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2화
소리도, 빛도 남기지 않는 구체가 추락한다.
보통 시력이라는 것은 빛을 반사하는 것으로 시력을 확보한다.
하지만 일정 수준에 이른 존재는 마나를 통해 마치 파장을 보듯 주변을 인식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면 무슨 소용인가.
빛, 소리, 마나. 그 외에 모든 요소를 모조리 먹어치우는, 어떤 의미로는 블랙홀보다 한 수 더 뜨는 끔찍한 마법인 것을.
순식간에 시야를 빼앗기고 감각조차 빼앗기려는 것을 신력이 억지로 막아낸다.
하지만.
그그그극…… 쿠웅!!!
데스 로드, 로 아이아스의 초월 마법 울티마는 닥치는 대로 부숴버렸다.
먼지 하나 남지 않은 무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 공간을 보며 다프네가 눈을 찌푸리고 로 아이아스를 바라보았다.
“힘 조절하랬잖아…….”
“그게. 데이비의 재능이 생각 이상이라…….”
저도 모르게 힘을 좀 더 줘버렸다는 뜻이다.
“세상에…… 저거 직격하면 어지간한 놈들도 그대로 뻗을 텐데.”
“시…… 신격이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세상 모든 놈이 너나 헤라클래스 그 양반은 아니잖아.”
무가 되어버린 공간을 보며 다프네가 한숨을 내쉬고 손을 휘저었다.
“그래도, 이 정도만 파괴된 걸 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조절…….”
“아녜요.”
다프네의 말을 끊은 로 아이아스가 큰 소매가 있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말했다.
“예정보다 강하게 들어갔어요. 결계는 물론 일대 전부가 날아갈 정도로요.”
“그럼…….”
“아무래도…… 그 포식의 특성이 힘 대부분을 먹어치운 것 같아요.”
“뭐 그런 괴물 같은 특성이 다 있어.”
특성은 영혼의 힘에 비례한다. 아무리 사기적인 힘이라도 총량에는 한계가 존재하는 법.
하지만 데이비의 특성 포식은 그 한계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가 정신만 유지했다면 어쩌면 정말로 막아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그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이 있었다.
“커헉!!”
거친 숨을 토해내며 모습을 드러낸 데이비가 무가 된 공간을 빠져나온 것이다.
죽었을 줄 알았던 데이비가 살아남았다.
“로 아이아스, 쟤 죽일 작정으로 쓴 거 아니었어?”
“그…… 그러게요. 아직 데이비의 특성이나 신력으론 못 막아낼 텐데…….”
죽을 걸 알면서도 했다는 대화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녀들을 보며 나뭇가지에 그녀를 매달았던 밧줄을 끊어낸 일리나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나…… 난 여…… 연습이나 마저 하러 가야겠다…….”
미쳤다 미쳤다 했지만, 데이비가 받는 수련 방식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렇게 끝도 없이 죽일 것처럼 날아드는 화살이 있는 숲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뒤로 데스 로드의 울티마가, 또 한 번 낙하한다.
* * *
영웅들의 수련이라 쓰고 고문이라 읽는 빌어먹을 고난의 강도는 점점 강해진다.
또 한 번 초월계급 흑마법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데이비가 반사적으로 양팔을 들어 올려 무형의 공간에 무형의 힘을 펼쳤다.
신격이 각성한 신력과 포식의 힘이 뒤섞인다.
[포식]
콰드드득!!!
힘 조절을 한 로 아이아스의 마법이 포식에 서서히 먹히기 시작한다.
데이비는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내며 강도 높은 훈련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아. 나의 사랑하는 다프네. 당신의 미소는.”
“주둥아리 닥쳐.”
“이런.”
어깨를 으쓱이는 엘프를 향해 다프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것 같아?”
“혼과 육신의 동기화. 이쯤 되면 본인은 모르는 듯하지만 잠재 성장치 만큼은 이미 나를 넘었어.”
경험과 기술이 풍부한 영웅이지만 전투력은 별개의 문제다.
데이비의 최대장점은 방대한 다양성.
하나의 기술을 놓고 보면 데이비의 궁술은 궁신 아폴론에게 닿지 않고 신성력은 다프네에게 닿지 않는다.
하지만 데이비는 그 부족한 부분을 다른 것으로 채웠다.
그리고.
그그극…… 그극!!
“그래서? 네가 봐주고 있던 그 하레스 그 양반의 후손은?”
“검에 대한 재능은 내가 판단할 건 못되지만…….”
짧게 침묵한 그가 입을 열었다.
“내 판단으론 그녀의 재능은 검신 그 이상이다.”
그렇게 말한 아폴론이 제 팔을 걷어 올렸다.
그의 팔엔 검으로 베인듯한 상처가 있었다.
“그 정도야?”
“아직 멀었지.”
“뭐야 그럼.”
다프네의 말에 아폴론은 평소의 느끼한 말투를 집어치운 채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보통이라면 그대로 뒤통수를 이용해 아폴론의 코를 박살 내버렸을 다프네였지만 반항하지 않는다.
“그녀의 수준에 맞춰주며 훈련을 시켰다만…… 그게 내 예상보다 빨랐어. 그뿐이야.”
일리나의 재능은 압도적인지만 그녀는 경험과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반대로 데이비는 그것들을 모두 챙겼다.
“좀 전에 셰인이 사라졌어. 내 사랑 다프네…….”
“…….”
영웅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각기 자신들의 방법을 통해 데이비를 도와주는 식으로 말이다.
“하…… 차라리 우리가 나가서 그 개잡신 놈 쳐 죽였으면 좋겠다만.”
담담하게 말하며 그녀는 먼지가 되어버린 공간 속에서 겨우겨우 살아남아 숨을 몰아쉬고 있는 데이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밤하늘의 별이 내리는 와중에도 훈련은 멈추지 않는다.
데이비도 멈출 생각이 없고, 로 아이아스를 포함한 영웅들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거기에 휴식은 극도로 짧았다.
데이비는 타나토스를 쳐 죽이기 위해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였고, 로 아이아스는 그런 데이비의 집념에 맞춰 강도 높은 훈련을 계속한다.
“맞다. 예전에 로 아이아스를 건드렸다가 된통 맞은 적 있었지. 하하, 눈물 꾹꾹 짜내면서 애써 괜찮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웃기던지.”
“저놈 아직 로아에게 마음을 품고 있을까.”
“다프네. 내 사랑은 오직 다프네 하나뿐…… 컥!!”
쓰러져 버린 아폴론을 짓밟으며 다프네가 피식 웃어 보였다.
“끊어내야지. 데이비는 산 사람이고, 우린 언제고 사라질 망령들이야.”
데이비는 평생 모를 것이다. 그게 맞는 것이고.
콰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무형의 파장이 로 아이아스의 9서클 흑마법, 데스 레인을 먹어치우는 걸 보며 다프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나토스의 움직임을 한번 막아야겠어.”
“다프네. 그건 안돼.”
“걱정 마. 데이비가 알아서 할 테니.”
“흐음…… 너무 이른 건 아닐지.”
아폴론의 질문에 다프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놈, 생각 이상으로 독종이야.”
* * *
일주일.
일주일 동안은 유례없는 고난도의 훈련을 마친 데이비가 침묵한다.
“고생했어요. 데이비. 정말 고생…… 흑, 많았어요.”
눈물까지 보이는 로 아이아스를 보며 크레이터의 중앙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데이비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쓰읍…… 하아아아…….”
그러자 그의 투기가 연기가 되듯 흘러나오며 데이비의 붉은 안광이 번뜩인다.
“타나토스…… 어디 있나.”
그의 서슬 퍼런 안광은 마치 타나토스가 보이면…….
당장이라도 쳐 죽이려고 작정한 괴물 같은 느낌이었다.
“무슨…… 개조를 한거야 대체.”
“그게…… 강도를 높이다 보니.”
로 아이아스가 옅게 웃자 다프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강해졌어?”
“많이 약해요.”
단호한 한마디였다.
“네 기준이지?”
“네? 아아…… 그…… 그러네요.”
“됐다. 마침 우치에게 연락이 왔어. 타나토스의 신력이 이 공간을 눈치챈 모양이야. 더 늦기 전에 한풀 꺾어놔야겠더라.”
“그럼…….”
“쟤 보내. 가서 한번 붙여주고. 가능하면…….”
죽이면 더 좋고.
자신감 좀 키워줘.
애초에 훈련은 그 과정일 뿐이다.
데이비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강해지고 있고.
타나토스는 그 사실을 모를 테니까.
* * *
거대한 늪지대.
이곳에 빠진 자는 일반인 익스퍼터, 마스터 급 존재라 할지라도 모두가 같은 결과에 도달했다.
죽음보다 끔찍한 형태.
거대한 진액에 둘러싸인 채 수많은 생명체가 늪에 먹혀 고통을 호소한다.
“죽여줘…… 죽여줘…….”
“제발…… 고통을…….”
참혹함에 도저히 눈뜨고 지켜볼 수 없는 끔찍한 참상.
그 중심에는 거대한 진액 괴물들 사이에 오롯이 선 작은 소녀가 사뿐사뿐 늪지대 위를 걸어온다.
다른 이들은 그대로 끝도 없는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지만, 그녀는 마치 땅 위를 걷는 것처럼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도…… 도망쳐…… 이길 수 없어…….”
고작 며칠 만에 티오니스 대륙 동남부가 소멸했다.
그 중심에는 그녀가 존재했다.
심연의 신 타나토스. 그리고, 그녀에게 완전히 잡아먹힌 고대룡. 이클립스.
미쳐버린 탓에 순수한 어린아이가 된 모습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으로 걸어오는 그녀는 공포 그 자체였다.
동남부 도시왕국 아트나는 도시국가 중 유일하게 남은 국가였다.
벌써 이 작은 도시국가의 수만 명이 희생당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아트나 하나가 전부.
도저히 협상의 여지도, 자비도 없는 저 괴물 같은 소녀와 함께 나온 괴물들에게 자비란 존재하지 않았다.
“아바마마! 도망치셔야 합니다!”
아트나 왕국의 왕자는 자신의 아비를 바라보았다.
“지원병력이 오면 너무 늦습니다! 차라리 국가를 포기하고 물러날…….”
“이 못난 놈!!”
철썩!!
노령의 국왕은 필사적으로 설득하는 아들의 뺨을 쳐올렸다.
왕궁의 밖으로 들려오는 굉음이 왕성 전체를 뒤흔든다.
“아들아.”
“…….”
“백성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아비더러 도망치라 말하는 것이더냐.”
“아바마마. 아바마마께선 이 나라의 기둥이십니다. 아바마마께서 사셔야 이 나라도 삽니다!”
“백성이 모두 사라진 국가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니다!!”
단호하게 말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뭣 하는가. 내 갑주와 무기를 가져오라 일렀거늘.”
“폐하…… 흐…… 흐흑…….”
병사들이 눈물을 흘린다.
재앙은 너무 한순간에 찾아왔고, 너무 한순간에 많은 것을 앗아갔다.
이미 타 도시국가들은 대부분 괴멸했고 아트나는 곧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삼제국에 지원병을 요청했지만, 그들이 아무리 빨라도 이곳까지 도착하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볼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리라.
“들어라. 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나 평생을 함께했다. 나의 백성들은 모두 나를 따라주었고, 나는 백성들을 아끼는 마음을 절대 버리지 않았다.
스릉!!
검을 뽑아 든 노왕이 소리쳤다.
“무기를 들어라. 우리는 이곳에서 죽더라도. 억울하게 죽어간 백성들을, 그리고 앞으로 수많은 생명들을 쳐죽일 놈들을 최대한 막아내리라!”
그의 단호한 외침에 왕자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다 고개를 처박았다.
“폐하. 폐하께 무궁한 영광이 있으시길.”
그리고는 피가 묻은 이마를 닦지 않은 채 검을 뽑아 들었다.
“폐하의 명에 따르겠나이다.”
죽음을 각오한 국왕과 왕족, 그리고 기사와 병사들 모두가 움직인다.
겁에 질린 백성들은 그렇게 떠나는 국왕의 앞길에 꽃을 뿌렸다.
모두가 죽음을 예측하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운명을 받아들였으니까.
콰아앙!!!!
그때 성벽 일부가 거대한 폭음과 함께 증발하듯 사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먼지를 일으킨 그 장면을 보며 모두가 침묵하고 있던 찰나.
무너진 성벽 너머로 검보랏빛의 끔찍한 냄새를 풍기는 늪지대가 흘러들어온다.
마치 마그마가 확산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늪지대에서 기어 나온 진액의 괴물들이 시시각각 접근했다.
“죽…… 여…… 줘…….”
“제발…… 폐하…….”
정신이 일면 살아있는 듯 진액 괴물들은 공격을 위해 다가오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표현해냈다.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고통받고 있다. 모두 발검하라.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모두 죽더라도. 저 괴물을 막는다.”
이 모든 일의 원흉.
검은 고딕 레이스 풍의 드레스를 입은 앙증맞은 소녀를 처단하기 위해.
“전군…….”
말에 탄 국왕이 짧게 읊조린다.
“공격하라.”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죽음을 각오한 병사와 기사들이 늪지대에서 기어 나온 괴물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화살이 쏟아지고 부서진 파편으로 날아든 바위들이 투석되었다.
물론, 싸움의 전황이 바뀌는 기적 따윈 없었다.
순식간에 접근한 괴물들은 인간을 집어삼켜 똑같은 괴물로 만들었고, 화살은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멈춰버렸다.
“아아…… 프리아 여신이시여.”
순식간에 괴물들에게 둘러싸인 국왕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채 여신을 부르짖었다.
“여신이시여. 자애를 베푸소서…… 나의 백성들이……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한 번의 자애를…….”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그를 향해 괴물이 다가온다.
“죄…… 송…… 합니다…… 폐…… 하…….”
끊어지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괴물이 국왕을 잡식하려던 그 순간.
쩌엉!!
하늘에서 거대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쿠우웅!!!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어나며 일대를 모조리 뒤집어엎었고 위기에 처했던 병사들을 모조리 뒤로 날려버렸다.
갑작스런 사태에 잠시 전투가 멈춘다.
모두가 침묵하는 그 상황 속에서 섬광과 함께 추락한 무언가가 몸을 일으켰다.
“쓰읍…… 하아…….”
광기 어린 숨소리와 붉은 안광이 번뜩인다.
“저…… 저자는…….”
바닥에 쓰러진 국왕이 놀란 얼굴로 그를 본다.
“타나토스…… 어디 있나.”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가 광기 어린 웃음을 내비쳤다.
[어서 와라. 널 찾고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그를 향해 소녀가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게 진정한 심연의 끝을…….]
쩌엉!!!!
괴이쩍은 소녀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소녀를 발견하고 눈을 번뜩인 아직 소년티를 전부 벗어내지 못한 청년이 날아든 것이다.
화살도, 마법도 아무것도 먹히지 않는 적을 상대로 육탄돌격이라니. 게다가 소녀의 주변엔 닿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진액이 가득했다.
자살행위!
모두가 미쳤다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소리치려던 찰나.
투쾅!!!!
소녀에게 날아든 검은 머리의 청년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영역에 침범했고.
그대로 그녀를 거대한 망치로 후려쳤다.
분명 무형의 무언가가 공격을 막으리라.
그렇게 생각했건만.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청년이 휘두른 망치에 기이한 힘이 모여들더니 소녀가 만든 장막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숴버리며 그녀를 후려쳐 날려버린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소녀는 그대로 튕겨 날아가 버렸고. 청년은 그 뒤를 이어 늪지대로 가득한 바닥을 강하게 밟았다.
그러자 검은 늪지대가 마치 증발하듯 흩어진다.
“여기 있네? 흐흐흐…… 흐흐흐흐흐흐흐! 보고 싶었어. 타나토스.”
[하찮은 미물이…… 감히 신격을 소유하였나.]
섬뜩한 웃음과 함께 청년, 데이비 올 라운이 광기에 찬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끼는 국왕과 왕자,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