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3화
완전한 광기의 잠식.
광기의 해방.
공복.
과거 영웅의 회랑에서 영웅들 다수를 소멸시켜버린 사건의 원흉.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데이비가 비틀거리며 타나토스를 노려본다.
바뀌었다.
뭔가가 많이 잘못되었다.
“하하…… 하, 하하하하하! 역린! 역린을 보자!”
콰직!!! 콰득!!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광기. 폭력. 살기까지.
신격을 얻은 괴물은 이제는 단순히 미친놈이 아닌 광신이 되어있었다.
이클립스의 육신을 장악한 타나토스는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데이비의 손에 비늘이 사정없이 뜯겨 나갔다.
[아…… 아아…… 아아아아아!!]
영혼을 비트는 공격과 심연의 권능을 통해 밀려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광기.
심연의 권능으로 들여다본다 한들 외려 신의 정신력까지 잡아먹으며 광기를 퍼뜨린다.
이 광기의 근원은…… 단순한 공복.
하지만 그 단순한 공복이 이토록 끔찍하고 참혹한 현장을 만들어낸다.
지금까지 이런 힘을 숨기고 있었던가.
[물러나라!!]
절대용언을 발현하며 신력으로 몸을 감싸 빠르게 회복시켜보지만 튕겨 나간 미치광이 광신 데이비는 몸을 비틀거리며 휘적휘적 일어난다.
그리고는 다시 움직이기 위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찌직…… 찍!
청단이와 홍단이에 의해 고정된 살점을 찢어발긴다.
이미 두 자루의 검은 신인 타나토스조차 쉽게 부술 수 없는 불괴의 권능까지 손에 넣었다.
고작 피조물주제에.
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가.
타나토스에겐 이 홀른이라는 종족은 이해가 불가능했다.
프리아 여신은 수많은 세상과 규칙, 개념, 생명체를 만들어낸 신이다.
하지만 타나토스의 눈에 [홀른] 즉 인간이라 불리는 생명체는 너무도 기괴했다.
어떤 의미로는 신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유일한 종족일 테니까.
헛소리 같지만 눈앞에 그 증거가 있다.
“배고파…….”
휘적거리며 중얼거린 데이비가 특유의 붉은 안광을 번뜩였다.
“먹을게 필요해…… 먹을게…… 더 많이 필요해…….”
미쳐버렸지만 이전과 비교도 못할 만큼 손속이 잔혹한 탓에 더 위협적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광기화하여 무작정 돌격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까다롭기 그지없다만 약점이 분명 존재할 터다.
데이비의 정신을 들여다보고 알아낸 저 광기의 원인은 두 가지.
홀른의 영웅 헤라클래스의 힘과 저 인간이 지닌 고유의 특성이 충돌한 것이다.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공복을 드러내어 광기에 미치게 만든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광기에 잠식되다 못해 망가져 갈 터.
그렇다면 시간을 끄는 수밖에.
과거엔 한낱 피조물이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조무래기에 불과했던 미물이.
어느새 신격을 잃어버리지도 않은 타나토스 자신을 위협할 정도로 강대해졌다.
끔찍한 결과였다.
심연의 신이 고작 한 명의 피조물에게 소멸의 공포를 느낀다는 것이 말이다.
아직 멀쩡한 부분의 육신을 천천히 움직이며 심연의 힘을 끌어올린다.
그러자 사방에서 검은 기운들이 마치 촉수처럼 돋아나며 데이비의 몸을 빠르게 포박하고 그를 구속시켰다.
[?!]
하지만, 곧 이어진 데이비의 행동에 타나토스는 신으로써의 체통도 있고 경악하고 말았다.
콰득!! 콰드득!!
몸을 구속한 심연의 힘 덩어리인 촉수들을 데이비가 물어 뜯어먹어 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걸로 안돼…… 배고파 미쳐버릴 것 같아.”
이미 미쳐버렸지만 미쳐버릴 것 같다고 한다.
너무 단순하고 너무 괴기스럽고 너무 광기스럽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른 채 데이비는 그것을 정신없이 먹어치워 나갔다.
함부로 먹으면 탈 난다.
그 상식이라는 게 없는지 데이비는 마구잡이로 그것들을 뜯어먹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허기가 안가네…….”
조용히 중얼거린 그의 양손으로 청단이와 홍단이가 빨려 들어온다.
“넌 좀 맛있냐?”
처음 역린을 뜯으려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데이비의 눈에 보이는 감정은 지독한 공복으로 인한 광기였다.
놀라운 점은 이게 아직 완전한 광기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 정도가 점차 심해지고 있을 뿐,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 * *
일방적인 공격이 지속된다.
큰 부상을 입은 타나토스는 신력과 이클립스의 힘을 모두 끌어내 저항해나갔다.
하지만 데이비의 전투방식, 위협수준은 이전과는 궤도가 달랐다.
마치 억눌려있던 게 터져 나온 것처럼 말이다.
진짜 검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한치의 빈틈없는 공격이 이어진다.
게다가 속도도 예리함도 규격 외의 수준인 만큼 오히려 이클립스의 거체가 방해가 되고 있다.
금기의 힘으로 인해 직접적인 마법은 닿지 않고 방출되는 마법은 모두 잘라낸다.
육신이 존재하는 이상 지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콰앙!!!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거대한 그녀의 육신이 한 차례 비틀거리며 무너져 내렸다.
전신에 비늘이 뜯겨 나가고 날갯죽지 한쪽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거대한 용의 앞발 한 부분도 이미 잘려나갔다.
데이비의 전투방식은 과감하고 예리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짐승에 가까웠다.
마법을 쓰고, 신력을 뒤틀고, 적의 심리를 잠식하여 틈을 강제로 잡아 벌린다.
그리고, 그렇게 빈틈이 생겼을 때.
짐승이 먹이를 사냥하듯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이대로는 육신이 버티지 못한다.
불사의 힘만 믿기엔 신격으로 인해 타격이 만만치 않은 점도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타나토스는 특수한 상황에 의하여 힘이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데이비라는 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한 수를 위해서 결국 그녀는 선택을 내렸다.
[아아. 프리아 여신이여. 당신은 끝까지 잔인하기 그지없나이다.]
그녀의 의지가 발현하며 주변이 새까만 안개로 가득 찬다.
[당신의 잠과 꿈을 관리해야 할 나를 만드소사. 쓸모를 다한 저를 이제야 버리심에.]
토사구팽에 절규하고 분노했다. 그렇게 뒤틀렸으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당신의 선택으로 심연이 되었으니. 이 또한 당신의 업일지니.]
스스스스슷!!
주변의 공기가 짓눌리기 시작했다. 감당이 안 되는 막대한 에너지가 폭주하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악!!!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거대한 용의 육신을 감싼다.
“변신할 때 기다려주는 건 멍청한 놈들이나 하는 짓인데.”
그리고, 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순식간에 청단이를 투척하는 데이비의 공격을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검은 안개의 일부가 희생하듯 청단이의 검을 빗겨냈다.
대량의 힘이 소모되지만 상관없었다.
이윽고 검은 안개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광기로 인해 미쳐버린 데이비조차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야. 큰 몸뚱어리 어디 갔어. 나 배고파 임마!”
데이비의 외침에도 그녀는 조용히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세로로 찢어진 황색의 눈이 번뜩인다.
겉 외향은 이클립스의 인간형과 흡사했다.
아름답고 앙증맞은 모습에 검보랏빛 고딕 레이스 풍의 드레스.
그녀의 손은 팔꿈치 바로 아래까지 검은 비늘로 뒤덮여있었고 손가락의 끝은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새하얗던 그녀의 송곳니가 마치 용인의 것처럼 뾰족해진다.
평소 그녀가 들고 있던 양산대신 그녀의 손엔 처음 데이비와 싸울 때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흑색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길이는 약 1미터 50센티 정도. 너비는 약 5센티
이클립스의 키보다 더 긴 사이즈의 얇은 양날형 직검이다.
다만 이전의 검과 다르게 검은 악령 같은 것이 검신에 휘감긴다.
휘리릭, 차아악!!!!
그리고, 고딕 레이스 풍의 드레스 아래로 검은 비늘이 뒤덮인 꼬리가 맹렬하게 바닥을 때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그녀의 머리 위에 두 개의 뿔이 생겨났다.
이클립스이되 이클립스가 아닌 모습에 데이비가 한발 두발 천천히 걸어 나가다가 순식간에 공간을 찢어발기며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검술에 한해선 데이비가 한 수 위라 할 수 있다.
아무리 검에 통달한 신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검술을 통한 경험 차이는 반드시 존재하니까.
하지만.
“네놈은 이 고대룡이 어디까지 자신을 성장시켰는지 아직 모르는구나.”
서걱!!
마치 손발을 움직이듯 너무도 자연스레 일검을 휘두른 그녀의 공격은 광기에 미친 데이비조차 놀라게 만들었다.
마치 미래를 완전히 읽어내고 약속이라도 한 것 같은 일검이 날아들었다.
“으엇!”
촤아악!!
본능으로 피해낸 데이비의 복부에 커다란 상처가 생긴다.
새까만 연기가 그의 몸을 잠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퉁…… 퉁…….
마치 유리바닥을 걸어오는 것처럼 한 걸음 내딛는 그녀의 발치 아래엔 새까만 안개 같은 것이 원형태로 퍼져나가며 그녀의 발끝을 따라 주변을 검게 만들었다.
“거 불 잘 끄게 생겼네? 그래도 나랑 똑같이 생긴걸 먹는 취향은 없는데…… 다시 그 도마뱀 해주면 안 돼?”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묻는 데이비를 향해 타나토스가 조용히 검을 튕기듯 내리 세웠다.
타나토스는 인정해야 했다. 데이비라는 프리아의 대리자를 계속해서 무시했었다는 것을.
제 아무리 신격을 얻어도 결국은 흉내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지만 눈앞의 피조물,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신격에 이르렀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어쩌면 타나토스나 넬타리드 같은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타나토스였다.
“이 고대룡의 의지가 너무 강한 탓에 신의 혜안이 무뎌지고 의지가 짙어지는구나. 위계를 잃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위계가 전부 추락하진 않았지만, 눈이 어두워진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닌 행동을 취한다.
완전한 용도, 완전한 인간의 형태도 아닌 반인 반룡의 모습이다. 가장 애매한 모습이지만 사실상 데이비를 상대로 가장 강한 형태이며, 이클립스의 히든카드나 다름없는 형태이기도 했다.
물론, 이 형태를 데이비는 본적이 없다.
헤라클래스의 기억 속에서도 이런 건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인정하마.”
몸은 비틀거리고, 배고프다며 짜증을 부리는 미쳐버린 데이비를 향해 타나토스가 긴 검을 들어 겨누었다.
검은 안개와 원혼 같은 것이 회전하듯 검신을 빙그르르 돈다.
“신격에 걸맞은 자. 그에 대한 대우가 필요하다.”
그러니 지금부터.
1만 년 이상 증오와 분노, 배신감을 쌓아온 신의 분노를 직접 전달해주리라.
“티오니스에 더 이상 일출(日出)은 없을 것이다.”
스릉…… 카앙!! 카가가가각 서걱!!!
데이비와 타나토스 둘 다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향해 날아든다.
인지가 되지 않는 속도로 파고든 둘의 일검은 단순한 일검의 수준을 넘어 한 번 한 번의 공격이 수백 수천, 수만에 달하는 검의 궤도를 만들어냈다.
시간이 가속화되듯 의식이 가열하고 마치 세상이 느려진 것처럼 변하기를 수십 수백 번 이어진다.
“하하…… 배고프다.”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리는 데이비의 팔이 한쪽 떨어져 나간다.
멍하니 떨어져 나간 팔을 보며 데이비가 입맛을 다셨다.
“팔이 하나면 식사하기 힘든데.”
미쳐도 단단히 미쳐있다. 지금의 데이비는 점점 광기가 심해질 것이고 그 광기에 방해가 되면 닥치는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공간에선 그런 것들이 모두 무의미하다.
천천히 팔을 주워 다시 붙이자 새하얀 빛이 팔을 강제로 접합한다.
그리고는 검을 집어 들며 미련 없이 다시 돌격을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곳에 남겨둔 나의 일부가 티오니스를 먹어치울 것이다. 프리아 여신의 빛을 세상에서 가려 어둠으로 바꿀 것이고, 대지가 격변하여 모든 생명체를 멸하리라.”
타나토스가 바란 것.
그것은 프리아 여신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닌.
그녀가 지키는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네놈이 무슨 이유였건 이곳에 나를 따라 들어온 순간부터 애초에 싸움은 끝났다.”
“하하!! 하하하하하하!!!”
물론 현재의 데이비는 그런 말이 귓가에 들려오지 않는다.
또 한차례 순식간에 검이 충돌한다.
한 손으로 검을 내리치는 데이비와 한 손으로 검을 들어 방어하는 타나토스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데이비의 붉은 눈동자가 광기로 물들기가 무섭게 데이비의 발이 그녀의 복부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쩌억!!
그리고 홍단이의 붉은 검기가 시간을 무시하고 타나토스의 육신을 베어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육신은 잘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데이비의 몸에서 거대한 상처가 생겨났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먼지구름 속에서 폭발이 일어 먼지들이 밀려나는 것처럼 검은 안개들이 터져나가며 그 사이로 바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압도적으로 넓은 공간.
거대한 성운의 일부.
주변의 공간이 갈라지고 공허와 새로운 별의 빛이 솟아오른다.
지금까지 인간이 알고 있던 천체 우주의 법칙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새로운 규칙들이 눈앞에 드러나지만, 데이비와 타나토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서걱!!
대신 서로를 죽이기 위해 움직일 뿐이다.
데이비가 휘두른 검이 빛을 번뜩였다.
그리고, 거대한 먼지구름. 아니 성운의 안개 너머에 있던 강렬한 빛이 몇 개 사라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별의 소실.
크기는 별에 비하면 끝도 없이 하찮을 정도로 작은 크기였지만 신격을 이루고 제한을 해제하여 내뿜는 둘의 힘은 이미 별 따위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