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2화
230. 그것이 내 결론이다
“끅!”
피가 울컥 터져 나온다.
타나토스는 경악한 얼굴로 나를 보며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건방진 피조물이…….”
“피차 같은 사이끼리 그러지 말자고. 결국, 너도 나도 프리아 여신의 손에 만들어진 건 똑같아.”
푸욱!!
더욱 강하게 그녀의 심장에 검을 찔러넣는다.
과거 넬타리드의 일면인 파괴는 이런 식으로 죽이는 게 가능했다만.
신격을 다 버리지 않은 그녀는 과연 어떨는지.
카가가각!!!
초단이의 검을 비늘로 가득 덮인 손으로 잡아채며 그녀가 분노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본다.
“네놈…… 특유한 힘을 지니고 있구나. 일개 피조물에게 내려질 힘이 아니야. 그래…….”
그녀의 황색 안광이 더욱더 짙게 변한다.
“먹어치우는 힘…… 단순히 먹어치우는 게 아니라 규칙을 멋대로 바꾸고 있어.”
그녀의 말대로였다.
먹어치우는 것도 이미 규칙을 어긋난 힘이긴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을 먹어 내게 가장 알맞게 조절해버린다는 사실이다.
푸욱!!!
힘겨루기를 하던 내가 그녀의 복부를 밀어 차듯 초단이를 뽑아냈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그녀를 향해 비스듬히 내려 세운 검을 대각선으로 베어 올린다.
[시공격검]
[단공…….]
쩌어엉!!!
하지만 곧 내 전신을 강타하는 막대한 힘에 내 전신이 튕겨 나가 벽면에 처박힌다.
“쿨럭!”
알싸한 통증이 몰려오며 정신이 아찔해지는 느낌이었다.
급히 초단이를 들어 재차 이어질 공격을 방어하려 하지만…….
콰아아아앙!!!
거대한 용의 앞발이 허공을 찢으며 튀어나와 내 전신을 뭉개듯 눌러버렸다.
좀 전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그녀는 급기야 나를 낚아챈 채 거침없이 지상에 처박아 넣고는 다시 힘을 끌어올렸다.
화아아아아악!!!
동시에 그녀의 등 뒤로 검보랏빛의 날개가 펄럭이더니 주변의 공간이 변한다.
좀 전부터 느꼈는데.
그녀는 계속해서 이 살점 덩어리들을 보호하려 했다.
단순한 모성애 때문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타나토스에게 저 살점 덩어리의 동굴은 무언가 중요한 역할을 할 터.
순식간에 거대한 안개로 가득한 공간으로 변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룡이 나를 향해 황색의 안광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 모여드는 신격.
재빨리 그녀의 신격을 역류시키려 했지만 한 번 당한 걸 두 번 당할 정도로 그녀는 녹록한 존재가 아니었다.
내가 역류시키려던 그녀의 힘이 다시 본래대로 돌아가며 외려 나를 방해한다.
그녀가 나를 들여다본다.
그녀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 모조리 바라보았고.
거기에 맞춰 반격을 가해온다.
이제 와서 허풍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왜 기뻐하는 거지?”
“쿨럭, 이공간 전이라…… 안 기쁠 수가 있나.”
내 말에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게 파악하고 싶으면, 어디 직접 알아봐.”
넌 지금 나를 들여다보고 있잖아. 안 그래?
내 웃음에 거룡의 입에서 마법진이 생겨나며 사방의 공간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검은 촉수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수백 가닥의 촉수들이 하늘을 가득 메울 듯 공간을 찢고 튀어나오더니 이내 촉수의 끝으로 눈동자를 번뜩인다.
“부족해…… 부족하다고.”
“뭐가 그리 부족한데.”
“내가 1만 년간 쌓아온 복수심이 네깟 녀석에게 무너지기엔 너무 부족하단 뜻이다.”
이윽고 눈동자에서 하나둘 보랏빛의 에너지가 모여든다.
하나하나가 9서클 이상급의 화력을 담은 위력. 이클립스 자체의 마법이라면 얼마든지 디스펠각을 볼 수 있지만 역시 타나토스가 섞인 탓인지 디스펠은 쉽지 않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찌잉…… 부우욱!!!
공기가 갈라지며 보랏빛 광선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쏟아져 내린다.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포식의 권능으로 막아내려 해도 위력이 너무 강해서 하나 이상을 막아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컥?!”
쩌어엉!!
그녀는 내가 포식의 힘을 사용할 때 가지는 미숙한 점, 혹은 약점을 그대로 들여다본다.
이런 강대한 힘을 지속적으로 먹어치울 때는 극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혼란이 찾으리라.]
그녀는 그런 내 집중력을 흩어버리는 것으로 방해를 한 것이다.
순식간에 포식의 특성이 뚫리고 내 전신에 보랏빛 광선들이 작렬해 들어왔다.
어마어마한 타격과 함께 정신이 한순간 점멸하듯 번뜩였다.
쉬리리릭!!
그녀는 거기서 끝낼 생각이 없는지 그대로 거대한 꼬리를 이용해 나를 낚아채고는 수차례 지면에 내리쳤다가 허공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포식의 특성을 발현할 생각도 못 하고 있는 나를 향해 입에 브레스를 발사했다.
지름 수십 미터는 가볍게 넘어서는 브레스가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키고 남았을 때.
쉴 틈 없이 그녀의 거대한 앞발이 지상을 내리쳤고, 바닥이 뒤틀리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사방에서 날아들어 허공에 뜬 나를 압박한다.
마치 그 자리에서 쥐포를 만들어버릴 것처럼 뒤튼 것도 모자라 날아든 거대한 대지를 비틀고 으깨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이지만 분명 땅이 존재한다.
수차례 대지를 비틀어 나를 공격하고는 거기에 이어 검보랏빛의 섬광을 이용하여 나를 꿰뚫었다.
마치 부두인형에 침을 꽂은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강철인형]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나를 짓누른 거대한 대지는 마치 인간형태의 감옥처럼 변하며 나를 완전히 구속했다.
틈 따윈 주지 않고 죽이겠다는 듯 날아드는 공격은 지금껏 만난 그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수차례의 공격 끝에 내가 추욱 늘어지자 그녀는 꼬리의 끝을 이용해 내 목을 휘감고는 자신의 시야까지 들어 올렸다.
[하찮은 미물아. 어찌 이렇게도 저항하는가.]
그녀의 질문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물음이었다.
“생명체가 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후우…… 너도 결국 같은 거 아닌가?”
내 대답에 그녀는 조용히 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여기서 포기해라. 나를 따라.]
“웃기는 소리 하네.”
[대적자라곤 하나 나는 너를 고평가한다. 한낮 일개 피조물이 신격을 얻은 것이 그 증거가 되겠지.]
“그래서.”
목을 휘감긴 채 내가 조용히 물었다.
[세상의 진실을 아는가.]
“별로…… 관심 없긴 한데.”
[프리아 여신은 나를 그녀를 대신하여 세상을 통치할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배신하고 소멸시키려 하였다.]
“그건 들어서 알고.”
그녀도 엄연한 피해자라는 건 변치 않는다.
[그녀는 나를 배신했다!! 나를 그 심연에 처박아놓고!! 나를 끔찍하게 썩어가도록 만들었다! 내가 처음부터 심연의 신이었는 줄 아느냐?! 천만에, 나는 잠과 꿈의 신. 본래 프리아 여신의 잠을 관리하는 신이다.]
그녀의 절규 어린 외침에 나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 손을 잡아라…… 대적자…… 나는 절대 그 역겨운 프리아 여신처럼 배신하지 않을 거다. 나를 도와…… 이 썩어빠진 규칙을 바꾸고 더 좋은 세상으로…….]
“야.”
그녀의 말을 끊은 내가 피식 웃어 보였다.
“잠꼬대는 자면서 해라. 잠과 꿈의 신이면 알아서 잘 할 거 아니야.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더 좋은 세상? 잘 살고 있는 인간들 다 죽이고 네 입맛에 맞고, 너만 찬양하는 생명체를 새로 창조하면, 그게 더 좋은 세상이냐?”
배신하지 않는다고?
이미 네가 하고 있는 짓이 그 논리를 그대로 부정하고 있다.
[미물!]
그녀가 꼬리를 이용해 나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릴 것처럼 꼬리를 내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공격을 가하기도 전에 그녀의 내부에서 거대한 마나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뭐긴, 네 몸 안에 흑마법 하나 놔드렸을 뿐이야.”
그것도 초월급 흑마법으로다가.
쩌저저적!! 쩌적!!
정체 모를 기괴한 소리와 함께 나를 놓친 거룡이 비틀거린다.
“아무리 고대룡이라도 몸 안에서 초월급 흑마법이 터지면 꽤 타격이 크지.”
비틀거리며 전신에 생긴 상처에 회복마법을 건다.
내가 그녀의 몸 안에 마법을 박아넣은 것은 처음 그녀의 심장에 초단이를 찔러넣었을 때였다.
[큭…….]
그래도 제법 센 놈으로 먹였는데. 죽지 않는 것인가. 더욱 흉흉해진 안광으로 그녀가 나를 향해 돌진한다.
자, 그럼 어디 새로 강화된 애들을 써먹어 보자.
쿠우웅!!
나를 향해 맹진하는 거룡을 겨누고 정확히 초단이를 그어 내린다.
시간의 권능이 발현된다.
그녀는 내 공격이 날아오는 그 틈에 피해내고 반격을 가하려 한 모양이지만.
그 시간이라는 권능.
제법 유능하기 그지없다.
서걱!!
순식간에 날개가 하나 잘려나가며 그녀의 거체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나는 다시 한번 초단이를 허공에 그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맹진한다.
반사적으로 마법을 끌어모은 그녀가 눈을 번뜩였다.
[절대 용언]
[죽어라]
콰직!!!
신격이 없었다면 쉽사리 막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녀의 용언 또한 비 물리 법칙 계통의 힘.
초단이가 방금 베어 넘긴 것은 그녀의 육신이 아니라…….
일대 공간이었다.
일정 시간 동안 그 안에 존재하는 비 물리 계통의 힘을 베어버리는 힘.
그것이 용언을 베어버린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파고드는 나와 갑자기 잘려나가 버리는 절대용언에 당황한 그녀가 몸을 비틀어 피해내려 하지만 순식간에 추락하듯 날아든 내가 포물선의 힘을 그대로 실어 초단이를 내리쳤다.
“다시 간다.”
[시공격검]
[단공 전력 가르기]
쩌억!!
공간이 갈라지며 그녀의 팔 한쪽이 그대로 잘려나가 버렸다.
크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부상을 입은 그녀가 비틀거리며 물러난다.
좀 전까지 일방적으로 밀리던 때와는 달랐다.
[왜…… 왜 보이지 않는 거지?!]
그녀의 외침에 내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심연의 권능으로 심연의 권능을 막는 게 뭐가 이상한가?”
이상하지.
당연했다.
애초에 그녀가 사용하는 심연의 권능은 그녀 그 자체의 숙련도를 보여준다.
갓 힘을 훔친 내가 이렇게 사용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다만.
“네놈 설마…….”
“그래. 네 숙련도도 훔쳤어.”
포식의 특성이 단순히 힘만 먹어치운다는 생각은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다.
나는 영웅들에게서 먹어치운 재능과 숙련도를 재료로 사용해 타나토스의 심연의 권능과 그 숙련도를 훔치고 내 것으로 바꾸었다.
“어디 남의 머릿속을 함부로 들여다봐. 사생활 보호 몰라?”
[홀른!!!!]
프리아 여신이 내려준 인간의 또 다른 이름.
홀른.
“그래. 그 홀른의 이름을 내려받은 이유가 뭔지, 너도 잘 알잖냐.”
인간은 가장 미약하나.
가장 많은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네가 무슨 이유 때문에 그 살덩어리 동굴을 보호하기 위해 나를 이공간으로 불려들였는지는 모르겠다만.”
거칠게 숨을 내쉬며 나는 전신에 힘을 끌어올렸다.
“여기라면 얼마든지 미쳐 날뛰어도 상관없다는 거잖아.”
인간은 최악의 수를 반드시 생각해둬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최악의 수를 여기서 끌어낼 생각이었다.
“어디 광기까지 견뎌봐.”
나는 그동안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며 못을 박아놓았던 금기의 힘을 포식의 특성과 함께 끌어냈다.
막대한 공복의 광기가 나를 잠식하기가 무섭게 나는 의지를 놓기 전 그녀에게 광기 일부를 그대로 노출시켜 보여주었다.
[우웁!?]
신조차 당황할 정도의 광기에 그녀가 비틀거린다.
그리고.
“흐…… 흐흐…… 흐흐흐흐흐!!”
금기의 힘으로 인해 완전히 광기가 터져버린 내가 스산한 웃음을 흘리며 한쪽 발로 그녀의 거체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
피아구분 불가능에 완전히 제어가 안 되기에 절대로 이런 상황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만.
그녀가 나를 이런 이공간 속에 가뒀다면.
그 선택에 망설임 따윈 없다.
단점은 내가 본래대로 되돌아 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점과 이 여파가 바깥까지 미치면 끝장이라는 점.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공복에 미쳐버린 내 육신이 잔혹해진다는 점이 있다.
갑작스레 변해버린 힘에 그녀가 당황하며 거체를 데굴데굴 굴려 내게서 벗어나려 했다.
쩌억!!
하지만 내 손에 쥐어진 홍단이가 또 한 번 붉은 궤적을 시간을 무시하고 만들어내며 그녀의 몸을 난자했다.
“어디가. 임마. 이리와.”
공복의 광기에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맡긴 내 몸에 닿는 그녀의 힘이 모조리 흩어진다.
내 몸에 적용된 모든 힘의 독립.
금기의 힘은 신의 힘조차 거부한다.
애초에 이 또한 프리아 여신의 힘이 변질되어 만들어진 금기의 힘이니까.
[헤…… 헤라클래스…… 헤라클래스!!!]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는지 그녀가 절규하듯 소리 지르지만, 그보다 빠르게 내 손이 그녀의 비늘을 헤집었다.
“흐흐흐흐…… 여기였냐? 여기냐? 응?”
비늘을 맨손으로 잡아 뜯는 내 행동에 그녀가 반항하려 하지만 두 자루로 분리된 홍단이와 청단이가 이기어검술로 날아들어 그녀의 저항을 제압하고 그녀를 지면에 고정시키듯 꿰뚫었다.
“역린…… 역린을 보자! 걱정 마. 역린만 뜯고 놓아줄 테니까.”
반쯤 흐릿해진 의식 너머로 내 육체가 멋대로 지껄이는 것을 듣고 있으니 속에서 천불이 일지만, 끝까지 간섭하지 않는다.
마지막 한 수를 위해서.
“분명히 이곳 어딘가에 있었을 건데. 이히히히히.”
본래 내 의지와는 다르게 잔혹한 손속으로 그녀를 짓밟으며 내가 광소를 터뜨렸다.
이기기 위해선.
모든 수단을 아끼지 않는다.
그것이 내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