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07화 (806/1,559)

제 807화

226. 배신자의 정체. 가려져 있던 진실. 피할 수 없는 결과

-누군가가 침입해 병사들을 죽이고, 끝내 네토 라 리리 공작까지 살해했다!

그 소식을 들은 직후 나는 병사가 별장에 들이닥치는 것까지 확인한 뒤 별장 내에 남은 모든 적들을 강제로 제압하고 왕성으로 돌아왔다.

처참한 꼴이다.

누군가가 난폭하게 부순 것은 아니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들어갔을 땐 이미…….”

완전 무장을 한 채 페일트리스 후작이 침착하게 말해왔다.

“걱정 마십시오. 이미 범인은 추적 중이니. 금방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꼬리라…….”

바닥에 쓰러진 두 명의 병사와 기사 하나. 그리고 철창 안에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 고개를 푸욱 숙인 채 늘어져 팔을 고정한 구속구에 대롱대롱 메달린 리리 공작이 보였다.

카앙!!!

문을 열어젖힌 나는 곧바로 그에게 들어간 뒤 그의 몸에 손을 올렸다.

그의 몸에는 어떤 흔적도 없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았을까.

나는 그의 시신 바로 앞에 떨어진 미묘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카락?

습격을 하고 그를 죽인 범인의 머리카락인가.

푸른 빛이 머금어진 머리카락을 집어 든 나는 말 없이 그 머리카락의 손가락 끝 사이로 문질러 보았다.

“저하?”

“머리카락이네요.”

“머리카락이라니……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안 보여? 이게?

의아함이 들어 뒤쪽을 바라본 나는 카트린느 대공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시력도 보통 인간의 수준을 넘어선 이들이 머리카락을 구분 못 한다?

머리카락을 쥐고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굴려대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내 안에 포식의 특성으로 먹어치운 신력이 머리카락과 자연스레 합쳐지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파스스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처럼 머리카락이 완전히 흩어져 버린 것이다.

“…….”

“저…… 하?”

“꼬리라…….”

내 중얼거림에 의아해하던 페일트리스 후작이다.

“범인의 꼬리는 금방…….”

“아뇨. 그 꼬리 말고.”

빌어먹을 존재. 타나토스가 신의 위계를 버리지 않았음에도 계속해서 선을 넘을 수 있게 도와준 존재.

애초에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어떤 경우로든 배신자는 하나뿐이라는 걸 애써 부정해온 꼴이다.

이클립스가 차라리 거짓말을 했기를 바랐지만, 그것도 결국은 개인요망일 뿐.

“저하?”

“병사 물리세요. 범인 찾았으니.”

내 말과 함께 쓰러져 있던 병사와 기사들이 다시 심장이 뛴 것처럼 쿨럭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사상태라…… 이 정도면 확실하네.

“예?”

놀란 얼굴로 나를 보는 그들이었다.

“버…… 범인을 찾았단 말입니까?! 대체 누가!”

“저택의 수습부터 해주세요. 나중에 설명해 드릴 테니.”

“예? 아…… 예 저하.”

후작은 의문을 표하면서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 *

타르타로스 지하산맥.

마계와 티오니스를 이어붙이는 유일한 길인 이 타르타로스 지하산맥에는 딱 한 명. 기괴한 존재가 서식하고 있다.

“서식하고 있다가 뭡니까 서식하고 있다가.”

“머리카락 한 올 남은 것까지 마저 뽑히기 싫으면 조용히 해라.”

따다다다다닥!

이를 딱딱 소리 내 부딪히며 검은 해골이 낄낄 웃어댄다.

“이전이 훨씬 나았는데.”

“그건 편견이니까요. 아아. 프리아 여신이시여. 이 욕망이 가득한 자에게 자비의 구원을.”

“자비라…….”

성녀, 이오. 내 앞에 선 검은 해골이자, 리나 성녀 이전의 전대 성녀, 이오가 바로 그 정체였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왜 다시 해골이 된 거야.”

“이미 죽은 이는 죽은 채로 존재해야 하는 법이지요. 마침 후대 성녀님이신 리나 성녀께 제 모든 것을 전수해드렸으니. 제 몫은 끝난 거 아니겠습니까 따다다다다다다닥”

이 망할 탈모 해골이 설마 전대 성녀일 거라고 누가 예측이나 했을까.

성녀치고 참 기괴한 것들을 가르치는 존재지만 그런 그녀를 따라 배운 리나 성녀도 참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신상 있지?”

“신상 말입니까?”

“그래.”

“존재하지요. 늘 아침마다 기도를…… 설마, 강신이라도 하려 하십니까?”

성자와 성녀는 특정 신상에 신의 은총을 깊게 받을 수 있다.

당연히 그것만 가지곤 크게 효과가 없다지만 같은 성자나 성녀 급의 존재라면 그 신상을 통해 신의 계시를 받거나. 꿈을 통해 신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말이 존재한다.

물론, 실제로는 계시 이외엔 거의 불가능하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그녀가 나를 부른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오가 버려진 종족들을 데려와 살게 하는 이 지하산맥 아래의 수인족 마을은 여전히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갑작스런 외부인인 나의 등장에 긴장한 듯하면서도 그들은 딱히 나를 배척하지 않았다.

아마 이오가 한 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이후, 이오는 나를 데리고 지하계단을 탔고 그 안에 정성스레 조각된 여신상을 보여주었다.

따스한 신성력이 충만한 신전 내에는 그녀가 신의 기적을 받는 존재임을 입증하듯 따스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그래도 프리아 여신의 은총까지 받은 전대 성녀답다.

성녀가 둘 이상 존재하는 게 놀랍긴 하지만 어떤 의미로 보면 한 명은 언데드나 다름없으니까. 가장 극과 극의 위치이면서도 조화가 되는 것을 보면 사실 이오라는 이 탈모 해골은 역대 성녀 중에서도 압도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참. 얼마 전에 마계에서 한 마족이 티오니스로 넘어갔습니다.”

“뭐?”

“듣기로는 소중한 이를 찾았다고 하더군요.”

“누군데 그게. 내가 아는 마족인가?”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일단 몽마였습니다. 유…… 유…… 유시 뭐라고 했는데. 마계에서 이곳을 넘어가는 건 현재 금지되어있지만, 그녀는 꼭 넘어가야 한다더군요.”

결국, 이오가 보내줬다는 소리인데 그녀가 마족 보는 눈이 없진 않으니 문제가 되진 않으리라.

뼈마디가 우드득 소리 날 정도로 고개를 갸우뚱거린 그녀가 물러난다.

“제가 여기 있으면 곤란하겠죠?”

“그래…… 부탁할게.”

“뭔가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아서 말이죠오~”

“거 말끝을 늘어뜨리는 건 발샤스의 그 머릿속이 꽃밭인 성녀 탓이냐?”

“귀엽지 않나요?”

뼈만 있는 손으로 제 앙상한 광대뼈를 감싸고 부끄러워하는 걸 보면…….

“그…… 그래, 귀엽네.”

따다다다다닥!

그 후에도 이오는 오랜만에 만난 것이 즐거운지 별의별 수다를 다 떨다가 결국 내게 쫓겨났다. 쫓겨나가면서도 입을 쉬지 않는 것을 보면 혓바닥도 없는 게 어떻게 말을 저렇게 잘하는지 참 경탄스러울 지경이었다.

“태초의 존재이시며 이 세상을 관장하는 프리아 여신이시여.”

그리고는. 아주 정중하게 기도를 읊는다.

“우리 할 말 많지요, 이 빌어먹을 노처녀야.”

그리고 씹어뱉듯 신력을 터뜨렸다.

어차피 당신도 내게 할 말이 많을 텐데.

나도 당신에게 할 말이 아주 많아.

화아아아악!

효과는 굉장했다!

눈앞이 새하얗게 변한다.

일순간 변해버린 공간 속은 거대한 창공이었다.

이곳은 어디인지 알고 있다.

처음 보옥을 받았을 때와 같은 공간. 프리아 여신의 상태에 따라 변하는 공간이다.

그런 공간이.

지금은 황혼이 지고 갈라지고 있다.

화아아악!!!

이윽고 내 앞으로 거대한 날개를 펼친 존재가 나타나 눈을 뜨기 시작했다.

륀느와 같은 모습이나 머리카락이 종아리까지 내려오고 눈동자의 색이 조금 더 짙다.

그리고 등허리에 돋아난 작은 날개가 나름의 차밍 포인트라 말하는 녀석과 다르게 눈앞의 존재는 끝을 알 수 없는 사이즈의 날개를 펄럭인다.

태초의 존재. 육신이 없었으나 륀느의 몸에 한번 강신한 적이 있던 그녀의 형태는 륀느와 매우 흡사하다.

“당신은 알고 있을 겁니다.”

내 물음에 눈을 완전히 뜬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겉보기엔 륀느와 비슷하지만, 그녀는 륀느가 아니다.

이 세상을 관장하는 절대적인 초월 의지체.

다른 말로 신.

프리아 여신이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네토 라 리리 공작. 그 인간 왜 죽였습니까.”

내 말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이렇게 만나고 싶다고 만나지는 것부터가 기괴한 상황이기에, 대화가 쉽게 통할 거라 여기진 않았다.

“질문을 바꿀까요? 특질능력의 힘은 영혼의 힘에 좌우됩니다. 당신은 왜 그자의 영혼을 강화시켜 금기까지 어기게 만들었습니까.”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간이 죽었는데.

내 말에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시선을 왼쪽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푸르게 타오르고 있는 영혼이 보였다.

네토 라 리리 공작의 영혼.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윽고 나는 대답 대신 질문을 다시 던졌다.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나를 직시한다.

“프리아 여신님. 왜 나를 배신하고 타나토스를 도운 겁니까.”

가장 묻고 싶었던 말이며, 가장 울분이 터지는 질문이었다.

비록 불경한 성자였다곤 하나 나는 당신을 배신한 적이 없었습니다.

속으로 그 생각을 한 번도 지운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배신했다.

위계가 있는 신은 불사의 존재이며 간섭할 힘, 그리고 창조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런 존재인 만큼 그 위계로 인해, 못하는 것 또한 존재한다.

그런데 타나토스는 이클립스에게 빙의했다는 같잖은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 선을 씨게 넘어 간섭하고 있다.

아무리 신이라도 될 게 있고 안될 게 있는 법.

절대적인 무언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처음엔 타나토스가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나 했습니다. 원래 동전의 뒷면이 주가 되어야 하는 시기니까요. 자신의 차례가 되었음에도 심연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타나토스의 증오가 그런 상황을 유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아무리 시간이 지나 증오가 강해져도 안 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다시 묻겠습니다. 왜 도와준 겁니까. 당신이 원하는 게 대체 뭐야. 도와주었다가 방해했다가. 나를 강화시켰다가. 나를 흡수하려다가. 처음부터 나를 회랑으로 불러들인 것도 당신입니까?”

그녀는 끝까지 답하지 않았다.

“좋아요. 끝까지 답하지 않겠다면 당신의 어리석은 당신의 어린 양은 좀 비뚤어질 겁니다.”

망설임 없이 포식의 힘과 금기의 힘을 발현해 광기를 터뜨리려던 그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힘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이곳은 그녀의 공간. 그녀가 이곳에서 못 하는 것은 없다. 이내 천천히 다가온 그녀가 내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투웅!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에서 터져 나온 빛이 완전히 나를 감쌌다.

강렬한 섬광 속에서 나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리고, 빛으로 인한 후유증이 완전히 가셨을 때.

나는 생각지도 못한. 그리고 만나면 반드시 배에다가 죽창을 꽂으리라 결심했던 이를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

“오랜만이다.”

담담한 목소리.

마치 이곳으로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바지에 근육으로 가득한 상체. 그리고 등과 머리를 덮고 있는 짐승의 가죽까지.

야생 그 자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지만 막대한 위압감을 주는 절대적인 존재.

그 강대한 회랑의 영웅 중에서도 절대적인 강자로 군림했으며, 데스 로드 로 아이아스의 거대 행성급 마법을 맞고도 웃으며 버텨낸 절대적인 존재.

그를 어찌 모를까.

나는 망설임 없이 아공간을 찢어발겼다.

“도둑놈 새끼! 뒤져라!”

그리고, 늘 그렇게 하듯 죽창형의 롱기누스를 꺼내 들고 그에게 덤벼들었다.

헤라클래스!

회랑최고의 영웅이며 수련방식이 가장 괴악한 존재. 그리고, 이클립스라는 쥐방울만 한 고대룡의 남편이자 인류의 영웅.

전신에 모든 힘을 끌어내 그에게 덤빈 나는 이번에도 그에게 상처하나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건 네가 눈치를 챘다는 거겠지. 뭐, 실력은 아직 멀었구나.”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그 질문에 그는 피식 웃을 뿐 짐승의 가죽으로 가린 시선 너머로 나를 직시했다.

“내가 왜 여기 있느냐라…… 이미 알고 있지 않나.”

평소 듣던 그의 호쾌한 목소리는 제법 가라앉아 있었다.

“…….”

“회랑의 최초 영웅이 누구인지.”

그리고 회랑을 만들어낸 게 누구인지.

처음엔 세상 그 자체가 만들어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제일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가 아닌가.

“그래도 내 제자답게 끝까지 살아남았구나. 몇 번이고 네가 죽을 위기가 있었음에도 잘 살아남았어.”

“빌어먹을 적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이 좀 조용히 살자고 하면 끝까지 방해를 합디다.”

“파하하하하하!”

내 투덜거림에 그는 끌끌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러자 주변의 공간이 일변하며 거대한 숲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 숲, 기억하고 있나?”

“두 번째 생존 장소. 여기서 독뱀에 물려 죽을뻔한 경험만 수십번이요, 독벌레에 물려 사경을 헤맨 게 수백 번. 절대 좋은 기억은 없지요.”

“그건 네가 미숙해서 그런거고.”

“내가 이래서 당신을 만나면 죽창부터 들고 덤볐던 거야.”

말 한마디로 사람 살살 긁는 데엔 아주 도가 튼 양반이다.

생긴 건 뇌까지도 근섬유로 이루어진 것 같은 인간이, 하는 짓이 이리 밉살맞은지.

오로지 기괴한 호흡법 하나만 알려준 채 살아남으라 던졌으니.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뱀과 사투하고 벌레를 씹어먹지 않았던가.

유쾌하게 웃어 보인 그가 모닥불에 꽂아놓은 고기를 하나 건넸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받아들고는 거칠게 뜯어먹으며 물었다.

“프리아 여신이 그 빌어먹을 사이코패스에게 그런 힘을 준 이유가 뭡니까.”

네토 라 리리 공작으로 인해 수많은 인간이 죽었다.

그래서 물었다.

프리아 여신은 자애의 여신, 그렇다면 그에 따른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 지금 저지른 짓은 그야말로 악신이 아닌가.

“데이비. 인간은 참 오만하다.”

“오만?”

“왜 악인은 단순히 악인이라고만 판단하는 거지?”

“사연 없는 무덤은 없는 겁니다. 그놈은 자기 취미를 위해 수많은 인간을 죽인 놈이고, ”

내 담담한 대답에 그가 실소했다.

“그렇다면 묻겠다. 수많은 이를 죽여온 너와 그가 다른 게 무엇이냐.”

그걸 말이라고.

“적어도 나는 남의 부인을 건드리진 않았어.”

내 대꾸에 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껄껄 웃어댔다.

그렇게 한참을 웃었을까. 그가 미소를 지운 채 중얼거리듯 말해온다.

“여신의 입장에서 인간은 다 똑같지. 벌레도, 동물도, 몬스터도. 모두가 프리아 여신이 만든 규칙에 의해 태어났다. 간단히 표현하면 먹이사슬이지, 그런데 인간이 지성이 있다는 이유로 먹이사슬의 절대법칙에서 면죄를 받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러니까. 그를 가엽게 여겼다? 그로 인해 수많은 인간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데이비. 힘을 제공한 건 프리아 여신이지만, 그 힘을 사용하는 건 인간이다. 그는 스스로 그런 선택을 내렸을 뿐이야.”

“솔직히 이해하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죠?”

억지 논리이지만 정론이기도 했다.

“그리고 말이다. 데이비, 여신이 자비를 베푼 이유 중엔 네 녀석도 있었다.”

“제 특성…… 때문입니까?”

“그 공작이라는 자가 가지고 있던 특질능력은 반드시 네게 필요한 힘이었다.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그래. 몰랐겠지.”

나를 위해서 그를 타락시켰다?

“정확히는 그에게도 기회를 준 것이지. 하지만 그는 결국 선을 넘었고, 여신은 그를 거둬들여 그에게 대가를 치르게 했다. 그런 껍데기뿐인 이야기인 거다.”

그의 대답에 내가 벌떡 일어나 손에 쥔 것을 풀숲으로 던져버렸다.

스르르륵 하며 거대한 지네 같은 것이 내가 먹다 남긴 고기를 순식간에 물고 도망친다.

섬뜩한 느낌이 들 장면이지만 헤라클래스와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그 인간에게 죽은 불쌍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데이비.”

“말해보세요.”

그 망할 자애를 베푼 것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치고 죽었던가.

하지만 헤라클래스는 단호하게 내 의견을 반박한다.

“네 손에 죽은 인간, 동물, 벌레, 단순히 먹을 것을 위해서 싸워야 했던 몬스터, 그리고, 네가 죽인 본능에 충실했을 뿐인 [파괴]는, 무슨 잘못이 있었느냐.”

“이해는 해도 납득은 못 합니다. 나는 인간이니까요.”

“신과 인간은 달라 데이비. 같은 외형이라고 인간과 같이 생각하지 마라.”

그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인간의 잣대를 신에게 들이미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오만한 건 제가 아니었네요.”

“그렇기에 세상이 유지된 것이다. 프리아 여신은 지금까지 초월적인 존재로서 홀로 지켜온 거다.”

“그럼 그를 굳이 직접 수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직 그에게 들어야 할 정보가 많아요. 그래서 겸사겸사 이유도 물을 겸 저 빌어먹을 놈을 다시 데려가려고 왔습니다.”

쉽게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나는 멈칫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게 다름 아닌 프리아 여신 본인이니까. 지금껏 네가 올려보낸 악혼들은 전부 상호 간의 인과관계로 그렇게 되었다. 맞나?”

“그렇죠?”

“하지만 그 공작은 여신의 손길이 닿았다. 자, 똑똑한 너라면 이해했을 거다.”

상호 간의 인과 관계로 뒤틀린 게 아닌. 신의 자비를 직접 받고 비틀린 케이스.

유일하게 프리아 여신이 선택의 기회를 준 악인.

그렇기에 공작의 영혼만큼은 그녀가 직접 거두었다.

“하, 그래 뭐 좋아요. 어차피 죽을 놈이니까 여기서 죽나 저기서 죽나, 매한가지겠지. 그러면 당신은 왜 여기 있는데요.”

“여신도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거겠지. 데이비. 영웅과 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의 질문은 뜬금없었다.

“신과 영웅이라…… 강대한 힘.”

“음 맞다.”

고기를 뜯어 먹으며 그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막대한 인지도.”

“음, 그 말도 맞다.”

명답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

“영웅이란 수많은 이를 구원하는 자다. 세상의 균형을 수호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한다.”

“…….”

“신이라는 개념은 태초부터 존재해온 존재라 일컬어진다. 세상을 조율하고 거대한 힘으로 그 흔들림을 수호하며 운명을 관장한다. 그리고, 네가 알 듯 여러 방법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원하지. 그 구원의 방식에 편애란 없고 희생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태어났고, 그것이 존재 이유니까.”

그가 나를 바라본다.

지금 이 양반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떠하냐. 영웅이라는 것들 말이다. 신이 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느냐?”

“…… 헤라클래스.”

“진실이라는 건 참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거지.”

넬타리드…… 그리고 타나토스. 그들은 프리아 여신의 손에 의해 탄생한 존재다.

그들의 존재의의.

그것은. 나와 같은 영웅이라는 허울의 싹.

“베일에 가려진 진실을 들려주마. 내가 여기서 뭘 하는지, 프리아 여신이 대체 뭘 꾸미고 있는지.”

“부탁이니까 스케일이 너무 크지만 않으면 좋겠네요.”

“걱정 마라. 네 녀석의 선에서 다 해결이 될 일들이다.”

그렇게 말한 그가 싸늘함이 서린 입매를 꾸욱 다물었다가 천천히 다시 열었다.

“우선은 타나토스를 도운 건 네 예상대로 프리아 여신과 내가 맞다.”

카앙!!!

죽창이 또 한 번 그를 향해 날아든다.

“내가 언젠가 당신 배에다가 구멍 뚫고 만다 진짜! 뭐 이딴 인간이 다 있어!”

“카하하하하하하!!!”

여유롭게 웃어 보이는 그의 복근은 마치 거대한 철판처럼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웃음이 나와요?!”

“적어도 이야기는 듣고 화를 내라. 데이비! 침착함은 생존에 절대적인 기본 소양이다!”

“선빵필승. 그게 내가 당신에게 배운 최선의 생존법이야.”

“그래! 어디 덤벼봐라!”

예전의 내가 아니다. 과거에 당했던 설움을 여기서 풀겠다.

당당하게 돌진한 나는…….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바닥에 처박힌 채 정신을 차렸다.

괴물 같은 작자.

“많이 강해졌구나! 이제는 나도 긴장해야겠어. 껄껄!”

저 웃음소리. 얄미워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그의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을 준비는 되었나. 생각 이상으로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해보쇼. 충격을 받고 안 받고는 내가 생각할 테니까.”

바닥에 처박힌 채 내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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