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4화
피슉!! 퓩퓩!!!
울창하기 짝이 없는 숲속에서 섬광이 날아든다.
소리가 들렸을 땐 이미 늦었다.
순식간에 날아와 박히는 화살들을 피해내며 울창한 정글을 가볍게 박차듯 파고 들어보지만 역시 근접전보다는 게릴라전이 전문적인 궁신 아폴론의 견제는 쉽게 넘길 수 없었다.
한발 한발이 위협적이다.
고작 나무와 금속으로 만든 화살이건만, 한 발 한 발이 치명적이라는 건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디 있나. 어디 있나. 이 빌어먹을 귀쟁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숲을 누비던 찰나.
섬광이 번뜩이며 나를 향해 두 개의 화살이 날아든다.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사고가 가속되고 몸을 비틀어 화살을 피해내고 신궁 브류나크를 장궁의 형태로 바꿔 활시위를 당겼다.
츠츠츠츳!!!
동시에 막대한 마나가 뒤섞인 화살이 생겨났고, 닥치는 대로 부수며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울창한 우림의 더운 바람이 몰아치지만 상관없다.
건국왕 신궁 주몽 가라사대.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매수하는 거다!
[윈드 서클]
내가 마나를 줄 터이니, 넌 내 마음대로 움직여라.
투쾅!!!!!
거의 폭격에 가까운 굉음과 진동이 울려 퍼진다.
아주 잠깐이지만 아폴론의 마나가 감지되었고 나는 그 방향을 바라보며 망설임 없이 몸을 웅크렸다.
거깄구나.
쩌엉!!!
공간이 찢어지며 날아든다.
마치 하나의 화살이 된 것처럼.
궁신 아폴론의 궁술과 게릴라전에 대한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이미 나는 그와 접촉하여 그의 재능 일부를 먹어치웠고.
그중 일부만을 내 것으로 남기고 버렸다.
그의 재능은 확실히 내가 가지고 있던 재능에 비하면 압도적이었으나.
나는 다른 방법으로 그를 쫓는다.
핑!!
또 한 번 섬광이 날아들고 뒤늦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순히 쏘아내는 화살이 음속을 우습게 돌파하다니 우스울 따름이다.
정면에서 세 발. 좌측 우측 약 50미터 거리에서 동시에 두 발.
본래라면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기는커녕 적이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적은 하나. 애초에 아폴론의 주특기인 만큼 내가 모를 수가 없다.
시간차 공격.
마치 변화구를 쏘듯 다른 방향으로 화살을 쏜 뒤 그 후에 시차에 맞춰서 공격한다.
망설임 없이 쏘면서 정밀하게 맞추는 것도 경악스러운데 그 한 발 한 발에 담긴 위력은 정말로 나를 죽이려고 작정한 공격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지.
신격이 서린 화살을 향해 망설임 없이 브류나크의 활시위를 당겨 발사한 뒤 브류나크의 특성인 허공을 굳히는 힘을 이용해 발판을 밟고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활시위를 당겨 마나를 쏟아붓자 세 발의 화살이 각각의 손가락에 걸렸다.
퉁!! 투퉁!!
그가 가능한데 내가 못할까.
서너 발의 화살이 발사된다.
그의 위치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만 그건 오로지 한가지 재능으로 판단할 경우에 한한다.
거깄구나.
쩌엉!!
허공에 생겨난 발판을 부숴버리며 날아든 나는 브류나크를 한 손에 쥐고 나머지 한 손에 신창 롱기누스를 만들어 그대로 목적지에 폭격을 가했다.
“이런?!”
당황한 아폴론의 외침과 동시에 그의 머리 위를 장악한 내가 화살을 당긴다.
“언제고 내가 이런 날이 오기를 기대했다.”
“이런 사기꾼 같으니!”
당황한 아폴론이 급히 벗어나려 하지만 내 손에 쥐어진 단궁 형태로 변한 브류나크의 활시위가 더 빨리 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절대 피할 수 없는 거리.
하지만 아폴론은 성격이 어떻건 영웅이라 불러도 될 만큼의 실력을 지닌 존재였다.
“후우…… 큰일 날 뻔했네.”
“쯧.”
“방금 나를 진짜 죽이려고 한거냐?”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하, 아쉽게도 나를 죽이려면 아직 멀었다.”
그렇게 말하지만, 그의 안색은 파리해져 있다.
곧 죽어도 상대를 도발하여 평정을 잃게 하는 건 그의 주특기나 다름없으니까.
좀 전 그가 피할 수 없는 위치에서 날아든 화살까지 피했다.
자신의 기술에 완벽하다 싶을 정도의 이해도가 있기에 가능한 행동.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다른 분야를 사용하는 수밖에.
나는 신궁 브류나크를 아공간에 던져놓고 신창 롱기누스를 죽창의 형태로 만들었다.
“내가 제일 죽창을 꽂아버리고 싶은 인간 두 번째라.”
“아하하하. 이런 농담도 지나치…… 읏?!”
순식간에 파고들어 그에게 죽창을 박아넣자 그가 급히 단검을 뽑아 공격을 쳐내고 반격해온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수십차례의 공방이 오갔다.
서로 아주 작정하고 죽일 듯 싸우지만, 일방적이던 예전과는 달랐다.
대화가 무슨 소용인가. 잡담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공격할 것을.
점차 아폴론이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하자 나는 승기를 잡은 듯 몸을 낮춰 그에게 깊게 파고들었다.
아폴론의 근접 전투 실력이 낮은 건 아니지만 그는 게릴라 전과 궁술에 조예가 깊은 영웅이다.
당연히 이런 상황이라면 내 쪽이 유리할 수밖에.
카앙!!!
결국, 아폴론이 들고 있던 단검이 막대한 힘을 담은 창에 맞아 튕겨 나간다.
그리고 그의 몸을 깔아뭉개듯 제압하며 내가 창끝을 그의 목에 겨누었다.
“그거 한번 해봅시다.”
“그…… 그거?”
“그래요. 그거.”
내 집요한 요청에 그의 표정이 오묘해지더니 이내 말했다.
“아…… 아하하하. 아쉽게도 나를 죽이려면 한참 멀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폭소하듯 웃어대는 나를 보며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성격이 참…….”
“그럼 우리, 끝냅시다.”
그대로 창끝을 내리치면 끝난다. 사실상 영웅을 이긴 첫 번째 사례가 되리라.
망설임 없이 그의 목에 창을 찔러넣으려던 찰나.
그의 눈이 번뜩였다.
쉬리리릭!!!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꿈틀거림과 동시에 주변의 트랩이 발동되며 정령 마나를 머금은 미스릴 강사들이 순식간에 내 몸을 감싸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포식의 특성을 이용해 미스릴 강사에 머금어진 정령 마나를 먹어치우고 다시 움직이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그의 손목에 장비된 석궁이 내 목을 겨누었다.
“아직 멀었다. 데이비.”
능글거리며 그가 비웃음을 던졌다.
“적을 죽일 때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되지.”
그의 말은 정론이다.
하지만 나는 표정을 굳히지 않았다.
“잘 압니다. 망할 귀쟁이.”
쌔애앵…… 푸욱!!!
“컥?!”
그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그의 등을 꿰뚫은 것이다.
“쿨럭! 이…… 이 자식!”
아폴론의 주특기인 시간차 공격.
말이 시간차 공격이지 이건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는 방향으로 쏘아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위치로 날아들도록 하게 만드는 게 사실 이론상 불가능하다는 게 현실이다.
대기와 화살에 쓸리는 힘 전부를 계산해야 가능한 일이니까.
그와 수차례 화살전을 하면서 쏘아 보냈던 화살이 그제야 떨어지며 그에게 박혀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무너지는 그와 함께 그가 지탱하던 미스릴 강사가 풀리며 내가 해방되었다.
이윽고 그의 목에 창을 겨눈 나는 숨을 고르며 짧게 중얼거렸다.
“후우…… 더럽게 힘드네.”
“데이비!”
더없이 완벽하게 승리를 거둔 꼴이다.
그가 정말로 나를 죽일 생각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훈련은 실전처럼. 사실상 나의 승리는 확고하다.
아폴론과의 싸움이 끝나고 나를 부르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다프네와 신의 히포크리아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히아 누님.”
“후우…… 몸조심하라니까.”
그녀는 상처투성이인 아폴론을 대뜸 무시하며 내 전신에 난 상처들을 살폈다.
미스릴 강사로 인해 여기저기 살점이 찢어지며 상처가 난 것이다.
고작 미스릴 강사인데. 아주 잠깐 사이에 큰 부상으로 이어질 뻔했다.
“축하해. 너도 이제 어엿한 수준까지 올랐구나.”
만족스러운 듯 약을 발라주며 히아 누님이 웃어주자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러게요. 조금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페르는 어딨답니까?”
“로 아이아스가 특별히 봐주고 있어. 페르세르크는 흑마법에도 제법 조예가 있는 듯해서.”
에이리아는 여전히 정령 여제 유리아나를 통해 정령술을 가르치고 있고 일리나는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실전 훈련을 거치고 있다.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페르세르크나 일리나는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수르트가 널 찾아. 이제 준비가 된 모양이지.”
천일 야장 수르트. 신검 칼디라스와 청단이 홍단이의 원형을 만든 대장장이.
그가 나를 부르는 이유는 뻔했다.
* * *
카앙!!! 캉!!!
수르트의 작업실은 늘 바위산에 있다.
그는 가능한 직접 재료를 공수하고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바위산을 구현한 모양이었다.
“왔나.”
익숙한 방언에 후끈거리는 작업장의 내부를 들여다보자 상의를 탈의한 채 망치를 휘두르고 있는 사내의 등짝이 보였다.
“청단이 홍단이는 어딨습니까.”
“작업 준비 다 해놨다.”
“작업한 거 아니었습니까?”
하루 이틀인가.
나는 가볍게 상의를 벗어 던지고는 주변에 있는 도구를 꺼내 이리저리 손에 익도록 만져보며 물었다.
“니가 완성한 걸 내가 우에 손대나. 쓰잘데 없는 소리 말고 망치나 쥐라.”
그렇게 말한 그는 곧 열심히 만들던 것을 내버려 두고 나를 화로로 인도했다.
“니, 셰인 그노마의 환수로 화력 올릴라 그랬제.”
지폭룡 샨드라미네아. 놈의 화염이라면 청단이와 홍단이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단 자연적인 불로 작업해야 하니까요. 온도가 어지간해선 작업도 힘드니.”
수만 도에 달하는 화염도 먹어치우는 두 아이가 고작 몇천 도의 화염으로 달궈지기나 할까.
“안타깝네. 그만치로 그리워하디만 결국 만나보지도 못하고.”
“설마 환수 소환이 안될 줄은 몰랐죠.”
정령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회랑엔 정령 여제 유리아나가 있지만, 그녀의 존재와 나의 존재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인지 내가 정령술을 사용하려 해도 유리아나의 정령이 소환될 뿐 내가 새로 계약한 녀석들을 불러낼 순 없었다.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화로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러자 상상도 못 할 열기가 몰려온다.
“이건…….”
“뭐, 나쁘진 않은 방법인디. 더 좋은 게 있으면 더 좋은 쪽으로 가는 게 맞는 기다.”
그의 미소에 나는 화염에 손을 불쑥 밀어 넣으려 했다.
하지만 수르트가 내 팔을 낚아채며 고개를 저었다.
“손 치킨 해묵을라 카나?”
“나는 직접 확인 안 해보면 작업 못 합니다.”
불의 온도는 작업에 큰 영향을 준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실제로 청단이와 홍단이의 재가공은 어지간한 화염으론 어림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내 대답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윽고 그는 데스 로드의 사령 마나가 느껴지는 집게를 화로 속에 밀어 넣더니 빨갛게 달아오른 두 자루의 환검을 꺼내 들었다.
청단이와 홍단이였다.
이미 완성된 검을 다시 불에 넣고 작업하는 건 보통 완전히 망가진 검을 새로 다루는 것과 다름없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왜 그냥 둔 겁니까?”
“누구 역작인지 참. 질기게도 열기 내성이 짙드마. 그래가 작업 준비하는데 시간 다 버렸제.”
그가 킥킥 웃으며 내 등을 철썩 후려쳤다.
“이래가 만난 것도 오랜만이제?”
“그러네요.”
오랜만에 만난 수르트였지만 그도, 나도 서로 자잘한 대화는 하지 않았다. 그저 작업 준비를 할 뿐.
“보조할까요?”
“뭔 개소리를 이렇게 참신하게 하고 자빠졌노.”
“뭐요?”
“니가 해라.”
그의 짧은 한마디에 나는 말 없이 그를 지켜보았다.
“니가 만든 아들이다. 니도 장인 자존심 있으면 딴 데 맡기지 말고 니 손으로 만들그라.”
“보통 스승에게까지 자존심 세우진 않는데요.”
“데이비야.”
그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제 하산할 때 안 됐나. 다른 양반들도 글코, 내도 글코, 이제 우리는 가르칠 거 읎다.”
“없긴 왜 없어요. 아직 한참…….”
“고마 빨대 꼽아라! 거 얼마나 더 빨아먹을라 카는데.”
“이…… 이 양반이?!”
“고마 하산하라꼬, 우리가 니 성장 속도 못 따라가긋다!”
장난스레 말하지만, 포식의 특성으로 재능까지 먹어치우면서 내 성장 속도는 사실상 말도 안 되게 빨라져 있었다.
수십 수백 년 걸릴 일을 고작 한 달 남짓한 시간에 모조리 때려 박았으니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 영웅들의 무식한 훈련방식이 뒤따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속도가 느린 게 아니었다.
그의 한마디에 나는 이곳에 온 뒤로 해온 것들을 떠올렸다.
로 아이아스에겐 그녀가 가진 데스 로드의 고유 초월 마법을 배웠고, 다프네에겐 신성력을 더 잘 다루는 법을. 아폴론과 살수왕 헤르메이샤에겐 실질적인 전투 센스를 익혔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재능과 특성까지 아낌없이 내게 넘겨주었다.
마치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작정한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기에.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기에 나는 이를 악물고 마음을 다잡았다.
“…….”
한참을 침묵하던 내가 망치를 강하게 틀어잡았다.
“내는 지금부터 니를 제자라고 생각 안 한다. 니는, 지금부터 내랑 동등한 장인이다. 알긋나.”
그 한마디가 속을 울렁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