날뻔했잖아요.”
“미…… 미안해요! 화가 나서 닥치는 대로 부수다 보니…….”
어쩔 줄 몰라하는 일리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딱히 어디 다친 구석은 없어 보였다.
“괜찮아?”
카트린느 대공의 팔에 회복마법을 붙여주며 묻자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 어서 와봐!”
대체 이곳에서 뭘 발견했기에.
“저는 괜찮으니 어서 가보죠. 왕자님.”
“미안해요. 대공.”
“괜찮아요. 상황이 이러면 이해해야지요.”
담담하게 넘기며 일리나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실험실이 드러났다.
한쪽에는 잠든 에이리아가 보였고 또 한쪽에는 서류들을 읽어내리고 있는 페르세르크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세상에. 이런 개자식이…….”
실험실 전체에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다.
“도살장이라…….”
도살장? 혹은 거대한 생체 실험장.
뭐가 되었건 실험실 곳곳에 매달린 쇠사슬에 꿰인 채 늘어져 있는 수많은 소녀들이 보였다.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늘어져 있는 소녀들의 모습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피가 덕지덕지 묻은 건 애교 수준이었다.
“인간을 대체 어떻게…….”
“오감조작. 오감을 조작하여 영혼과 육신에 새로운 명령과 변화를 주고 약물을 투여해 육신을 변화시키고 영혼을 개조한다.”
이윽고 페르세르크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사람을 멋대로 개조해왔어.”
단순한 약물로 인한 개조가 아니었다.
인간의 근본까지 건드려 금기나 다름없는 인체연성을 한 꼴이다.
“페르세르크. 네가 말한 게 이거야?”
“여기 말고도 더 있어. 데이비. 이자의 실험일지야.”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작은 노트를 하나 건넸다.
빽빽하게 쓰인 글귀에는 대략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발디스력 xxx년 xx, xx
펠리스티 공국 쪽에서 수급해온 실험체 3구 확보. 세쌍둥이로 보인다. 같은 환경에서 자라 셋 모두가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음.
각기 다른 극한의 상황에 내몰아 영혼의 상태를 고조시킨 후 약물과 힘을 투여하여 극한으로 감정을 증폭시키자 놀랍게도 육체와 영혼이 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도한 부작용으로 인해 모두 신체 부위가 예측범위를 벗어나 변이함. 실험 실패.]
[-발디스력 xxx년 xx, xx
몰락한 귀족가의 자제를 확보했다.
고결한 성품을 지니고 있기에 부하들을 시켜 정조를 빼앗고 며칠 정도 성적 학대를 가함.
정신이 붕괴되면서 막대한 감정에너지를 감지하여 그것을 증폭.
극도의 두려움과 분노 증오로 인해 막대한 영혼 에너지가 육신을 지배. 피부색이 변하고 근육조직이 변함.
상당히 잔혹하고 괴악한 존재로 재변이. 이에 따라 고결한 여인을 망가뜨릴수록 그 강화 정도가 높아지는 것을 확인.]
끔찍한 꼴을 당하면서 느꼈을 끔찍한 수치심과 두려움을 증폭시켜 영혼에 영향을 주고 그 영혼이 육신에 변화를 주는걸 연구했다고 한다.
실험실에 있는 시체들은 하나같이 본래 인간의 모습을 벗어난 무언가였다.
어떤 시체는 변화 후에 해부를 당했는지 흉부가 반으로 갈라져 훤히 열려 있었고, 어떤 이는 다리 하나가 잘려나갔는지 끔찍한 형태로 뭉개져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실험한 것인가.
일루미나티 그 미친 사이코패스 집단도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이놈도 보통 수준이 아니다.
말없이 실험일지를 노려보던 내가 고개를 들었다.
단단히 화가 난 시선으로 노트를 노려보는 페르세르크를 보며 물었다.
“다친 곳은? 에이리아는 왜 기절한 거야.”
“약에 완전히 버텨내진 못했던 모양인 게야. 지쳐있는 상태에서 여기 이 참혹한 꼴을 봤으니…….”
아직 여린 소녀가 보기엔 너무 참혹한 광경이다.
“다행이다. 혹시라도 잘못된 줄 알았잖아.”
공작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들을 공작이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변태 자식이 너희들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는 알고 있어?”
“애초에 그를 믿지 않았으니까. 걱정 말아 데이비.”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본녀는 언제까지고 보호받을 어린애가 아니야.”
“내가 걱정돼서 그래!”
과보호면 어떠랴. 남편이 부인을 걱정하는 게 뭐가 잘못되었나.
“그런데. 여기 있는 피해자들이 전부 실패작이라면…… 성공작은?”
“효과가 작은 성공작들은 그대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봤을 게야.”
검은 무복을 입은 소녀들과 무표정의 남성들.
대부분은 어린 소녀와 성인 여성들이지만 상당수 남성도 포함되어있다.
“이 개자식은 효과를 많이 못 본 이들의 영혼을 완전히 동결시켜 자신의 꼭두각시로 이용해먹고 효과가 뛰어난 변이를 일으킨 이들을 따로 빼돌린 모양이야.”
일리나가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피가 묻은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아마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으리라.
“빼돌렸다라…….”
“본녀가 기절한 척을 했을 때 말이야. 그가 그런 말을 했었어. 팔란 제국과 린디스 제국의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평화를 유지하는 삼제국 중 두 곳이 전쟁을 벌이면 대륙연합은 순식간에 유명무실해지고, 대륙은 다시 전쟁이 쉽게 벌어지게 될 것이다.
증오의 굴레에 한 번 휩싸이면 다시 빠져나오지 못할 테고…… 그것이 공작이 노린 바가 된다.
“단순히 전쟁에 미친 놈 같진 않았는데.”
“어쩌면…… 이것 때문이 아닐까.”
그녀가 실험실의 한쪽에 걸린 작은 사진을 꺼내주었다.
사진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금발의 작디작은 소녀와 그런 그녀의 곁에 선 채 부드럽게 웃고 있는 네토 라 리리 공작이 보였다.
“죽었다던 부인인가?”
“맞을 거야. 수기에 그렇게 쓰여 있었거든.”
“수기?”
“타국에서 숨어들어온 범죄자들이 공작의 별장에 침입했었나 봐. 공작은 궁에 있었는데 요양을 위해 별장으로 향했던 공작부인을 강간 살인했다고 나와 있어. 에이리아의 말로는 공작부인은 병으로 죽었다며 조용히 묻힌 모양인데, 내막에 이런 게 있을 줄은…….”
그가 분란을 유도한 이유는 여기 있는 게 아닐까.
그 말에 나는 공작의 일면에 서린 뒤틀린 광기가 어디서 나온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범인이 누구였든 간에 응징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그가 가진 힘은 조금 과할 정도로 세계규칙을 어지럽히는데.”
오감 조작이 잠재성이 뛰어난 힘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가 생명체에게 힘을 가해 변화시키는 수준은 단순한 특질능력자의 수준을 넘어섰다.
환각을 보여주던 특질능력부터 여러 가지가 존재하지만, 그들도 한계선이라는 게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공작에게서 얻은 힘은 그 한계점이 다른 특질능력에 비해 유별날 정도로 높았다.
그의 재능이 뛰어난 탓인가. 그렇게 생각하기엔…….
그렇게 중얼거리던 찰나였다.
무언가를 뒤적거리던 일리나가 먼지가 묻은 노트를 발견해 툭툭 털며 가져온다.
“데이비. 여기 상자가 있어. 이 자식, 까도 까도 계속 나오네. 정말…….”
일리나가 어디서 발견한 건지 모를 상자를 꺼내와 열었다.
그 안엔 목소리를 녹음하는 마석이 들어있었다.
“이게 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가 상자를 열고 마석을 활성화 시킨다.
그리고. 잡음과 함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치익, 복수할 힘을 주겠다고? 그 누구도 막지 못할?]
[삐이이익…….]
[그럼 힘을 줘. 정말 당신이 신이라는 존재에 버금가는 힘을 내게 줄 수 있다면…….]
노이즈로 인해 대답하는 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 처음부터 들리지 않았으리라. 그러니 공작이 상자에 넣고 거칠게 처박아놓은 것이겠지.
아마 보험수단으로 제작해둔 것 같은데.
[삐이이익…… 삐이이익!!]
또다시 대답하듯 잡음이 들려왔다.
[본능을 증폭시킨다라…… 상관없어, 내가 가진 본능이 무엇이건 마음대로 해. 나는 그 힘만 있으면 되니까.]
그 말과 함께 마석이 꺼진다.
역시, 그의 특질능력은 과할 정도로 강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누가 그에게 이런 힘을 주었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음파를 저장하는 마석에 노이즈를 줄 정도라면 단순히 말 자체에 마나를 담아낼 수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이클립스가 말한 배신자의 유일한 꼬리가 드러났다.
망설임 없이 나는 허공에 손을 벋었고, 그대로 마나를 끌어 올린다.
[광자포]
쩌엉!!!
연녹빛의 관선이 천장을 뚫고 쏘아져 올라갔다.
그리고, 구멍이 난 하늘을 향해 나는 아공간에서 꺼낸 폭죽을 쏘아 올린 뒤 기절한 에이리아를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몸도 약하면서 이런 험한 곳까지 왔으니 괜한 걱정이 인다.
“뭐한 거야?”
“왕궁에 준비해둔 병사를 부른 거야.”
배신자의 꼬리. 네토 라 리리 공작을 심문하면 대상을 찾을 수 있다.
그때였다.
[데이비 왕자저하! 큰일 났습니다! 방금…… 방금 누군가가 병사들을 죽이고 공작의 신변을…….]
염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